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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17일 19시 07분 등록

“꼭 드레스를 입고 참여해야 하나요? 챙겨야할 짐도 많은데.”

“예. 사장님의 방침 이라서요.”

 

10월 제주도에서 열리는 행사가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쏟아지는 전화 문의 내용이다. 신규 팀장들을 대상으로 제주도에 초청하여 하는 야외 행사시, 본사의 방침중에 하나가 참석자들의 드레스 복장 의무 착용이다. 숙박을 하는 행사인 경우 여성들은 기본적으로 챙겨야할 것들이 적지않다. 여러벌의 갈아입을 옷이며 화장품, 헤어 드라이기, 각종 액세서리, 구두 거기에다 드레스까지 챙기면 더욱 짐이 많아진다. 그래서 제주 공항에 내리는 그녀들의 얼굴에서는 본사의 뜻대로 맞추어 오긴 했지만 무언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표정들이 역력하다.

 

숙소에서 변복(變服)을 하고 행사장으로 들어오는 그녀들은 공항에서 내릴때의 모습을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멋진 변신을 하여있다.

앞치마를 걷어 제치고 한껏 멋을낸 도발적인 여인의 모습으로,

무도회에서 백마의 왕자를 기다리는 아리따운 여인의 모습으로,

수많은 꿈에 마음 설레던 열아홉 꽃다운 아가씨의 모습으로.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그들의 신분 이었기에 아마도 결혼식 웨딩드레스 이후로는 처음으로 이런 복장을 하였을터. 버스에서 내리는 그녀들의 표정은 첫날밤 신혼 초야를 치루는 새색시의 설레임과 같다. 다소곳, 어색함, 두근거림, 설렘, 기대감, 왠지모를 흥분 등. 요염한 스텝으로 도열해 있는 영업 매니저들이 건네는 빨간 장미꽃 한송이와 함께 에스코트를 받으며 입장을 하는 그녀들. 날씬한 혹은 풍만한(?) 각선미를 마음껏 자랑하며 걸어오는 그들의 모습에는 각자 살아온 나름의 인생의 자부심이 묻어 나온다. 남쪽나라 제주도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쌀쌀한 야밤에 팔뚝 살과 허벅지 살을 보일 듯 말 듯 드러낸채, 긴 드레스 복장의 그녀들을 보고 있노라면 여느 미스 코리아 대회 못지않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친후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인 페이스페인팅, 다트, 투호게임이 벌어졌다. 그중 쉬워 보이는 투호 게임 진행을 선택 했었는데 아불싸 그것이 오판이 될줄 누가 알았으랴. 종료후 나는 거의 기운이 탈진하여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멋지게 차려입은 그녀들이 갑자기 전혀 상반된 모습으로 돌변할줄 누가 알았겠는가. 드레스와는 상관없이 마트에서 할인상품 판매시, 벌떼같이 달려드는 아줌마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오로지 상품에 목숨을 거는 그녀들. 새치기, 밀치기, 옆치기 등을 이용하여 서로 먼저 하겠다고 아우성 치는 바람에 갑자기 게임장은 도떼기 시장으로 변하였다.

“줄을 서시오. 줄을. 이러시면 아니되옵니다.”

메가폰을 쥐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질러 질서를 독려해 보지만, 그녀들의 강력한 전투력 앞에 나의 방어선은 허물어져 내린다. 상품을 달라고, 화살을 달라며 마라푼다처럼 달려드든 그녀들 앞에 나는 무서움까지 느꼈다. 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돌아간 그녀들 뒤로는 전쟁의 참혹함의 흔적들이 어지럽게 놓여져 있다. 나뒹굴어진 상품 박스, 널려있는 화살들, 각종 쓰레기 등이 당시의 참상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서장에 불과하였다.

