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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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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27일 02시 35분 등록
 

칼럼27- < 전쟁과 함정: ‘카렌시아’로 되돌아가지 않기>


  이번 추석 휴일은 좀 길었다. 긴 연휴 때문인가? 일상 복귀가 힘들다. 글쓰기가 그렇고 연구와 다른 잡일들을 처리해내는 속도가 전보다 느리다. 가능한 미루고 싶어지고 안하고 넘어갔으면 하는 게으름이 올라온다. 단 5일간의 일탈이 가져온 불편함이다. 일상에서의 패턴을 벗어난 약간 긴(?) 휴일이 주는 반란이다.


  이렇게 잘 굴러가던 일상과 사고력에 제동이 걸리는 일이 살면서 가끔 있듯, 인생 역시 진행 방향으로의 추진력을 잃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으므로, 특히 가족이나 직장, 소속된 커뮤니티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에 의해 지대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람에게는 늘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치명적이다. 말 한마디 눈짓 하나로도 상대에게 평생 갈 치명타를 줄 수 있는 게 사람이다. 그래서 늘 조심해야 하지만 때로 본의 아닌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또 피해자도 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피해자라고 말해도 되고 가해자라서 미안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게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가해는 모른 척하며 자신만이 피해자라고 스스로 결론지어 주변 사람을 가해의 원흉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는 당하는 사람에게 원한을 갖게 만들 수도 있어 매우 조심해야 한다. 게다가 교류와 사랑이 깊은 자들의 음모로 인해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되는 사례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게 작정을 하고 시작했든 암묵적으로 흘러갔던 어느 경우든 당하는 사람에겐 똑같이 그건 죽음과 맞먹는 고통을 안겨준다. 작은 교통사고에서부터 한 국가의 정치판까지 인간이 하는 일에는 늘 이런 부작용이 보인다. 인간이 나약하면서도 악한 면이 많으므로 이런 일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수없이 반복되어 일어났다. 그래서 우리는 선하다고 자신 만만한 얼굴을 해서는 안 되고, 완벽하다고 꾸며대서는 더더구나 안 된다. 그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이고 자신의 무지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어리석음이다. 나를 비롯하여 인간은 전부 다 악할 수 있고, 죄성이 있으며, 약하고, 양면적인 존재이다. 그렇다 나는 나의 악함을 알고 있다.


 그런 악한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곳에선 늘 부작용이 발생한다. 항상 발생은 하지만 가해든 피해든 어느 쪽이 되었든 자신이 그런 일을 당하게 되면 매우 힘들고 아프다. 누구나 아프다. 겉으로 강해 보이는 자라해서 아프지 않을 거라고 누가 말할 수 있으며, 또 아프다고 징징대는 자의 눈물이 ‘악어의 눈물’일 수도 있음을 우리는 미리 알고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당사자가 아닌 주변인은 말 한마디 덧붙이는 것을 매우 조심해야 한다. 또한 자기 일이 아니라고 싸움 구경하며 즐기거나, 지나가다 배설물을 툭툭 던지는 몰지각한 자는 정말로 자신을 한번 돌아봐야 한다. 언제 그가 그런 함정에 빠질지 모르는 게 인생이다.


  또한 불과 수 십년 살아갈 인간이 자신이 우주를 창조할 것 마냥 떠들어 대는 몽상가가 내뱉는 오염물은 주변을 또 얼마나 더럽히는가? 그때 곁에서 어쩔 수 없이 그 오염된 공기를 마시게 되면 숨이 턱턱 막히고, 토할 것 같은 몸에 이상 징후를 느끼기 시작한다.

 게다가 친구라 생각한 자에게 정신의 속살을 보여줬다가 그 한 번의 부주의로 인해 자신의 무덤을 판 것을 알게 되는 경우에는 자신에게 한없이 자괴감을 느끼면서 친구라 믿었으나 갑자기 작두를 찔러댄 상대에 대한 원망이 자괴감이라는 자양분을 얻어 그 숙주를 죽음으로 내몰 수 있을만한 독성을 내뿜게 된다. 이쯤 되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질 것이다. 인간에 대한 실망으로 조개껍질 속에서 다시는 나오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또 결심할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 일을 수도 없이 만나게 된다. 특히 누군가가 작정하고 덤벼들어서 싸울 수밖에 없을 때 우리는 쉽사리 그 싸움에 말려들게 되고, 전쟁은 양 쪽 다 패배자로 만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때 역시, 늪에 빠진 듯한 무력함을 경험할 것이다. 불행하지만 이것이 삶이다. 관계에서 오는 갈등이다.


