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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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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4일 09시 56분 등록

시인과 농부 / [10-1 컬럼]


내가 왜 이 위에 섰는지 이유를 아는 사람?

이 위에 선 이유는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려는 거야.

이 위에서 보면 세상이 무척 다르게 보이지.

믿기지 않는다면 너희들도 한 번 해봐. 어서, 어서.

어떤 사실을 안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다른 시각에서도 봐야 해.

틀리고 바보 같은 일일 지라도 시도를 해봐야 해.

- 죽은 시인의 사회 중에서 -


카르페 디엠! ‘특별한 오늘을 살라’고 주장하는 키팅 선생은, 책상위에 올라가서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라고 주문한다. 다른 시선! 지루한 일상을 반복하는 직장인들이 자신의 업무를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는 일반적인 방법은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승진하는 것이다. 팀원이 팀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면 주변은 바뀐 것이 전혀 없는데도, 본인은 갑자기 달라지는 조직사회를 경험하게 된다. 특별한 문제없이 일 잘하던 동료가, 갑자기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말썽꾸러기 부하직원이 되기도 하고, 팀원일 때는 잘 몰랐던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스레 깨닫기도 한다.


두 번째는 다른 팀으로 순환근무를 하거나 한 팀내에서 다른 업무를 맡아보는 것이다.

업무환경이 변하는 것은 아니기에 한 팀내에서 다른 업무를 해보는 것은 자극이 약하다. 다른 팀으로 순환근무를 해보는 경험을 가지는 것은 전혀 다른 시선을 가져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단 그런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럼 승진도 하지 못하고, 순환근무도 하지 못하는 직무를 맡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는 “모든 지식 근로자는 CEO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고 말했다. 모든 조직의 CEO 들이 만세를 부르며 '내 마음이 바로 그 말'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경구라고 할 수 있다. 드러커의 명언이 없다 하더라도, 전문가는 조직구성원의 입장에서 조직의 입장으로, 즉 경영자의 관점으로 시야를 확대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에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자기 사업을 하면서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거나 CEO처럼 최종결정을 하는 위치를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아무래도 고용된 사람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게 된다. 실제의 경험없이 이런 관점을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천일의 유리’는 두 권으로 이루어진 일본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장편 소설이다. (연구원 1기 문요한 선배가 컬럼에서 소개하여 사 보았던 책이다.) 작가는 한 페이지당 하루의 이야기를 날마다 시점을 달리하며 천 가지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흥미로운 것은 천가지 시점이 사람이 아니라 무지개, 노래, 공기, 불꽃 등이라는 것이다.


나는 연이다.

물거품 호수의 그늘에서 발생한 어두운 바람을 한껏 받아 겨울의 가느다란 햇살과 함께 하늘을 나는 연이다. 새 모양으로 만들어져 파랑과 하양 두 가지 색으로만 칠해진 나는 인간의 수명보다 훨씬 긴 줄을 통하여 언덕 꼭대기에 서 있는 소년 요이치에게 정기를 부여하고 있다... [중략]


나는 침묵이다.

단풍이 물들었던 잎이 다 떨어진 은행나무 아래서 아직도 꽃을 피우고 있는 국화를 바라보는,

양로원에 몸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침묵이다...[중략]


무라키미 류가 지은 ‘마스크 클럽’은 한술 더 떠서 죽은 사람이 소설의 화자다. 이 소설의 화자인‘나’는 죽은 사람이다. 그것도 죽은 상태에서 어떤 상황을 접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 중의 한 여자를 좋아하다가 살해당한 사람이다.


오랫동안 기획팀에 근무한 탓일 것이다. 난 기획자는 ‘시인과 농부’의 자질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원무팀장으로 근무한지 한달이 된 지금 생각해보니, 모든 지식근로자, 프로페서녈을 지향하는 전문가들은 모두 ‘시인과 농부’가 되어야 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시인은 사물과 풍경을 바라보는 방식을 고민하는 사람이며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이다. 시인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발명가’가 아니라 ‘발견자’에 가깝다. 연애를 할 때는 아무리 거친 성격의 사람도 꽃처럼 아름다워진다. 그래서일까? 안도현 시인은 “시를 읽고 쓰는 것, 그것은 이 세상과 연애하는 일”이라고 했다. 일상에서 시를 읽고 소설을 많이 보는 것은 경영자의 시각이나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관점과 모드전환이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갑자기 진철이가 생각나는 이유는? ㅎㅎ)


농부는 현실감각을 얘기한다. 현실에 발을 딛고 성실하게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

디테일한 성실함이 없으면 실행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성실한 농부가 되는 것이 섬세한 시인이 되는 것보다는 쉬워 보인다. 우리 주위에서 성실한 수많은 농부들을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는 성실한 농부의 시대가 아니다.


자동차 판매를 늘리기 위해 차의 엔진성능을 높이고, 연비를 개선하고 원가를 낮추는 기술혁신이 농부의 시대였다면, 빵빵 거리는 클랙션 대신 ‘잠깐 비켜주시겠어요’ 라는 낭랑한 처자의 하이톤 멘트나 베토벤의 ‘운명’을 클랙숀 소리로 대체하는 아이디어가 시인의 감성일지도 모른다. 시인의 섬세하고 풍부한 상상력, 현실에 기반한 농부의 강한 실행력, 서로 다른 이질적인 요소의 조합이야말로, 또 하나의 ‘프로페셔널의 조건’일지도 모른다.


