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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20일 11시 35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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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들이 아침을 여는 장(場)으로 향한다. 또닥 또닥 그들의 발걸음이 세상에 울림으로 전파될즈음, 식당에 도착한 그들은 본인의 자리에 앉아 하루의 시작을 기다린다. 수도원 공동체내에서는 함께 식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식구(食口)라는 의미가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인 것처럼, 모든 것을 같이 나눔으로써 하루를 여는 것이다. 부득이하게 몸이 노쇠하거나 병이든 분들만을 제외하고서.

 

먹는다는 의미는 남다르다.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사로써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영혼이라는 이름의 짐을 지고 다니는 육체라는 이름의 짐승을 실컷 먹이고 마른 목은 포도주로 축여 주었다. 음식은 곧 피로 변했고, 세상은 더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먹는다는 것은 숭고한 의식이며 고기, 빵, 포도주는 정신을 만드는 원료임을 깨달았다.”

 

시작기도와 함께 이루어지는 식사시간에도 그들은 어제 밤기도 때부터 이루어진 대침묵을 고수한다. 내적인 갈무리와 동반된 식사를 행하는 그들에게 약속된 형제 하나가 그날의 성서 말씀을 읽어 나간다. 육적인 음식과 영적인 음식을 그들은 이렇게 동시에 섭취해 나간다.

그들 하루의 기도, 고된 노동의 근간은 이 식당에서 이루어진다.

식당은 단순한 공간이 아닌 수도원 공동체에서 이루어지는 나눔, 관계, 만남의 공간이다.

그들은 여기에서 평생을 함께 살아갈 형제 자매를 만난다.

지금 남아있는 식당은 비워져 있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

보이는 것만이 다가아니듯 우리들 눈앞의 세계만을 믿지말라.

 

자, 조용히 눈을 한번 감아볼까나.

무슨 소리가 들리는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쉿! 누군가 뛰어오고 있잖아. 그렇지. 오늘의 식사 당번인 스테파노 형제군.

한사람 두사람 시간에 맞추어 들어온다.

이번에는 다른 소리들이 들리지않는가. 접시에 스프를 담아 떠먹는 것과 함께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이며 오늘을 요리하는 움직임들의 몸짓이.

 

식당(食堂)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먹는 공간만이 아니다. 살과 피와 연대의식으로 뭉쳐진 공간이다. 마음을 채운다. 삶을 채운다. 공간을 채운다. 시간을 채운다. 그리고 보이지않는 생(生)을 채운다. 그리고 이젠 채워진 그것을 뱉어내 함께하는 공동체원들에게 나누어준다. 그것은 믿음, 소망, 사랑이 되어 서로들에게 먹힌다. 먹고 먹히는 전파 공간 식당이다.

 

하지만 그런 공간은 이제 하나둘 자리가 비워져간다.

유럽의 공동묘지 입구 기둥에 적힌 오늘은 나 내일은 너(HODIE MIHI CRAS TIBI)처럼, 오늘은 베드로 내일은 암브로시오가 떠나간다.

그다음날은 아마도 우리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

 

식당의 빈공간 지하 땅끝에는 이제 구더기가 그 여백을 차지한다.

오롯이 땅에 묻힌 형제들의 살과 체액을 먹고 통통하게 윤기가 흐른 그네들은 호시탐탐 다시 식당의 빈자리를 노린다.

 

인간 삶의 배를 채우고 배설의 경로를 지나 어느해 다시 썩어 문드러진 죽음의 살을 먹고 삶을 영위하는 구더기처럼, 식당은 공생(共生)의 공간 그리고 순환(循環)의 공간으로 오늘도 영원성을 누린다.

IP *.94.245.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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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9.20 17:05:04 *.131.127.50

그냥, 살고 있는 것을,...

그때는 그럴거라고 생각하며 살았고
오늘은 이럴거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럼 내일 누군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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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
2010.09.21 05:00:32 *.117.112.52
저는 기준과 범주를 중시 여기는 스타일이기에,
그냥 산다는 의미와 어떻게 살아간다는 의미는 다르겠지요.
후자쪽의 삶이 조금은 팍팍해 보이고 조금은 원칙적일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나름의 행위요 스타일이라 여겨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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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1 12:16:40 *.40.227.17
승호 오라버니~ ^^

아, 오라버니 글에서.. 왜? '위대한 침묵'이 연상되는 거일까여..
저.. 실은.. 이영화 보믄서.. 대부분 잤어여.. ㅎ

명절이니까.. 가족과.. 친척과.. 맘껏 웃으며 떠들며.. 맛난 음식.. 먹어두 되겟져.. 헤헤^^

오라버니.. 마이 드시구여.. 함께하면서.. 마음 채우는.. 행복한 명절 되시길 바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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