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은 김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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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로 일본 가이드를 하게 되었다. 일본의 최상단, 북해도(홋카이도)라는 곳이다. 선배 가이드로부터 대체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도 처음 가보지만, 사회 생활 자체가 처음이었다. 호텔 구조와 일정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지만,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9.11. 테러 이후 수하물은 개인이 각자 붙이게 되었다. 지금은 인천공항에서 국제선을 타지만, 당시에는 김포공항이었다. 손님들을 만나면, 여권을 모두 받는다. 손님들의 수하물도 여행사 직원이 대신 받아준다. 출입국 신고서, 보딩티켓, 모두 가이드가 챙겨야 한다. 이것은 능숙한 사람에게는 일도 아니지만, 말로 들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공항에 가본 적도 없는 사람이 하기에는 무리다. 출국 전까지 이런 내용을 수도 없이 반복해서 들었다.
출발 당일이다. 전날 한숨도 못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비행기 티켓과 여권, 그리고 현지 행사비가 적어도 2천만원 정도이다. 한번에 천만원 이상의 돈을 한사람이 가지고 나갈 수가 없다. 이럴때는 돈을 반으로 나누어서, 손님에게 나머지 돈을 운반해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이것도, 껄끄러운 부탁이다. 이 모든 것은 어린 내가 짊어져야할 짐이었다.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만약 여권 하나를 모르고 빠뜨렸다고 치자. 그러면 그 손님은 비행기를 탈 수 없고, 그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있다.
당시 이사님이 공항까지 배웅해주셨다. 손님들은 대한항공 라운지에 있었다. 여행을 많이 다니셨는지, 다행스럽게도 본인이 직접 골프채며, 수하물을 부치고, 보딩까지 받아놓은 상태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만 티켓을 받으면 된다. 골프가 대중화 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돈 있고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골프를 쳤다. 손님들의 구체적인 직업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모습만으로도 힘이 있어 보였다. 그것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힘이었다. 손님 중에, 내 또래의 여자가 있었다.
홋가이도까지는 비행기로 근 4시간 걸린다. 비행시간이 길기 때문에 다른 일본 여행 상품에 비해 비싸다. 덕분에, 비행기 안에서 충분히 쉴 수 있고, 준비할 수 있다. 머릿속으로 공항에 도착해서 진행할 사항을 시뮬레이션 해보았다. 다행히 한국 공항에서는 손님들이 알아서 짐을 챙겼지만, 일본 공항에 도착하면 내가 다 해야 한다. 이래 저래 걱정이 태산인데, 옆에 있는 일본 사람이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해 주었다. 그는 수영장 선생님이라고 했는데, 한국 관광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드디어 일본 치토세공항에 도착했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외국땅을 밟은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황당한 것이, 나도 이곳이 처음인데 손님들을 안내해야 한다. 창밖으로 질서정연한 일본 가옥들과 산림들이 보였다.
일본 공항에서도 그다지 내가 할 일은 없었다. 먼저 나와서 피켓을 들고, 손님을 기다리면 된다. 이럴때는 쥐새끼같은 날렵함이 필요하다. 의외로 나는 그 일을 잘했다. 호텔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하는데, 그 버스를 안내해줄 사람과 만나야 한다. 문제는 내 일본어가 그리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사람과 자연스럽게 회화를 해본적이 많지 않다. 일본 친구들과 단편적인 이야기만 나눈 경험이 있지, 대화를 하기에는 내 일본어 실력이 모잘랐다. 다행스럽게도, 호텔 피켓을 든 젊은 여자가 먼저 다가와 주었다.
나: 루스츠 호텔 버스 입니까?
여자; 그렇습니다.
매우 간단한 회화였다. 손님들은 그나마 내가 일본어를 하는 모습에 안심하셨던 것 같다.
