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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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선택으로 만난 새 친구.
피하고 싶지만 돌아 갈 길이 없었다. 우리 집을 오려면 꼭 거쳐야 하는 첫 집이 있다. 그곳에는 하얀 진돗개가 묶여 있었다. 피하고 싶은 이유는 그곳을 지날 때 마다 마음이 아파서였다. 또한 보지도 못한 이웃이 미워지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태 많은 개들을 보아 왔지만 그 놈처럼 세상을 포기한 듯한 얼굴로 살아가는 개는 처음 본 것 같다. 그리고 주인과 같이 살면서 그렇게 방치된 개도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놈은 사람이 지나가도 흘끗 쳐다보고 이내 누워 버린다. 아예 일어나지도 않고 누워 지냈다. 눈은 작고 쌍꺼풀은 돌팔이 의사에게서 잘못 시술한 눈처럼 부자연스럽다. 게다가 눈빛에는 꿈도 희망도 없어 보였다. 코라도 까맣고 반들거리면 좀 나아 보였을 텐데 새치머리 염색 잘못된 것 마냥 희미한 밤색이다. 마른 몸매에 털도 거칠하다.
무엇 하나 마음에 걸리지 않는 것이 없었다. 외출을 하고 드나들 때 항상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흰둥이, 내 마음 편하고자 나는 외면을 했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 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내가 해줄 수 없다면 피해라’ 라는 생각이 가장 나의 마음을 덜 아프게 한다고 생각을 했다. 나는 집도 잘 지키지도 못하며 밥만 축내는 개라고 곧 목줄만 남겨진 채 버릴 주인이라고 가정하고 있었다. 그의 빈자리 때문에 아파야 할 시간이 나는 싫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흰둥이에게 내가 사랑을 줄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피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무엇을 보고 어디서 얻으려고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의 재능을 필요로 하는 곳이나 행복은 산 너머에 있는 ‘무지개 원리’가 아니라는 깨달음이 왔다.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자기가 소속된 주인이나 가족에게서 얻지 못하는 것을 내가 주며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은 내가 가까운 세상으로 다시 눈을 돌린 다음부터 일어났다. 그를 ‘변화’ 시키면 버림받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관심과 사랑이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내가 흰둥이 이름을 불러주고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자 흰둥이는 내가 지나가면 자리에서 일어나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이 ‘흰둥이’ 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아마 그 집 주인을 만나면 개의 이름을 묻는 것으로 집 주인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또 하나의 이웃을 얻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우연일까? 사실일까? 그의 반응에 대한 잡히지 않는 확신 속에서 나는 계속 그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있다.
내가 지켜보며 내린 진단은 흰둥이의 병명은 애정결핍으로 인한 의욕상실증 같았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에게라도 사랑을 갈구하고 애교를 부리며 살아가는 방법도 있으련만 그것조차 다 놓아버린 모습이다. 그 흰둥이의 눈빛은 사람들 모두를 인정하지 않는 눈빛이었다. 자기의 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이렇게 문 앞 주차장에 묶어 두고 관심도 주지 않는 사람들이 싫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나를 경계했다. 짖지는 않았지만,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그르릉 거렸다. 가까이 오지 말라는 신호였다. “그래, 알았어.” 그러며 계속 말을 붙였다. 볼 때마다 손을 흔들며 “흰둥아 안녕? 오늘은 뭐하고 있니?” 하며 한발씩 다가갔다. 흰둥이가 나에게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송곳니도 드러내지 않았다.
