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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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목숨을 걸고 살았다.
깃대봉의 맨 끝자락에 매어 단 그들의 국기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Ελευθερία ή θάνατος") 달라는 몸부림이었다. 바로 1820년대 오스만 제국에 맞선 독립 전쟁의 표어였다. 그리스의 푸른 바다와 하늘을 담은 다섯 개의 파란색 줄무늬는 자유를, 그리고 네 개의 하얀색 줄무늬는 죽음을 의미했다. 하얀색 십자가는 그들의 신앙, 동방 정교회를 의미한다. 따로 아홉 개의 줄무늬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학술과 예술을 관장하는 아홉 명의 여신, 뮤즈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굳이 크게 상관없는 일이다.
그들은 하늘 가까운 벼랑 끝에 목숨을 내걸고 살았다.
테살리아지방 ‘메테오라’(meteora)에서 만난 벼랑 끝에 걸린 목숨들도 마찬가지였다.
절벽 끝에 매달린 수도원, 지금이야 흔한 발걸음들을 위해 버스가 오고가고, 절벽 사이를 잇는 다리도 놓여 있지만, 12세기에 처음 수도원이 지어질 당시만 해도 오로지 밧줄과 그물을 이용해서만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 무엇이 그들의 등을 떠민 것일까. 무엇을 찾아 그들은 굳이 그 곳까지 올랐던 것일까. 절벽의 벼랑 끝에 목숨을 내어걸고서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 ‘신의 구원’은 그런 것일까. 그들은 신의 구원을 받았을까.
그들은 바닷가 벼랑 끝에 목숨을 걸어 놓고 살았다.
파란 바다가 좋고, 흰색의 집들과 지중해의 태양 그리고 노을 지는 석양이 좋다는 산토리니. ‘텐더’라는 작은 배로 도착한 산토리니의 옛 항구. 사람 살만한 집들은 죄다 절벽 위에 지어져 있고, 마을로 이어지는 노새 길을 따라 굽이굽이 올랐다. 5유로만 주면 노새를 타는 허세도 부릴 수 있고, 기껏 6유로면 케이블카로 오르는 사치를 부릴 수도 있었다. 그런 길을 굳이 노새 분비물 역한 냄새를 맡아가며, 걸어 오르던 미련함은 또 뭘까. 내 사는 모습도 그렇게 고집스럽고, 스스로 고생을 자초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아닐까.
그들은 관광객에 목숨 의지하고 살았다.
올해 5월 그리스의 부채문제로 국제주식시장이 출렁거렸다. 빚투성이 나라, 척박한 땅, 더러 물 한방울조차 구할 수 없는 섬. 오직 올리브와 무화과 정도만 흙먼지 뒤집어 쓰고서도 자랄 수 있는 그리스. 해양강국의 이름도 이미 한국과 일본에 넘겨준 지 오랜 나라. 그렇지만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우리 같은 이들이 있어 그들은 살아가고 있었다. 죽은 사도 요한 하나가 밧모스섬 3천의 산 목숨들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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