  이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는 실 날 같은 믿음을 안고 버티든지, 있던 판을 뒤엎고 새판을 짜든지, 아니면 다른 곳에 집중하여 잊어버리든 아무튼 무슨 조치를 취해야만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 우리가 살아남고 견뎌내기 위해선 위기의 때를 이겨낼 수 있을 내성을 미리 길러둬야만 한다. 자기 전환을 위해선 자기 체질에 적합한 내성의 종류를 미리 알고 있어야만 한다.    


 미국 휴렛팩커트사의 CEO를 6년간 지낸 칼리 피오리나는 그녀의 자서전 <힘든 선택들>에서 이런 말을 한다.


투우의 소들은 나름의 ‘카렌시아’를 갖고 있다. ‘카렌시아’란 소가 위협을 받을 때 돌아가는 특정한 자리를 뜻한다. 투우가 계속되고 더 자주 위협을 받으면, 소는 몇 번이고 ‘카렌시아’로 돌아간다. 소는 안전한 곳으로 물러난다고 믿지만, 사실은 자신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리는 셈이다. 소는 점점 더 쉬운 공격 상대가 된다.”


  그렇다. 복잡한 인생에서, 전환을 원하든 추진력을 갖기 원하든 자신이 인생의 주관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떤 전략으로 운명에 대응해야 하는가? 사건이든 사람이든 악의든 오해든 뭔지 정체는 모르지만 아무튼 주변의 독소로 인해 이미 오염된 것을 본인이 느끼게 될 때 우리는 어떤 해독제를 써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외부의 침입자로 인해 핸들을 놓쳐버리게 되어 방향을 잃게 되거나 지그재그로 달리다 진흙탕에 처박히지 않으려면 어떤 경보장치와 안전장치를 우리는 마련해두고 있어야 하는가? 만약 운 나쁘게 이런 경우를 당하게 될 때 최초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것은 “정신의 카렌시아”로 도망쳐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의지로부터 숙지하는 것이다.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몰라도,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의 어제로부터 벗어나길 희망하는 전환희망자의 경우, 절대로 되돌아가서 안되는 지점이 ‘카렌시아’이다. 그것이 바로 그의 함정이 되기 때문이다. 변화와 전환을 위해선 예전의 익숙했던 방식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우리는 편안한 구역으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 예전 익숙한 곳으로 물러나는 대신 안전해 보이는 새 땅을 확보해야 한다. 얼핏 보기에 안전해 보이지는 않아도, 반드시 현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자신의 몸을 의탁할 땅을 확보해야만 적들에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카렌시아가 아닌 새 땅에서 새로운 전략을 짤 수 있을 때 비로소 전환이 시작될 수 있다. 익숙한 카렌시아로의 후퇴는 구 습성의 반복이고, 구 습성은 아무리 반복적으로 시행해도 공회전만 될 뿐, 일말의 전환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꾸 카렌시아가 눈에 들다. 그곳으로 복귀하고 싶다. 엔트로피의 법칙이 작동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엔트로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추진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칼리 피오리나의 말에서 한 가지 배울 수 있다.


전진적인 변화가 더 안전해 보이지만, 점진주의는 때로 관성과 저항을 이기는 데 필요한 힘이 부족해지기도 한다. 멈칫거리면 실패하고 만다.  일단 변화가 시작되면 후퇴는 치명적이다, 배수진을 쳐야 하는 상황이 생기곤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단박에 뛰어 넘어야만 한다. 어정대다간 적들의 밥이 될 것이 뻔하다. 오르막을 오르는 자동차에 엑셀레이터를 적당히 밟으면 차는 붕붕대기만 하고, 그 언덕을 치고 오르지 못한다. 엑셀레이터를 아주 강하게 밟아 RPM이 임계치를 넘어야만 비로소 그 오르막지대를 오를 수 있게 된다. 그 힘의 정도, 올라 갈 수 있고 뛰어 넘을 수 있고 엔트로피의 법칙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을 정도는, 순간 최대 추진과 멈칫거리지 않기와 뒤돌아보지 않음에서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전환을 원한다면 일시에 뛰어넘을 수 있을 힘을 한 번에 발휘에 그곳을 유유히 빠져나와야만 한다. 단 일분의 지체에도 차는 후진할 수 있다. 인생의 후퇴는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을 독성을 가지고 있기에 전환을 희망하는 우리는 전진적인 전환은 생각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일시에 한꺼번에 일어날 수 있게 자신의 모든 자원을 한 번에 투여해야 한다. 정신의 경우 이것은 ‘몰입’으로 일어날 것이고, 경주에서는 ‘전력질주’가 주는 추진력이 될 것이다. 앞으로 추진하는 속도가 최대치가 되어 임계선을 넘으면 비행기는 이륙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선은 전력질주가 필요하다. 이것이 전환을 선택한 내가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이유이다. 그런데도 자꾸 카렌시아로 끌어당기고, 뒤를 돌아보라는 자들이 있다. 돌아보는 순간 롯의 아내처럼 소금 기둥이 될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말려들지 않아야 한다. 그 어떤 주변 독소들이 주입되고 오염물을 마셔도 한 번의 기침으로 털어내고 일어나 가던 길을 계속 가겠다는 나의 의지는 지속되어야 한다. 내 의지가 있는 한, 적들이 한 번에 다 덤벼도 나는 꿈쩍도 안할 수 있음을 이제는 안다.   


