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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홈 드레싱, 가구부터 골라라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책상 하나를 가지고 한 살 아래 여동생과 함께 사용했다. 동생이 책상에서 공부를 하면 나는 엄마께서 가져다주신 상 하나를 펴놓고 숙제를 했고, 내가 책상에서 공부를 할 때면 동생은 방바닥에 엎드려 책을 읽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서였을까.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내 방이 생겼다. 나만의 공간이 생기자 나는 아빠와 함께 가구점으로 달려갔다. 아빠는 리바트라는 가구회사에서 나온 나무 결이 가지런하고 빛깔이 참 고왔던 책꽂이까지 달린 멋진 책상을 사주셨다. 머리 모양이 아주 반듯한 침대와 밖으로 서랍이 두개가 달린 옷장도 세트로 구입했다. 침대와 옷장, 책상까지 풀세트에, 반들반들 윤기가 나는 노란빛이 도는 티크세트를 들여 놓자 내 방은 완전 천국이었다. 나는 신이 나서 방을 꾸미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나의 집을 꾸미게 되었을 때 나는 내 머리 속에 그려 놓고 내 맘속에 찜해 놓은 가구를 데려오기 위해 열심히 품을 팔았다. 내 맘에 쏙 들어오는 가구를 고른다는 것이 결코 쉽진 않았지만 나는 그동안 눈여겨 봐왔던 가구 숍들을 살펴보고 가구단지와 박람회, 페어까지 눈을 크게 뜨고 부지런히 찾아 다녔다.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뭔가 색다르고 독특함을 추구하는 인테리어 숍까지 내가 찾는 가구를 구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곳을 샅샅이 뒤졌다. 원하는 디자인의 가구를 찾을 때까지 벽면 페인팅도 미러둔 채 말이다.
그렇게 공들여 품을 팔아 데려온 가구는 내 집 꾸밈의 훌륭한 재료가 되었다. 특히 내가 아끼는 파티네이션(patination 사람의 손때는 물론이고, 잉크를 엎지른 자국이나 긁히고 찍힌 자국 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아름다워 보이는, 세월의 더께로 인해 생겨나는 것)의 흔적이 살아있는 견고한 앤틱 책장은 내가 만든 패브릭 제품들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풍성한 재료가 되고 있다. 벌써 몇 년이 지났건만 그들은 유행에 관계없이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고, 그래서 더욱 부담 없고, 시간이 갈수록 정이 드는, 그저 편안한 나의 식구가 되었다.
보통 인테리어를 훌륭히 하고도 가구를 잘못 골라서 실패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가구와 살림이 들어오지 않았을 때는 내내 근사하게만 보이던 집이 나의 집에 어울리지 않는 가구 때문에 가오가 살지 않는 경우를 정말 수도 없이 보아왔다. 그래서 나는 각 공간에 놓이는 가구의 스타일, 크기, 소재, 컬러 등을 고려하여 그에 걸맞게 벽지와 바닥재를 선택하고, 조명과 소품 등을 매치할 정도로 가구에 많은 비중을 두는 편이다.
가구는 집 안에 놓이는 물건 중 가장 덩치가 커서 그 스케일 감만으로도 공간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디자인 또한 다양해서 공간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구조변경 없이도 집안의 동선을 분할하고 수납의 문제도 속 시원히 해결해 주는 등 제대로 활용할 경우 만족도가 아주 높은 홈 드레싱의 훌륭한 재료다. 까다롭게 골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답은 아니지만 숱하게 가구점을 다녀보고 구입해 본, 그러니까 대리만족의 내 경험을 살려 후회 없는 가구 선택을 위한 몇 가지 팁을 제안해주고 싶다.
가끔 옷이 사람을 입는 경우를 본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나는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무리 옷이 날개라고 하지만 옷이 주인이 되어서야 되나. 집을 꾸미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가구가 집을 그리고 집주인을 압도하는 경우도 있다. 거실을 잡아먹을 듯한 무서운 크기의 우악스런 검정색 가죽 소파가 자리를 떡 하니 차지하고 있는 끔찍한 상황을 정말이지 여러 번 경험했다.
그래서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가구가 위치하는 공간을 절대 과소평가하지 말아 달라는 거다. 가구를 무턱대고 구입하기 전에 각 공간에 적합한 가구 배치도를 한번 그려봤으면 좋겠다. 널찍한 평수의 가구점이나 모델하우스에서는 딱 알맞은 사이즈로 보였던 가구가 막상 나의 집에 들어왔을 때는 그 크기에 점령당할 수 있다.
특히 모델하우스의 가구는 맞춤제작가구가 대부분이고 모든 가구들이 실제보다 조금씩 작은데 이는 전문가가 아니라면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실제 크기의 90%에서 95% 정도 되는데 이 정도의 수치는 일반인들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하면서도 나름의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델하우스 곳곳에 배치된 모든 가구와 비품들은 동일한 비율로 작은 것이 일반적이고 그렇게 조금씩 작은 가구는 상대적으로 공간을 넓어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니까 이를 그대로 적용하면 나의 집에 적합한 가구 사이즈는 5% 부족한 것이 딱이다 라는 말이 된다.(?)
