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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15일 09시 47분 등록

응애 37 - 당신도 이야기꾼이 될 수 있다.

 CNN의 <래리 킹 라이브 >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래리 킹은 TV 역사상 가장 독보적인 토크쇼 진행자로 소개되는 사람이다. 1985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전 세계를 대상으로 시청자 전화를 열어놓고 있다. 그는 타임지로부터 “마이크의 달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2009년에 나온 그의 <My Remarkable Journey >라는 책은 <원더풀 라이프>로 번역 출판되었다. 빌 클린턴이 추천사를 썼다. 클린턴은 래리 킹이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질문을 통해 상대로부터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게 만드는 탁월한 솜씨를 지닌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는 러시아계 이민자의 아들로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9살 때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그는 그때 도서관에서 9권의 책을 빌려들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는데 경찰차가 집 앞에 서있는 게 보였고 어머니의 애달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를 잘 알고 있던 경찰관은 그를 안아 올리고는 순찰차에 태웠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알려주고 차를 몰아 시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극장에 들어가 영화를 보여주었다. 그는 로버트 테일러 주연의 이 영화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아버지와 사이가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아버지와 그는 누구보다도 친밀했다. 그러나 장례식에 가고 싶지 않았다. 대신 집에 남아 고무공을 현관문 앞 층층대에다 퉁퉁 퉁기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그는 그 도서관에 다시는 가지 않았고 집 근처에 순찰차가 보이면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면서 혹시 어머니가 돌아가신 게 아닐까 두려워 집으로 내달리곤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부터 칠판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안경을 쓰게 되었고 구호기금으로 해주는 철사테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학업에 흥미를 잃으면서 더 이상 책도 읽지 않았다. 아버지의 죽음에 책을 결부시킨 것 같았다. 그는 그때까지 매우 우수한 학생이었고 2학년에서 4학년으로 월반을 하기도 했었다. 그의 이런 변화를 심리학자는 자기를 두고 떠나간 아버지를 향한 분노의  표현이라고 했다.

그는 자라는 동안 내내 훈육을 해 줄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어머니는 그의 상실감을 불쌍히 여겨 많은 것을 허용했다. 어린 그가 밖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어머니는 늘 사과를 하고 용서를 빌어 그를 빠져나올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매를 맞았던 일을 추억한다. 험한 시절이어서 낯선 사람에게 가까이 가지 말라는 주의를 듣고 살 때의 일이었다. 한번은 검은색 차가 그의 앞에 와서 서더니 한 신사가 내려 말을 걸었다. “ 꼬마야, 이리 와봐라”

그리고는 트렁크를 열고 말했다. 거기에는 만화책이 가득 들어있었다. “우리 집 아이 것이란다. 한번만 더 나쁜 짓을 하면 가다가 처음 보는 아이에게 이 만화책을 몽땅 주어버린다고 약속했지. 아들이 약속을 어겼단다. 이걸 다 네게 주려고 하는데 너 만화책 좋아하니?” 그는 그 보물을 냉큼 받아 집으로 올라갔다가 아버지께 혼이 났다. “훈육은 아버지의 또 다른 애정의 표현이다.” 그는 그런 아버지가 늘 그리웠다.

그때 그의 빈자리를 채워준 것은 라디오였다. 그의 하루는 라디오로 시작해서 라디오로 끝났다. 그리고는 목소리를 최대한 깔아서 프로그램 진행자의 목소리를 흉내 내고는 했다. 그는 스스로 멈춰서 뒤돌아보는 성격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려서부터 ‘가자! 앞으로 나가자!’는 태도로 살아왔단다. 그러나 그는 대학을 진학하지 못했으며 시력 때문에 군대도 가지 못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뜨내기 일을 많이 했다. 야구경기를 좋아해서 두 시간 경기를 관람한 후에는 친구에게 세 시간 동안 그 모든 이야기를 다시 해 줄 수 있었다. 그는 가끔씩 뉴욕에 가서 방송국 건물들 앞에 서서 그곳에서 일하는 미래의 자기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는 스스로 방송인으로 성공할 수 있는 자질을 잘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버지처럼 재미있고 호감이 넘치며 어머니처럼 솔직하고 의리가 있으며 친구도 많았다. 뭔가를 전하고 싶은 열정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의 목소리를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CBS 아나운서를 만났다. 그가 말을 걸었다.

“저는 올해 스물 네 살입니다. 그동안 쭉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고 싶어 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봐, 젊은이, 마이애미로 가서 한번 시도해보게. 거기에는 방송국이 많지 않은가? 노조도 없으니 마이애미에서 시작하는 편이 훨씬 수월할거야.”

그는 망설이지 않고 떠났다. 마이애미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흥분에 들떠 방송국 문을 두드리고 다녔다.

“여기에는 들어왔다가 지쳐서 떠나는 사람이 많으니까 진득하게 붙어있으면 첫 방송을 할 기회가 생길거네.”

그러던 중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아침방송을 맡았던 진행자가 개인사정으로 사직을 했다. 그는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서 마이크 앞에 섰다. “래리 자이거 ”라는 유태인 이민자 표가 나는 성은 그 순간 신문에 난 킹 주류 판매 전면광고보다 갑자기 영감이 떠올랐던 책임자가 바꾸어줬다. 그렇게 <래리 킹 쇼>는 시작되었다. 

 그 일생일대의 기회를 그는 이렇게 시작했다.

“나는 시그널 음악을 틀었다가 소개 인사를 하려고 음악소리를 줄였다. 그런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입속이 바싹 말라붙어버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다시 시그널 음악을 틀었다가 소리를 점점 죽였다. 이번에도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청취자들에게까지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릴까봐 걱정스러웠다. 어떻게 만든 기회인데.. 이렇게 날릴수는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시그널 음악을 틀고 말을 하려했으나 나의 바람과는 달리 말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 총 책임자가 발로 문을 차고 조정실로 들어왔다.“이 일은 말로 먹고사는 직업이야!”