  우리는 때로 진흙탕에 빠져 공회전하고, 오르막을 만나 오르지 못해 붕붕대기만 하는 힘없는 낡은 자동차 같은 신세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이 16차선 대로를 시속 200킬로이상으로 달리는 페라리는 못 된다 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자신을 설득하고 또 설득해서 스스로 한정해 버린 그 임계치를 반드시 뛰어넘어야만 한다.  그리고 다시는 ‘카렌시아’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고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의지에 의해 작동될 수 있는 메커니즘임을 오늘 칼리 피오리나에게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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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9.27 03:58:32 *.129.207.200
'카렌시아'는 저도 이번 책에서 눈여겨 보았던 부분입니다. 공격하기 쉬운 대상이 되는 것이 제 모습 같기도 했구요. 누가 공격해오는 것은 아니지만, 자꾸 도망가면 결국 갈 곳이 없어짐을 체험했습니다. 지인중에 대리운전만 3년 넘게 하고 계신 분이 있는데, 참 존경스럽더군요. 대리운전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닌데요. 그리고, 언젠가 신문에서 이런 기사도 보았습니다. 은행원인데, 나이가 차자 계속 한직으로 돌리는 것이에요. '나가라'는 이야긴데, 끝까지 버티시더라고요. 계약직으로 가면, 그곳에서 열심히 하고, 촉탁직으로 가면 또 거기서도 주어진 일하고요. 이 분도 대단하다는 생각했어요. 

변화하기 위해서는, 말씀대로 '도망가지 않는 것' 정도로는 불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내쪽에서 먼저 선수를 치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추진력이 필요하겠지요. 전 장사를 하면서, 베이스 캠프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장사도 쉬운 것은 아니지만, 조직생활처럼 관계에서 갈등을 훈련하는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 좀 아쉽습니다. 

위에서 말씀하신, 독소는 '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스캇펙 박사의 '거짓의 사람들'을 보면 '악'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지요. '악'은 그 실체가 모호해요. 그래서 선뜻 젓가락 집듯이 명료하게 이야기하기 어렵지요. 존재하기는 하고, 영향력을 가지지만 그것을 정확하게 말하기가 어려워요. 왜냐하면, 인간 자체가 악과 선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예를 들면, 당시에는 서로 웃으면서 대화했는데, 뒤돌아서면 짜증나는 경우가 있잖아요. 이용당했다 내지는, 날 가지고 놀았다는 느낌 받을 때가 그때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느낌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고, 자존감을 갉아먹어요. 

스캇펙 박사는, '악'을 처리하는 방법은 오히려 이런 악을 상대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스스로 질식해 죽어버리도록 무시하고, 내버려두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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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숙
2010.09.27 17:25:16 *.145.204.123
인건님의 글을 읽으니
스콧 펙박사의 첫번째 저서의 첫 귀절이 갑자기 떠오른다
"삶은 고행이다'
그의 책들이 역자가 여럿이라 다른 버전에서는 뭐라고 번역했는지는 모르지만

암튼 '끝나지 않는길' 이란
고통에서 자기 완성으로 끝나지 않는 길이라 했지 그양반이
내가 참 좋아 하는 사람인데
인건님도 그랬나 보다

그가 자신의 첫책 첫귀절에서 택한 문장 
"삶은 고행이다'
그것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고
이건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으리라 여겨진다
나는 이 말을 요즘 온몸으로 느끼며 견뎌내려고 하는데
그대가 주신 마지막 충고 새겨 들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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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9.27 08:06:25 *.42.252.67
'카렌시아' 저는 오늘 처음 접했네요.
워낙 동물을 죽이는 투우에 결사 반대를 하는 마음으로 이런 것을 피하기만
했나 보네요.
그런데 '카렌시아' 는 소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장소이지만
의미는 자신을 더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니 좋다, 나쁘다 판단이 서지 않네요.
그래도 죽는 것보다 살아야 하니, 저는 카렌시아는 소에게나 사람에게나 꼭 필요한 곳이라 생각이 드네요.
죽으면 다시 시작해 볼 기회도 같이 사라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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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숙
2010.09.27 17:19:39 *.145.204.123
은주는 개를 잘 관찰하면 걔들이 어디로 튀는지 볼수있을거야
걔들의 카렌시아
그걸 한번 정리해서 글로 써주세요
비교할 수 있을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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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
2010.09.27 08:21:23 *.246.146.18
자신의 가해는 모른 척하며
자신만이 피해자라고 스스로 결론지어
주변 사람을 가해의 원흉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는
당하는 사람에게 원한을 갖게 만들 수도 있어 매우 조심해야 한다.