그 다음으로는, 몇 가지 중요한 가구들은 좀 무리를 해서라도 좋은 디자인과 제대로 만들어진 좋은 품질의 가구를 고르라는 것이다. 어찌어찌해서 또 어쩌다가 값싼 대용품을 급하게 구입해서 후회해 본 경험,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거다. 가구에 상당한 금액의 돈을 쓰는 것은 절대 낭비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아무리 작은 가구라도 일단 한번 사면 적어도 5, 6년은 쓰게 되기 때문에 오히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훨씬 더 현명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들어 나만의 멋과 기능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붙박이형 맞춤 주문제작가구에 올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번 사면 평생 사용할 요량으로 좋은 가구를 들이고자 할 때에는 맞춤형 가구보다는 독립형 가구에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휴식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눈 딱 감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의자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의자는 당신이 어디를 가든 함께 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하며 나와 함께 곱게 나이 들어가는 가구가 있다. 애착을 가지고 오래 쓸 수 있는 좋은 가구와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음으로 이것은 내가 누구에게나 매번 그리고 누차 강조하는 말인데 꼭 필요한 가구를 먼저 데려오고 나머지는 살면서 천천히 구입하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제발 한꺼번에 충동적으로 구입하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신혼집을 꾸미거나 이사를 할 때 가장 쉽게 저지르는 실수가 집을 완벽히 꾸며 놓은 상태에서 들어가 살고 싶은 마음에 충분한 시장조사 없이 가구를 세트로 구입하는 일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고 내가 집을 꾸미면서 제일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가구점의 카달로그를 그대로 따라쟁이해서 꾸민 공간이다. 아무리 집을 꾸미는 일이 힘들고 귀찮은 데가 있다지만 나만의 공간이 가구점의 카달로그와 비슷해서야 쓰나.
당장에 필요하지 않은 아이템은 과감히 생략하고 대신 오래 사용할 가구는 하나를 사더라도 처음 구입할 때 집안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나의 취향을 고려하여 적어도 10년 넘게 사용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구입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제대로 된 홈 드레싱을 위한, 가구에 의한, 좋은 재료를 선택하는 일의 핵심은 바로 가지고 있는 가구와 새 것과의 조화를 고려하고, 낡은 가구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이다.
집 꾸미는 일을 직업으로 갖고 있어서인지 주변에서 취향과 안목이 좋은 이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고집스럽다 할 만큼 확실한 선택의 기준, 숨겨진 아름다움을 속속들이 찾아내는 심미안, 이렇게 섬세한 취향을 지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오랜 세월 쌓아온 그들의 보석 같은 취향을 옆에서 지켜보며 노하우를 터득한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전시를 보러 갔다가 구입했다는 작품과도 같은 고가의 의자와 직접 조립해 만든 이케아 책상으로 꾸민 집주인의 센스가 돋보이는 서재는 가구에 대해 고지식하고 고루한 나의 편견을 말끔히 없애주는 계기가 되었다. 시어머님에게 물려받아 20년 째 쓰고 있다는 흠집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나지막한 2층짜리 고재농을 모던한 빈티지 서랍장과 매치해 동양적인 감성과 서양의 실용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어내는 거실은 집주인의 추억과 만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고풍스런 색감의 앤틱 코모드(commode 프랑스에서 서랍장을 부르는 이름)에 잘 생긴 우유빛 백자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 보는 내내 입을 다물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해외에 나갈 때마다 인테리어 숍이나 벼룩시장에서 건져낸 소품들을 갖고 있는 가구와 믹스&매치하는 데 공을 들이고, 하나둘 모은 각기 다른 가구들이 어울려 개성 넘치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가구와 공간, 가구도 빛나고 이를 배경 삼은 공간도 덩달아 돋보이는 절묘한 조화, 가구와 소품 어느 하나 다투는 일 없이 서로를 존중하듯 만들어내는 이 아름다운 모습들은 내게 가구에 대한 중요성을 더욱 더 확고히 하게 만들었다.
나에게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집 꾸밈 재료를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바로 가구! 라고 외칠 만큼 가구는 홈 드레싱에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아이템이다. 인테리어 공사를 마쳤는데도 어딘가 허전해 보이고 2% 부족하다 생각된다면 가구 배치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체크해 볼 필요가 있다. 꼭 필요한 가구를 제대로 선택하고 가구의 배치를 달리하고 가구와 다른 이들의 관계에서 약간의 깊이를 주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느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어디에 뭐가 제일 잘 어울리는지, 어느 자리에 놓아야 제일 편안한지, 가구 위치를 이리저리 옮기고 바꾸다 보면 집이 점점 더 예뻐지는(?) 것을 알 수 있을 거다.
무슨 일이든 경험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자꾸만 망설이게 된다. 아마 가구도 그렇게 망설이게 되는 아이템 중 하나인 것 같다. 있는 듯 없는 듯 튀지 않으면서 문득문득 돌아보면 은근히 아름답고, 요란스럽지 않으면서 필요한 역할을 하고, 늘 그 자리에서 믿음직하게 존재하는 가구는 품을 파는 노력과 시간이 더해지면 그 같은 것을 미리 볼 수 있는 안목이 분명 생기게 될 거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와서 거실 소파에 몸을 푹 기대었을 때의 그 편안함, 식탁에 둘러앉아서 가족이 함께 밥 먹을 때의 그 여유로움과 즐거움, 보람찬 하루를 보내고나서 침대에 누웠을 때의 그 뿌듯함과 행복함, 가구에는 이러한 시간과 경험들을 가지고서 만들어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나 보다. 글쎄, 아직 잘 모르겠지만 가구는 그 가구를 사용하는 사람과 그 가구가 놓여진 공간을 통해 완성되어지는 것 같다.
우리는 가구를 제대로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변신이 가능한 홈 드레싱을 완성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