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신진철
  • 조회 수 2226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0년 9월 23일 11시 06분 등록

암스테르담에 가고 싶다.

1.

전주시의회 의장을 맡고 있는 조지훈 의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야, 진철아 니가 좀 도와줘야 할 일이 생겼다. 도와줄 거지?”
“야, 숨 넘어가겠다. 자초지정이나 들어보자. 뭔데?”

그의 사정은 이랬다. 올해 11월로 예정된 의원연수를 ‘암스테르담’으로 가고 싶은데, 기후변화대응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례들을 코디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지난 번 연수를 ‘빡세게’ 고집했더니, 내부에서 의원들의 불만도 많다는 것이었다. 웃음이 나왔다. 벌써 4선 의원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는 아직 ‘패기 넘치는 젊은 정치인’이었다. 의원들의 해외연수에 대해 지난 해에 말들이 많았다. 특히 미리 계획해 둔 일정임에도 닥쳐서 재해피해가 발생하거나 민심이 흉한 일이 생기면 ‘꼭 이런 시기에 해외연수를 가야하나?’라는 신문 타이틀이 뽑아져 나오곤 했고, 꼭 지역 사례가 아니어도 ‘모 지자체 의원들의 경우’하면서 세금으로 개인적인 낭만과 여유를 즐기고 온 아니꼬운 일들을 꼬집었다.

의원들이나 연수를 추진하는 의회 사무국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해당 기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러저러한 속사정’을 말해도 ‘세간의 민심이 그래요’라는 말 한마디면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종종 연수 일정이 연기되거나 아예 취소가 되기도 했다. 젊은 정치인은 그래서 지난 해 의원들에게 강도 높은 ‘극기훈련’을 요구했던 것이다. 내 입장에서 봐도 좀 심했다. 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식 일정 외에 저녁시간에는 자유일정도 가질 수 있는 것이고, 하나의 정책과 사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나 도시의 토양이라 할 수 있는 문화를 접해보는 일도 연수의 주요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그 연수의 취지와 목적에 맞게 프로그램이 기획했는지를 분명히 해주어야 할 일이었다.

도움을 줄 수 있겠다고 했다. 기대했던 답변에 들었는지, 선물인양 인심을 쓴다.
“참, 이번 연수에는 언론사에서도 같이 가고, 전주의제21도 같이 가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알아”
“그래? 좋네, 그런데 나 8월말까지만 일하기로 했어. 참고해 둬”
“그래? 왜? 뭐 할건데?”
“쉬려는 놈이 무슨 계획이냐, 그냥 쉴 때는 쉬는 것만 생각할 겨.”
“알았어. 지금은 정신이 없고, 담에 꼭 술 한 잔 하자”

거짓말이었다. 그가 굳이 정치인이라는 직업을 갖지 않았어도, 웬 만큼의 사회생활에서 ‘담에 술 한 잔’하자는 말은 ‘곧이 곧대로 믿을 필요가 없는 거짓말’이라는 것을 한국 사람은 다 안다. 전주에서 막 생활을 시작한 외국인 친구가 한 번은 이 말을 듣고, 진짜로 기다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한 달이 지나도록 다음 이야기가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그 사람에게 물었더니 정작 본인은 기억조차도 하지 못하고 있더란다. ‘그냥 인사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한 달 내내 기다렸을 그 소심한 친구를 생각해보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그 친구를 위해 하나 더 알려줬다. 그 문장에서 ‘꼭 술 한 잔’은 결코 ‘just one beer’가 아니라는 점도.

암스테르담. 정말 매력적인 도시다. 2002년 가을, 독일에 3주를 머물렀던 여행의 끝에 돌아갈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했다. 미리 날짜를 정해두지 않았던 점도 있었지만, 맘에 끌리는 곳이 있으면 며칠 더 묵어갈 요량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동행했던 후배들을 먼저 떠나 보내고, 남은 후배 둘과 같이 향했던 곳이 암스테르담이었다.

