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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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 인생의 길찾기
현서에 대한 첫 기억은 ‘이런 답답한 녀석’이었다. 현서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던 새학기가 시작되고 하루가 지난 날 아침 조회시간에 지각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었다. 우리반의 3분의 2정도의 아이들이 사탕을 받았다. 사탕을 받은 아이들은 당연히 그 자리에서 그것을 맛보기에 바빴고 나는 사탕껍질을 휴지통에 버려달라는 당부의 말을 하고 교실을 나섰다. 그날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교실앞을 지나가는데 현서가 내곁에 쑥스럽게 다가와서는 “선생님”하고 나를 부른다. 나는 새학기의 좋은 이미지를 위해서 활짝웃으며 한껏 친절하게 “왜 그러니?“라고 되물었다. 돌아온 현서의 대답은 ”이 사탕 지금 먹어도 되요?” 그말을 듣는데 이녀석 착하긴 한데 참 세상살기 답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뒤로 1년동안 함께 생활을 하는 내내 현서는 조용히 수업을 잘 듣는 아이에 속했다. 그런데 성적은 반에서 40명중에 30등 언저리를 맴돌았다. 현서의 꿈은 수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동물을 많이 좋아하는 현서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직업이다. 하지만 지금의 성적을 계속 유지한다면 힘든 일일 것이다. 어느날 현서가 교무실에 왔길래 이것저것 학교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공부를 하기 싫으냐고 물었다. 현서는 정말 공부를 잘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공부를 하려고 하면 어느새 딴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며 집중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겉으로 부족한 것이 없는 현서에게 무엇이 문제일까 궁금했다. 사실 현서 부모님은 우리 학급에서도 학력이 매우 좋은 축에 속했다. 아버지가 한의사이고 어머니는 공인중개사이니 남매중 남자아이인 현서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그런데 현서는 그것에 전혀 부응을 하지 못하니 부모님도 답답할 노릇일 것이었다.
공부의 열망이 가득함에도 전혀 성적은 좋아지지 않은 채로 3학년이 되었다. 이제는 우리반이 아닌 현서를 가끔보면 내가 그애를 도와주지 못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그러던 차에 학교에서 방과후학교로 모닝페이지반을 운영하게 되었고 그 1순위 대상자로 현서를 떠올렸다. 현서가 공부를 못하는 것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현서는 좋아하는 과목이 하나도 없었고 매사에 의욕이 없었다. 12주동안 모닝페이지를 쓰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뭔가 실마리가 보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현서에게 함께 할 것을 제안했다. 현서도 변화를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님 내가 제안한 것이라서 차마 거절을 못했던 걸까 어쨌거나 함께 할 수 있게 되어서 기뻤다. 그리고 모닝페이지반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느끼며 글을 쓰는 과제를 꾸준히 하고 발표를 하는 현서를 보면서 현서가 왜 공부를 하고 싶어하면서도 집중할 수 없었는지가 어렴풋이 이해되었다.
현서는 무얼해도 항상 자신감이 없어 했다. 그것은 아마도 현서가 가정에서 1살 많은 누나가 뛰어난데 가족들은 누나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자신이 하는 것은 대부분 무시한다고 여기는 것과 관련이 있어보였다. 다행인 것은 수업때 조용한 것과는 달리 모닝페이지반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잘 풀어놓았다. 그래서 어릴적부터 누나의 말이 법이 었다는 이야기, 병아리를 키우다가 죽었을 때 슬펐던 이야기, 지금 키우고 있는 토끼소녀들 2마리가 성장하는 이야기 등의 현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2주간의 모닝페이지반이 끝날 때 현서는 “예전엔 학교에 오는 것이 재미없고 싫었는데 모닝페이지반을 하면서 학교가 즐거워졌어요. 여전히 집에선 재미가 없지만요.”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말을 듣는데 얼마나 뛸 듯이 기쁘던지. 여전히 가족과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자신의 가족에 대한 속마음을 겉으로 들어냈다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시작된 것이라고 믿었다.
현서는 올해 고등학생이 되었다. 가끔 연락을 해오는데 여름방학때 자신이 학교 관현악부에 들었는데 거기에서 트럼펫을 연주한다고 여름방학때 예술의전당에서 있는 고등학생 경연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며 들떠서 말했다. 트럼펫을 연주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고 즐겁다고 이제야 하고 싶은 것을 찾은 것같다고 대학도 트럼펫을 배울 수 있는 음대를 갈 것이라고 했다. 현서가 이렇게 하고 싶은 것이 있고 그것이 재미있다고 말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나도 덩달아 기뻐졌다. 문득 현서 부모님이 생각났다. 현서의 결정을 반가워하실까 궁금해졌다. 현서에게 ‘부모님이 네가 원하는 길을 찾아서 기뻐하시겠네. 뭐라고 하셔?’ 라고 물었다. 현서는 ‘ 부모님이 일단 시작한 것이니까 열심히 하라고 서울대 음대가서 교수하래요.’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는데 좀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현서를 보면 보통의 어른들이 원하는 과목을 잘하는 능력만으로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느낀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다양한 길이 있다. 자신에 어울리는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 학생들이 해야하는 공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금은 현서가 자신이 걸어가고 싶은 길을 찾은 것에 박수를 보낸다. 현서가 택한 그 길이 현서의 인생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 믿는다. 다만 그 길을 가는데 부모님의 기대가 장애물이 아닌 응원의 메시지로만 작용되기를 바래본다.

현서는 누나가 워낙 뛰어나다 보니까 기를 못펴고 살아온 것같아요. 부모님은 누나가 성장하는 것을 보고 흡족해하다가 현서의 느린 성장이 답답했을 것같아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것이 현서에게 영향을 주고...현서는 가족들과 나는 다르다는 인식을 하게 된 거죠. 언젠가도 가족들은 모두 공부에 있어서 뛰어난데 자기만 그렇다고 푸념을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가족안에서 자기의 존재감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것이 학교생활에서 반영되어 항상 말없이 조용한 아이로 지내온 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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