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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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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17일 11시 09분 등록

세상을 바꾸는 시민행동21

 

4시 44분 알람이 울렸다. 막 108배 명상을 마치고, 찐득하게 젖어든 몸을 씻는다. 매일 새벽에 하는 샤워는 어제까지 살다 죽은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일종의 세례식이다. 굳이 비싼 가격을 치루고 바디샵에서 사온 바디삼퓨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타로딕’처럼 살고 싶은 탓이다. 그리고 다시 3분의 왼손 양치질. 불편하다. 1년 가깝게 해오는 일인데도 40년이 넘게 오른손이 해오던 일을 완벽하게 대신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나는 그 불편한 3분 동안, 익숙한 것들과 이별을 한다. 나의 오늘 하루는 그렇게 새로 얻어진 시간들이고, 새로 시작하는 나의 삶이 다시 시작된다.

 

5시 20분, 오늘 아침 새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차가운 새벽공기가 좋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 창문을 열고 앉아 커피 한 모금으로 시작한다. ‘경영의 미래’ 오늘은 ‘구글의 경영 혁신 사례’부터 시작이다.

 

“인재들이 구글에 오는 이유는 우리가 그들에게 세상을 바꿀 권한을 주기 때문입니다.” ...

따라서 잘 알려진 대로 구글직원들이 오만하면서도 이상주의자라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만약 당신이 구글 직원과 함께 식사라도 한다면 지식의 민주화를 외치거나 세상 사람들의 배우는 방식을 바꾸자는 이야기에 말려들고 말 것이다. 마이어는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는 사람들의 교육 기회를 확대하고 똑똑한 세상을 만들려고 합니다. 사람들의 지식을 향상시키는 것이죠.” -게리 해멀, 경영의 미래 p128

 

나는 세상을 바꿀 권한을 가졌던가? 나는 함께 일하는 후배들에게 세상을 바꿀 권한을 주었던가? 세상을 바꾸자고 했으면서 정작 나와 우리는 얼마나 바꾸려고 노력해왔던가?

갑자기 어깨 밑이 근질거리더니, 날개가 돋기 시작한다. 눈이 감기고 방금 가슴에 와서 꽂힌 글귀들이 커피 향기를 쫒아서 상상의 날개를 펴기 시작한다.

 

2011년 3월 어느 날이다. ‘세상을 바꾸는 시민행동21’의 새로 젊은 대표를 맡은 나는 운영위원들과 사무처 직원들에게 질문을 한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벌써부터 다소 선문답 같은 나의 의도가 궁금해진 몇 사람이 수근대기 시작한다. 미리 준비한 포스트잇을 10장씩 돌린다. 그리고 방금 나의 질문에 대한 본인들의 생각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10가지’를 적게 한다. 잠시 후 화이트 보드판에 붙여진 포스트 잇을 몇 가지 주제별로 구분해서 재분류를 한다.

재정적 자립. 후원회원의 확대. 사무처 직원들의 재교육. 열악한 업무환경개선. 지역사회 인지도 확대. 등등... 이미 익숙해져 왔던 의제들이 쏟아져 나온다. 다시 묻는다.

“그럼, 이 소중한 것들을 얻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지난 해에 이어 또 한 번 회원배가운동을 하자. 제살 깍아 먹기 같지만 후원의 밤 행사를 한 번 더하자. 우리 상근자들도 대학원 공부도 시키고, 외국에도 보내자. 컴퓨터를 좀 좋은 것으로 바꿔주자. 신문에 우리 활동들을 더 적극적으로 알리는 기사도 싣자. 등등

지난 10년 동안 어느 것 하나 안 해 본 것 없고, 해보지 않은 일이 없다. 모두다 해왔던 일들이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같은 밥에 같은 반찬이 올라오고 있다.