 

레크리에이션 시간이면 빠질수 없는 것이 댄스 파티이다. 남자 영업 매니저와의 커플 댄스시 함께 어우러지는 그들의 모습은 인도의 성적인 행위를 묘사하는 어느 부조상을 생각나게 한다. 람바다의 음악에 맞추어 질펀하게 드러나는 허벅지의 살은 나의 가슴을 죄어들게 만든다. 여인의 향기 ost(영화) Por una Cabeza에 맞추어 추는 그들의 탱고는 뇌쇄적 이기까지 하여 샤론스톤이 부럽지 않다.

 

과연 저들이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분들이 맞는지,

과연 저들이 꼭 드레스를 입고 가야 하냐며 항변하던 분들이 맞는지,

과연 저들이 와인잔을 기울인채 조금전까지 점잖을 떨면서 요조숙녀처럼 식사하던 분들이 맞는지.

그러다보니 가물가물 묻혀져 있던 예전 기억이 되살아 나기 시작했다.

 

경남권 영업 매니저 발령을 받으며 처음으로 맡은 업무는 가을 단풍 놀이 행사였다. 영업을 하는 조직의 특성상 사기 앙양을 위한 이같은 행사는 필수이지만 나는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했다. 이쪽 지역 조직원들의 특성중 하나는 한마디로 드세다는 데에 있어 선배들이 이곳을 떠날 때는 몸이 축나는 전례를 보아왔기 때문이다. 버스에 올라탄 그녀들과의 첫만남에서 나를 바라보는 그녀들의 눈빛은 심상찮아 보였다. 무슨 품평회를 하듯 나를 속속들이 바라보는 그녀들의 눈빛들. 기선을 잡아야 한다.

“반갑습니다. 여러분과 앞으로 동고동락을 함께할 싱싱한 총각 이승호 입니다.”

“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역시 그녀들은 확실히 외모를 떠나서 총각이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 단풍 놀이를 만끽하기 위한 여정의 출발점은 버스안 에서의 음주로 시작이 된다. 주거니 받거니 하던 그네들의 잔은 어느새 나에게로 표적이 되어 돌아왔다.

“이대리님. 참하게 생겼는데 한잔 하이소.”

“넵.”

마산의 무학소주와 매실주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막걸리의 3중주와 함께 조금씩 발그레해지는 그녀들의 표정이 절묘한 하모니를 연출해 나간다. 술도 한잔 먹었겠다. 돌아오는 차안에서는 기사님의 트롯트 메들리 테이프와 함께 4천만 국민들이 좋아하는 발바닥의 때를 벗기는 시간으로 이어진다. 말그대로 이동하는 버스안에서 춤사레가 펼쳐 지는데, 이런 자리에서 영업 매니저의 역할중에 하나는 그녀들의 흥을 돋구어 주는 것이다. 그런데 100퍼센트 아줌마 부대와 함께하는 가운데 남자 한사람인 내가 그들과 대적하는 것은 말이 그렇지 정말 쉽지않은 일이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몸은 말랐지만 악이다 깡이다 외치며 근성을 자랑하는 이승호가 아닌가. 마이크를 손에 쥐고 이박사의 트롯트 메들리로써 분위기를 압도하며 중간으로 파고 들면서 정면돌파를 한다. 수많은 여인네의 손을 잡고 돌리며 살리고 살리고를 외치고 비트박스와 함께 분위기를 최고조로 올린다. 그러면서 몸이 가벼운 강점을 살려 의자 팔걸이 받침대를 발로 디디며, 무협지의 주인공처럼 공중으로 붕붕 날아오르는 필살기가 버무려지니 아줌마들의 열광적 환호는 그칠줄을 몰랐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숨을 헉헉대며 속옷은 이미 흠뻑 젖은채 비오듯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훔치는 가운데, 최종 도착한 곳은 마산 어시장 부근의 아라비안 나이트 클럽. 예나 지금이나 왜 나이트 클럽은 모두다 이름이 야릇한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곳에서 다시 2차의 액션은 계속된다.

