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주
- 조회 수 5949
- 댓글 수 2
- 추천 수 0
제목 : 동물견문록
사랑은 행위이다. 나는 사랑에 빠진 것이 틀림이 없다. 왜냐하면 동물들을 보면 만지고 싶어서 가슴 안에서 찌르르한 느낌이 울려 나오기 때문이다. 나의 주된 관심사는 물론 개와 강아지이다. 하지만 나의 관심이 개나 강아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태국에 가서 알게 되었다. 여행차 방문한 태국에서 화려한 사원은 나의 마음을 끌지 못했다. 도리어 그 나라 곳곳에 있는 많은 동물들에게 관심이 갔다. 만약 동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면 정말 덥고 가난한 나라여서 전혀 만족감을 느낄 수 없었을 것 같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해 볼 수 없었던 동물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그들의 감촉을 그 곳 태국에서 경험하게 되었다. 오늘은 그 경험을 표현하고 싶다.
그곳에서 만난 동물들의 눈은 슬펐다. 자유로이 정글을 누비며 자유를 누려야 할 동물 친구들은 그곳에서 인간들의 밥벌이에 이용되고 있었다. 그 밥벌이는 그들이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그들을 만지기 위해서 다가갔을 때 목에는 이런 팻말이 걸려있었다 - “ 당신이 찍어주는 사진 한 장의 값은 우리가 먹여야 할 식량의 값입니다.” 물론 현지인들이 돈을 벌고자 관광객들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임을 사람들은 쉬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 찍기를 외면했다. 팻말의 말과는 달리 동물의 먹이를 사주는 것 보다는 인간들의 돈벌이가 더 우선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달랐다. 어쨌든 많이 찍어주어야 그래서 현지인들이 먹고 살고, 그리고 음식이 조금이라도 남아야 동물들이 배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먼저 코끼리에게 다가갔다. 코끼리는 자신의 자식이 아니더라도 집단 내에서 길러준다. 그래서인가 그들의 행동에서 어떤 인자한 느낌이 몸에서 배어나온다. 몸집이 거대해도 온순하고 부지런하다. 온순한 인상 덕에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친숙한 동물로 인식되어 있다. 코끼리는 이미 알고 있는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친밀함이란 나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죠, 내가 편해야 남도 편하답니다.” 코끼리가 나에게 주는 메시지가 들리는 듯 했다. 코끼리의 편안함이 나에게 그 큰 덩치의 동물에게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가슴이 움직였다. 그러자 갑자기 나는 그들을 만지고 싶어졌다. 나는 코끼리 코를 꼬오옥 안아 주었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다. 우리가 볼 때 코끼리 가죽은 거칠고 메말라 있고 갈라져 보인다. 그런데 막상 내가 코끼리 코를 만졌을 때 가죽은 너무나 물이 많고 축축해 미끈거릴 정도였다. 내가 코끼리를 만지자 코끼리 주인은 나에게 코에 앉아 보라고 했다. 내가 코에 앉자 코끼리는 나를 힘껏 들어 올려 나는 졸지에 하늘을 나는 원더우먼이 되었다. 그 순간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나의 꿈을 위해 이렇게 힘껏 날아보라는 말을 하는 행위 같아 나는 코끼리를 한참이나 꼭 안고서는 말했다. “그래 이거구나! 하늘을 나는 기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기분이 마치 이런 기분이겠구나. 잊지 않을께. 고마워.” 나는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그 순간의 짜릿한 느낌, 공중으로 힘껏 떠오르는 기분을 상상한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나는 그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을 거야’라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다음으로는 원숭이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밥벌이에 충실하고자 하는지 앉자마자 나에게 애정 공세를 하기 시작했다. 원숭이를 안을 때의 느낌은 대여섯 살 정도의 아이를 안는 느낌이었다. 따뜻하고 뭉쿨한 느낌, 이 느낌을 안아 보지 않고서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을런지. 나는 한참이나 원숭이들과 놀았다. 사탕을 주고 만져주고 악수하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 노는 느낌과 전혀 다름이 없는 기분이었다. 자리를 뜨면서 나는 그들과 아쉬운 허그로 헤어져야만 했다. 나의 가슴에 꽉 차게 나눈 교감만큼 빈자리 역시 컸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즐겁게 잘 살아야해’라는 바램을 짧은 화살기도처럼 남기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어야 했다.
