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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12일 11시 22분 등록

1학기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 하나 둘씩 아이들의 제보가 들어왔다. 지우개, 필통, 샤프, 비싼 펜 등이 없어졌다고 투덜거린다. 자신의 물건을 잃어버려 울상인 아이들에게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제 중학생인 너희들은 자기물건은 스스로 잘 챙겨야 하는 거야’ 라는 예방이 중요하다는 말밖에는 딱히 없었다.

이렇게 반에서 분실 또는 도난 사건이 잃어나면 난감하기 짝이 없다. 대체로 잃어버린 물건은 찾기가 힘들고 반아이들 중에서 누가 남의 물건에 손을 댔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아이들에게 대한 애정이 순간 반감되는 것을 느끼고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2달 지났을 즘 이번엔 좀 큰 내용물인 우리반 준성이의 교통카드가 없어졌다. 책상서랍에 넣어둔 지갑에서 교통카드만 감쪽같이 사라졌다. 합반수업을 했던 터라 우리반 아니면 옆반 아이일텐데 이전에도 자잘하게 도난사건이 있던 터라 그냥 이전처럼 말로만 주의를 주는 것으로는 부족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례시간에 아이들을 남기고 가방, 서랍, 사물함 등을 살펴보며 소지품 검사를 했다. 1시간 넘게 땀을 뻘뻘 흘리며 찾았는데 역시나 나올 턱이 없다.

그리고 2학기가 되어서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수거했다가 나눠주는데 그날 따라 종례를 빨리 받고 싶은 핸드폰 수거담당 아이가 내가 종례를 하러 가기도 전에 핸드폰을 담은 상자를 들고 가버린 것이 사단이었다.

우리학교 교칙은 핸드폰소지불가이다. 핸드폰을 어쩔 수 없이 가져와야하는 아이들은 부모님에게 핸드폰을 소지해야하는 이유를 확인하고 학교에 오면 담임선생님에게 맡겨야하고, 사전에 허락없이 학교에서 핸드폰을 가져와서 일과시간중에 사용하다 걸리면 일정기간 보관했다가 돌려주는 것이 교칙이었다. 나는 교칙대로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학교에 가져오지 말라고 혹시 가져와도 학교에서 절대 사용하지 말라고 하며 핸드폰을 수거하지 않았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고 싶긴 한데 부모님께 허락받고 나에게 맡기는 것이 귀찮았던지 그냥 핸드폰을 학교에 가져왔고 일과중에 사용하는 것이 적발이 되곤 했다. 어느 날 부장님께서 아이들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으면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찍게 된다고 꼭 수거했다가 돌려주라고 당부하셨다. 사실 교칙보다 내가 매일 핸드폰을 수거하고 관리하고 다시 돌려주는 것이 귀찮아서 시도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부장님이 그렇게 까지 말씀하시니 부모님의 동의없이도 무조건 학교에 핸드폰을 가져오는 아이들의 핸드폰을 조회시간에 수거하고 종례시간에 돌려주게 되었던 것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근무를 하고 있는데 학부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반 낙현이 어머니였다. 예의바르게 인사를 하신 어머니는 낙현이가 학교에서 핸드폰에 있는 외장메모리 8G짜리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아이가 너무 소심한 성격이라 잃어버린 것에 심하게 마음을 쓰고 있으니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물론 찾는 것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그냥 넘어가면 훔쳐간 아이가 이런 일을 해도 아무런 제재가 없구나 생각을 하면 나중에 계속 이런 일이 반복될지 모르니 짚고 넘어갈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하신다. 나도 어머니의 말에 동감을 하며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것이 없어진 날은 매일 나와 함께 핸드폰을 가지고 종례하러 가던 핸드폰 수거 담당 아이가 내가 다른 일을 보고 있는 사이 집에 가는 시간을 단축하고 싶은 마음에 내 사물함에서 핸드폰을 먼저 가져가 교탁에 놓아두었다. 그 5분정도의 사이에 아이들이 멋대로 자기핸드폰이며 다른 아이 핸드폰이며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내서 주인을 찾아주는 소동이 있은 후였다. 만약 낙현이가 아침에 핸드폰수거이전에 분실한 것이 아니라면 이건 뭐 확실하게 우리반 녀석의 짓이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우리반 아이들에 대한 신뢰감에 상처를 입는 것이다. 모두가 하나하나 보면 정말 예쁜 아이들인데 이런 일이 있으면 저렇게 천사같은 얼굴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우울해진다. 나뿐만 아니라 1학년 6반이라는 공동체 속에 속해있는 아이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 문제였다. 도난 사건이 발생해 우리 중 누가 범인일지 모른다는 의심하는 마음을 품게 되는 일은 학급이라는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치명적이었다.

어떻게 해결을 해야되나 고민을 하다 선배교사에게 조언을 구하니 일단 아이들에게 가져간 사람이 있으면 돌려주라고 말해보고 해결이 안 되면 학급비로 보상해주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신다. 그리고 얼마전에 자신의 친구가 반에서 일어난 분실사건에 적극적으로 조치하지 않았다고 교육청에 고발된 사건이 있다며 요즘 분위기가 이렇다며 조심하라는 당부까지 하신다. 이런 선배교사의 조언을 들으니 고발당하지 않기 위해 내가 이 사건을 해결해야하나 하는 생각을 하니 좀 씁쓸하다.

