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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14일 01시 42분 등록

응애 32 - 잠그림잠그림잠그림.........잘그림

          

  화가 김점선은 2007년 난소암 수술을 받고 치료를 하는동안 이제까지 그녀가 쭉 써온 글을 출판하자고 준비하던 출판사 사람들을 만났다. “책제목을 뭐라고 할까요?” 파도치듯 정신이 들락거리는 중에 그녀가 비장하게 말했다. “점선뎐! 이책은 나의 전기다. 이제까지 낸 책과는 다르다.” 어릴 때 외할머니의 방에서 본 여자들의 전기 옥단춘뎐, 숙영낭자뎐..이 떠올랐던 것이다.

  김점선은 “각자의 삶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예술품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자기답게 사는 것을 방해하는 세상의 모든 것들과 싸웠다. 서른 즈음에 그녀는 결혼을 했다. 결혼 후 한 4년쯤은 남편과 생명을 건듯 싸웠다. 그러나 아들이 생기자 남편은 아들을 몹시 사랑하고 그 아들의 성장에 보람을 거는 아버지가 되었다. 어디든 함께가고 그녀가 그림을 그리느라고 바쁜동안 그들은 함께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헤엄치고 여행을 했다. 아이가 자라나자 엄마가 물었다. “넌 커서 화가가 되고 싶지 않니?” 아들이 대답했다. “엄마처럼 그림 그리는 일이 좋긴한데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도 않고 매일 그림만 그리는 생활은 못참을 것 같아.”

 그녀는 한때 화가 빈센트 반 고흐에 몰두한 적이 있었다. 모든 자료를 통해 환히 알게된 그의 일상은 잠과 그림이었다. 고흐는 한창 때 1년에 200여점의 유화를 완성했다. 사흘에 두점을 그려냈다는 것이다. 연필그림도 그렸을테니까 고흐의 매일매일은 결국 잠과 그림뿐이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의 삶은 인사치례나 친선방문, 취미 도락 여행 같은 것들이 끼어들 수조차 없이 그림과 잠으로 꽉 차 있었다. 그녀도 고흐처럼 몰두해서 살겠다고 생각을 굳혔다. 무례하고 무자비한 잠과 그림뿐인 세계로 나아가겠다고.....

그녀도 젊은 날 한때 가난에 찌들어 살며 낡은 옷을 걸치고 먹을 풀을 뜯으러 산을 헤매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무명작가의 튀는 그림을 미친사람이라고 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오빠들을 위해 11벌의 삼베옷을 짜는 동화 <백조왕자>의 공주처럼 말없이 작업을 했다. 변명은 낭비다. 변명은 내가 나아갈 길이 아니다. 오로지 내 속의 나침반만 바라보면서 , 내 감성이 이끄는대로 그림을 그려나가면 길이 열릴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침묵속의 몰두, 그것뿐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나의 그림은 전혀 시적이지 않다.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림을 그린다. 자신을 닦달하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려대고 우울하고 찌뿌둥하고, 무거운날 나는 한없이 잠자고 싶은 욕망에 잠긴다. 그럴때 나는 잠들지 않는다. 나는 나자신이 잠들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전혀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때도 그림을 그린다. 나는 등산하듯이 그림을 그린다. 산길을 잠든 채 걷듯이 그림을 그린다. 나 자신이 지탱하기 힘들만큼 무겁게 느껴질 때도 그림을 그린다. 무겁고 큰, 성질 사나운 황소를 몰아가듯이 나는 나자신을 몰아갈 뿐이다.”

 화가 김점선은 오리를 무지하게 좋아했다. 치과에서 돌아올 때면 더더욱 오리가 되고 싶어 했다. 오리는 이빨도 없고 아무거나 먹고 이도 안 닦고 그냥 자도 되고, 헤엄도 치고 뛰어다니기도 하고, 매일 물속에서 노니까 목욕탕에 안다녀도 되고 급하면 날기도 하고....이가 아프고 깊은 물이 무서울 때마다 오리가 되고 싶어 했다.

 좀 커서는 오리가 아름다워서 좋았다. 그 선이 미끈하고 좀 둔하고 튼튼해서 좋았다. 다른 새들은 연약하고 가볍고 만지면 죽을 것같이 위태롭게 보이는데 오리는 궁둥이를 퍽퍽 때리고 내려놔도 금방 씩씩하게 달려가는 게, 꼭 실컷 매 맞고도 튼튼하게 살쪄가면서 사는 나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그녀의 그림엔 오리가 많이 나온다.
그렇게 좋아하는 오리를 안고 이제 그녀는 하늘나라를 거닐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유언장이다.

나는 너무나 엄정하게 아들을 대했기 때문에 특별한 유언장이 없다.
줄기차게 칭찬, 숭배, 예찬 일변도로 그를 대했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생활하는 관찰자로서 그를 칭찬했다.

나로부터 개선된, 진화된 생물체로 태어난 미래의 인간으로서 숭배했다.
인류의 휼륭한 유전자를 그대로 보유한 미래 세대의 구성원으로서 예찬했다.
나는 인류문명의 발달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이고 좋아하는 사람이다.
인류의 미래를 가슴 벅차게 기대하는 사람이다.

아들이 기억하는 나의 모든 순간이 유언장이 될 것이다.
그의 장점을 혹시 그가 잊을까봐 늘 깨우쳐주려고 노력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그를 칭찬할 거리를 만들고 찾았다.

