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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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애 35 - 호랑이로 살아가기
호랑이는 고고하다. 호랑이는 굶주려도 풀을 먹지 않는다. 자타가 공인하는 숲의 제 1인자다. 시시하지 않다. 불타오르는 눈과 범접하지 못할 위엄을 지니고 있지만 균형을 잘 유지한다. 삶에는 전력을 다하여 살고 죽음 앞에 의젓하며 죽은 후에는 그 가죽을 남긴다. 우리에게 단 한번 주어지는 삶, 어디 호랑이처럼 살아보면 안될까?
“모든 출구는 어딘가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영국의 극작가 톰 스토포드의 말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힘들고 신명이 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꿈을 가지고 있지만 이 꿈을 마음껏 펼치기에는 세상이라는 운동장이 너무 거칠고 동료 경쟁자들도 믿을 수가 없다. 알게 모르게 경쟁과 자기이익을 우위에 두는 자본의 논리에 잠식당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이제는 그런 삶의 바닥이 보인다. 허허벌판에 빈주먹으로 서 있는 이 시점이 정말 지혜로운 선택을 필요로 하는 순간이다. 지혜는 델피의 “너 자신을 알라 ” 라는 신탁으로 이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백척간두에서 한걸음 떼어놓기, 이제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삶의 목표가 무엇인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를 먼저 물어보고 싶다. 남들이 모두 다 가는 시장에서는 종종 불행한 하루였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오고는 했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재능을 원하는 값에 팔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사람의 가치가 교환할 수 있는 물건의 값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적당한 사람과 때를 만나면 트랜드의 물결을 타고 잘 흘러가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적재적소를 찾지 못한다. 그 첫 번째 이유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혜의 본질은 우리들 마음의 한계를 자각하는 데에 있다. 지혜란 곧,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경계를 인식하는데서 시작된다. 젊은 날의 꿈과 지금의 꿈을 비교해보면 생각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지금은 훨씬 더 실현가능한 꿈에 다가와 있다. 시행과 착오를 거듭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점점 더 솔직하고 분명해지는 것 같다. 어릴 때에는 내가 보고 싶은 세상만 보았지만 지금은 어떤 창 앞에서 세상을 내다보고 있었는지 세상을 내다보는 창문이 조금 더 자신을 객관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한계를 깨닫는 것은 마음의 창인 나의 프레임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마음의 한계를 자각한다는 것은 조금 슬픈 일이기도 하지만 그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지도 밖으로 행군을 시작하는 것이다. 내 마음의 창은 내가 세상을 관찰하는데 사용하는 특정한 관점, 곧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이 물리학에서는 준거틀 (frame of reference)이라는 용어로 쓰인다. 심리학에서도 우리가 세상을 보는 틀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인생의 목표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사실 지혜의 핵심은 올바른 질문을 하는 것이다.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인가?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은 사는 지혜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내일이다.”
이것은 분명 의미 중심의 인생일 것이다. 우리가 여태껏 살아온 인생은 분명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남들이 다 가는 방향으로 따라가는 삶이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시간과 장소에서 질문이 쏟아진다. “이 일을 어떻게 하나요? 쉬운 일이예요 어려운 일이예요?, 시간을 얼마나 걸리고 성공 가능성은 어떤지요? 돈은 또 얼마나 들고 이익은 얼마나 되나요? ” 그렇게 구체적인 절차를 기술적으로 알려주는 책들이 바로 자기계발서일 것이다. 그책이 그책이고, 그런 나물과 그런 밥을 매일 먹고사는 우리는 한번도 의심하지 않고 목적이 이끄는 삶에 재빠르게 닿으려고 달려간다. 그러나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우리가 살고 싶은 삶은 가슴뛰는 삶이다. 그냥 하루하루 대충 사는 것이 아니고 시처럼 오늘 하루를 사는 의미있는 프레임을 원한다. 시가 보이는 마음의 창으로 한번 뿐인 이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찾아야한다. 어떻게 살아갈까를 묻는 것은 남들이 대강대강 대답해주기 쉬운 질문이다.
그러나 왜 이 일이 필요한지 그 이유와 목표를 묻는 질문은 스스로 대답을 찾을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나에게만 고유한 나의 삶의 이유와 나의 선택을 묻는 질문이다. 보다 근원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고 궁극적인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다. 어쩌면 무엇보다 우선하는 이 수준의 프레임을 우리가 찾아야하고 죽는 순간까지 지니고 가야하며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위대한 유산이 아닐까?

400년 묵은 느티나무 옆에 자리를 잡고 쫌 조용히 살라고 했구만유...
근디... 그게 않되네유... 운명대로 되나벼유...
숨쥑이고 어퍼져 이쓰라고 신이 이리 보냈는갑다 그래 생각할려고 해도 그 게 않되네유 ...
그거 알아요...?
제가 안성으로 이사왔는데
마을 이름이 호랑이가 살던 마을이래요...
복호리라나 뭐라나....(호랭이가 엎드려 있는마을이라나)
온통,... 동네가 호랭이 천지에유... 진짜 당께유...
다 쓰러져가는 내집 담벼락에 호랭이가 그려져 있어유...
머리만, (무자게 잘생겼시유 !~~)
그거 알아유?
호랭이는 엎드리는게 아니라 웅크리는 거.... ㅎㅎㅎ ㅎㅎ
이 운명은 뭐대유...~~~
딸래미하고 박터지게 싸우고 도망치듯 왔는디...
호랭이굴이라니...
호랭이 목욕한데 (금광호수) 놀러와유...!
'오늘, 열심히 살았는데, 어제는 기억이 안 나유, 그러면 잘 산거지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