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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26일 10시 15분 등록

칼럼. 어느 새 철이 든 삼훈이

스톡데일 패러독스는 아무리 어려워도 결국에는 성공할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것이 무엇이든 눈앞에 닥친 현실 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하는 것이 개인이든 기업이든 성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사고방식임을 가르치고 있다. 결국에는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과 눈앞에 닥친 냉혹한 현실을 결코 혼동하지는 말아야 한다. -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삼훈이에 대한 이미지는 누가 봐도 모범생이었다. 작년 우리반이었던 삼훈이는 내 수업뿐만이 아니라 다른 선생님 시간에도 딴청피우는 적이 없었다. 절반의 과목에서는 수업반장을 맞아 선생님들의 잔심부름을 자발적으로 도맡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첫 중간고사에서 삼훈이의 성적을 보고 깜짝 놀랐다. 38명중에 3×등 있었던 것이다. 학년이 달라져서 일까 다음 시험을 지켜봐도 역시나 마찬가지 였다. 나를 비롯한 다른 선생님들이 착하고 성실한 삼훈이를 좋아하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항상 마무리는 ‘분위기는 전교1등인데 정말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삼훈이를 불러 물어봤다. 공부를 잘 하고 싶지 않냐고. 삼훈이는 정말 잘하고 싶은데 자기는 원래 공부를 못한다고, 능력이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삼훈이는 4형제중에 막내였다. 아이도 많은 데 가정 형편도 좋지 않아 기초수급자에 해당되었다. 기초수급자인 가정의 아이들은 학교운영지원비와 급식비 등을 면제받는다. 그러니 당연히 다들 가는 학원도 못가는 것이고 부모님들은 모두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하니 방과후에 삼훈이를 보살펴줄 사람도 없고, 유일한 낙은 컴퓨터 게임이었다.

삼훈이에게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후교실의 영어수업과 수학수업을 무료로 신청해주고 듣도록 했다. 삼훈이는 매일 도망을 갔다. 공부는 잘하고 싶으나 학교에 남아서 공부하는 것이 싫다고 집에 가서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 삼훈이를 좋아하고 안타까워 하는 영어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삼훈이가 방과후 영어수업에 올 수 있도록 매일 챙겨주셨는데 삼훈이는 잘 나가다가도 금새 도망가곤 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렇게 반복을 하며 1년이 지났다.

올해 삼훈이는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가끔 복도에서 삼훈이와 만나는 데 여전히 수업반장으로 선생님들의 노트북이나 수업자료를 옮겨주고 있었다. 삼훈이에게 요즘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냐고 물어보았다. 이제는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한다면 방과후수업을 신청했다고 웃으며 말한다. 1학기 어느 날 복도를 지나가는데 삼훈이가 영어선생님이 어디계시냐며 애타게 찾는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오늘 방과후 영어수업이 있는 날인데 선생님이 안 계신다는 것이다. 속으로 깜짝 놀랐다. 작년엔 그리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방과후 수업을 듣게 해주고, 수업시간을 챙겨주어도 도망갈 궁리만 하던 녀석이 이제는 자기 스스로 수업을 듣기 위해 선생님을 찾아다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삼훈이 뿐만이 아니라 작년에 철없던 많은 녀석들이 중학교 3학년이 되면 제법 어른스러워지면서 자신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고 그 자리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면 스스로의 자각에 의해 변화가 찾아오고 스스로가 공부를 할 결심을 하며 그 환경을 만든다.

성실하고 착한 삼훈이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의 기우였다. 삼훈이는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내었으며 그것에 열정을 쏟고 있었다. 어느새 녀석이 나를 가르치고 있다.

얼마 전 보았던 안철수 선생님의 말이 생각난다. “지금 우리에게는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가 필요할 때가 아닌가 한다. 냉철한 현실 인식, 과거에 대한 자기반성, 현실에 근거한 치밀한 계획, 그리고 구체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는 실행 능력과 함께 결국에는 성공할 것이란 믿음과 열정이 현재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IP *.113.97.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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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9.26 17:07:19 *.42.252.67

아이들은 스스로 느끼고 철이 나야지 절대 잔소리나

어른들의 기우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야. 이건 경험담이지.ㅎㅎ

아이들이 달라지면, 정말 딴 사람으로 변하기도 하는 것 같아.

