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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났다. 도대체 몇병째인가. 그녀 그리고 영업부 매니저와 동석을 한 채 점심식사를 하면서 반주로 마셨던 것이 어느새 테이블의 공간을 조금씩 점령하고 있었다.
위암 3기의 질환을 앓고있는 00사업자의 사업장을 금주 드디어 방문하게 되었다. 전월 점심을 함께하면서 공짜로 얻어 먹은 밥값을 하기위해, 빠른 시간내에 방문 하겠노라고 이야기 했던 것이 바로 실현이 된것이다. 역시 말이 씨가 되는 모양이다.
사업장을 처음 들어설 때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어느 구석 나의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누구지? 고객이 데리고온 아이인가. 그순간 지난번 대화 내용중 기억의 한도막이 떠올려졌다. 아! 그녀 나이 41살에 낳았다고 하는 늦동이로구나.
그녀가 자살을 하려고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하는 순간 생의 마지막 한자락의 숨결을 움켜쥐게 만들었던 존재.
그녀가 아픈 병세에도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게 하였던 존재.
그녀가 삶에 대한 희망을 품고 일상의 건강을 챙기며 몰입하게 하는 존재.
바로 그아이였다.
우리에겐 자신의 상징성을 영위하게끔 하는 형상화된 존재들이 있다. 그것이 나 또는 부모님 일수도 있고 결혼이후 꾸리는 가정일수도 있다. 혹은 그대상이 사물일수도 있고 추상적인 존재일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대상의 질적 여하를 떠나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어떤 마음속의 가볍지많은 않은 무게감으로 자리를 하느냐에 있다. 그 중요도에 따라 오늘 내가 하루를 살아가면서 어떤 역할로써 어떤 소명감으로써 살아가느냐 하는 충실도의 질이 달라진다.
그녀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배당을 가는 이유도,
그녀가 빠지지않고 배트민턴 운동을 거르지 않는 이유도,
그녀가 음식을 조절하며 채식위주의 식단을 실천하는 이유도,
그녀가 주어진 순간을 감사하며 하루를 마감하는 이유도 그 존재가 저렇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객초청 행사를 마치고 우리는 간단한 정말 간단한(?) 식사를 하기위해 한적한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 장어집으로 이동하였다. 건물 앞에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는 경관이 좋은곳에 자리한 자그마한 식당이었다.
“이승호 차장님. 이집 음식맛이 괜찮아요. 장어 먹고 힘내세요.”
그녀의 따뜻한 배려심이 묻어나오는 말에 감사함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녀가 자리에 앉자마자 매취순 술 한병을 시키는 것이 아닌가.
“아니, 사장님 어쩐일로?”
“그래도 차장님이 우리 매장을 처음 방문하셨는데 반주로 한잔씩은 해야될 것 아닙니까?”
부추키는 그녀의 말에 나는 옆에 동석한 영업부 매니저를 쳐다보았다.
“그래요. 차장님. 한잔씩만 하세요.”
50대의 연배도 그렇고 점장의 상황을 아는 매니저분께서 이렇게 권하는걸 보면 한잔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은 얼마지나지 않아 그녀와 함께 동화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한병을 추가로 더나누어 마시던 그녀가 분위기가 더욱 편해졌는지 또다시 주문을 하려고 하였다.
“아니, 사장님 왜이러세요. 몸도 안좋으신 분이.”
하지만 나의 이런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낮의 취중파티의 서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녀는 자신과 마음이 맞는 사람이 있으면 예전 이렇게 술을 마시기를 좋아했었단다. 하지만 암이란 진단을 받고나서부터 독하게 술을 끊으며 식이요법과 운동에 충실한 결과, 지난번 담당 의사의 경과가 많이 좋아졌다는 말에 세상 살맛이 새록 솟아나더란다. 거기에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 아들의 재롱에 시간 가는줄도 모르던 차에 내가 방문했고 그렇기에 이렇게 회포의 한잔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역시 마음속 억겹의 세월속에 쌓아놓은 것이 많아서인지 어느새 눈물을 보이며 속의 그림자를 토해냈다. 불교에서는 가로 세로 80리, 높이 20리나 되는 크기의 바위에 천인이 100년마다 한번씩 내려 왔다가 올라갈 때 스치는 옷깃에 바위가 다 닳아서 없어지는 세월이 1겹이라는데 그래서인지 그녀의 토해냄은 계속되었다.
그녀가 이처럼 겹겹이 쌓아두었던 것들을 쏟아내고 있는즈음 나의 술잔은 비워져 간다.
그리고 그 비워진 술잔을 다시 타인으로부터 새로운 술로써 채우는 순간, 그것은 나의 목젓을 타고 내려와서 내장을 지나 나의 밑바닥 묵혀져있던 기억이라는 매개체를 다시금 점화시킨다.
그 점화된 불꽃은 그녀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게 하고 포옹하고픈 충동을 유도시켰다.
그렇지. 그러셨구나라는 나의 추임새와 외마디 맞장구에 취기와 함께하는 인고의 세월의 장은 더욱 달아오르고 있었고, 어느순간 하늘 저너머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의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자리에서는 함께하는 공감이라는 안주를 벗삼아 서로의 술잔의 비가 더욱 이어졌고, 하늘과 세상은 여름이라는 시간을 어우르며 비와 장단을 맞추어 나갔다.
이제는 비가 그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의 흔적과 자리를 함께한 우리의 시간은 어느새 저녘을 향해가고 있었다. 매취순 두병과 소주 다섯병이 그 공간을 참여하고 있었고. 흐느끼며 울던 그녀는 어느새 엎드려 곤하게 자고 있다. 양복 윗옷을 벗어 조용히 어깨를 덮어준 나는 마당 밖으로 나왔다. 그녀와 한나절 함께한 예상치 않았던 취중의 시간. 그 시간속에 나는 그녀와 한발자욱더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 오늘 생채기의 아픔을 밖으로 흘려보낸 그녀는 그만큼 새살이 더욱 튼실히 자라 그 자리를 메울 것이고.
그녀가 내뱉은 말이 생각난다.
“세상 사는거 그까이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