손님이 모두 나왔다. 골프채가 있기 때문에 짐들이 많다. 손님의 골프채는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짐짝처럼 집어던지면, 손님은 분노한다. 짐까지 모두 실고, 손님도 탑승하셨다. 이제부터가 진면목이다. 호텔까지 1시간 30분 되는 거리를 가는동안, 소위 '약을 팔아야 한다.' 약을 판다는 것은 버스에서 손님들에게 멘트하는 것을 말한다. 이빨이 쎌수록 가이드에 대한 신뢰도 커진다. 마이크를 잡았다. 아, 내가 봐도 마이크를 잡는 모습이 너무 어설프다. '안녕하세요'라고 운을 떼었다. 목소리가 심히 떨린다. 손님들이 나보다 더 안스러운 표정을 하기 시작했다.'저는 김인건 이라고 합니다. 그냥 미스터 김이라고 불러주세요. 헤헤'
호텔 구조와 골프 티오프 하는 방법, 일정등을 소개하는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연습했건만, 막상 마이크를 잡자 눈앞이 하얗다. '그럼 호텔도착할 때까지 편히 쉬세요'라는 말을 하고 뒤돌아서 가이드석에 앉았다. 등으로 손님들의 분노가 꽂혔다. 무서워서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호텔에 도착했다. 다행스럽게도, 내 사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각잡힌 태도로 손님들에게 인사를 했다. 믿음직스럽다. 노련하고, 관록이 있어 보이는 태도다. 이제부터는 그를 따라다니면서, 등넘어로 보기만 하면 된다. 과연 사수는 경험과 연륜 있게 서비스를 했다. 식당에서 손님들의 주문을 받고, 바로 일본 스텝에게 전하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저런 빈틈 없는 서비스를 할려면, 어느 정도 경력이 필요할까?
문제는 저녁을 먹고, 생겼다. 여행을 오기 전에, 일정상의 문제가 있었는가 보다. 현지에 오면, 더 좋아지는 경우는 없다. 손님이 포기하거나, 더 낮은 레벨의 형태로 제공된다.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손님은 그것때문에 화가 나셨던 것 같다. 나이는 환갑이 넘어 보이셨고, 키가 매우 큰 손님이었다.
로비에서 장장 1시간 30분 동안 사수에게 화를 쏟아냈다. 일정을 시작으로, 김치가 왜 모양이냐, 침대가 작다등 자질구레한 것들이 터져나왔다. 사수는 땀을 뻘뻘 흘리며, 그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다. 매우 안스러운 광경이었다. 당시 나의 의식 상태는, 할아버지뻘 되시는 분이 저렇게 쫀쫀한 것으로 화내는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나를 보며 한 말씀하셨다. '재는 왜 데리고 왔어'
이 말을 듣고, 마치 모든 문제가 나때문에 라는 죄책감이 생겼다. 호텔로 돌아오다. 사수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몇년 후 그와는 안좋게 끝났다. 그리고, 현재 그는 부도를 내고 잠적했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다) 녹차를 마시고, 담배를 폈다. 이국땅에서 첫날밤이지만, 집에 가고 싶었다. 그날도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일정동안, 나는 일을 곧잘 했다. 골프장에서 일은, 몇번 해보니까 어려울 것이 없었다. 두려워했던 일본어도 자신이 생겼다. 왜냐면, 맨날 하는 이야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골프장과 호텔에서만큼은 내 일본어는 현지인과 같았다.
손님들이 골프 치러 가시면, 마땅히 할 일이 없고 심심하다. 일행중에 내 또래 여자 손님이 있었다.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골프를 할 줄 몰랐다. 호텔 옆에 유원지가 있었는데, 나와 같이 놀았다. 자유 이용권을 끊어서, 이것저것 타고 놀았다. 골프장 딸린 호텔은 산 속 깊이 박혀 있어서, 골프를 안치면 마땅히 할 일이 없다. 시내가 가깝다면, 구경하고, 쇼핑도 할 수 있지만, 밤되면 아무것도 없다. 그녀도 심심했나 보다. 엉뚱하게도 그녀의 아버지가 했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사수가 호텔 사우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였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혹시 '혼탕' 아니냐고 물었다. 일본에는 혼탕이 있다는 것을 어딘가에서 들었나 보다. 사수는 '혼탕이 있다면, 저도 가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 적잖이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기를, '내 딸이랑 한번 가고 싶은데...'
