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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25일 07시 02분 등록
은행원이 해외여행 인솔자가 되고, 학교 선생님이 레스토랑 셰프가 된다. 직업의 경계를 넘나드는 삶은 생각만해도 신난다. 직장을 그만두고, 로스쿨을 준비하는 사람도 많다. 늦은 나이에 한의대에 진학하고자, 수능을 보는 사람도 있다. 늦은 나이라해도, 자기 길을 찾아가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이직과 전직이 활발해지자, 관련 산업도 부흥중이다. 전문대학원을 위한 학원에서는,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몇개월 단기 교육만 이수하면, 요리사, 제빵사, 디자이너, 독서지도사등 재빠르게 해당 직업으로 진입가능하다. 주목할 점은, '직업간 경계는 낮아지는데, 직업 자체의 전문성은 고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변호사도 전문화중이다. 이혼 전문 변호사가 있고, 개인 파산 전문 변호사,  심지어 시대의 요구에 맞게, 뉴타운 변호사도 생겼다. 뉴스 기자의 경우도 의학 전문기자, 법학 전문기자등이 있다. 어설픈 아마추어가 판치는 한편, 직업시장은 틈새와 틈새 사이를 비집고, 자신만의 영역을 만드는 추세다. 

전문적이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 고객의 눈은 높아졌고, 웬만한 퀄리티에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지극히 깊고, 전문적이어야 기회조차 얻을 수 있다. 이런 질문을 해보자. '사람들은 나를 생각할 때, 무엇이 떠오를까?' 예를 들면 앙드레김 하면, 패션, 이윤기는 신화, 스티븐 잡스는 아이폰과 같은 키워드가 있다. 디자인에서는 이런 키워드를 정체성 identity라고 한다. 전문성이 왜 중요하냐면, 전문성과 단순함, 명료함 자체가 마켓팅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키워드, 브랜드가 없으면 나를 불러주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브랜드를 확고히 다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물론 어렵다. 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갈때는 고비가 있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몸이 힘들다. 12시 넘어서 집에 들어오면, 새벽 5시에 출근준비를 해야한다. 혹은, 출장을 밥 먹듯이 나갈 수도 있다. 자기 시간이 없고, 일에 휘둘리는 것이 신입 시절의 고비다. 직급이 올라가면, 회사내의 정치에 신경 써야하고, 더불어 자신의 미래도 고민한다. '지금 이렇게 살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라는 고민, 이 고민을 유야무야 넘기면 또 몇년은 지난다. 보통 중견 회사가 직원을 믿고 일을 맡기기까지는 7년이 걸린다. 그전까지는 일다운 일을 못한다. 경력 다운 경력이 생기지 않는다. 이 전에 회사를 옮기면, 내공이 쌓이지 않는다. 실력이 없으니, 기회만 찾는 상황이 된다. 칼리 피오리나도 이야기했듯이, 기회는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 찾아온다. 반대로 기회만 찾으면 비참해진다. 직업이 다양해질수록, 한 길을 오래 가는 것 자체가 경력 목표가 된다. 

소비자는 날카롭고, 더 뾰족한 전문가를 바라는데, 직업 진입장벽은 그 반대다. 어딜가나 어설픈 아마추어들뿐이다. 한해 한국에서 배출되는 디자이너는 2만명이 넘는다.디자인학과도 많고, 디자인 학원도 많다. 양으로 치자면 세계 1위다.  인력풀이 많으면, 관련 산업이 발전할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디자인 회사에서는 디자이너는 많은데, 정작 쓸만한 사람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학원에서는 2개월만 공부하면, 디자이너로 취업할 수 있다고 광고한다. 사실 2개월 공부해서 어디에 써먹겠는가? 회사도 제 코가 석자인데, 학원 출신을 데려다놓고 가르치기에는 여유가 없다.  이런 정도의 스킬이라면, 학원에 가서 공부할 필요도 없다. 프로그램만 익숙해진다면, 프로페셔널 처럼 흉내낼 정도는 된다. 문제는 이거다. 직업을 직업답게 꾸며주고, 결과물을 프로답게 꾸며주는 직업과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발달했다. 우리는 더 많은 기회를 가지는 대신, 더 많은 혼란을 느낄 것이다. 진입하기는 쉬워도, 어디 하나 만만한 곳은 없다. 