카렌시아를 이끌어내는 도입부의 이야기들...나는 지키고 있는가... 돌아봅니다. 모두 그러시기를...
저는 그러지 못하고 살거든요.
천번의 말, 백 번의 글 보다 한 번의 행동으로 보여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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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2010.09.27 17:17:58 *.145.204.123
"나를 비롯하여 인간은 전부 다 악할 수 있고, 죄성이 있으며, 약하고, 양면적인 존재이다. 그렇다 나는 나의 악함을 알고 있다"
이것이 나의 고백입니다
 못보셨나 보네요?

행동하지 못함은 청해님이나  저나 다 마찬가지이지만 글로 생각을 정리할 필요를 스스로 느껴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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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2010.09.28 10:25:52 *.203.200.146

"일시에 한꺼번에 일어날 수 있게 자신의 모든 자원을 한 번에 투여해야 한다. "
점진적인 변화가 아닌 전환을 위해서는 판을 완전히 뒤엎어버리겠다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의 의지라는 것이 결국 반복을 통한 지속적인 자기 체화가 없이는 결국 생각으로만 그치기도 하겠구요.
일단 전환을 위해 치열하게 싸울 필요가 있겠지만 싸움이 끝난 뒤에 오는 평화로운 태평성대를 그려봅니다.  미래의 안락함이 이미 지금 나에게 와있다는 느낌으로 치열한 현장을 즐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요.

저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이...아니 환상이... "카렌시아"일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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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9.29 00:26:57 *.8.230.182


1
인간은  누가 옳고 그른가 보다 누가 이기고 졌는가에 더 관심이 있다고 호이징가가
'호모 루덴스'에서 말한다.

사실, 세상은  그것들을 분별하는 선과 악,  옳은 것과 그른 것,
그리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들의 싸움이지만
문제는 누가 선이고 옳은 것이며 좋은 사람인지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분별과 사리는 문화와 사회에 영향받기 때문이다.

2
전쟁을 하고 있는 사람의 무의식의 그림자 속에는 늘 사랑에 대한 갈망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해서 그들은 두려움과 고통과 싸운다.
그들은 ‘힘’이 곧 사랑받을 수 있는 자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힘, 정의와 굳셈의 확고부동의 신념,  철저한 논리와 탄탄한 이론이 
곧 정의며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신념이며 편협한 정의며 힘겨운 사랑이다.

왜냐면 올바른 사랑은 힘의 자발적인 이끌림을 만들어가지만, 
강한 힘은 사랑에게 강요한다. 그래서 잘못된 것이다. 
힘과 논리는 사랑을 도울 수 있어 사랑의 힘을 강화시켜줄 수 있지만
사랑을 만들 수는 없다.
왜 사랑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 때  그 사랑은 더욱 힘이 나지만
이러 이러해서 너는 나를 사랑해야만 한다 라고 말하면 그것은 강요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옳고 합당해서 사랑할 수도 있겠지만 일은 몰라도 사람의 마음에 관한한, 그것은 어렵다.
그러나 사랑하기 때문에 옳고 합당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온전하다.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돈을 벌고 멋있어 지고, 또 잘나고 싶은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내가 선수들을 통해서 ‘힘’ 보다 더 소중한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배웠을 때,
두려움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비장한 각오로 밥먹고, 잠자고, 숨쉬던 삶이  ‘죽으면 살리라’ 라는
불굴의 정신과 확고한 믿음을 얻게 되었다. 

3
피아제는 인간이 생물들처럼 생존을 위해 ‘동화’와 ‘적응’을 한다고 말한다.
주어진 상황을 자신의 기존한 것으로 끌어다 수용하던지(회귀)
아니면 자신의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다.(초월)

길을 잃으면  가장 좋은 방법은 원점으로 되돌아가 다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익숙한 것으로 회귀하려는 것과는 같지만 차이가 있다. 하나는 미래를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를 거부하고 도망치는 것이다.

수단이나 방법은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목적과 가치
그리고 조건과 상황에 따라 평가되어 진다.
곧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다.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왜 그렇게 했느냐? 즉 하나는 도구고 하나는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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