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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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늙어 꼬부랑이 될 때까지, 같이 술 먹고 놀고 싶은 사람은 돈 많이 벌고, 똑똑한 사람들이 아니다. 잘 웃고 잘 놀며, 인간적으로 착한 사람,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다. 그래서였는지 모르지만 그와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금방 친해졌다. 40대 후반의 인상 좋은 얼굴에, 커다란 목소리로 껄껄껄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는 가톨릭신문사의 서울지사장이었고, 지금은 수원 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10년 전 평기자였을 때부터 알았었는데, 술 좋아하는 신부님들의 술 상대부터 모든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했었고, 상대방을 웃음짓게 하는 헐리우드 액션과 유쾌한 화술이 인상적이었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를 생각하면, 함께 먹었던 왕십리 곱창의 고소한 맛이 혀끝에서 떠오르곤 한다.
그런데, 그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두달 전, 죽음 직전까지 갔었다가 살아났다는 것이다. 운동을 하다가 갑자기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쓰러졌는데, 마침 헬스장 위층의 내과에서 [급성 심근경색] 진단을 받고, 119를 통해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서 응급수술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몸이 이상한 징후를 느끼고 응급수술을 하기까지 2시간 정도 걸렸다고 한다. 운이 좋았다. 아마 30분만 더 병원에 늦게 도착했더라면 그는 사망했을지도 모른다. (심근경색증에 의한 사망위험율은 심장 발작 2시간 내가 가장 높다) 하느님 사업을 하고 신앙의 힘 탓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심근경색은 ‘소리없는 살인자’라고 불리는 무서운 병이다. 심장 근육이 움직이는데 필요한 산소와 영양소를 심장에 공급하는 혈관을 관상동맥이라 하는데 이 관상동맥이 동맥 경화증에 걸리면 심장으로 가는 혈액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어 협심증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혈관이 혈전(thrombus) 등으로 완전히 막히면 피가 통하지 못하여 심장근육의 일부분이 파괴되어 죽는데, 이를 심근경색증이라 한다. 흔히들 말하는 돌연사나, 심장마비로 급사하는 경우는 대개 이 질환 때문이며, 중년 이후 남성의 생명을 위협하는 주요한 질환 중의 하나로 불린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수술 후의 변화된 생활에 대해 물었더니, 1년 정도는 조심스럽게 살얼음판을 걸어가듯이 약물치료와 건강관리를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담배는 1년 전부터 끊었고, 좋아하던 술은 물론 못하고 식이요법을 하고 있다고 한다. 워낙 낙천적인 성격이라 ‘건강을 위해 술도 끊게 되었으니, 좋은 계기가 된 것 아니냐?’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지만, 큰 수술을 당한 놀램과 삶의 불안감은 아직 그의 눈에 어리어 있었다. 그런데 대화 중 매우 의미있는 말을 들었다.
나 : 정말, 불행 중 다행이에요. 운이 좋으셨어요. 30분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 하셨어요. 평소에 하느님 사업을 하셔서 축복받으신 것 같아요.
그 : 하하..맞습니다. 저처럼 그렇게 응급실로 실려 온 환자의 50% 는 사망한다고 ‘제가 아주 운이 좋았다.’고 담당의사가 그러더군요.
나 : 의사가 특별히 조심하라고 얘기한 것이 있었습니까?
그 : 있었습니다. 특이하게도 ‘목표를 버리라’고 하더군요.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생각은 심장에 무리가 오니까, 절대로 목표를 가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목표를 가지지 말라고?’
산에 갈때도 꼭 정상을 올라가야지 하는 생각을 갖지 말고, 자전거를 탈 때도 어디까지 꼭 가야지 하는 목표는 절대 갖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산에 올라가다가 힘들면 그냥 내려오고, 자전거를 타다가 숨이 차면 그만 타라고 했다고 한다. 목표달성 스트레스가 심장에 커다란 압박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의사의 조언이었다. 40대의 이른 나이에 ‘급성 심근경색’이 온 것은 대개 환자들이 심장에 무리가 올 정도로 목표를 설정하고 몸을 혹사하는, 성취지향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는 듯 했다.