 

옆에 있던 간사에게 넌지시 일렀다. 지금부터 하는 말들을 모조리 다 적으라고.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리고 다시 운영위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여기 제시된 모든 것들을 5년 안에 다 해낼 것입니다. 제가 아니라 우리가 해낼 것입니다. 대신 여러분들이 오늘 하나 결정해주셔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내일부터 사무처 직원들의 업무시간을 12시부터 저녁 9시까지로 하겠습니다. 동의해주시겠습니까?”

다들 어안이 벙벙해진다. 도대체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출근시간 조정하고 재정문제하고 뭔 상관이 있고, 지역사회 인지도 확대하고는 또 무슨 연관이 있다고 저런 허무맹랑한 말을 하고 있냐는 표정들이다. 사무처장이 먼저 입을 연다.

“그것은 좀 곤란합니다. 취지는 이해하겠는데, 오전에 주로 회의가 있고, 타 단체들과의 연대사업도 그렇고, 혹시라도 오전에 찾아오는 회원들이 간혹 있기도 한데...”

“사무처장님, 지금처럼 9시에 출근해서, 6시까지 일하고, 매일저녁마다 일끝내고 와서 하는 회원들 모임에 얼굴 비쳐야 하고, 뒤로 이어지는 술자리까지 매일저녁 10시, 11시까지 생활하면.. 필요한 공부는 언제 할 겁니까? 또 학교가는 그 집 딸래미 머리는 누가 빗어 줍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제 아무리 ‘헌신과 열정’을 가진 선교자라도 3년 넘기지 못합니다.”

 

“매일하는 회의는 점심시간을 끼고 할 것이고, 1시간 내에 다 마칠 겁니다. 연대사업은 절반으로 줄이되, 그것도 사무처장이 반드시 가야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간사들과 해당 위원회나 모임의 책임자들이 조정해서 갈 것입니다. 회원들의 방문은 오후부터 저녁시간으로 안내를 내면 되고, 사무처가 일하는 방식도 바꿉니다. 모든 실무 일의 70%는 해당 위원회나 모임에서 자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이관해 갈 것이며, 사무처가 가장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은 코디네이터로서의 역할이 될 것입니다. 행사의 하중은 거기에 맞게 재조정될 것이며, 상근 인력 2~3명이 해야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이 가장 우선해서 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각 모임을 준비하는 일도 총무들이 주관해서 하도록 하며, 꼭 부탁해야 할 일들만 사무처가 하도록 합니다. 병원에 다녀오거나 집안 일은 나머지 오전시간에 각자 조정해서 하되, 근무시간만큼은 반드시 단체 일이 최우선입니다. 당분간 월급이 적겠지만 대신 여러분에게는 자유로운 시간과 사회적 공익에 대한 보람이 돌아갈 것입니다. 그것도 앞으로 2년뿐이고, 3년째 되는 해부터는 지금 월급의 150%를 받게 될 것입니다. 회원관리와 우편물 발송, 전화연락 등은 적극적인 회원들의 자원봉사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일주일에 하루는 자유 시간을 줍니다. 대신 필요한 공부를 해야 합니다. 학습의 결과는 별도 보고서를 통해 홈페이지에 올릴 것입니다. 그리고 1년 후에는 토익시험을 치러야합니다. 필요한 학원비는 단체에서 지급할 겁니다. 대신 결과는 홈페이지에 공개합니다.”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뱉어내는 젊은 대표의 말에 누구는 여전히 반신반의하고, 누구는 묻고 싶은 말들에 입이 근질근질해져 있다.

“그걸 누가 다 합니까? 신대표가 상근이라도 할 겁니까?”

