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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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가을이 오면, 눈부신 아침 햇살에 비친
그대의 미소가 아름다워요
눈을 감으면, 싱그런 바람 가득한
그대의 맑은 숨결이 향기로워요
길을 걸으면, 불러보던 그 옛 노래는
아직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하네
하늘을 보면, 님의 부드런 고운 미소
가득한 저 하늘에 가을이 오면
가을이 오면, 호숫가 물결 잔잔한
그대의 슬픈 미소가 아름다워요
눈을 감으면, 지나온 날의 그리운
그대의 맑은 사랑이 향기로워요
노래 부르면, 떠나온 날의 그 추억이
아직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하네
잊을 수 없는 님의 부드런 고운 미소
가득한 저 하늘에 가을이 오면
길을 걸으면, 불러보던 그 옛 노래는
아직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하네
잊을 수 없는 님의 부드런 고운 미소
가득한 저 하늘에 가을이 오면
주말 내내 비가 내렸다. 빗방울이 베란다 창이며 차창을 연신 두들겼다. 한 두 번도 아니고 우악스럽게 두들기는 통에 깊은 잠에 빠졌던 그가 마침내 눈을 떴다. 더위에 지친 그의 쇄골에서는 땀에 전 쉰내가 났다.
까치집을 한 머리에 팬티바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심연에서 부유하다가 단숨에 수면 위로 낚인 때문인지 그의 의식은 가수면 상태를 빠져 나오지 못했다. 그는 문 앞의 형체를 의식하지 못한 채 문고리를 잡고 한동안 멍 하니 서 있었다.
“편지왔습니다.”
“아…네”
기계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편지를 쥔 손이 길고 가냘프다. 여자 집배원이었다. 잠결에도 이건 아니다 싶어 몸을 움츠리는 그를 보고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 한 마디를 던지고 돌아선다.
“좋은 주말 되세요.”
현관문을 닫았다. 회오리바람 소리에 현관 옆 창문으로 시선이 가다가, 건너편 아파트 건물을 목구녕까지 삼킨 어둠과 딱 눈이 마주쳤다.
‘뭐를 좀 아는 집배원이군.’ 그녀의 인사말이 자투리만 남은 토요일 저녁의 허허로움을 달래주었다.
‘당신의 그녀로부터’
아무 표시가 없는 겉봉을 열자 ‘당신의 그녀로부터’라는 편지의 인사말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미국에 머물고 있는 아내의 편지인 줄 알았다.
평생 당신에게 드러내지 않고 살려 했습니다. 길 모퉁이를 돌 때 행여나 뒤돌아볼까 멀찍이 당신의 발걸음을 따라 걸었습니다. 당신의 모습이 점처럼 아득해지면 혹여 영영 떨어질까 바람처럼 달려가곤 했지요. 애를 졸이는 내 마음은 아랑곳없이 당신은 가끔 먼 곳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아이들과 있을 때도, 아내와 있을 때도 당신은 응시의 버릇을 버리지 못해 가끔 핀잔을 듣기도 했습니다. 회사에서 PC 모니터를 바라볼 때도 당신은 새우 눈을 뜨고 화면 너머의 세계를 머릿속에 그리는 듯 했습니다.
빗방울이 간간이 떨어지던 어느 날, 베란다에 서서 바깥 풍경을 지켜보던 당신으로부터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습니다. 후두둑 빗방울이 굵어졌습니다. 눈물도 굵고 잦아졌습니다. 나는 당신이 걱정스러워졌습니다. 체액이 모두 발산된 채 낙엽으로 발견되는 것은 아닌지.
그 때 알았습니다. 당신은 외로움을 심하게 앓고 있었습니다. 당신에게는 가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당신의 빈 구석을 채우지는 못했습니다. 당신에게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술과 함께 왔다가 숙취와 함께 사라지곤 했습니다.
먼 곳 말고 당신의 마음을 응시해 보실래요. 갈매기 조나단이 당신임을 압니다. 하얀 날개를 펼치면 자유의 속삭임이 깃발처럼 펄럭거리지요. 그러나 첫 단추를 끼울 때 당신이 한눈 팔기 선수라는 것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가족과의 관계가 당신을 지탱하는 힘입니다. 결과적으로 당신은 가장 중요한 것에 합당한 몰입을 하지 않았습니다. 미래를 위한 가상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가끔 회의의 늪에 빠진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요.
열이 많은 당신에게 여름은 오래 사귈 친구가 아닙니다. 뻣뻣한 직사광선을 날려 생각과 의지를 발산시켜 버리니까요. 계절의 전환을 許하기를 권합니다. 당신의 외로움과 당신의 눈물과 당신의 가벼움이 벽지의 얼룩처럼 눌어붙기 전에, 가을 한 볕에 잘 버무려 당신의 곁에 있는 사람과 나눌 수 있게 되기를. 행여 곁의 그 사람이 당신처럼 머뭇거리걸랑 침묵으로 기다리며 부드럽게 안아주기를.
가을이 오면 당신이 더욱 아름다워지리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당신의 아니마, 현숙으로부터

에게해 바닷물에 몸을 담그던 날, 그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토해내고선...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었을까... 안절부절... 그에게도 아픔이 있었다.
분명히 있었다. 먼 산을 응시하고, 빗방울에 슬쩍 눈물 섞어 흘리던 중년이 되어버린 그에게도
분명 쓸 이야기가 있었다. 다만.. 망설이고 있어 보였다.
어렵사리 문을 열고 나왔는데.. 영 어색한 반응에 .. 나는 혹시라도 도로 문닫고 들어가면 어쩌나 했다.
그런 그가.. 한 발을 내딛고 나오려 한다. 한 번 꺼내놓기 시작한 아픔들이.. 이제 줄줄이..쏟아져 나왔으면..
더 이상 꼭꼭 숨겨서.. 속에서 썩지 않았으면. 토해내었으면..
나는 그가 꼭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도울 것이고, 옆에 친구들이 함께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를 사랑한다. 그의 아니마를 사랑한다.
또 다시 비가 온다. 그도 그의 아니마도 그리고 나도.. 모두 다 이 비를 보고 있겠지.. 같은 하늘 아래서...
겨울부터 시작했던 길이.. 훌쩍 8월을 넘어가고 있다. 이 비 그치고 나면, 가을이다.
우체국 앞에서... 그녀를 그리던 가을이다. 이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