또 하나, 인간의 능력이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모 스마트폰 광고를 보면, 영화 슈퍼맨을 보는 것 같다. 광고의 컨셉은, '스마트폰을 가지면, 당신도 슈퍼맨이 될 수 있다'다. 주변기기들, 값싼 디지털 장비 덕분에 인간의 능력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겉보기에는 그렇다. 은행에 가지 않고도, 손바닥안에서 돈을 이체할 수 있다. 컴퓨터를 부팅 시키지 않아도, 쇼핑을 할 수 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 검색가능하다. 이런 능력은 획기적인 것이다. 허나 이것이 능력인가? 생활처리일뿐, 능력은 아니다. 컴퓨터가 생활 깊이 들어올수록,  사람 역시 정보를 처리하는 컴퓨터로 전락한다. 

능력이란, 크리에이티브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잘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만들어내는 것이 능력이다.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관성 있는 기술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 프로페셔널의 개념은 바뀔 것이다. 프로페셔널은 실력 뿐만 아니라, 시간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해당 작업에 투여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프로다. 

이직과 전직을 부추기는 분위기, 미지에 대한 유혹, 값싼 디지털 장비는 어찌보면 커다란 음모 같다. 부자가 돈 버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듯이, 실력자는 범인이 실력자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부자와 실력자 모두 대중을 대상으로 이익을 취한다. 스티븐 잡스는 최고의 엘리트만으로 팀을 짠다. 천재는 바보도 사용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든다. 

복잡하고, 종잡을 수 없다면, 대중이 가는 반대길을 보면 단순해진다. 걸어다니면서까지 인터넷을 할 필요가 있을까? 언제 회사에서 나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자기개발 계획이 가능할까?시간이 조각나면 조각날수록, 나의 브랜드는 약해진다. 시간과 실력은, 씨줄과 날줄이다. 일정한 시간에 일관적인 경력이 엮어져야, 보기에도 좋고 무언가 이름 붙이기도 쉽다.  

미래의 주소는 현재다. _팃낫한 스님

신문 구인광고를 보면서, 일자리를 찾던 칼리 피오리나는 HP의 최초 여성CEO가 되었다. 그녀는 경력을 계획했을까? 경력을 위한 전략을 만들었을까? 그녀의 경력은, 모든 에너지를 쥐어짜서, 지금 일에 쏟아부은 결과다. 지금의 문제에 집중할수록, 실력은 높아졌고 더 좋은 기회가 생겼다. 미래는 더욱 암울할 것이다. 당장 코앞만 보더라도,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  이런 불안을 이용한 상술이 판을 친다. 사람들은 자격증 시험에 매달리고, 단기강좌에 목맨다.  걱정할 에너지를 현재의 문제에 쏟을때, 오히려 좋은 결과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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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9.26 16:39:57 *.42.252.67
걱정할 에너지를 현재의 문제에 쏟을때, 오히려 좋은 결과가 나온다. 

맞는 말이야.  그런데 현재의 문제를 찾지 못해 불안해 하는 사람들이나 자격증이나
단기강좌에 목매는 친구들에게도 희망의 메세지를 줘야   네 글을 보고 힘이 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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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9.27 02:20:40 *.129.207.200
전혀 안하는 것 보다는 조금이라도 배우는 것이 낫겠지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요. '가던 길을 그만두는 것이 잘못된 길'이라는 말도 덧붙여야 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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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09.26 18:44:44 *.34.224.87
너무 많은 정보의 나열이
산만한 느낌이 들때도 있지만,
이리  저리, 떠다니는 많은 정보의 구슬을 꿰어서
하나의 컨텐츠로 모아보는 것.. 괜찮은 것 같아..
너만의 방식이 되겠구나...