다음날 조회시간에 반 아이들에게 이틀간에 시간을 줄테니 혹시 실수로 가져간 사람이 있으면 선생님이나 잃어버린 아이에게 살짝 가져다 놓으라고 했다. 잃어버린 사람이 얼마나 마음이 아플 것이며, 실수이거나 작정을 하고 가지고 갔거나 우리반에 도난을 한 장본인이 있다면 나중에 이런 일이 습관이 되면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고 다시 하번 내가 너희들을 우리반 구성원끼리 서로를 믿지 못하는 일이 발생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당부를 했다. 그리고 결국 도난된 물건이 반환되지 않는다면 도난사건은 우리반에서 일어난 것이기에 우리 모두의 책임이니 1학기때 우리모두가 노력해서 상품으로 받은 문화상품권으로 잃어버린 아이에게 보상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틀 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낙현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메모리카드를 찾지 못했으니 학급에서 모아둔 문화상품권으로 변상을 해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오히려 미안해하시며 벌써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으니 신경쓰지 말라고 하신다. 오히려 나에게 이런 일로 연락드려 죄송하다며 이번 일로 낙현이가 반 아이들과 관계가 안 좋아질까 걱정이라고 그런 일이 없게끔 해달라고 당부를 하신다. 변상을 거절하는 어머니에게 문화상품권을 드리는 것도 실례인 것 같아서 하지 않기로 하고, 그 변상하는 데 사용하려고 했던 문화상품권을 현금화해서 우리반 이름으로 기부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종종 발생하는 분실과 도난사건 속에서 아이들은 우리는 하나라는 공동체 정신보다는 가까운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을 학습하게 된다.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요즘 아이들은 도덕성 불감증이 점점 심해지는 것을 느낀다. ‘나만 , 내것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에 친구의 것을 가져가는 것에도 부끄러움이 없고 친구의 것을 가져가는 것을 알아도 무관심하다. 어떤 상황이건 요구되는 것은 교사의 지혜로운 대처이다. 8년차인 나는 아직도 이런 일이 일어나면 난감하고 처리하는데 어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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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흥
2010.09.12 12:16:00 *.67.223.107
용하다 연주,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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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2010.09.14 09:42:24 *.203.200.146
용하긴요...당연한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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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0.09.13 13:10:15 *.236.3.241
선생님은 직업이자 직업 이상의 사명가로 인식되어 있어서
곤란한 일이 많을 것 같다. 그럼에도 그 사명을 자기의 것으로
소화해서  즐길 수 있다는 건 보람있는 일이겠지^^

김연주 선생님,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히 거듭난 삶을 즐겁고
풍요하게 키워 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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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2010.09.14 09:44:25 *.203.200.146
모든 직업이 그렇겠지만 사명감없이 그냥 일자리라는 인식으로는 오래 못하거나 오래가려해도 자신도 주변도 모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겠죠.
내 포지션이 무엇인지 연구원 과정동안 찾아내는 것이 관건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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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9.14 14:19:26 *.42.252.67
정말 난감하다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아.
선생님이란 자리가  흔들릴 때가 이런 때가 아닐까 싶어.
나름 잘 가르치고 교육한다고 한 댓가가 이렇게 돌아오면 
힘이 빠지겠지만 , 오랜 세월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같다는 거야.
아이들이 있는 곳은 늘 상상할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나기 때문이지.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아이들의 인성에  최선을  다하는 선생님이 되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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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2010.09.14 14:54:39 *.203.200.146
최선을 다해야 하죠? 그래야하는거죠?
어제 오늘은 가해자는 장난 피해자는 폭력으로 생각되는
학교폭력 지도중입니다. 으아~
어리버리 한 녀석을 여러명이서 괴롭혔더군요.
저 혼자서는 힘들고 상담샘의 도움을 받아야겠어요~
근데 묘한 것이 이놈의 직업이 포기가 안 되는 거죠. 부모심정이 이런 것이겠구나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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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09.15 18:30:13 *.30.254.21
음..
학교와 아이들의 이야기도 좋은데..
한가지가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나의 키워드가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그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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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2010.09.16 12:40:02 *.203.200.146
그게 뭘까요? 좀 심심하긴 한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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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9.15 23:52:39 *.129.207.200
8년차 이상 되더라도, 그런 일 당하면 난처하지. 

아이들 이름으로 시작하는 글이 아니네. 솔직히 아이들 이름으로 글을 시작하다보니, 형식이 식상하다는 느낌은 있었다. 칼럼이야 일주일에 한번 읽지만, 책으로 묵여져 나온다면 같은 포맷이 단조롭지 않을까 싶었다. 아이들 이름으로 시작하는 형식, 학교에서 일어났던 사건, 그리고 또 하나의 형식, 이렇게 3개로 돌아가면서 구성하면 좋지 않을까?

그래도, 너는 선생님이니까 고객(학부모 및 학생)이 예의 갖추어서 컴플레인을 하는구나. 언젠가 손님 한명이 병따개 놓고 갔다고, 주방 쓰레기통을 엎은 적이 있지. 영업 방해로 신고한다고 했더니, 움찔하더라고...말해서 알아듣는 사람도 있겠지만, 협박해야 겨우 알아먹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때려도 모르는 사람도 태반이고...아이들이라고 틀릴까? 타고난 유전자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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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2010.09.16 12:43:12 *.203.200.146
네 포맷을 좀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어요.감사해요^^
저는 다행이도 예의를 갖추어 컴플레인하는 학부모를 대부분 만났는데...아닌 경우도 간혹있죠...^^
타고난 유전자!!! 아이들의 태도와 부모의 태도가 대개는 다 연결이 되죠...이런 생각을 하면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들에게 방관자적인 시선을 보내게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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