추석 날 저녁 늦은 시간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오며 난 쭈그리고 앉아 흰둥이와 신세 한탄을 했다. “흰둥아, 매일 너만 보면 니 팔자도 참 별거 없다. 그렇게 묶여 잠만 자는 것도 힘들겠다 생각했는데, 며칠 지지고 볶고 하니 오늘은 네가 좀 부럽다.” 흰둥이는 나를 쳐다보며 이야기 하는 듯했다. “나도 이러고 살면 뭐 하나 하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는데 요즘은 희망이 생겼어요. 고마워요” 흰둥이는 보답의 표시인 듯 내가 머리를 살살 만져도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드디어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흰둥아! 저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 진짜 밝다. 그리고 그 달 옆에 있는 아주 밝은 별 하나가 목성이라더라. 예쁘지? 꼭 너랑 나랑 붙어 있는 모습 같다. 우리도 지금 보이는 저 달과 별처럼 잘 지내보자.” 나는 보름달처럼 가득 찬 마음으로 천천히 집으로 걸어오며 역시 사람에게나 동물에게나 ‘관심’과 ‘사랑’은 세상을 살아가며 없어서는 안 될 ‘해와 달’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심한 사이 우리 집 개들이 또 탈출을 했다. 이번에는 무조건 흰둥이가 있는 곳으로 달렸다. 나는 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묶여 있는 개라도 몸집이나 카리스마로 보아도 흰둥이는 진돗개였고, 우리 개들은 천방지축 범 무서운 줄도 모르는 하룻강아지였기 때문이다. 물리면 정말 살아날 확률이 없었다. 진돗개나 풍산개는 주로 목을 물기 때문이다. 빠른 속도로 뛰면서 나는 이름도 정확히 모르는 흰둥이를 막 부르며 뛰어갔다. ‘제발 물지만 말아다오!’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런데 눈 앞에 정말로 흥미로운 광경이 일어났다. 그들이 서로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셋이 꼬리 잡기 놀이라도 하듯이 빙빙 돌며 서로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미국 사람들은 주로 포옹으로 인사를 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감지도 않았을 머리 같아 보여도 그 머리에 진한 뽀뽀를 한다. 마오리족은 코를 비비면서 인사한다. 멍이들만의 인사법은 서로의 냄새를 맡는 것이다. 개들의 꼬리 밑에 있는 항문낭에는 독특한 그들만의 체취를 가지고 있기에 개들은 서로 주위를 빙빙 돌며 아주 신중하고 집중한 모습으로 냄새를 맡는다. 또한 그 행위가 끝나고 나면 개들은 자신들의 사회가 질서있는 것이기를 원하며, 그 목적을 위해 스스로를 사다리의 가로대와 같은 위계로 파악한다. 그 위계 질서가 구성원들 사이에서 기꺼이 수용되고 나면 마찰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서열’ 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고 서열이 잡히면 분쟁은 없어진다. 그들에게도 그런 시간이었을까? 흰둥이는 오랜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 교환도 하고 서열 잡기 놀이라도 하듯 위협도 하는 모습이 생기 있어 보였다. 다행히 서로 싸움은 하지 않았다. 나는 서열잡기에서 누가 승리를 하였는지는 파악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먼저 배를 보이며 바닥에 누워 복종을 하는 자세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탐색만하고 방울이와 오리오는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나 다른 것에 관심을 보이고 자리를 떠났다.
이제 흰둥이에게는 늘 말을 걸어주는 나와 자기 다리만한 작은 친구들이 생겼다. 그리고 나 또한 흰둥이란 친구가 하나 또 생겼다. 가끔은 내 하소연도 진지하게 들어주기만 하고 절대 옮기지 않는 아주 입 무거운 친구다. 친구가 되기 전에 보여지던 흰둥이의 무언가 부족해 보이는 얼굴이 지금은 아주 듬직해 보인다. 엘리자베스 마셀토머스의 책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영장류는 말없이 엎드려 있는 것을 권태롭게 느끼지만 개들은 평화롭게 느낀다.” 이 글을 읽으니 늘 누워있던 흰둥이, 그리고 내 옆에 누워있는 방울이와 오리오가 평화로와 보인다. 개들이 인간들 사이에서 사는 법을 배웠듯 나 또한 그들 사이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가는 지금이 평화롭다.
내 새로운 친구가 처음으로 꼬리를 쳤다. 드디어 귀를 내리고 나의 손에 키스를.....

그래 인건아 이 참에 입 무거운 너에게 최고인 거 하나만 말할게.
추석날 개 데리고 들어가 나오지 말라고 해서 개랑 9시부터 방에 갇혔다.
단 한 사람도 개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
요 시점쯤 여자들은 일 안하고 얼마나 좋겠냐고 묻고 싶겠지?
근데 이놈들이 밖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에 자기는커녕
문 열라 박박 긁고 난 안됀다고 잡아 끌고 햐 ~ 그 방 풍경을 동영상으로
찍어 올렸으면 완전 코메디였을텐데…… 그래서 흰둥이란 신세타령 했어.
넌 뭔 죄가 있어 문 밖에 매달려 그러고 살고 난 뭔 죄가 있어 개랑 갇혀
이러고 사는지…… 아 갑자기 그날 밝은 달이 떠오른다.

제가 어린 시절 백구가 있던 그집앞을 피해다녔던 이유는 백구의 짖어대는 소리가 가슴을 쓰러내리게 무서워서였는데...언니는 측은지심때문이었군요. 같은 상황에도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사람마다 생긴 것이 다 다르듯 마찬가지 인가봐요.
백구와 친구가 된 언니가 부러워요. 저도 다정한 동물친구를 하나사귀어 봐야겠어요. 말이 아닌 몸짓으로 서로를 알리고 느낄 수 있다는 게 어찌보면 더 진실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무서워했던 백구가 저를 위협하는게 아니라 같이 놀자고 심심하다고 외쳤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아티스트웨이"로 치면 멋진 아티스트데이트가 될 것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