미래는 현재의 주소다...
과연, 탁 스님의 탁월한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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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9.27 02:25:01 *.129.207.200
구체적인 사례를 들려는 것인데, 오히려 산만해 보이는군요. 저의 글쓰기는 일본의 '타치바나 타카시'의 영향을 받았어요. 그는 일본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지요. 그리고, 언젠가 잡지사 사장님의 글쓰기 강연을 들은 적이 있지요. 글을 쓸때는 ' 내 생각이 아니라, 사실을 쓰라'는 내용이었어요. 사람들은 나의 생각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지요. 

여러 사례를 깊이 없이 늘어놓기에, 산만하다는 느낌이 들겠네요. 사례를 줄이고, 세부 묘사를 하는 쪽으로 신경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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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09.27 16:17:51 *.10.44.47
이런 시대엔 시간이야말로 무시무시한 진입장벽이지?
단기면허증 소지자들. 지금이야 모두 별 볼일 없어보이지만
10년후의 그들의 퀄리티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 되어 있으리라고 확신하거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달콤한 유혹에 부화뇌동하지 않으려면 확고한 비전이 있어야할테고
가시적인 성과가 없을 때에도 지치지 않고 임계점을 돌파해내려면 '뚝심'이라 불리는 지구력도 꼭 필요하겠지.
결국 비전과 뚝심이 최고의 경쟁력이 되지 않을까 싶네.. 
이것이 먼저 준비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정교한 메뉴얼을 가져다 준다고 해도 '프로페셔널의 세계'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일뿐일테니까.

참..
어려버..
세상은 점점... 그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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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2010.09.28 09:28:53 *.203.200.146
오빠의 글을 읽으면 어렴풋이 알고 있는 세상의 이야기를 명확하게 알 수 있어서 좋아요. 오빠만이 할 수 있는 큰 강점이랄까. 중심을 잃으면 잠시 딴 세상이 되기도 하겠지만 잘만 엮으면 누구나 공감할 부분이 있는 글이 되는 것 같아요.
미래는 현재의 주소다.라는 말처럼 현재에 자신이 몰입할 대상을 명확하게 찾아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겠죠.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며 허둥거리는 저로서는...진지하게 생각해봐야할 문제입니다. 우선순위의 가지키기를 잘 해야할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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뎀뵤
2010.09.28 12:58:35 *.157.196.216
제가 알고 있는 사람중에. 죽을때까지 10개의 직업을 가져 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요. ^^;
처음에 저 얘길 들었을 때 참 멋있다 생각 했었어요. 지금도 변함이 없고요. 저도 그러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ㅎ

오빠가 얘기한 것처럼 하나의 직업이 세분화/구체화 된다는 부분에는 완전 동감해요.

하지만 좀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 한가지.
'뉴스 기자의 경우도 의학 전문기자, 법학 전문기자등이 있다.'
하나의 직업이 세분화/구체화 되는 것은.
기자가 자신의 전문 분야로 세분화 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거꾸로 의사 혹은 간호사가 의학 전문 기자가 될 수도 있고,
판사 혹은 변호사가 법학 전문 기자가 될수도 있다고 봐요.
그러니까 자신이 갖고 있는 어떤 하나를 가지고 여러가지로 확장이 되는 거죠.
어쩌면 직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어떤 전문 분야는 직업과 따로 따로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전문 분야만 갖고 여러가지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이지 않을까 싶은 거지요. ^^

이러나 저러나 한가지 전문 분야를 갖고 꾸준히 실력을 쌓아가야 한다는 부분에서는 같은말이지만,
날줄을 먼저 묶느냐 씨줄을 먼저 묶느냐의 문제인것 같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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