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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28일 11시 54분 등록

응애 29 -  밧줄에 대롱대롱 - 메테오라

한번 본적이 있다. 어릴 때 아버지의 책장에서였는지... 아니면 신부님의 방에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은둔 수도자 공동체의 사진을 틀림없이 보았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동앗줄에 대롱대롱, 나머지 인생을 모두 걸고 바위동굴로 들어가던 은둔 수도자들의 모습들...그때 나는 스스로 물었었다. “ 너는 과연 그렇게 살 수 있겠니?”

델피를 떠나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은 칼람바카의 안토니아디스 호텔. 나는 이곳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 다음을 기약하며 이 이름을 기록해둔다. 여행을 위해 대청소를 과도하게 한 탓에 이미 지쳐있었는데, 델피에서 또 아낌없이 태양빛을 나누어주는 아폴론덕에 나는 자신을 더 잘 알게 되었다. 그것 봐라. 청춘인 듯....잘난척 하더니... 어쨌든 방으로 친구와 함께 올라가 짐도 풀지 않고 폭신폭신한 침대에 몸을 던지니 내 친구를 처음 만났던 명동 기숙사가 생각났다. 뚤레뚤레 주변을 살피던 친구는 이 방의 구조가 마음에 든단다. 아기자기 엮어진 천정이 짜임새가 있고 장이 놓인 모습이 알뜰하다. 창을 열어 칼람바카의 향기를 방안으로 불러들였다. 맑은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며 인사를 한다.

유끼는 수업을 하기위해 다시 모인단다. 불쌍한 유끼... 그러나 다음날 유끼들은 생생하게 살아나서 어젯밤이 너무 아름다운 밤이었단다. 수업시간에 옆에 함께 있었던 선배들도 덩달아 황홀했단다. 아름답고 황홀한 통과의례. .. ㅎㅎㅎ

나는 한잠을 자고난 뒤 밤에 홀로 일어나 살그머니 수영장을 찾아가보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영장으로 올라가니 수영장엔 정적이 감돈다. 루프 가든의 한가운데에  수영장이 있었다. 한낮의 더위는 어디로 가고 이곳 수도원 아래동네는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새벽 4시, 검은 바위가 장엄하게 펼쳐져있고 멀리 오렌지 빛 등불 하나가 길을 밝히고 있다. 매혹적이다. 그림에서도 책에서도 보지 못했던 풍광이다. 나는 넋을 잃고 한참을 바람부는 옥상에 서 있었다. “하늘엔 별이 총총, 내 마음에는 은총이 가득”, 새삼스럽게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나의 종교심을 꺼내본다. 아직 불씨는 남아있는 것일까?

바람이 세차게 불어댄다. 루프 가든의 차양이 펄럭거린다. 나무 한그루가 바람 속에서 춤을 춘다. 물속에 발을 살그머니 내려놓아 보았다. 그러나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갈 용기는 생기지 않는다. 일단 수영을 포기하고 후퇴. 이 아름다운 정경을 친구에게 보여주려고 방으로 다시 내려갔다. 친구는 곤히 잔다. 새벽 4시 반, 아무래도 요동치는 마음을 달랠 수가 없다. 다시 옥상으로 살금살금. 온 세상이 고요한데 홀로 깨어 지붕 끝까지 올라가 심호흡을 하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생각보다 물은 따뜻했다. 한낮의 열기를 모두 가슴에 안았으니 아직 그 열이  남아있는 것 같다. 헤엄을 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소리가 다시 내 귀에 들려온다. 헤세의 책에서, 그리고 피제랄드의 책에서 읽고 상상하던 그런 장면들이 휘-익 지나갔다. 행복하다. 맑고 깨끗한 물위에 누워 찬란한 여름 별빛을 바라보았다. 별빛이 맑다. 푸른하늘 은하수도 흐르고 있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이 꿈속에서 꿈을 꾸며 꿈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 꿈처럼 행복했던 사랑. 

그렇게 한참을 홀로 있음과 우주를 독차지한 느낌에 겨워하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ㅁㅇ야, 이제 그만 일어나라. 일생일대에 다시오지 않을 기회일지 모르는데...너도 한번 올라가 봐라 “ 친구에게 상황을 설명해주고 수영복을 입혀서 올려 보냈다. 친구는 도저히 물에 들어갈 수는 없겠더란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풍광은 고스란히 마음에 다 담아왔다.

그리고 함께 산책을 나갔다. 아름다운 비잔틴교회에서 새벽미사를 보았고 사람들을 만났고 동네를 돌아보았고 길에서 돌멩이를 하나 주워서 돌아왔다. 언젠가 보석처럼 빛나게 될 돌멩이 하나를..

아침이 되어 다시 버스를 타고 메테오라로 갔다. 메테오라는 "공중에 떠있는" 이라는 뜻이다.  메테오라로 오르기 전 아기자기한 집들이 모여있는 곳은 카스트라키 마을이다. 입구에 있는 호텔이름이 바로 이 마을 이름이었다. 이 이름도 기억해 두었다. 언젠가는 또 만날 날이 있을 것이다. 매우 독특한 검은 바위들이 병풍처럼 펼쳐져있다.  그 옛날 바다 밑에서 솟아 올라왔고 천천히 물이 빠져나가고 남은 모습이다. 14세기 중엽부터 수도사들이 들어와 바위 위에 수도원을 짓고 독실한 신앙생활을 했다. 전성기인 16세기에는 수도원의 수가 24개에 이르렀단다. 지금은 6개의 수도원이 남아있고 이중 두 곳만이 수도공동체로 수행을 계속하고 있다.

메갈로 메테오라는 이 수도원 중 제일 먼저 세워졌고 규모도 가장 크다. 우리는 이곳을 걸어 올라갔다. 1923년에야 겨우 터널과 계단을 놓았단다. 그 전에는 오로지 절벽에 매달린 사다리나 그물을 이용해야 했다. 천천히 안내를 받아 창시자 아타나시우스의 유골이 안치된 성당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잘 정리된 방들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곳에서 생을 마친 수도자들의 머리뼈를 나란히 모아놓은 방이었다. 그들의 탁월한 선택은 이렇게 유골로 남아 기념되고 있었으며 훗날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사색의 시간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우리는 그 옛날의 하늘 아래 첫 동네를 천천히 돌아보고 아름다운 교회당과 탁트인 조망을 보며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었다. 사진도 찍고 평화로운 시간들이 흘러갔다. 다시 내려와 다른 수도원도 잠깐 밖에서 살펴보았다. 나는 스테파노 수녀원엘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조금 모자랐다. 큰 바위를 지나는 길에 사진을 찍기 위한 매우 장엄한 자리가 있었다. 함께 간 동료들은 모두 007 영화의 주인공처럼 한껏 몸을 날려 포즈를 취했다.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신이 났다. 이 광경을 바라보는 것이 내게는 정말 스릴러 영화의 힌순간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메갈로 메테오라에서 신성한 물을 마셨다. 어쩌면 그 영험한 물이 이들의 간을 한없이 크게 만들었을까?  아아, 하늘을 나르는 메테오라의 빛나는 청춘들!  나의 여행 동료들이여!


                                     사진 출처: http://kr.blog.yahoo.com/lee1004gg/1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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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6 20:52:33 *.67.223.107
명애야,
여기 사진 출처 주소를 클릭해봐....
수도원 사진들이 아주 근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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