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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18일 19시 19분 등록

  응애 33 - 박정대

 이 남자의 유혹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헉, 숨이 멎는다.  

고독이 이렇게 부드럽고 견고할 수 있다니
이곳은 마치 바다의 문지방 같다
주름진 치마를 펄럭이며 떠나간 여자를
기다리던 내 고독의 문턱
아무리 걸어도 닿을 수 없었던 生의 밑바닥
그곳에서 橫行하던 밀물과 썰물의 시간들
내가 안으로, 안으로만 삼키던 울음을
끝내 갈매기들이 얻어가곤 했지
모든 걸 떠나보낸 마음이 이렇게 부드럽고 견고할 수 있다니
이렇게 넓은 황량함이 내 고독의 터전이었다니
이곳은 마치 한 생애를 다해 걸어가야 할
광대한 고독 같다. 누군가 바람 속에서
촛불을 들고 걸어가던 막막한 생애 같다
그대여, 사는 일이 자갈돌 같아서 자글거릴 땐
백령도 사곶 해안에 가볼 일이다
그곳엔 그대 무거운 한 생애도 절대 빠져들지 않는
견고한 고독의 해안이 펼쳐져 있나니
아름다운 것들은 차라리 견고한 것
사랑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에도
그 뒤에 남는 건 오히려 부드럽고 견고한 生
백령도, 백년 동안의 고독도
규조토 해안 이곳에선
흰 날개를 달고 초저녁별들 속으로 이륙하리니
그곳에서 그대는 그대 마음의 문지방을 넘어 서는
또 다른, 生의 긴 활주로 하나를 갖게 되리라 < 사곶해안>

아무데서나 나도 팍 쓰러지고 싶었다
화염에 휩싸인 채 흘러가는 구름들,
들판 위의
집들 빠르게 빠르게 하늘을 건너갈 때
누군가의 깊은 한숨이 마리화나의 새떼를 날릴 때
날아가는 새떼들 위로 쏟아지던, 화염방사기 속의 여름
나는 아무데서나 어디로든 도피하고 싶었다
하늘에서
참새구이들이 투툭 떨어져, 소주병 속으로 떨어져푸른 정맥 속에서 하나의 길이 예감처럼 솟구쳐오를 때
사랑을 잃고 나는 걸었네
자전거를 타고 가기도 했네
추억이 페달이었네 폐허와
폐허와 폐허와 또 다른 폐허속에서 푸푸
푸른 현기증이 나도, 페달을 밟으면서
길 옆으로는 가기도 잘도 갔네
아 하면
아이디 아이다 호호호, 푸푸푸 하면서
세월이 갔네 아무데서나

사랑을 했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쓴 것이 몸에는 좋다네 
<아이다호>

  

나의 쓸쓸함엔 기원이 없다 / 너의 얼굴을 만지면 손에 하나 가득 가을이 만져지다 부서진다 / 쉽게 부서지는 사랑을 생이라고 부를 수 없어 / 나는 사랑보다 먼저 생보다 먼저 쓸쓸해진다 /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나는 끝내 사랑할 수가 없어 / 네 생각 속으로 함박눈이 내릴 때 / 나는 생의 안쪽에서 하염없이 그것을 바라만 볼 뿐 -「되돌릴 수 없는 것들」중에서/ 담배를 피우며 나는 어쩌면 이 지상에서 내가 돌아갈 나라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했는지도 모른다 / 안개에 휩싸인 지중해의 저녁이 끝내 내어주지 않던 비행기 한 대, 내 마음속에서도 끝내 떠오르지 않던 그리운 별들 / (중략) / 1.8유로 값싼 그리스산 담배를 피우며 나는 눈앞의 폭풍을 헤치며 떠오를 지중해의 별들 같은 건 아예 생각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리스産 담배」중에서 /나는 빈곤과 허탈의 대지로부터 왔네 / 심장의 내륙에서 혹한의 영혼까지 바람을 거슬러 오르는 횡단의 어려움, 집시들의 이야기를 받아 적는 나는 무모한 패관, 나는 생의 백지위임장을 들고 몽상과 연민이 끝난 저 먼 대지로부터 왔네 / 생은 마치 처절한 화학반응과도 같아서 실패한 실험처럼 황폐하게 돋아난 낡은 시간의 깃발이 여기에 있네 / 나는 이제 깃발의 무모함, 무모함의 천막을 여기에 다시 펼치려 하네 / 끝이 보이지 않는 백지의 평원 그 끝으로 누군가 말을 타고 아득히 사라져가네, 희미하게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들 / 무가당 담배 클럽 총서의 목록 / 그러나 가령 톱밥난로의 첫 페이지, 스웨터의 두 번째 영혼 그리고 사랑과 열병의 화학적 근원 같은 거 / 그래서 나는 담요를 뒤집어쓰고 라디오를 들으며 글을 쓰네 -「사랑과 열병의 화학적 근원」중에서 / 한 잎의 백야/처음이자 마지막인 백야/자정의 라디오 레벨데/소피아네/고독 행성/투쟁 영역 확장의 밤/마지막이자 처음인 백야/백야를 횡단하는 새들의 화면조정 시간/정오의 라디오 레벨데/나의 아름다운 세탁선/라펭 아질에서/카바레 드 자사생/호텔 솔리튀드/감정의 귀향/사천의 천사/적판 거리/로맹 가리/그리고 마지막이자 처음인 백야/두 잎의 국경선/우르가/우르무치 여관/생의 접경지대/아, 비, 정전/빅또르 쪼이/안개의 달 18일 결사/리컨스트럭션시/되돌릴 수 없는 것들/얼음 맥주 공장의 노동자들/갱바르드 밀서/그대의 사유지/흐리고 느린 중국식 필름/측백나무 국경 근처/여섯 개의 백지위임장으로 만든 기타/세 잎의 공화국 광장/갱스부르 기타/감정의 무한/델피에 가려면/영원의 하루/그리스산 담배/안개의 달 26일 결사/월하독적/유령/담배 피우는 프랑수아 트뤼포를 위한 시선의 동맹/Z/안나푸르나의 능선이 보이는 작은 방/흑야/갈레 슈우/그럼 이만 총총/그대는 갸륵한 내 노동의 솔리튀드 광장이었나니/카페 몽파르나스/사랑과 열병의 화학적 근원 / Webzine Poetsplaza

