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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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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30일 17시 24분 등록
새가 한마리 날아왔습니다.
하룻밤을 머물다 갔습니다.

내 방은 너무나 많은 물건이 널려있어 그 새가 잠시 앉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얼른 방을 치울께요."
바로 방으로 안내하고 못하고, 옥상에 주인 아주머니가 내어 놓은 의자에 저녁에 내린 빗물을 닦아 권하고는 그곳에서 잠시 기다리게 했습니다.  내 옥탑방은 너무나 지저분하여 도저히 둘이 있을 공간이 못되었습니다. 밤 늦게 날아온 새를 너무나 오래도록 밖에 머물게 했습니다.

같이 방을 치우고 겨우 둘이 누울 자리를 마련하고 잠을 청하려고 불을 껐습니다.
방으로 들어온 새는 아침에 블로그에 올려두었던 I'm your man 이란 노래에 들으니, 블로그에 같이 걸린  은지원의 '웃기고 싶어요 당신을.. 나는 이마를 마치 펀치 빽처러 마빡이 마빡이... 너를 웃겨보려 애를 써' 하는 노래나 거북이의 '빙고', 박진영의 '허니'나 '청혼가'는 슬프게 들린다 하였습니다.
 
아마 그랬기 때문에 새는 그밤에 우리 집으로 날아오고 싶어했을지도 모릅니다.

많이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고,
그녀는 나보다 1시간이나 먼저 일찍 알람을 맞춰 깨고는 부엌방에서 모닝페이지를 쓰고 명상을 하였습니다.
내가 깨어 활동하는 것을 안 그녀는 108배를 하고 명상을 하였습니다.

전날 노래 때문에 그렸던 그림을 다시 몇번을 손을 보고는 다른 엽서를 꺼내 들었습니다. 친구가 여행에서 사다준 책을 펼쳐 연필로 따라 그리고 물감을 칠했습니다.
그러자 문득 나타난 것은 손자국. 색을 입혀야만 모습을 드러내는 지문들.

20100828-s-2.JPG

20100828-s-1.JPG

저는 그 지문들을 살려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핸드크림을 바르다가 엽서를 만졌던 날,  화장을 하다가 종이들을 치웠던 날. 서둘러 가방을 싸다가 만졌던 날. 내가 제대로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나와의 몇번의 만남의 흔적들을 그대로 살리고 싶었습니다. 
 
'나는 사슴이다'에서는 사랑에 빠진 여자는 자신은 19층의 탑과 같다고 고백합니다. 일년일년이 쌓여서 지금의 자신이 되었으니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겠다는 이유를 들어서 그 누군가를 마음 속에서 들어내면 자신은 이런 모습의 탑이 아닐라라고 고백합니다. 누군가를 드러내는 것은 몇층인가를 들어내는 것이라고. 자신을 있게한 소중한 인연들 때문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사슴은 고백을 했습니다. 

그녀는 새벽에 자신은 명상을 하고 기도를 하는 동안 내가 옆방에서 그림을 그리는 그 순간이 매우 특별했다고 했습니다. 저도 또한 그러했습니다.  옆에서 조용조용하게 들리는 그녀의 무릎꿇는 소리, 경전을 외는 작은 읆조림이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습니다. 

누군가와 같이 깨어있는 편안함.

저 또한 한밤중에 날아든 새에게 고백합니다.
당신의 온기가 그림엽서에 찍어있던 지문처럼 바로 보이지는 않겠지만  
당신의 온기가 나의 아침에 그림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라고.
IP *.93.4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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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08.31 15:01:47 *.10.44.47
결혼의 문제점이 뭔지 알겠어요.
집이 아무리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도
나를 찾아 날아온 새를 맞을 공간을 찾을 수 없다는 거.

특별한 아침 축하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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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09.01 05:41:16 *.10.44.47
선배님의 말씀을 들으니..

'현재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삶이 뻑뻑거리는데
 새로운 관계를 시도하는 건 주제넘은 것 아닐까요?'
라는 저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새로운 관계를 두려워하면 안된다'며
세차게 도리질치시던 사부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용량이 부족하다는 것은 핑계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틈틈히 필요없이 자리만 차지하던 것들이 없는지 살펴봐야겠습니다.
 나를 찾아든 새한마리 정도는 언제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을 찾을 수 있었음 좋겠습니다.  ^^

오늘은 저에게도 특별한 아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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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1 05:03:20 *.72.153.58
미옥님 새를 맞기 위해선 물리적 공간의 여유 뿐 아니라 마음이 공간에도 있어야 할 듯 합니다.
전 3년정도 집에 아무도 들이지 못했습니다. 누군가 찾아온다해도 지저분하다고 못오게 했었어요. 이제 다시 방문을 열어보려구 합니다.
살림(삶)과 육아를 새와 같이 잠시 나누어보면 어떨까요. 막상 열어서 맞으니 하루밤 머물게 하는게 그리 어려운 게 아니더군요.

오늘도 특별한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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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8.31 23:58:14 *.131.127.50

^^
그림과 글,   글과 그림 
아니지 그림과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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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1 05:08:09 *.72.153.58
'칼과 (삶) 이야기'처럼, '그림과 이야기' ^^*
평생 같이 살 재미있는 친구하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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