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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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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3일 11시 54분 등록

컬럼. 선생님, 꿈이 생겼어요!

젊음은 단명하기에 아름답고, 인생은 길기에 누구나 뜻을 세워 살고 싶은 삶에 도전해 볼 수 있다. 누구든 자신의 꽃이 한 번은 필 것이고, 그 때는 그 향기가 진할 것이다. - 『세월이 젊음에게』 구본형

1학년 수업시간에 늦게 들어온 한 친구가 화장실에서 주었다며 교복조끼를 가져왔다. 이름표를 보니 “김태엽” 세 글자가 너무 낯익다. 이 녀석 태엽이 이 칠칠맞은 녀석! 잠시 동안 태엽이게 대한 기억을 떠올려본다. 1년 동안의 태엽이에 대한 기억은 항상 부어서 게슴츠레 뜬 눈으로 피곤에 절은 모습이다. 수업시간이든 쉬는 시간이든 주로 엎드려 잤고 흔들어 깨우면 안쓰러운 얼굴에 그냥 깨우기를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자주 머리와 배가 아프다고 하소연했다. 무뚝뚝한 성격이라서 표정만으로는 오해할 수도 있지만 마음씨가 참 고운 아이였다. 올해는 함께 모닝페이지를 시작했는데 며칠 나오다가 계속 빠져버려서 요즘은 어찌 지내는지 궁금해진다.

교복조끼를 전해주기 위해 태엽이를 불렀다. 부은 눈은 여전하다. 태엽이는 살이 찐 것이라기보다는 부었다는 느낌을 준다. 태엽이가 머리와 배가 자주 아픈 것이 관련이 있지 않은지 걱정이 되기도 하여 요즘도 많이 아프냐고 물었더니, 요즘은 작년보다는 덜 아프다고 미소를 짓는다. 올해 중학교 3학년인 태엽이에게 인문계를 갈지 전문계를 갈지 진로를 정했냐고 물었다. 태엽이는 아직 못정했다며 인문계를 가고 싶은데 실력이 안 될 것 같다며 자신없는 말투로 이야기한다. 등수를 물어보니 25등 전후이다. 뭐 그정도면 인문계에 합격하기는 할 것이다. 문제는 입학해서 노력을 해 성적을 올릴 수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다. 태엽이는 학교에서의 수업이외에 공부를 거의 하지 않는다. 공부를 하지 않고 그 정도의 실력이면 공부를 해야겠다는 의지를 갖고 시간을 투자하면 승산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태엽이네 집은 많이 어렵다. 작년에 계속 급식비나 학교운영지원비가 밀리거나 태엽이가 지각을 하거나 해서 부모님께 연락을 하면 통화가 거의 불가능했다. 간신히 통화가 되어도 기운없는 부모님의 목소리에 태엽이의 상태가 이럴 수 밖에 없음을 짐직하곤 했다. 태엽이는 요즘이 아이들이 많이 가는 학원에 다니질 않는다. 저녁 시간의 대부분은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거나 만화를 본다고 한다. 다행이 게임에 빠져있지는 않다. 요즘 부모님 일은 잘되시냐고 물었다. 태엽이는 잘 안 되신다고 말하며 고개를 떨군다. 태엽이에게 군대간 형이 있다는 것이 기억이 나서 근황을 물으니 요즘엔 제대를 해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형이 돈을 벌어서 집안에 보태겠구나 대견하다고 말해주었다. 태엽이는 이내 형은 너무 씀씀이가 헤퍼서 돈 벌어서 자기 쓰기도 바쁘다며 그래도 자신에게 가끔 용돈을 주기는 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는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럼 친구들하고 놀면서 돈을 쓸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태엽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냥 집에 있으면 돼요라고 말하며 부모님이 힘드시니까 주셔도 용돈을 일부러 받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속깊은 녀석, 마음이 아프다.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서 놀 나이인데.

태엽이에게 요즘은 공부를 좀 하고 있냐고 물었다. 태엽이는 요즘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형이랑 반에서 10등 안에 들기로 약속했다며 당당하게 말한다. 작년에 그렇게 공부하라고 방과후학교에 무료로 넣어주어도 귀찮다면서 잘 안 하던 녀석이 자기 입으로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며 목표 등수를 이야기해주는 것은 놀랄만한 변화였다. 어떻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했냐며 물었다. 돌아온 태엽이의 대답은 “꿈이 생겼어요”였다. 1년 내내 아직 젊디 젊은 나이에 꿈이란 것과 담을 쌓은 듯 무기력하게 지내던 녀석이 꿈이 생겼다니, 우와 무슨 꿈일까 궁금했다. 올해 여름방학 때부터 생긴 태엽이의 꿈은 ‘요리사’란다. 어떻게 그런 꿈을 갖게 되었냐고 했더니 여름방학 때 부모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요리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엄마가 음식 솜씨가 있으시고 자신도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잘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16년 만에 처음으로 꿈이 생긴 태엽이의 소중한 꿈이 이루어지기를 태엽이의 얼굴에 꽃같이 아름다운 미소가 항상 가득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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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10.04 17:42:35 *.10.44.47
그래! 그랬던 거 같다.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쿵쾅거리는 꿈이 생기고
그 꿈으로 가는 다리가 다름아닌 내가 숨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무기력하던 내 삶에 탄력이 시작되던 역사적인 순간.

태엽이가 자신의 일상과 소중한 꿈을 잇는 더 촘촘하고 탄탄한 연결망을 가질 수 있도록
연주샘이 많이 신경써줬음 좋겠다.   태엽도 연주샘도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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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2010.10.05 12:38:33 *.203.200.146
그렇죠..꿈이란...그게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운이 솟고 미소가 지어지는 그것~
제가 걸어가는 길이 아이들에게 꿈을 이루는 사람의 모델이 되길 바래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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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0.10.05 13:19:59 *.236.3.225
10대초에 한국, 중식, 양식, 일식 등 요리사자격증을 따서 그 길로 접어든 친구를 TV에서 본 적이 있다.
일단 필이 딱 꽂히면 본인이 알아서 발동이 걸릴텐데 ㅎㅎㅎ

'요리사'란 직업이 본인에게 맞는지, 그 직업에 계속 흥미를 가질 수 있을 지 학원같은데서 접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경력 계발에 대해 아이와 의논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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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2010.10.05 13:34:25 *.203.200.146
일단 요리사란 직업에 대해 체험해보는 것도 좋겠어요.
정말 흥미에 맞는지가 관건~
일단 녀석은 시작만 하면 성실하니까
집중해서 끝까지 갈 수 있을 듯해요. 우직한 녀석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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