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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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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29일 11시 15분 등록

 

 

자신의 목표를 향한 꿈은 제대로 꾸어야 한다. 꿈과 현실의 갭이 커지면서 오는 좌절감은 나의 몽상을 확실히 깨어주었다. 아파트에서 개를 그것도 두 마리나 기르면서 살 때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의 반응은 똑 같았다. ‘아파트에서 개를 길러도 위 아랫집에서 컴프레인이 없어요?’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었다. ‘5년간 단 한번도 없었어요.’ 새벽에 개들이 악착같이 짖어도 정말 이웃이 좋았던건지 아파트 시행업체가 잘 지은건지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 주변의 눈치 한 번 안보고 당당히 개를 키웠다. 단지 힘든게 있다면 늘 실내에 갇혀사는 그들에게 땅을 밟게 해 주는 산책 시간이었다. 늘 산책을 시키면 그들은 너무도 좋은 나머지 괴성을 질렀다. 늘 그 입을 틀어막으며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만약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가면 나도 그들도 얼마나 좋을까? …’ 타샤 투터처럼 정원을 가꾸며 살고 개들이 내 뒤를 지키며 앉아 있는 모습이 그녀의 책에서 본 한 장면 사진과 오버랩 되곤 했다.

 

그런 내가 자연으로 그것도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다. 문제는 새로운 일을 벌이면서 발생되었다. 밖이 보이는 집에서는 아무리 조용히 어떤 것이 지나가도 우리 개들의 감각의 레이다망을 피해갈 수 없었다. 밥값을 하는 것 치곤 너무 과하게 하루 종일 짖어댔다. 우리 개들의 짖어대는 소리에 동네 사람들은 밭일도 제대로 못 하고 산책도 눈치를 보며 했다. 게다가 내가 집을 나가면 자기도 데리고 가라고 외치는 울부짖음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들을 방불케 했다. 나는 아파트에 살 때는 해보지도 않았던 이웃의 눈치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키우는 개는 타샤의 젊잖은 코키 종류의 개도 아니었고, 삼십만 평의 넓은 대지 덕분에 개 짖는 것쯤은 문제가 되지도 않았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우리 집 개들 광년이와 오리오였다. 마당에 한 번 나가면 아무리 막아놓은 조그만 개구멍도 파헤쳐서 탈출을 한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더위에 나는 그들을 잡으러 뛰고 또 뛴다. 바둑판 알까기 모양으로 이리저리 튀는 바둑알 같은 하양 까망 개를 잡으러 다닌다. 가만히 두면 되지 과잉보호가 아니냐는 생각도 들것이다. 그러나 그래야 할 이유는 충분히 있다. 바로 아랫집에 진돗개가 이를 내고 으르렁대며 기다리고 있다. 또한 앞집으로 뛰어 들어가 잔디밭에 똥 싸기, 애기들 겁먹어 울리기, 남의 밭에 들어가 밭헤집고 다니며 뛰어다니기를 한다. 또한 휙휙 지나가는 차를 무서워 할 줄도 몰라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하는 일이다. 현대판 놀부전 마당놀이 한판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묶어 놓을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지만 그것은 내 마음이 행복하지 않아 할 수가 없다.

 

이번 ‘위기 그리고 그 이후’ 의 책은 마치 위기를 맞은 나의 상황을 잘 대처해 그 이후에 어떠한 좋은 일로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하는 관점으로 다가왔다. 개를 키우면서 지금처럼 위기에 처한 적은 없었다. 새로이 사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개들은 나에게 넘지 못할 장애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할 무렵 책의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인간에게는 원래 문제가 생기면 원인과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 우선 희생양을 찾고 보자는 심리다 강하게 인다” 라는 구절이었다. 결론은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 집 개들이 나의 인생을 위한 희생물이 되어 헤어져야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이들은 나의 삶에서 없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 이후를 생각하자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아파왔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 마음을 그들이 읽었더라면 얼마나 슬퍼했을까?’ 하지만 다행히도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채 아주 평안해 보였다.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문제가 생기면 원인과 해결책을 모색하는 인간이 먼저 되어야 갰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문제: 갇혀있던 그들에게 주어진 갑작스러운 자유와 밖이 보이는 세상, 이로 인한 그들의 흥분

해결책: 내가 힘이 들어도 자유가 별 것이 아니라고 느끼는 순간까지 기다리고 제자리로 돌아올 때 까지 시간을 주고 지켜보고 따라 다니자. 또한 그들에게도 짖고 하는 것이 힘이 들고 재미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명상을 시켜보자. 차분해질 때까지.

 

문제 : 사업을 하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달려들고 짖는 것 때문에 곤란할 것이다.