“아닙니다. 저는 일주일에 딱 두 시간, 사무처 주간회의하고, 한 달에 한 번 운영위원회 회의만 참석할 겁니다. 물론 대외적인 행사에서 제 역할은 별도로 하고요. 이 일들은 당장은 사무처 직원 세 명이서 하겠지만, 구체적인 일들이 추진되면서는 여기 계시는 운영위원들에게도 역할이 맡겨질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후원회원 360명과 적극적인 회원 150명의 명단을 이미 다 훑어 봤습니다. 그들 중에는 전직 보험회사 직원도 있고, 이벤트 회사 직원도 있으며, 현직 교사들도 있습니다. 곰곰이 따져보니 시민행동21이 가진 것이 많은 단체더군요. 우리는 이 분들의 힘과 지혜로 세상을 바꿔갈 것입니다. 사무처와 운영위원회가 그 힘들을 끌어낼 것입니다. 바로 지금, 우리부터 바꿔갈 겁니다.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딱 5년입니다.” 차분한 어투였지만,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창문으로 이미 햇볕이 가득 차 있다. 점점 뜨거워지는 것 같더니, 어느 틈인지 ‘이카루스의 날개’는 보이지 않고, 균형을 잃은 몸이 허공에서 주춤거린다. 구름 밑으로 바다가 보인다.

 

‘허걱’ 벌써 7시다. 아내는 이미 일어나서 출근을 서두르고 있고, 늦잠꾸러기 딸래미를 깨워야 한다. 이제 가방 꾸리고, 옷 챙겨 입는 것이야 제 손으로 하지만 머리 빗겨주는 일은 아직도 내가 해줘야 하는 일이다. 오늘을 받아쓰기 시험이 있다고 좀 일찍 오라고 했으니, 싫다고 해도 지금 깨워야 할 시간이다. 후다닥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IP *.186.113.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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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7 22:30:42 *.34.224.87
너야말로
몽상가이면서 실행가구나..

땅을 딛고 하늘을 바라보는 눈매가 매섭다.
다음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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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10.18 11:07:47 *.42.252.67
날아라~~~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처럼......
그리고 펼쳐라 너가 원하는 꿈을.......
이 곳은 아침이면 새가 나에게 전해는 메세지를 들으며
커피를 마신다.
오늘은 그 새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희도 처음에 날기가 어려웠어요. 하지만  노력하고 둥지에서 떨어지고 하면서
배웠지요. 아 또 한가지 방법은 천적을 만나 살아남기 위해
어느 순간 날게 되는 때도 있어요.
하지만 살면서 후자의 일은 겪지 마세요. 너무나 눈 앞이 캄캄해지기 때문이죠.....
노력하세요..... 그러면 오늘처럼 파란 하늘을 훨훨 날아 다닐 수 있어요.
그런데 님은 새벽부터 노력하고 있군요. 하늘을 날거들랑 나를 잊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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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0.10.18 16:56:45 *.236.3.241

잭 웰치를 능가하는 카라스마가 느껴진다 ^^
하지만 내가 아니라 우리가  하는 것이라 정겹게 느껴지누나.

내년 3월에 현업으로 복귀하는거야? 그 전에 원 없이 놀아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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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2010.10.19 15:23:23 *.203.200.146
아침의 108배 명상후의 그 느낌이 전해져 옵니다~
하루하루 이렇게 미래를 꿈꾸다 보면 어느덧 현실이 되어있으리라 믿습니다. 지금의 글을 미래의 현실에서 되짚어 읽는 날 얼마나 감격스러울까요.
우성오빠 말처럼 몽상가이면서 실행가...꿈꾸는 행동주의자이군요. 오빠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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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10.20 01:59:52 *.129.207.200
12시 부터 9시 근무는 좀 무리 아닐까요? 변화를 위해서 고통을 감수해야겠지만, 다들 놀고 사람 만날 시간인데, 그 시간에 일한다고 하면 오래 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뽕맛을 느껴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눈으로 직접 본 사람과 보지 못한 사람의 차이겠지요. 더 큰 기쁨과 보람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기꺼이 따르리라 생각합니다. 

딸 아이의 머리를 빗겨주는 아빠, 멋있는데요. 저도 딸내미 머리를 빗겨주어야 겠습니다. 

*저, 커피 다시 해요. 커피까지 끊으니 삶의 낙이 없더군요. 다음 오프때는 형의 커피맛을 오랜만에 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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