그는 총책임자만이 할 수 있는 어조로 고함을 지르고 나서는 다시 돌아서서 나가며 문을 쾅 닫았다. 나는 떨면서 마이크 쪽으로 몸을 숙이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제 생애 처음으로 이렇게 라디오 방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쭉 꿈꿔왔던 일입니다. 주말 내내 연습을 했고 몇 분 전에는 새 이름도 얻었습니다. 시그널 음악도 제대로 틀었지만 입이 바짝바짝 탑니다. 지금 너무 긴장됩니다. 방금 전에 총 책임자가 들어와 ‘이 일은 말로 먹고사는 직업이야!’ 라고 말하고 나가기까지 했습니다.”

그날 그는 크나큰 교훈을 얻었다.

“이 일의 유일한 방법은 ...비법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을 잃지 않는데는 따로 비결이 없다. 그는 이렇게 말로 먹고사는 일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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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jago
2010.10.15 12:40:48 *.67.223.154
이종원의 아메리카브레이크]토크쇼의 제왕 래리킹 시대의 종막
 
'토크쇼의 제왕' 래리 킹이 지난 6월29일 마이크를 내려놓는다고 발표했다. 
CNN 간판 토크쇼 '래리 킹 라이브'를 첫 방송한 지 무려 25년 만의 일이다. 
그는 이날 방송에서 "올가을 래리킹 라이브를 그만둔다. 이제는 멜빵끈을 풀 때"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CNN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멜빵바지 입은 래리 킹일 정도로 그는 토크쇼의 대명사였다. 지난 1957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라디오 진행자로 방송생활을 시작한 그는 라디오 토크쇼와 디스크자키로 인기를 얻은 후 1985년 CNN 창립 당시 테드 터너 회장에게 스카우트되면서 '래리 킹 라이브'를 시작했다. 25년간의 방송생활 동안 그는 미국 역대 대통령을 포함해 무려 5만여명을 인터뷰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커다란 뿔테 안경, 편안한 멜빵바지, 그리고 커다랗고 오래된 탁상용 마이크라고 할 수 있다(이 마이크는 작동되지 않는 말 그대로 껍데기이며, 실제로는 핀마이크를 사용한다). 25년간 커다랗고 복고풍인 소품만을 고집하는 이유는, 인터뷰하는 사람을 오래된 집에 온 듯한 느낌으로 편하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다.

소품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토크쇼는 직설적이지만 마음 편하다. "왜 그랬냐"는 식으로 상대방을 몰아세우는 대신 "세상일이 다 그런 거 아닌가"라고 편하게 대하기 때문에, 빌 클린턴이나 모니카 르윈스키, 오프라 윈프리 등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도 다른 방송 대신 '래리 킹 라이브'를 찾았다. 상대방을 닦아세우는 다른 토크쇼 대신 래리 킹에서 자기 주장을 편하고 솔직하게 말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누구와도 적대하지 않고 대립하지 않는 그의 대화법은 젊은 시청자들에게 '심심하고 재미없다'는 이유로 '소프트볼 토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젊은 시청자들에게 외면받은 '래리 킹 라이브'는 최근 극심한 시청률 저하에 시달렸는데, 이것이 종영의 한 가지 이유로 꼽히고 있다.

문제는 이제 '누구와도 적을 만들지 않는' 래리 킹 스타일의 토크쇼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오바마를 1년 365일 24시간 씹어대는 폭스뉴스가 시청률 1위를 차지하고, 루 돕스나 러시 림보 같은 상대방을 깔아뭉개고 비난(민주당과 오바마는 그들의 단골 비난 대상이다)하는 스타일의 극단적 논조의 토크쇼가 인기를 끄는 시대다. 누구와도 적을 만들지 않고 양쪽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듣는 킹의 스타일은 요즘 시청자들이 볼 때 '화끈하지도 재미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요즘 토크쇼에서 상대방을 무대에 세워놓고 망신주거나 놀려먹은 후 '굴욕의 순간'이랍시고 캐첩을 뿌리는 문화가 대세인 모양인데, 그래야 토크쇼 시청률이 오르는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별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비록 시대의 조류에 밀려 퇴장한다고는 하지만, 그래서 래리 킹의 다음과 같은 인터뷰 원칙은 더욱 그립다.

"요즘 토크쇼는 상대방을 병풍이나 샌드백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하지만 토크쇼는 손님이 말하는 자리이고 사회자는 듣는 사람이다. 사회자가 손님을 가르치려 들어서는 절대 안 된다." 
<재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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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10.16 11:06:01 *.108.48.59
저도 시대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는 세대로서
각별한 감회가 느껴지는 글이네요.
자극과 선정성, 무례함이 극에 달한 요즘 TV를 보면
내가 빠른 속도로 밀려가는 것이 실감나는 동시에
세상은 어디까지 가려나 착잡해 지곤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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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0.10.18 16:34:00 *.67.223.154
그런데, CNN 이 시작할 때부터 25년간 변함없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힘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일흔 일곱 살의 래리 킹의 이야기 감각은 타고난 것인가요?
가장 그를 닮았다는 일로 즐겁고 행복한 그는 분명 호랑이과에 속하지요?

그의 친구들도 거의 리마커블 수준이니.... 시대에 밀리는 일은 없고
오히려 한 시대를 한 단계 위로 끌어올릴 일이 남은 것 같은데요.
래리 킹은 허브 코헨과 둘도 없는 친구사이랍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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