나는 아이를 낳고 나서는 이 세상에서 내가 낳은 아이를 제일 무서워하면서 살았다.혹시 그에게 내가 나쁜 영향을 줄까봐 평생을 긴장하며 살았다.
아들을 비웃거나 빈정거린 말을 한 기억이 없다.
그런 정신 상태에 잠긴 기억도 없다.
나의 아들은 기억 속의 나를 종종 추억하면서 웃기만 하면 된다.

               

 나는 그녀의 자서전 <점선뎐>을 읽으며 하루 종일 그녀만 생각했다

IP *.67.223.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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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4 02:17:25 *.67.223.107
주말을 다 바친 작품인데...그림을 끌어다놓느라고.......이제야 겨우 마쳤습니다.
떠나보내기에는 참 아까운 화가입니다. 글이 꼭 작가를 닮아....독창적이고 끄는 힘이 있습니다.
늦었지만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늘나라에서 사랑낭군의 노래를 들으며 오리하고 즐겁게 노니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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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선 염창역
2010.09.14 19:32:40 *.67.223.107
김점선의 유화엔 빨간색이 많은데....
이 그림들, 색깔이 참 좋지요?

이 가을엔 오리와 말을 사랑하며 지냅시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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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선 종착역
2010.09.14 13:34:03 *.223.38.134

그림 두 장의 임팩트가 끌어다 놓은 시간을 보상하는것 같은데요 emoticon

화가의 삶과 이야기가 샘의 목소리로 들려요.. 제게는..
각자의 예술을 살고 있는 목마르고 아름다운  일상의 .그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로도..
가을 초입의 빛과 대기에 스며드는 이야기가 제 가슴에도.. ^^

좋아요 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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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4 06:37:58 *.160.33.180
할 수 없어, 좌샘도 책하고 살아야지. 
잠읽기쓰기 잠    잠일기스기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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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0.09.14 20:09:30 *.67.223.107
아이구 선상님....요기를 다 들러주시고....행복합니다.
그런데 저는 책보다는 사람하고 살고싶은데용.

잠사기사읽일일일쓰일스일
잠사람잠사람잠 ...사람......잠살아....잘살아...참잘살아.....우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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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09.14 06:50:42 *.10.44.47
잠읽기쓰기 잠.
이것 말고는 다른 활동이 너무 버겁게 느껴져서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이렇게 살다 간 사람도 계시는군요.
이렇게 살다 가도 아들이 그녀를 생각하며 늘 웃음지을 수 있는 거군요.

아침, 샘의 글에 힘을 냅니다.
자꾸만 단순해지는 일상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내고 간만에 환하게 웃어봐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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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4 20:15:00 *.67.223.107
그래그래 미옥
오늘 이시간과 똑같은 순간은 결코 다시오지 않아요.
게다가 나이가 들면
다음날 아침이 마치 오분 후에 또다시 들이닥치는 것 같다니까요....
열심히 소설써서 추석 전에 책한권 뚝딱!      animated/animate_emoticon (62).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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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2010.09.14 12:39:03 *.203.200.146
참 매력적인 그녀의 삶이군요.
영감이 떠오르거나 떠오르지 않거나 잠을 자지 않는 모든 순간에 그림을 그리며 몰입했던 그녀.
아이의 장점을 찾고 그것을 아이가 잊을까 칭찬거리만을 찾아다녔던 그녀.
참 닮고 싶은 여성입니다.
나도 그런 선생님이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해봅니다. 그림이 그녀를 추억하며 미소짓게 만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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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4 20:22:02 *.67.223.107
연주샘도...어느날.... 노래를 자-알 부르는 남자가 나타나면..
그의 목소리가 내가슴을 뛰게하는 순간이 오면
"우리 결혼하자!"    라고 외칠 수 있는  내공을 기르기를 바랍니다.
이거이 그녀를 닮는 첫번 째 길이 아닐런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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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9.14 14:23:36 *.42.252.67
오리가 좋아졌어요.
팡파짐한 궁둥이에  뒤뚱거려도 자신감 있는 걸음걸이.
갑자기 저의 지인 신부님이 저에게 질문한게 생각이 나네요.
안젤라.  오리고기가  육고기야?
그럼요. 왜요?
그렇구나. 나 지난 주 금요일 주교님이 오셨는데 마땅히 시골에서 대접할 게 없는거야.
하필이면 금육인 금요일 날  오실게 뭐야.
그래서 오리는 물에 살아 물고기라고 우기고 대접했는데.......ㅎㅎ
이 그림을 보니  튼실한 생선 한 마리를 안고 가는 것처럼 보여 웃었네요.
글이 오리털처럼 따땃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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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흥
2010.09.14 20:26:22 *.67.223.107
화가가 아플 때
누가 오리사준다고 전화했데요.  우웽~ 뜬금없이 무슨 오리오?

나도 공부하다가  자꾸 볼펜으로 오리궁둥이를 그리게 되네요.
아니 오리궁뎅이를....

생선은 오리오가 좋아하는게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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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오범
2010.09.15 22:00:04 *.67.223.154
점선은 꽃도 많이 그렸어요.
오리오는 꽃도 잘 먹나욤?  그녀는 배추도 잘 그렸어요. 니체와 배추...
근데 고기는 못봤어요. 강아지는 많이 그렸는데.... ㅋㅋㅋ
오리오 사진 한장 올려줘봐봐요, 은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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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9.15 07:52:06 *.42.252.67
오리오는 야채, 고기, 생선, 다 잘 먹어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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