6박7일 일정은 눈깜짝 할 사이에 지났다.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존재였지만, 손님들은 나와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함께 돌아가지 못해서 아쉽습니다.'라고 말하자, 내 또래 여자 손님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시집 가서 애 낳고 살고 있겠지. 사수에게 화를 내셨던 손님은, '수고했다'며 1만엔 팁을 주셨다. 감동의 순간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내가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 기뻤다.
팁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잠깐 이야기를 하겠다. 가이드에게 팁은 공돈이다. 팁을 저축하는 가이드는 못봤다. 어떨결에 들어온 돈은, 어떨결에 나간다. 많이 들어오면 좋지만, 적게 받아도 나쁘지는 않다.
손님; '미스타김 수고했어, 이거 받아, 담배값 해'
나; 아니, 사장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손님; 허, 사람이 받아.
나; 아이, 참...괜찮습니다.
손님; 허, 정말 받으래두
나; ......앙
화장실에 들어가서 봉투안에 액수를 확인한다. 간혹 욕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도 주셨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일정동안 심하게 부림 당하다가, 마지막에 팁을 건네 받으면, 희열을 느낀다. 그 감정은 군대에서 고참에게 얻어터지고 난 뒤에 건네받은 담배 한대? (맞고서도 상쾌하다.)내지는, 매 맞는 아내에게, 남편이 사과의 뜻으로 끊여준, 눈물 젖은 국밥이다. 하지만, 안주면 섭하다. 부려먹지도 않고, 팁도 안주는 손님은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손님과의 관계에 화룡정점을 찍는 것이 바로 팁이다.
원래 난 역마살이 없다. 여행업에 몇년 있던 경험때문인지, 8월 시즌이 되면 몸이 근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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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여행을 앞두니까... 여행이야기가 소재가 되네... 가이드 경험은 참 좋은 이야기거리가 되겠다 싶네.
ㅋ.. 또래의 여자가 있었다.. 보통은 글에서 이런 이야기를 살짝 남기고 가면, 뒤에 뭔가가 있겠다 싶어
궁금해진다. 그런데..치...김샜다. 인건.. 지어내라는 건 아닌데...그래도 뭔가 있을 거 같았는데..아쉽다.
'팁'과 얽힌 에피소드들이 이래저래 많이 있었을 거 같은데...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런 소재들로 구성해보면
어떨까? 왜냐면, 나도 그렇지만... 팁을 줘야는지 말아야는지. 지역마다 문화가 다르고, 얼마를 언제 줘야는지
조금 줘 놓고, 도리어 욕먹는 거 아닐까? 매번 이런 고민들이 있었거든.. 팁을 둘러싼 주는 자와 받는자.. 그리고
가이드라는 좀 다른 입장에서 팁이야기는 심리적 갈등도 묘사될 수 있는 소재거리가 될 수 있겠다 싶네..ㅎㅎ
ㅋ.. 또래의 여자가 있었다.. 보통은 글에서 이런 이야기를 살짝 남기고 가면, 뒤에 뭔가가 있겠다 싶어
궁금해진다. 그런데..치...김샜다. 인건.. 지어내라는 건 아닌데...그래도 뭔가 있을 거 같았는데..아쉽다.
'팁'과 얽힌 에피소드들이 이래저래 많이 있었을 거 같은데...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런 소재들로 구성해보면
어떨까? 왜냐면, 나도 그렇지만... 팁을 줘야는지 말아야는지. 지역마다 문화가 다르고, 얼마를 언제 줘야는지
조금 줘 놓고, 도리어 욕먹는 거 아닐까? 매번 이런 고민들이 있었거든.. 팁을 둘러싼 주는 자와 받는자.. 그리고
가이드라는 좀 다른 입장에서 팁이야기는 심리적 갈등도 묘사될 수 있는 소재거리가 될 수 있겠다 싶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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