원숭이 친구들과 함께
조금 가니 정글의 맹수 호랑이가 쇠사슬에 목이 메인 채 있었다. 사냥을 하고 벌판을 뛰어야 할 호랑이가 그렇게 갇혀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호랑이는 급속히 체력을 소모하는 형태의 사냥을 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먹잇감을 지켜보면서 꾸준히 끈기를 가지고 때가 되기를 기다린다. 호랑이의 눈빛이 살아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묶여 있는 호랑이의 눈빛 속에는 생기와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자기 본연의 모습을 잃고 앉아 있는 호랑이는 고양이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해 있었다. 그 순간 무기력증으로 의욕을 상실한 채 희미한 눈동자로 살아가는, 삶의 매력을 잃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것은 가끔씩 거울에 비춰진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때를 기다리며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호랑이들을 계속 쓰다듬어 주었다. 털은 거칠었지만 무늬는 너무 아름다웠다. 치장하지 않아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모습으로 당당한 자존감이 있는 호랑이, 나의 삶의 모델이기도 했다. 야생 속의 호랑이처럼 용맹하게 살아가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원해 주었다. 나에게도
함께...하품하는 호랑이
‘으악 ~’, 곰에게 다가가자 제일 먼저 느껴진 것은 지독한 냄새였다. 코랑코랑한 짐승 털 냄새, 입 냄새, 그러나 싫지는 않았다. 이유는 ‘사랑’ 때문이다. 사람들도 사랑에 빠지면 입 냄새도 못 느끼고 심지어 겨드랑이에서 분비되는 액취증도 샤넬 넘버 5 향수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게다가 얼굴에 있는 점의 크기도 다이아몬드 캐럿 수처럼 클수록 좋아 보여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결혼을 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랑의 유효기간이 지나 돌파민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지 않으면 그 지독한 냄새가 이혼의 사유가 되기도 하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냄새를 없애기 위해 수술을 고민하기도 한다. 나는 사랑의 돌파민 효과 때문인지 곰들의 지독한 냄새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생각만해도 웃음짓게 하는 곰이 마냥 사랑스럽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날 나에게도 동물에 대한 사랑의 유효기간 끝나서 동물 털과 배설물 냄새로 코를 잡고 질색하는 시간이 올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하지만 아마도 내 인생에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제발, 이 친구들 배고프게 하지 말아주세요…….”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의 힘으로 나는 그들에게 배를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선물 살 돈을 사진 값 이외에 팁까지 얹어 다 주고 왔다. 그래야 내 마
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귀여운 곰탱이
동물들이 편해야 내 마음도 편해지는 이 놈의 고질병, 하지만 이것은 유전이라는 것을 나는 내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었다. 다 큰 아들들과 이번에 미국 채류 때 간 곳은 다름아닌 ‘동물원’이었다. 뒷배경으로 동물들과 사진을 한 컷 찍기 위해 우리 애들은 느린 몸짓으로 다가오는 동물들을 마냥 기다렸다. 더위에 인상하나 안 쓰고 동물들을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아들들의 모습에 나는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이놈의 ‘동물 사랑’ 유전자는 무지하게 강하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둘 중에 하나도 아닌 둘 모두 그러니 나는 확률 100%로 아이들에게 평생 재산으로서 ‘동물 사랑’의 마음을 남기게 되었으니 말이다.
작은 아들과 기린과 함께
코끼를 좋아하는 큰 아들과..
지금까지 동물들을 통해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의 모습을 정리해 보았다. 코끼리처럼 내 삶이 인자함으로 품어져 나와 자연스럽고 편안한 사람, 누구나 다가오기에 친숙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카리스마 있는 눈빛으로 나에게 오는 때를 기다리다 되었다 싶으면 호랑이처럼 전력질주 하며 열심히 사는 강렬함과 매력이 있는 사람, 내가 가지고 있는 자체의 아름다움을 발휘하며 자신 있게 사는 자존감이 있는 호랑이 무늬 같은 아름다운 사람, 원숭이처럼 언제나 즐겁게 남에게 웃음을 주고 어울릴 수 있는 사람, 마지막으로 곰처럼 우직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남들이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 귀여운 사람으로 남고 싶은 바람이 있다. 사람마다 각자 바위나 나무, 강에 비교를 하며 삶을 정리 해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나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 즉 동물을 사랑하고 그들의 행동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세상을 바라보고 정리하고 싶다. 누구나 그렇듯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나이들 때 가장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432 | 응애 25 - 는그 날그 | 범해 좌경숙 | 2010.07.25 | 2363 |
3431 | 라뽀(rapport) 18 - 나에게 주어진 메타포어(metaphor) [6] [1] | 書元 | 2010.07.25 | 2407 |
3430 | 내게 사랑은/ 운암에서 / 운우지정 [1] [2] | 신진철 | 2010.07.25 | 3154 |
3429 | 응애 26 - 강은 흘러야 한다 [6] | 범해 좌경숙 | 2010.07.26 | 2284 |
3428 |
감성플러스(+) 19호 - 인생을 시(詩)처럼! ![]() | 자산 오병곤 | 2010.07.26 | 3435 |
3427 | 정직이랑 진실이 [5] | 백산 | 2010.07.28 | 2356 |
3426 |
심스홈 이야기 8 - 제대로 된 홈 드레싱을 위한 재료 ![]() | 불확 | 2010.07.29 | 2628 |
3425 |
[그림과 함께] 너그러움 ![]() | 한정화 | 2010.07.30 | 2966 |
» |
동물견문록 ![]() | 이은주 | 2010.07.31 | 5949 |
3423 | 보이지 않는 눈물이 보이는 눈물보다 더 아프다 [4] | 백산 | 2010.07.31 | 2452 |
3422 | 사노라면 | 박상현 | 2010.07.31 | 2572 |
3421 | 왕따가 되다 [27] | 박경숙 | 2010.07.31 | 3350 |
3420 |
[그림과 함께] 자신의 미래를 보는 사람 ![]() | 한정화 | 2010.08.01 | 3358 |
3419 | 라뽀(rapport) 19 - 행복한 강사 [5] | 書元 | 2010.08.01 | 2453 |
3418 |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2] | 백산 | 2010.08.01 | 2356 |
3417 | [컬럼] 연구원이라는 이름의 여행! [2] | 최우성 | 2010.08.01 | 2461 |
3416 |
감성플러스(+) 20호 - 인턴의 꿈 ![]() | 자산 오병곤 | 2010.08.02 | 2456 |
3415 |
[칼럼 21] 괜찮은 여행을 위한 팁 ![]() | 신진철 | 2010.08.02 | 2333 |
3414 | 21. 가이드 견문록 [1] | 맑은 김인건 | 2010.08.02 | 2315 |
3413 | <칼럼> 다른 것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1] | 이선형 | 2010.08.02 | 24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