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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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그리스ㆍ터키 해외 연수를 다녀왔다. 9박10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휑하니 가버렸다. 8월6일 인천을 출발하여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 내린 지 8일만에 같은 장소를 통해 입국하게 되었다. 기간은 불과 일주일 남짓이지만 떠날 때와 돌아올 때의 느낌은 확연히 달랐다. 그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스와 터키의 더위는 살인적이었다. 40도에 육박하는 땡볕 아래 모자를 쓰지 않은 머리는 달구어질 대로 달구어져 걷다 보면 자연 몽롱한 정신세계가 형성되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부족한 잠과 작렬하는 태양이 알맞게 버무려져 고대 유적을 돌아보며 신들과 교통하기에는 적당한 의식상태가 되었다. 델피를 돌아볼 때 안내 받은 아폴로의 신탁이 메티오라를 거쳐 밧모스에 이르러서는 현지 여행가이드 베라의 목소리를 통하여 육화되어 들리는 듯 했다. 크루즈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베라가 나지막이 불러제끼던 노래는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수 천 년을 이어온 그리스인의 정서를 가감 없이 전달해 주는 듯 했다. 에게 해의 석양처럼 애잔한 구석이 느껴지던 그녀의 노래.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눈물을 보일듯하다가 용케 추임새를 걸어 넘어가던 그녀의 노래. 눈을 감으면 이번 여행의 배경음악 같은 그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산토리니는 보고 듣던 대로 천국의 땅이었다. 에게 해를 바라보며 아기자기하게 배치된 하얀 집들과 집들에 딸린 바다색깔의 수영장. 피라 마을 언덕에서 바라본 에게 해의 석양은 황금들녘처럼 바다를 온통 물들이고 있었다. 다만 미처 접하지 못한 사실은 언덕 정상에 위치한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케이블카를 이용하든가 망아지를 타든가 589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진철, 미옥과 나는 걸어서 계단을 오르기로 했다. 계단 몇 개를 지나지 않았을 때 우리의 선택이 그리 현명치 않았음을 깨달았다. 계단은 시종일관 힘든 오름 길을 참다 못해 지르는 당나귀의 똥으로 덮인 채 직사광선을 받아 특유의 냄새를 발산하고 있었다. 사람의 길이자 당나귀의 길인 589계단. 그것은 선택한 이상 끝까지 가볼 수 밖에 없는 우리 인생과 맞닿아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 쉬며 마을에 도착했을 때 앞서 가던 미옥은 우리와 떨어져 혼자가 되었다. 열심히 걷다 보니 어느새 주변에 자기밖에 없더란다. 홀로 거리를 헤매던 그녀는 1시간 만에 구 선생님 일행을 만났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길을 즐기게 되었고, 즐기는 마음에 도달했을 때 스승의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에피소드는 배움의 길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녀가 開眼하자 비로소 빛이 감지되었다.
이스탄불로 떠나기 직전 신타그마 광장에서 얼음 동동 아이스커피를 홀짝거리며 아테네의 마지막 정취를 음미하고 있었다. 공항으로 우리를 인도해줄 버스가 저 멀리 다가오고 있었다. 아테네에 작별을 고하는 순간 단 한 사람이 이별의 키스를 받지 못했음을 알았다. 여권 든 가방을 순식간에 도둑맞은 진철이 아테네에 남게 되었다. 모두가 황망해 하고 있는 사이 버스가 공항에 도착했다. 그가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지만 홀로 남겨진다는 건, 어찌되었건 슬픈 일이었다. 진철을 뒤에 남기고 출국장을 향해 걸어가는데 덩그러니 남은 그가 자꾸 눈에 밟혔다. 그러다가 뒤에 남은 그가 슬프다고 생각하는 내가 슬퍼졌다. 산토리니의 장관 앞에서 나는 슬펐다. 산토리니의 풍경에 감탄한 사람들은 언젠가 가족과 함께 다시 여기를 찾아 몸을 섞을 날을 기약했다. 그러나 나에게 산토리니는 그저 이데아의 땅이었다. 현실세상의 결핍된 요소들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간극 말이다. 뒤에 남은 것은, 홀로 남겨질 것이 두려운 것은 나였다. 이번 여행을 오기 전 아내와 아이들이 먼저 미국의 처형네로 여행을 떠났다. 덕분에 근 이십일을 혼자 지냈다. 홀가분하게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을거라 기대했는데 막상 혼자가 되니 사람이 그리워졌다. 병풍 같던 가족이 떠나고 나니 온 몸에서 발산하는 침묵의 에너지를 나 홀로 감당하게 되었다. 아내의 잔소리도, 시도 때도 없이 킬킬대던 아이들의 목소리도 자취를 감추었다. 긴 정적이 흐르고 집안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족들과 찍은 사진이며 싱크대에 정리된 그릇들, 식탁 벽에 붙여진 1학기 동안의 어린이 집 활동내역, 세준이의 행동변화를 유도하는 가족행동계획, 탁상용 달력의 메모, 물 달라 할 기력도 없이 고개를 떨군 화분 줄기, 빨래건조대에 바싹 달라붙은 수건과 옷들. 이 모든 것이 나와 가족들이 만든 흔적들이었다. 문득 이 공간의 거주자인 그녀는 얼마나 외로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발산하는 정적에 나는 춥고 배고팠다. 천국의 땅 산토리니에 이르러서야 외로움의 근원을 발 아래 둔 채 파랑새를 쫓아 너무 멀리 와 버렸음을 알게 되었다.
유끼 친구들, 이국의 땅이 그대들을 품기에는 낯 설고 물 설었다. 머나먼 타국에서 제대로 무너져버린 그대들을 뜨겁게 안아 주지 못해 미안하다. 이 땅이 부여한 사명으로 인해 한 치의 일탈도 허용 받지 못한 고국에 남은 세 명의 친구들에게는 미안함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산다는 것이 호락호락한 것이 아님은 알고 있지만, 이따금 우리는 전쟁의 피로를 눈가에 머금은 상처입은 전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터에서 전사는 누구보다 용맹하지만 홀로 있을 때 그 만큼 고독한 존재는 없다. 페르시아의 황제 크세르크세스가 이끄는 대군에 맞선 3백 명의 스파르타 용사들처럼 상처투성이 그대의 빈틈을 나의 단련된 방패로 메울 수 있도록 매일매일 전봇대라도 붙잡고 뜨겁게 안아 주기-이번 여행을 마치고 결심한 나와의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