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해 좌경숙
- 조회 수 2363
- 댓글 수 0
- 추천 수 0
응애 25 - 그는 그날 몇마리의 남방호랑나비를
시인 류시화는 오월 중순에 이제 막 날개를 펴고 나온 어린 나비떼의 펄럭임을 보고 있었답니다. 봄날, 사람들이 농사일을 시작할 때 그 또한 들판으로 나가 한낮의 햇살아래서 나비를 관찰했지요. 그 일은 그에게 생의 휴식을 주고 그로 하여금 그자신의 생각으로부터 걸어나올 수 있게 해 주었답니다.
“내 날개를 만져보세요. 나는 나비예요. 내 떨리는 더듬이와 숨은 시선을 보세요. 나는 살아 있으며 죽음이 겁나요. 당신처럼 말이예요. 나는 나비이고 곧, 당신자신이기도 해요.”
그날 그는 몇 마리의 남방 노랑나비를 쫓아 바닷가 절벽을 오르내리고 있었답니다. 생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그는 즐거웠고, 절벽등반가나 나비채집가가 아니면서도 그 일에 열심이었답니다.
저녁나절이 되어 나비의 날개들이 석양빛에 어른거릴 때 그는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처럼 자만에 뜰뜬 나머지 마지막 햇살 속에 어른거리는 나비를 뒤쫓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바닷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한참이 지난 뒤 그는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정신을 차렸습니다. 간신히 몸을 추슬러 절벽을 기어올라 갔습니다. 그는 나비처럼 그가 한없이 연약한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나비는 작은 날개라도 있지요. 그는 이 생의 저녁 한때에 날개없이 추락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밤늦게 마을 주민의 도움을 받아 집에 도착한 그는 다시금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무수한 나비떼의 펄럭임을 보았습니다. 그 나비들이 그에게 속삭였습니다. “나를 보세요. 떨리는 내 몸을 보세요. 나는 당신이예요. 나는 살아있고, 또 죽는 것이 겁나요.”
다행히 뼈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이 내렸습니다. 그러나 몸이 놀란 것 같아서 우황 청심환을 한알 먹었답니다. 곧 상처는 치유되고 그는 또다시 들판으로 산기슭으로 여름철의 나비를 뒤쫓아 다니겠지요.
나비는 약 2억 7천만년 전의 고생대 화석에서부터 그 존재가 확인되고 있으며, 제주도에 많이 사는 왕나비과의 어떤 나비는 거대한 무리를 지어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해 대양을 건너가기도 한답니다.
** 류시화 산문집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중 ‘나비를 뒤쫓아감’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시인은 나비를 쫓으며 한 여름을 즐기고 있겠지요. 카잔차키스의 나비와 류시화의 나비가 서로 어울려 한강 뚝을 오르내리며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이런 날, 나는 시인의 산문을 따라가며 그 아름다운 날개 짓에서 흘러나오는 시의 운율을 헤아려 봅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 응애 25 - 는그 날그 | 범해 좌경숙 | 2010.07.25 | 2363 |
3431 | 라뽀(rapport) 18 - 나에게 주어진 메타포어(metaphor) [6] [1] | 書元 | 2010.07.25 | 2407 |
3430 | 내게 사랑은/ 운암에서 / 운우지정 [1] [2] | 신진철 | 2010.07.25 | 3154 |
3429 | 응애 26 - 강은 흘러야 한다 [6] | 범해 좌경숙 | 2010.07.26 | 2284 |
3428 |
감성플러스(+) 19호 - 인생을 시(詩)처럼! ![]() | 자산 오병곤 | 2010.07.26 | 3435 |
3427 | 정직이랑 진실이 [5] | 백산 | 2010.07.28 | 2356 |
3426 |
심스홈 이야기 8 - 제대로 된 홈 드레싱을 위한 재료 ![]() | 불확 | 2010.07.29 | 2628 |
3425 |
[그림과 함께] 너그러움 ![]() | 한정화 | 2010.07.30 | 2966 |
3424 |
동물견문록 ![]() | 이은주 | 2010.07.31 | 5950 |
3423 | 보이지 않는 눈물이 보이는 눈물보다 더 아프다 [4] | 백산 | 2010.07.31 | 2452 |
3422 | 사노라면 | 박상현 | 2010.07.31 | 2572 |
3421 | 왕따가 되다 [27] | 박경숙 | 2010.07.31 | 3350 |
3420 |
[그림과 함께] 자신의 미래를 보는 사람 ![]() | 한정화 | 2010.08.01 | 3358 |
3419 | 라뽀(rapport) 19 - 행복한 강사 [5] | 書元 | 2010.08.01 | 2453 |
3418 |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2] | 백산 | 2010.08.01 | 2357 |
3417 | [컬럼] 연구원이라는 이름의 여행! [2] | 최우성 | 2010.08.01 | 2461 |
3416 |
감성플러스(+) 20호 - 인턴의 꿈 ![]() | 자산 오병곤 | 2010.08.02 | 2456 |
3415 |
[칼럼 21] 괜찮은 여행을 위한 팁 ![]() | 신진철 | 2010.08.02 | 2334 |
3414 | 21. 가이드 견문록 [1] | 맑은 김인건 | 2010.08.02 | 2316 |
3413 | <칼럼> 다른 것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1] | 이선형 | 2010.08.02 | 24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