해결책: 동네사람 집들이로 13가구 주민들에게 오리탕을 거하게 샀다. 그 분들 중에서 외아들을 잃고 두 노인 부부가 아들을 잊기 위해 전원주택으로 내려와 사시는 분을 알게 되었다. 그 분들의 외로움을 함께 나누며 내가 사업하는 시간에는 그분들에게 개를 맡기고 용돈을 드리는 것을 제안해 봐야겠다. 그들에게도 개를 봐주는 일자리가 생겨 즐거워하실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닥쳐오는 현실의 문제를 문제로만 보는 나의 좁은 시각과 마음을 추스리며 다시금 성찰할 시간을 가져 보았다. 막혀진 덤불 속에 작은 길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하기에 앞서 늘 주저앉아 있는 용기 없는 나의 모습이 싫었다. 덤불을 걷어 헤치며 나아가는 사람이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찾아내는 사람이고 앞서는 사람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타샤의 정원을 꿈꾸며 전원생활을 그토록 갈망했던 나조차도 이곳에 적응할 수나 있을까하는 의구심에 며칠을 잠만 자며 무력하게 지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함에도 나는 방울이와 오리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었다. 비가 오고 주위가 선명해지고 바람이 시원해지니 새롭게 정신이 드는 듯 했다. 나는 주변을 걸으며 많은 생각을 정리했다. 이제야 무언가 보이고 내가 다른 환경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정원을 보니 잡초가 집과 나를 잡아먹을 기세로 자라나 있었다. 이게 현실이었다. 타샤가 그런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방울을 흘리고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을지를 이제야 느낄 수 있었다. 유배지에서 자연을 벗 삼아 사는 사람들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이루어 놓은 것을 보고 부러워만 했었다. 해보지 않은 것임에도 나는 할 수 있다고 막연히 자신했었다. 나는 부끄러웠다. 노력의 결실로 외로움의 대가로 만들어져 있는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을 했다. 생각할수록 나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이곳의 생활은 삶 자체가 명상이었다. ‘짖지 마. 애들아 밥 먹자’. 내가 하는 말이 메아리처럼 다시 들려오는 것 이외에는 다른 말도 들을 수 없었다. 핸드폰의 울림에 반가워 내 발걸음이 빨라진다. 유일하게 소통을 할 수 있는 도구였다. 침묵 속에 들려오는 내면의 소리가 많아졌다. 하지만 때로는 그 소리조차도 쌓았다 무너져 내리는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느껴지는 날도 많았다.

 

문제 : 아파트에서도 단 한 집도 알고 지낸 사람도 없었고 몰려다니는 수다의 시간을 견뎌하지 못 하는 성격이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해결책: 문 밖을 뛰어 나갔다. 산책을 시작했다. 뒷집에 사는 몸이 불편하신 아저씨 한 분께 먼저 인사를 하고 텃밭을 구경시켜 달라하고 따라나섰다. 덕분에 달랑 하나 열린 오이를 따주셔서 저녁에 고추장을 찍어 맛있게 먹었다.

 

나는 우리 방울이와 오리오보다 못했다. 이제 생각하니 그들의 짖음은 내가 이사 왔다고 알리는 소리였다. 그리고 동네를 뛰어다니는 그들은 다른 사람의 냄새를 원했던 것이다. 이 동네는 개가 엄청나게 많아 한 마리가 짖으면 온 동네 개가 다 짖는다. 그들은 그들의 언어로 외롭지 않게 소통을 하고 있는 것임을 이제야 알았다. 귀를 기울여 들어 보았다. 그들의 언어를 듣고 싶었다.

 

우리집 개 : 워워워워워 워워 ( 동네에 트럭이 하나 들어온다 경계해라)

다른집 개: 멍멍멍멍 멍멍 (나도 보고 있다. 그런데 그건 가스통 배달차니 곧 나갈 것이다. 항상 저 하얀 트럭은 금방 나가니 너무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

뒷집개: 오우 ~ 오우 우우우우

 