목표달성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초조해하기도 하고 자괴감에 빠지거나 우울해 하기도 한다.
그래서‘목표를 버리라!’는 의사의 주문은, 심장에 무리를 주지 말라는 뜻이 될 것이다.
그 정도의 통찰력과 멘탈케어적 처방을 내릴 정도라면, 대단한 내공을 지닌 의사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름을 물어보니 역시 꽤 이름난 의사였다.
그러나 ‘목표를 버리라’는 주문은 쉽게 수긍하기 어려웠다. 꿈을 이루기 위해 목표를 가지라는 것은 자기계발의 단골메뉴요, 첫 번째 스텝이다. 변경연에서도 ‘단군의 후예’들이 (곰이 사람이 되기 위해) 100일 동안 목표달성의 노력을 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나는 경영층의 특별지시로 전사적으로 진행되는 목표관리 워크샵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절대로 목표를 가지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는 잠시 황망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말이 지닌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나에게는 목표를 버리라는 말이, 목표를 즐기라는 말로 들렸다. 월드컵 신화의 주역 히딩크 감독은 대표팀에게 ‘생각하는 축구’를 요구하면서도 경직된 축구팀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빠른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선후배 간이라도 서로가 반말을 하도록 했고, 반말 위반회수를 지표로 체크하여 목표관리(?)를 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차두리에게 ‘두리! 즐겨!’라고 주문한 것은 당시 널리 회자된 내용이었다. 승리라는 목표를 얻기 위해서는 축구를 즐겨야 하듯이, 진짜 목표를 얻기 위해서는 ‘목표를 즐기라’는 말로 들렸다.
말은 쉽지만, 즐기는 수준이 되려면 웬만한 내공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목표를 버려야 향후 재발이 되지 않는다는 의사의 처방은 가볍게 흘려들을 말이 아닌 것이다. 즐길 수준이 안 되면 버리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그 어떤 꿈과 목표도 생명과 맞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꽤 비싼 치료비도 냈고, 그 좋아하던 술도 이제는 잘 먹지 못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생명을 건졌다. 그것은 그에겐 축복이다. 다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니까.. 그러나 목표가 없는 삶은 어떤 삶일까? 노자가 말하는 모든 것이 다 이해되는, 늙은이의 사상, 무위자연의 사상일까?
목표를 즐긴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우리의 삶이 마라톤이라면 자신의 페이스를 찾고 묵묵히 걸어가면서, 길의 풍경을 넉넉히 즐긴다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 목표를 버리는 삶을 나는 아직 원치 않는다. 적어도 가슴뛰는 삶은 될 수 없을 것 같다. 유쾌하고 잘 웃던 그의 갑작스런 수술 소식은 지난 주 내내 ‘목표를 버리는 삶, 목표를 즐기는 삶, 가슴뛰는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를 주었다.
당신은 어떠신가요?

아우님, 다음 제목은 "책을 보지 마라"가 어떠슈? ㅎㅎㅎ 내가 한 때 지독한 화병으로 인하여 목구멍에 뜨거운 감자가 걸리고 심장에 말뚝이 박힌 것 같은 시절을 보내며 응급으로 한의원에 실려가 열이 뻗치는 것을 제압한 적이 있는데, 상담중 한의사 말이 책 따위를 읽지 말라고 하더군. 꼭 이치에 닿고 사리에 맞게 살아지는 것이 삶이 아니라면서... .
ㅋㅋㅋ 모든 것이 상황과 입장에 따라 다른 것이긴 하지만 말일세. 칼럼을 읽다보니 실제 내 경험이 떠올라서리 주절거려 보았네. 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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