 

아직까지는 남성이 지배하는 가부장적인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성들은 대체로 자신의 의사와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사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많이 발견되는 독특한 질병중에 하나가 화병(火病)이다. 밖으로 터뜨리지 못하고 속으로 쌓아두기만 해서 울화병(鬱火病) 이라고도 불리우는 화병. 거기에 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고객들에게서 느끼는 스트레스가 한겹더 포장이 되어진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터뜨리는 스트레스 해소의 분위기는 대단하다. 특히나 좁은 스테이지 무대위에서 그것도 어두침침한 가운데 오색 조명이 난무하는 곳이라면 상상불허다. 수많은 여인네들과 어우러지는 수컷 한마리와의 막춤은 어쩌면 전등 불빛을 보고 날아드는 불나방의 군무와 같다고 여기면 된다. 술도 마실만큼 마셨고 분위기도 한껏 자유로운 공간에서 이따끔 그들은 이성을 놓기도 하여, 평소에 조용하고 얌전하며 새침떼기였던 분들이 갑자기 다른 모습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점점 나를 정점으로 원으로 둘러싸며 조여오는 그녀들. 말그대로 그들은 남편에게서, 사람들에게서, 자식들에게서, 시댁 식구들에게서 받았던 억눌렀던 감정을 영업 매니저를 통해서 대리 해소한다. 그러다보니 극단적으로 옷이 벗겨지고 속옷이 찢어지는 사태가 발생되기도 하여지고.

 

아침 7시부터 시작된 단풍놀이는 새벽 2시가 되어서야 끝이났다. 아줌마들의 안전 귀가를 위하여 친절하게 택시까지 잡아드리고 나면 그제서야 숙소인 여관으로 돌아가 샤워를 하며 오늘 일과를 마무리 짓는다. 영업부 초기에는 이런 행위들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내가 이짓 할려고 이곳에 입사했을까?”

“계속 이럴거라면 빨리 그만두는게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잠을 뒤척여 충혈된 눈으로 다음날 아침 해당 거래처를 들리면, 그녀들은 언제 그랬냐든 듯 어제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나를 반긴다.

“이대리님. 어제 너무 수고 많으셨어요.”

“덕분에 스트레스가 쫙 풀렸어요.”

그럴때면 어제 그토록 나를 힘들게 하였던 그녀들이 과연 맞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한껏 무르익었던 제주도 깊고 푸른밤의 이벤트도 드디어 마무리 되었다. 행사 동안의 긴장이 풀리자 그제서야 샥신이 쑤셔오는 가운데 굶주린 나의 배는 애꿏은 주인을 원망하며 소리높여 합창을 외친다.

“쪼르륵, 쪼르륵.”

그렇구나. 뷔페의 만찬이 차려져 있었는데도 나는 밥 한숟가락도 먹지를 못했었구나. 컵라면 하나를 뜯어 뜨거운 물에 면을 나무 젓가락으로 휘휘 풀어 헤치며 한입 넘기다보니, 문득 오늘을 함께 나누었던 그네들의 면면이 떠올려졌다.

 

자신의 발견 혹은 개인사와 집안의 많은 사연들 속에서 세일즈라는 직업을 선택한 그녀들.

하루에도 몇 번의 문전박대를 당함에도 꿋꿋이 다시 아파트의 초인종을 누르는 그녀들.

하나의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자신의 자존심을 핸드백 안에 넣어둔채 개척을 나가는 그녀들.

힘든 일이 있음에도 내색을 하지 못하고 환한 스마일로 고객을 상담해야 하는 그녀들.

그런 그녀들이 열심히 활동한 성과로 새로운 재충전을 위해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즐기었다. 우리는 작은 도우미의 역할로써 그녀들을 즐겁게 해주었고, 땀흘리는 현장의 활동들 덕분에 우리 제품이 홍보가 되고 그로인해 우리는 월급을 받고 있다.

그런 그녀들이 있기에 우리가 존재한다.

 

라면 가닥가닥이 그녀들과의 인연을 이야기해 주듯 길게 늘어지는 가운데, 매운 국물을 한움큼 목구멍으로 들이키니 속이 그제서야 따근해졌다.

제주도의 차가운 바다 바람도 이제 한결 누그러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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