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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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어느 새 철이 든 삼훈이
스톡데일 패러독스는 아무리 어려워도 결국에는 성공할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것이 무엇이든 눈앞에 닥친 현실 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하는 것이 개인이든 기업이든 성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사고방식임을 가르치고 있다. 결국에는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과 눈앞에 닥친 냉혹한 현실을 결코 혼동하지는 말아야 한다. -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삼훈이에 대한 이미지는 누가 봐도 모범생이었다. 작년 우리반이었던 삼훈이는 내 수업뿐만이 아니라 다른 선생님 시간에도 딴청피우는 적이 없었다. 절반의 과목에서는 수업반장을 맞아 선생님들의 잔심부름을 자발적으로 도맡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첫 중간고사에서 삼훈이의 성적을 보고 깜짝 놀랐다. 38명중에 3×등 있었던 것이다. 학년이 달라져서 일까 다음 시험을 지켜봐도 역시나 마찬가지 였다. 나를 비롯한 다른 선생님들이 착하고 성실한 삼훈이를 좋아하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항상 마무리는 ‘분위기는 전교1등인데 정말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삼훈이를 불러 물어봤다. 공부를 잘 하고 싶지 않냐고. 삼훈이는 정말 잘하고 싶은데 자기는 원래 공부를 못한다고, 능력이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삼훈이는 4형제중에 막내였다. 아이도 많은 데 가정 형편도 좋지 않아 기초수급자에 해당되었다. 기초수급자인 가정의 아이들은 학교운영지원비와 급식비 등을 면제받는다. 그러니 당연히 다들 가는 학원도 못가는 것이고 부모님들은 모두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하니 방과후에 삼훈이를 보살펴줄 사람도 없고, 유일한 낙은 컴퓨터 게임이었다.
삼훈이에게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후교실의 영어수업과 수학수업을 무료로 신청해주고 듣도록 했다. 삼훈이는 매일 도망을 갔다. 공부는 잘하고 싶으나 학교에 남아서 공부하는 것이 싫다고 집에 가서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 삼훈이를 좋아하고 안타까워 하는 영어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삼훈이가 방과후 영어수업에 올 수 있도록 매일 챙겨주셨는데 삼훈이는 잘 나가다가도 금새 도망가곤 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렇게 반복을 하며 1년이 지났다.
올해 삼훈이는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가끔 복도에서 삼훈이와 만나는 데 여전히 수업반장으로 선생님들의 노트북이나 수업자료를 옮겨주고 있었다. 삼훈이에게 요즘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냐고 물어보았다. 이제는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한다면 방과후수업을 신청했다고 웃으며 말한다. 1학기 어느 날 복도를 지나가는데 삼훈이가 영어선생님이 어디계시냐며 애타게 찾는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오늘 방과후 영어수업이 있는 날인데 선생님이 안 계신다는 것이다. 속으로 깜짝 놀랐다. 작년엔 그리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방과후 수업을 듣게 해주고, 수업시간을 챙겨주어도 도망갈 궁리만 하던 녀석이 이제는 자기 스스로 수업을 듣기 위해 선생님을 찾아다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삼훈이 뿐만이 아니라 작년에 철없던 많은 녀석들이 중학교 3학년이 되면 제법 어른스러워지면서 자신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고 그 자리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면 스스로의 자각에 의해 변화가 찾아오고 스스로가 공부를 할 결심을 하며 그 환경을 만든다.
성실하고 착한 삼훈이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의 기우였다. 삼훈이는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내었으며 그것에 열정을 쏟고 있었다. 어느새 녀석이 나를 가르치고 있다.
얼마 전 보았던 안철수 선생님의 말이 생각난다. “지금 우리에게는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가 필요할 때가 아닌가 한다. 냉철한 현실 인식, 과거에 대한 자기반성, 현실에 근거한 치밀한 계획, 그리고 구체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는 실행 능력과 함께 결국에는 성공할 것이란 믿음과 열정이 현재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