  사람이 사람에게 끌리듯  사람이 시에게도 끌려갈 때가 있다. 나는 박정대 시인의 장난끼 가득한 말과 연상을 좋아한다. 멕시코의 대시인 옥타비아 빠스를 읽으면서 옥탑 위의 빤스를 추억 속에서 찾아내고 쓰는 것에서 쓴맛을 찾아내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흘러다니는 그의 말장난이 재미있다. 아마 독자가 미처 알아내지 못한  보물들도 여기저기 감추어두고는 혼자 큭큭거리고 있을 그의 장난스러운 눈빛도 사진으로본 그의 얼굴위에 올려놓아본다. 이 글을 올릴때만 해도 추석이 지나면  남의 글을 이렇게 깡통채로 옮겨다가 포장택배로 보내는 일이 마음에 걸려서 글을 내려 그 흔적을 지우려고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갈 수록 더욱 좋아지기만하는 시인 박정대를 이렇게 근사한 추석 연휴에 읽었다는 것이 또 하나의 추억이 될 것 같아서 사족을 달아서 그냥 응애칼럼으로 살려두기로 한다.   앞으로도 틈틈이 그의 시를 읽으며 보물찾기를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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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2010.09.18 19:25:22 *.67.223.107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카놀라유와 두부와 놀다가...추석빔으로 한상 차려냅니다.
택배로 보내는 추석선물입니다. ㅎㅎ

 같은 한가위를 맞이하고 또 떠나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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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9.19 16:43:28 *.131.127.50

왕누님도!
가족 모두 즐거운 한 가위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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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누
2010.09.19 19:11:03 *.67.223.107
백산 , 어제 즐거운 오후를 스승님 곁에서 잘 즐기셨나용?
나도 백산의 마음을 읽고 나가고 싶었지만...
잠읽기쓰기잠읽기쓰기잠잠잠 놀이 하느라고 잠잠하게 지냈죠. ㅋㅋ
백산도 좋은시간 보내요. 달님에게 더욱 충만한 사랑을 빌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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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1 11:44:12 *.40.227.17

좌샘~ ^^

어쩜.. 정말 한상 가득 차려 내셨네여..
사곶해안의 고독?.. 참새구이.. 쏘주.. 쓴것 ? ..
백산 오라버니와 철이가.. 좋아하는 구름과자꺼정.. 잊지 않으시구여.. (아, 철이는 쏘리.. 군것질 이제 안한다구..ㅋ)
뭘부터 먹어야 할지여.. 헤헤^^

날이 좋으믄.. 큼지막하게 어여쁜 둥근달..  뜨겠져.. (근데.. 지금봐서는..ㅎ)
우쨨든.. 달뜨믄.. 창문 열구.. 라디오에서 흐르는 음악 들으며.. 소원 빌어야겠어여.. ^^

좌샘께서두.. 맘에 쟁겨두신 깊은 소원.. 고이 꺼내어.. 달님에게..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실거져..^^
깊은 소원.. 이루시길.. 바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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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소원
2010.09.21 21:53:43 *.67.223.154
음악이 있어 그대는 행복합니까
 세상의 아주 사소한 움직임도 음악이 되는 저녁,
나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
누워서 그대를 발명합니다 <그대의발명 박정대>

비나이다비나이다 맑은저녁을주소서혜향이하고산책할수있게
와도와도너무오는비온세상사람들의안위가걱정되는저녁마음놓고토끼를볼수있게해주소서
누워서혜향을토끼를발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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