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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25일 08시 02분 등록

응애 25 - 그는 그날 몇마리의 남방호랑나비를

  시인 류시화는 오월 중순에 이제 막 날개를 펴고 나온 어린 나비떼의 펄럭임을 보고 있었답니다. 봄날, 사람들이 농사일을 시작할 때 그 또한 들판으로 나가 한낮의 햇살아래서 나비를 관찰했지요. 그 일은 그에게 생의 휴식을 주고 그로 하여금 그자신의 생각으로부터 걸어나올 수 있게 해 주었답니다.

“내 날개를 만져보세요. 나는 나비예요. 내 떨리는 더듬이와 숨은 시선을 보세요. 나는 살아 있으며 죽음이 겁나요. 당신처럼 말이예요. 나는 나비이고 곧, 당신자신이기도 해요.”

그날 그는 몇 마리의 남방 노랑나비를 쫓아 바닷가 절벽을 오르내리고 있었답니다. 생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그는 즐거웠고, 절벽등반가나 나비채집가가 아니면서도 그 일에 열심이었답니다.

저녁나절이 되어 나비의 날개들이 석양빛에 어른거릴 때 그는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처럼 자만에 뜰뜬 나머지 마지막 햇살 속에 어른거리는 나비를 뒤쫓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바닷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한참이 지난 뒤 그는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정신을 차렸습니다. 간신히 몸을 추슬러 절벽을 기어올라 갔습니다. 그는 나비처럼 그가 한없이 연약한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나비는 작은 날개라도 있지요. 그는 이 생의 저녁 한때에 날개없이 추락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밤늦게 마을 주민의 도움을 받아 집에 도착한 그는 다시금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무수한 나비떼의 펄럭임을 보았습니다. 그 나비들이 그에게 속삭였습니다. “나를 보세요. 떨리는 내 몸을 보세요. 나는 당신이예요. 나는 살아있고, 또 죽는 것이 겁나요.”

다행히 뼈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이 내렸습니다. 그러나 몸이 놀란 것 같아서 우황 청심환을 한알 먹었답니다. 곧 상처는 치유되고 그는 또다시 들판으로 산기슭으로 여름철의 나비를 뒤쫓아 다니겠지요.

나비는 약 2억 7천만년 전의 고생대 화석에서부터 그 존재가 확인되고 있으며, 제주도에 많이 사는 왕나비과의 어떤 나비는 거대한 무리를 지어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해 대양을 건너가기도 한답니다.

** 류시화 산문집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중 ‘나비를 뒤쫓아감’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시인은 나비를 쫓으며 한 여름을 즐기고 있겠지요. 카잔차키스의 나비와 류시화의 나비가 서로 어울려 한강 뚝을 오르내리며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이런 날, 나는 시인의 산문을 따라가며 그 아름다운 날개 짓에서 흘러나오는 시의 운율을 헤아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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