아이들의 변화 과정을 지켜보며 글을 쓰는 연주는 학교에서

늘 아이들의 변화 모습이나 사건, 사고를 찾으려

눈이 반짝 빛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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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2010.09.28 13:30:00 *.203.200.146
아이들이 스스로 느끼고 철이드는 그 타이밍을 적절하게 짐직하는 능력이 참 필요해요..무엇보다 그렇게 될 것이라고 무한 믿음을 줘야 하는데 쉽지가 않죠 ㅎㅎ
요즘은 정말 눈 크게 뜨고 귀 활짝 열고 다녀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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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9.27 02:36:27 *.129.207.200
글씨가 커서, 읽기 편하다. 너답게 시원시원하다. 

삼훈이 형편은 안타깝다. 그래도, 챙겨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시니 다행이네. 

언젠가, 부모의 경제 능력이 아이들 수능과 직결된다는 기사를 읽었어. 위 글에서, 신문 기사나 관련 자료를 넣어보는 것은 어떨까? 좀더 내용이 풍부해지고, 문제의식도 깊어지리라 생각한다. 약간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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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2010.09.28 13:36:49 *.203.200.146
시원시원한게 저다운것...그런 이미지인가요?ㅎㅎ 좋습니다~
네 좀 아쉽죠..삼훈이를 불러다 심층 인터뷰를 해보고 싶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었지요~
첫문장, 인용글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낌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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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7 12:20:21 *.230.26.16
삼훈이는 그래, 현재 실력은 보잘것 없어도 분위기, 즉 자세는 일등이라는 장점이 있네.
그게 꽃을 피는 때도 곧 올테고.
자기 자식이든, 학생이든 제일 힘든 것이 그냥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거라는데, 나도 실감해
언제 과연 그 아이들의 꽃이 필까?
또 우리의 꽃은 언제 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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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2010.09.28 13:41:54 *.203.200.146
꽃은 반드시 필 것이라는 믿음이 꽃을 더욱 활짝 아름답게 피우겠죠.
아이들도 우리도 그 믿음을 자양분으로 성장하고 있는중~~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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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09.27 15:51:03 *.10.44.47
아이들은 어떨 때 자극을 받을까?
무엇이 삼훈이를 달라지게 만들었을까?
조금 깊이 들어가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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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2010.09.28 13:42:51 *.203.200.146
저도 쓰면서 깊이가 좀 없다고 생각했어요
삼훈이와의 인터뷰 당장 추진해봐야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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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0.09.27 17:01:11 *.236.3.241
우리 교육은 백이면 구십이 공부를 위해 전력질주하는 형국이잖아.

삼훈이가 한 성실하느라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공부에는 그렇게 뜻이
없는 게 아닐까. 공부 외에 음악, 그림, 글, 스포츠 등 다른 분야에
흥미를 느끼는 게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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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2010.09.28 13:45:56 *.203.200.146
작년엔 가수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수줍음이 많아서 앞에 잘 나서질 않거든요...무대위에 올라가면 달라지려나? 전 그냥 그또래의 많은 아이들처럼 연예인이 꿈인가보다하고 넘겼어요. 연예인이 되어도 중학교 기초지식은 있어야 하니까 공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죠. 그 꿈이 변함없는지 궁금하네요. 지금까지 유효하다면 그리고 재능이 있다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니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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뎀뵤
2010.09.28 13:49:36 *.169.218.126
반갑습니다! 와인바에서 인사 했었죠? ^^

삼훈이를 움직이게 한게 무엇인지 넘 궁금하네요.
예상이 되는 몇개의 지점이라도 짚어 주셨으면 좋았겠다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네요.
영어선생님의 어떤 상이었는지, 정말 어느순간 스스로의 깨우침이었는지, 잘 보이고 싶은 여학생이 생긴건지...
혹은 이 모든것이 어느순간 번개처럼 몰아쳐서 바뀐건지.

사람들이 어떤 자극에 변하고 움직이는지 관심이 많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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