기차를 타고 독일을 벗어나 ‘바다보다 낮은 나라, 네덜란드’를 들어가는 국경, 기차가 잠시 정차를 했다. 스티브 맥퀸이 출연했던 영화 ‘대탈주’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잠시 후면 총을 든 독일병정과 게쉬타포가 올라올 것이다. 그들은 내가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하는 연합국 포로가 아닌지 또는 적국의 스파이는 아닌지를 눈여겨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여권’을 요구할 것이고 그때 나는 당황하면 안 된다. 아주 자연스럽고 태연하게 여권을 건네주면 되고, 목적을 물으면 여행이고, 동행을 물으면 옆에 앉은 후배와 다정한 눈빛을 한 번 교환하는 것쯤이면 지레 짐작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절대 실수하면 안 되는 한 마디가 있다. 여권을 돌려받는 그 순간에마저 ‘Danke, Danke schone’이라고 말해야 한다. 자칫 ‘Thank you’라고 실수하는 날이면, 자유를 찾아 독일 땅을 벗어나려고 땅굴을 파고, 침대나무를 빼내 침목을 만들고, 주머니마다 흙을 넣고 조금씩 수용소 운동장에 뿌려대던 그 고생들이 다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무엇보다도 죽을 수도 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순간 기차가 흔들렸다. 다시 출발을 하는 것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총을 맨 독일병정도, 여권을 보자고 할 게쉬타포도 올라오지 않았다. 심지어 그 흔한 흰색, 빨간색 칠해 진 바리케이트도 검문소도 하나 없었다. 살짝 실망감이 들었다. 이제 유럽에는 ‘경계’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자유의 도시, 암스테르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새로 사무국장을 맡은 엄성복 사무국장에게서 문자가 날아 들었다. 전화통화를 하고 싶다고 했다. 조지훈 시의회 의장님의 전화를 받았는데, 어디까지 논의가 진행되었는지 또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를 물어 왔다. 통화할 준비가 되었는지를 되물었다.

암스테르담은 흔히 아는 것처럼 ‘운하’가 발달 된 도시다. 바다보다 낮은 땅을 가진 그들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바다와 맞서 이 천형의 땅을 일구어왔다. 그것은 육지에서만의 일이 아니었다. 가까이 북해로 그리고 대서양으로 열려있는 바닷길 조차도 막혀 있었다.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의 넬슨 제독에게 무릎을 꿇기 전까지 대서양은 네덜란드의 바다가 아니었다. 스페인 무적함대의 몰락은 스페인의 쇠락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지중해를 끼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의 세력도 약화되었고, 17세기 세계의 무대는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신대륙으로 다시 열린 뱃길을 통해 아메리카의 금과 은이 흘러들었다. 고작 ‘튜울립’이나 자랄 수 밖에 없었던 땅은 대서양 시대 새로운 흐름을 주도할 ‘기회의 땅’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항구도시들을 끼고 상인들이 몰려들었고, 해군력이 필요로 해졌다. 돈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금융업이 몰려들었고, 돈을 벌어다 줄 선박 제조업들이 성황을 이루었다. 새로운 모험을 찾아 나선 혁신가와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예술가들이 그 뒤를 이었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 네덜란드는 감히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라고 불릴만 했다. 겨우 30만도 못되는 인구를 가진 암스테르담은 유럽을 움직였다. 암스테르담의 해군은 대서양을 너머 멀리 태평양의 중국, 일본까지도 경계를 넓혀야 했고, 상인들도 바쁜 분주한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국가주의가 한층 강화되어가던 유럽본토의 고집과는 달리 네덜란드는 실리와 자본을 가지고 이미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타고 있었다. 기회가 온 것이다.

-IMGP2419.JPG

IP *.186.58.39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312 수돗물 불소화 논쟁을 지켜보면서 신진철 2010.09.23 1920
» 암스테르담에 가고 싶다 1 file 신진철 2010.09.23 2226
3310 싸움 구경은 있을 때 해야... [4] 뎀뵤 2010.09.23 2689
3309 칼럼, 직업 진입장벽이 낮은 시대에는. [7] 맑은 김인건 2010.09.25 2706
3308 [칼럼] 세상에 당당했던 여직원 [11] 신진철 2010.09.25 2242
3307 칼럼. 어느 새 철이 든 삼훈이 [11] 낭만 연주 2010.09.26 2050
3306 심스홈 이야기 15 - 카펫&러그, 궁합이 좌우? file [4] 불확 2010.09.26 3758
3305 힘든 선택으로 만난 새 친구 file [11] 이은주 2010.09.26 2225
3304 하계연수 단상11 - 수적천석(水滴穿石) file [4] 書元 2010.09.26 2312
3303 하계연수 단상12 - 미션(Mission) file 書元 2010.09.26 2152
3302 라뽀(rapport) 24 - 그날밤 아낌없이 보시(布施) 하다 書元 2010.09.26 2063
3301 전쟁과 함정 : '카렌시아'로 되돌아가지 않기 [8] 박경숙 2010.09.27 3527
3300 <소설> 나는 트랜스 휴먼이다(1) : 프롤로그 [16] 박상현 2010.09.27 3094
3299 사랑 유급/ 실황! [2] 써니 2010.09.27 2147
3298 [컬럼] 좋은 경영을 위한 선택 [7] 최우성 2010.09.27 2097
3297 황금연휴의 선택 file [13] 이선형 2010.09.27 2270
3296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요구르트 한 병 [4] 뎀뵤 2010.09.28 2506
3295 감성플러스(+) 25호 - 회사인간 file [4] 자산 오병곤 2010.09.28 2309
3294 [그림과 함께] 그림에 꿈을 담고 싶습니다 file [4] 한정화 2010.09.29 2949
3293 [먼별2] <단군의 후예 12- 단군낭자 아빠: 이희청님 인터뷰> [3] 수희향 2010.10.01 2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