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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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넘어야 되는 장애를 항상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장애를 어떻게 넘을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선택을 그만두는 것은 죽어가는 것이다.
- <칼리 피오리나, 힘든 선택들> 중에서 -
추석연휴가 까만 달력을 환하게 밝히는 황금연휴였다. 화, 수, 목! 요일도 얼마나 절묘한 배치였는지, 잘만 하면 전주 토요일부터 장장 9일에 걸친 끝내주는 휴일의 연속이다.
재작년의 일이었다면 얼마나 환호했을까. 하긴 재작년까지 갈 것도 없이 바로 몇 주 전까지도 얼른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여유로운 연휴를 보낼 생각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연구원 해외 연수을 가느라 제대로 가족들과 여름휴가를 보내지 못한 것이 미안하기도 해서 이번 연휴를 어떻게 하면 알차게 보낼 수 있을지 열심히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보통 명절 연휴에는 전날부터 시댁의 큰 집에서 열심히 명절 음식을 만들고 차례를 지낸 후 성묘를 하고 또다시 시댁으로 이동하여 시누이들 가족들도 다 모여서 함께 저녁을 먹고, 다음 날 피곤한 몸으로 친정을 가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추석 전 주말에 우리 집에서 어머니 생신 겸 집들이를 하면 추석연휴에 큰 집에만 가고 따로 시집에서 모이지 않아도 되겠다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것이다. 어머니 생신도 어디서든 모여야 하고 집들이도 언젠가 해야 하니 일석이조, 아니 삼조! 준비하려면 좀 힘들기는 하지만 한 번에 해치우고 추석 다음날부터 푹 쉬자는 것이 나의 주도면밀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 멋진 계획에 심상찮은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팔을 다친 분에, 추석이라 갑자기 바빠지셨다는 분 때문에 이리저리 날짜를 조정하다보니 추석 전후로 어머니 생신은 생신대로, 집들이는 집들이대로 두 번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혹 떼려다가 혹 붙였다고나 할까.
밑천이 얇은 한정된 요리 실력으로 메뉴를 두 번 짠다는 것이 고역이었다. 게다가 일정을 조정하다 보니 친정아버지 성묘에 빠지는 것도 얼마나 맘에 걸리던지.
결국 몸은 고되지만 맘이 편한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럼, 맘 편한 것이 최고지. 몸 편한 휴가 말고 맘 편한 연휴를 보내자.
어머니 생신, 성묘, 큰 댁 추석, 친정, 그리고 마지막에 집들이까지. 맘을 정하니 순식간에 빨간 날마다 달력이 꽉 차버렸다.
지지난주 주말에는 어머니 생신상을 열심히 차렸다. 워낙 좋아하시는 잡채를 싸드리는 것으로 한 가지 일을 끝냈다.
연구원 오프 수업이 잠깐의 휴식이었다. 물론 달콤한 모임의 중간에 일어나기 싫어서 끝까지 함께 하다가 다음날 성묘 가는 차 속에서 내내 괴롭긴 했지만 그래도 일상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있어서 정말 반가웠다.
흩뿌리는 비속에서 풀이 무성한 깊은 산에 올라가느라 아이들도 고생하긴 했지만 이곳저곳 파인 곳도 없이 무사한 아버지 산소를 보니 안심도 되고 일 년 만에 찾아뵙는 것이 죄송스럽기도 했다. 서울에는 비가 많이 왔다던데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었고 돗자리로 잠깐의 소나기를 피하기도 하며 한참을 웃었다.
큰댁에 일이 생겨서 이번 추석에는 차례를 안 지내기로 했다는 갑작스런 소식에 솟아날 구멍은 있구나 싶었다. 시부모님께 양해를 구하고 친정에 갔다. 엄마와 마주앉아 차례음식을 준비하며 그동안 혼자 음식을 만드셨을 엄마생각에 맘 한 구석이 짠하기도 하고 아직 장가 안간 남동생이 밉기도 했다. 결혼 십 년 만에 친정에서 차례를 지내고 내친 김에 친정식구 집들이까지 해버렸다. 추석날 문을 연 피자가 유일한 메뉴인 초간단 집들이였지만 시댁에서 돌아온 언니네 가족과 얼결에 들린 사촌언니 가족까지 시끌시끌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다. 토요일 아침부터 장을 보고 대청소를 하고 음식 밑준비를 끝내놓은 덕에 일요일 아침은 비교적 편안하게 맞을 수 있었다. 14명의 시댁 식구들 모두 열심히 준비한 성의를 한자락 깔고 맛있게 먹었고 동양화 감상까지 모두 끝내고 놀이터 순례를 하고 돌아온 아이들과 함께 기분좋게 돌아갔다.
바쁜 연휴를 보내고 나니 참 편안하다. 레시피를 보며 준비한 서툰 요리도 뿌듯했지만 무엇보다도 끝까지 웃는 얼굴로 기분좋고 즐겁게 보낸 스스로가 대견하다.
관계를 위한 필수적인 일들이 있다. 그 형식에 짜증내기 보다 그것들을 대하는 내 맘을 어떻게 가지는지, 그 선택이 나의 행복을 좌우한다는 것을 이번 황금연휴에 다시금 배웠다.