순간 뒷산에 늑대가 사는 줄 알았다. 무척 처절하고 외로운 울음이었다. 나는 산책을 하다 만난 이웃분 집에 가서 그 울음의 이유를 알았다. 움직이지도 못할 공간의 철장에 갇혀있고 바로 옆에는 닭 한 마리가 갇혀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나름대로 자신의 처지에 맞게 외로우면 외롭다고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나 역시 그들처럼 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 갈 것이다. 어렵고 주저앉는 날도 있겠지만 또 다시 일어나는 날도 있을 것이다. 일어나 비추는 날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도 나도 모두 행복한 삶을 원하고 기대한다. 하지만 다가오는 자신의 모든 환경을 긍정적인 생각없이 어느 한 순간도 행복해 질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과 개들이 나에게 주는 작은 깨달음은 긍정적인 태도와 밝음을 가지고 조금은 여유있게 기다리라고 말한다. 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누구를 부러워하기 앞서 그들의 삶을 먼저 경험해보고 노력한 뒤 이야기 할 것을 다짐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 말을 어떻게 표현 하면 가장 적합할까 고민 할 무렵 나에게 책 선물이 도착했다. 풀어 본 순간 너무 놀랐다. 박완서님의 새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마치 경험하지 못한 것은 모든게 아름답고 커 보인다는 말처럼 보였다. 내가 이사를 와서 겪었던 모든 일상은 내가 가보지 않았던 길에 대한 꿈이 현실로 나타났던 것 뿐이었다.

 

흙을 만지며 마음을 따숩게 뎁히고, 잡초를 뽑으며 나의 삶에 씨앗이 되지 못 할 불필요한 생각들을 정리 했다. 자연과 개들이 주는 작은 깨달음이 감사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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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08.29 12:23:21 *.30.254.28
살면서 힘든 일은 어떤 것이었나요? 라고 인터뷰어가 물었을때,
타샤는 화를 냈어.
"왜 그런 질문을 하는가? 좋은 일만 기억하기에도 벅찬 삶인데..."

그리고 말하지..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된 삶을 살아라..'
그것이 타샤 튜터의 메시지였지..

스스로의 인생을 사는 건, 멋진 일이지..
외롭지만 말이야.. 안그래?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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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08.30 12:50:44 *.10.44.47
연구원 생활도 벌써 6개월이 지났어요.
이렇게 시간이 간다면 눈깜짝할 새 또 6개월이 가버리겠죠.
지난 금요일 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오고 갔습니다.
언니의 내일을 책임질 동네를 지도속에서만 알고 있다는 것이 마구 부끄러웠습니다.

언니, 외롭다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외롭다는 말에  이렇게 감격하다니...아무래도 증상은 날로 심해지는 듯 하지만
그래도 좋아요. 언니도 좋죠?   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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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0.08.31 01:58:44 *.186.57.62
가을이 되면, 그녀가 새로 마련한 당진에 한 번 머물고 싶다고 했다.
한 일주일 정도... 요가도 하고, 명상도 하고, 그녀와 함께 그녀의 칼럼 속에 들어가 그 개들과 산책도 해보고...
재작년즈음.. 서점에서 타샤의 책들을 본 적이 있었다. 당진에서의 삶..
잠시라도 그녀 삶의 일부 속에서... 시간을 잊어보고 싶다.
지리산 자락을 베고, 섬진강에 발을 담그고 사는 시인의 삶을 떠올려보았다.
바다가 좁다고, 가짠한 새우가 등이 굽었다며... 화를 내던 악양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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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8.31 08:08:42 *.146.69.208
누나 좀 자주 나오셔야겠어요. 글에서, 적막함과 외로움의 몸부림이 보입니다. 

자기 일상을 잘 포착해서, 재미있는 글로 만들어 내는 솜씨가 있으시네요. 여행 다녀오고 나서, 다들 자신들의 페이스를 찾은 것 같아요. 스타일을 무어라 말할 수 없지만, 분명해졌어요. 

박남준 시인의 산방일기처럼, 당진일기 어때요?
개들의 언어를 알고 계시니, 개들의 이야기를 중간중간 통역하셔도 재미있겠어요. 

이참에 누님도 텃밭 하나 가꾸시길. 상추도 심고, 오이, 고추도 심고....

저희 부모님도 텃밭에 대한 욕망이 강하셔서, 집 옥상과 마당에 밭을 꾸며놓으셨지요. 저도 나이들면 당신들처럼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아직까지 어른들이 왜 텃밭을 가꾸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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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0.08.31 10:29:45 *.67.223.107
"은주는 특별한 아이야" 하시던 말이 생각난다.
"은주가 좀 튀었지요. 처음엔...." 은주를 처음 변경연에 안내한 이가 말했다.

이스탄불에서 점심을 같은 테이블에서 먹었는데 밥앞에서 숟가락을 쥐고 꾸벅꾸벅 졸고있다.
웃는 소리에 놀라 눈을 뜨더니 다시 새까만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난다.

열흘동안 함께 여행을 하며 눈에 들어온 장면의 하나다.
은주의  얼굴은 늘 이 그림과 함께 기억될 것 같다.

은주야, 당진에 서강의 철학자 한분이 내려가 계실텐데... 고향땅이어서...
전해들은 이야기지만 무척 말씀을 재미있게 하는 분이래....
산책길에 방울이와 오리오에게 한번 찾아보라고 해봐...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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