창조적인 사람을 정의할 때, 20세기 심리학자들은 ‘남들이 생각해내지 못하는 엉뚱한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21세기 새로운 시대에 주목받는 창조적 능력은 남들이 생각해내지 못하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능력만이 아니라 ‘개성적인 통찰력’과 ‘연결하는 능력’ 을 요구한다. 문제의 본질을 남들과 다르게 새롭게 정의하는 능력과 황당한 아이디어를 현실 가능한 아이디어가 되도록 구체화하여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그것이다.


병원이라는 조직은 창의가 살아 숨쉬기 어려운 조직이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서비스의 특성상, 실수를 허용하지 않으며 높은 수준의 위계질서와 명령체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극심한 의료경쟁 환경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실한 농부의 확대재생산이 아니라, 고객통찰을 위한 깊은 질문과 실행을 위한 창의로운 생각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병원일상을 평화롭게 유지시키기 위해서도 질서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의 창의성이 희생된다면 그 조직은 희망이 없게 된다. 고객에 대한 통찰과 의료마케팅을 꽃피울 수 있는 창조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의사란 사자의 심장과 숙녀의 손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영국의 병원에서 인용되는 오래된 속담이다. 의사는 대담무쌍하고 강인하고 결단력이 있어야 하는 동시에 부드럽고 친절하고 사려깊어야 한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시인의 창의성과 농부의 성실성’이야말로 프로페셔널에게 요구되는 또 하나의 키워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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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옥
2010.10.04 18:18:43 *.10.44.47
 한 페이지당 하루의 이야기를 날마다 시점을 달리하며 천 가지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던 환자경영에 대해 좀 생각해봤는데..
그냥 로데이타를 모으는 기분으로 찾아온 환자, 혹은 보호자의 입장에서 상황을 묘사하거나 설명해보는 연습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상황을 재구성해보는 것 만으로 그에 대한 이해의 폭이 훨씬 넓어지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고객을 더 잘 이해하게 되면 훨씬 더 구체적으로, 훨씬 쉽게, 그러니까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공감>능력이 뛰어난 오빠라면 암산으로 다 가능한 영역인지도 모르지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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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10.06 00:36:41 *.255.242.211
오빠..간단한 메모형식으로라도 사례를 모아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정신이 없다는 건 퍽떡거리는 사례들이 무지무지 쏟아지고 있다는 의미일테니까요.  ^^

ㅋㅋ
이놈의 오지랖은...
오늘은 친정아빠의 기일입니다.
제사 정리하고 잠시 들어왔다가 이러고 있다는.. ^^;;
적당히 추려서 접수해주시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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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5 20:16:04 *.30.254.21
그래..해볼께..
격주로 의료경영과 환자경영을 해볼까 생각 중...
근데...무쟈게 정신없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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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10.04 21:09:42 *.129.207.200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 흥미롭네요. 예전 '소설가의 각오' 재미있게 보았는데요. 이분은 수도하듯이 산속에서 글만 쓰시지요? 아마. 

제 경우는 회사 안에서 있을때와, 밖으로 나왔을 때 시각의 차이가 현저하더군요. 안에서는 자기 회사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했지요. 그리고, 외부의 평가에 대해서도 그리 관심도 없었고...

예전 디자이너들과 함께 공부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디자이너들이 부러웠는데, 정작 디자이너들은 저를 부러워하더군요. 디자이너는 디자인 밖에 모르지만, 다른 전공을 한 사람이 디자인을 하면 더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나저나 오늘 너무 힘드네요. 월요일. 매상이 영... 형한테는 투정부려도 받아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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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5 20:16:49 *.30.254.21
삶이 안풀리면
난 노래를 불러

매상이 떨어지면
넌 그림그려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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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0.10.04 22:04:03 *.154.57.140
입장이 바뀌어보기 전에는 잘 모르지요. 사실..
일주일간이라도 입원해보면.. EBS에서 출간한 세계의 교수들인가? 에서 읽었던
의대교수 한 분이 수술대에 한 사람씩 예비의사들을 누워보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지요.
최근에 아내에게 남자 간호사 후배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늘 의사들과의 관계에서 간호사들이 약자 같고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약자인것이 싫다고 말하곤 했는데...
남자 간호사 후배가 들어오면서..이제 입장 바꿔서 생각해야할 것들이 많이 생겼지요
여성들이 주류인 간호사 세계에서 남자 간호사.. 이제 아내에겐 좋은 계기가 생긴셈이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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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5 20:18:12 *.30.254.21
진철, 조심해
남자 간호사들을 여자 간호사들이 엄청 좋아해.
무지 귀여움 받거덩..
조심해야 될 것 같아...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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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2010.10.05 10:13:58 *.203.200.146
"시인의 창의성과 농부의 성실성"
이 두가지를 가정에서 또 학교에서 길러줄 수 있어야 하는데요.
사실 이런 자질을 갖춘 부모가 그리고 교사가 먼저 되어야 겠지요? ㅎㅎ
그런데 조직에서 이 두가지를 겸비하고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아요. 이것을 겸비한 개인들이 많아지면...스스로를 CEO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조직도 서서히 바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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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6 09:12:32 *.230.26.16
앗, 이것참... ^^;;
제 평생 화두가 될 듯해요. 꿈을 향한 실천, 그 방법으로서 습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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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5 20:20:07 *.30.254.21
음...그러리라 믿어.
쉽지는 않겠지만...
그런데...음...그건 습관의 문제인 것 같아.
자질이나 기질의 문제라 하기보다는....

아마도 선형이가 풀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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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0.10.07 07:39:13 *.236.3.225
마루야마 겐지처럼 사물의 입장에서 써 보는 것 괜찮겠네요ㅎㅎ

형한테는 올해가 이래저래 변화의 시기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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