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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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커뮤니케이션 / [9-1 컬럼]
‘넌 참 느리다. 그게 니 장점이고 단점이야!’
‘내 장점과 단점이 무엇이냐?’ 는 질문에, 20년지기 성당친구는 그렇게 대답해 주었다. ‘도대체 뭐가 느리다는 거냐?’ 는 계속된 질문에도 그놈은 웃기만 할 뿐,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얼마 전, 유끼 웨버 은주도 ‘우성아, 넌 참 느리다!’라고 얘기한 것을 보면 나만 잘 모를 뿐, 내가 ‘느린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회의를 할 때도 금방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고, 기본지식이 없는 내용의 책은, 읽어도 한 번에 문맥이 잘 파악되지 않는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성격은 급한데, 행동은 느리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람이 어리벙벙하다.’는 뜻으로 들려졌다. 역시나...^*^;
물론, 나이를 먹으며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고 기본적 속도를 지녀야 생존이 가능한 직장생활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본능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 나는 빠르지 않다.ㅎㅎ’ 지난 일을 생각해보면, 내 삶은 영리하지 못한 ‘나의 느림’ 에서 기인한 선택의 총체적 궤적이었다. 좋았던 적도 있었고 그다지 좋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느려서 좋았던 기억보다는, 느린 탓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느라 비싼 수업료를 치룬 기억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상황에 대한 입체적인 인식’, ‘사람과 세상을 둘러 싼 관계의 함수’에 대해 재빨리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 나의 느림의 정체가 아닐까 생각된다.
어쩌면 감당하지 못할 상황을 정면으로 직면하는 것이 두려워서, 일부러 느린 본능을 고수했는지도 모르겠다. 알면서도 의사결정을 미루거나, 근거없는 낙관으로 흘러가는 상황에 주도권을 맡기는 식으로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도 나름, 삶의 방식일테니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어떤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있는 상황을 그대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과의 솔직한 커뮤니케이션을 전제로 한다.
무심히 떠가는 흰 구름을 보고 어떤 이는 꽃 같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새 같다고 말한다. 보는 눈이 달라서가 아니고 서로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은 ‘있는 그대로 보기’로부터 출발한다. 현상이나 사물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조직의 현재 상태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 나를 fact 로만 살펴볼 수 있는 능력은 어떤 면에서는 ‘축복’ 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무엇을 하는가는, 자신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하는 가에 의해 결정된다. 삶의 질은 커뮤니케이션의 질과 다르지 않다.
조직의 흥망성쇠도 커뮤니케이션의 질에 크게 좌우된다. 똑같은 사실을 내부 구성원에게 알리는 데 그룹웨어의 클릭 하나로 되는 조직이 있는가 하면 구두로 전달하거나 전화로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조직도 있다. 비전을 공유하는 조직과 그렇지 못한 조직의 차이는 얼마나 될까? 조직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에 대한 명언들이 많지만, 아직까지는 잭 웰치 회장의 표현이 가장 경영(?)스럽다.
1999년 잭 웰치 회장의 한국 방문시, 한 경영자가 물었다. “세계에서 존경받는 기업의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로 선정된 리더십의 비밀이 무엇입니까?” 웰치 회장의 답변은 명료하다. “딱 한가지입니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 지 알고 있고, GE 의 전 구성원은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습니다.”
강준만 교수는 소통의 사전적 의미는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 이지만, 그 실천 이념은 화이부동(和而不同) 이라고 했다. ‘뜻이 서로 통하지 않더라도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승님이 말씀하시는 배려와 관용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그게 쉽나?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조직은 고객들에게 홍보와 광고를 통해 자신의 것만을 들이대느라 정신이 없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위대한 커뮤니케이션 없이는 위대한 승리도 없다. 그러나 소통을 하려 해도 불통이 되면, 울화통이 터지게 되는 것 또한 사람의 마음이다. 관계의 회복과 소통을 위한 처방전으로 역지사지, 공감 등 많은 처방들이 있지만, 제일 인상깊었던 처방 (무자게 낄낄거리며 웃었다) 은 딴지총수 김어준의 ‘커뮤니케이션의 정의’ 다.
“내용이 맞아도 화법이 싸가지 없으면 열 받는 게 커뮤니케이션이다.”

이런 얘기는 하지않는게 좋을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 GE의 결말을 보며...오래살아남아 "일의 결말을 보시길 바랍니다" 하시던 분의 마음이 생각납디다.
아마 내가 잘 알지못하는 영역이어서 미처 이해하지 못한 상황도 있겠지요.
북리뷰를 열심히 다하고 나서 또 다른 책들을 채워 읽고보니...
갈림길에서 나의 길은 선명하게 들어나는 것 같습디다.
유끼들의 칼럼을 읽고 있으면 독자들도
그 글을 쓴 사람의 나아갈 바를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쨌든 나도 그 김어준씨를 매우 존경합니다.
청년들과 늘 같이 지냈던 내 경력은
그의 정면돌파 인생메뉴얼 <건투를 빈다>땜에 완전 박살났어요.
나는 좋은사람이 되려고...말을 좀 아끼고 천천히 내 보냈거든요. ㅋㅋㅋ
우성씨의 건투를 빕니다. ㅎㅎ

이거 바꿔말하면 '한결같다'는 말이죠?
제가 늘 탐내는 형용사죠.
이젠 거의 포기하고야 말았지만요.
데덴찌 해보셨죠?
사고의 폭은 그대론데 행동만 혹은 머리만 빨라서는 괜히 피곤하기만 한 것 같아요.
뒤집었다 엎었다 아무리 빨리해봐야 결국은 뒤집어졌거나 엎어졌거나 둘 중의 하나라면
속도에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다는 게 현재까지의 제 결론.
알면서도 쉴새없이 손바닥을 놀리고 있으니 갑갑할 노릇이죠.
하지만 뭐..이젠 갑갑해하는 것도 그만하기로 했습니다.
그 덕에 팔근육이 탄탄해짐 그것도 분명한 수확이니까요.
한결같음에 대한 짝사랑은 오래오래 오빠 곁에 머무는 걸로 어떻게 떼워볼 생각인데
괜찮겠죠? ㅎㅎ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거야.
바로 그거야. 같은 것을 보면서 다르게 생각하고 세상 사람이 모두 다른 생각과
좋아하는 것이 틀리게 때문 세상이 돌아간다는 것.
너의 글에는 항상 북리뷰나 컬럼에 내가 인용한 글귀가 있어. 찌찌뽕 ~ 맨날 이 놀이하다 귀 떨어지겠다.ㅎㅎ
내가 '저자에대하여' 젝 웰치 강연 질문에대한 답글을 인용해 놓았는데
너의 컬럼에서 보니 무지 반갑네.
거북이가 느리지만 토기를 앞섰잖아. 즉 승리를 했지.
자 질문 좋아하는 너에게 질문:
그럼 느린 거북이가 낫다는거야? 아님 토끼가 낫다는거야?
너의 느림은 이 정도 질문에서 너가 해답을 찾겠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