근데 또 살다보면 가끔 형식이 먼저 요구되는 경우도 있긴 하더라.
왜 아름다운 그릇이 있으면 그 안에 예쁘게 무언가를 담고 싶은 맘도 들잖아.
깨끗이 청소된 집은 더 잘 사용하듯이.
인간관계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지. (대표적인 경우가 네가 결혼하면 시작될 복잡한 관계들 ㅎㅎㅎ)
나도 첨엔 맘에도 없는 말 하기 참 싫다 싶었는데
요즘은 조금씩 다른 생각도 들어.
회사나 학교도 마찬가지 경우가 있겠지.
그 적절한 형식과 알찬 내용을 일치해 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일테구 ^^
연주야 워낙 똑부러지니까 잘하고 있겠지! 아닌감? ^^

삶은 위대하지만, 삶속의 일상은 위대하지 않다.
그리고 그러한 평범의 얼굴을 하고 있는 소중한 일상이 우연히 이루어지 않는다는 것을 선형의 글을 보면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로망 같은 삶을 살았던 나에게는 선형의 가장 평범한 일상이 새롭다.
나는 생존과 승리를 위해서 전쟁을 하듯 경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 지난 세월의 꿈을 위대함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이었다.
난 선형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의 꿈에 이르는 길을 어렴풋이 발견한다.
전설 같은 기록을 세우며 살얼음판 같은 불가능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매일의 훈련과 일념에 찬 집중력이었다.
그 벼랑 끝에서 ‘한 걸음 더!’와 같은 그 순간의 깨달음을 얻게 하는
그 ‘믿음’은 그렇게 매일의 하루 속에서 만들어져 전설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일상으로 돌아와 깨달은 것은 거기에도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상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미래’와 자신의 ‘삶’에 대한
꿈과 그 꿈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일상은 누구에게나 당연히 주어져 있는 것이지만
지혜와 인내와 긍정적인 태도 없이는 행복한 일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난 깨달았다.

늘 위대한 인물들의 전설같은 삶을 동경해왔습니다.
드라마틱하고 판타스틱한 삶의 순간들을요.
그렇게 몇 십년을 살고 보니, 제 삶이 어찌나 초라하던지요.
결국 내가 안고 있는 내 모습은 동경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배님이 말씀하신 '매일의 훈련'과 '일념에 찬 집중력'인 것을 이제야 깨닫고 있네요.
일상 속에서 '황홀함'을 찾는 훈련을 매일 하려고 합니다.
그 훈련이 저를 행복하게, 그리고 제 꿈과 제 현실을 일치시켜줄 길임을 알았으니까요.
앞으로도 많이 도와주시고 가르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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