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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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첫 번째 벽돌공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첫 번째 벽돌공이 대답했습니다. "일당 받는 잡부요"
두 번째 벽돌공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두 번째 벽돌공이 대답했습니다. "벽돌을 쌓는 중이요"
세 번째 벽돌공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세 번째 벽돌공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지금 아름다운 성당을 짓고 있는 중입니다."
오래된 이 이야기가 다시 떠오른 것은 며칠 전 아침의 일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우연이었다. 미리 끓여놓은 미역국으로 맛있게 새벽밥을 먹는 신랑 옆에서 이런저런 이야기 중 무심코 내가 던진 한 마디였다.
“오늘 우리 집 무지 깨끗하지 않아?” 스스로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신랑의 대답 또한 아주 만족스러웠다. “오늘만이 아니라, 요즘 계속 깔끔한데. 음식도 신경 쓰는 것 같고...... 그런데 왜? 살림의 여왕이 되기라도 하려고? 갑자기 청소랑 요리가 좋아졌어?” 내가 음식하고 살림하는 것을 잘하지도 못하고 즐기지도 않는다는 것을 익히 알아왔던, 그리고 누누이 들어왔던 신랑이 무언가 의아했던가 보다.
밥을 먹으며 잘 듣고 있음을 열심히 표시하는 신랑 덕에 흥이 나서 아직은 감춰두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뭐, 굳이 감춘다기 보다는 이런저런 나의 떠다니는 이야기에 때론 심각하게 반응하는, 내지는 꼭 코멘트를 달고 싶어하는 신랑과 이야기를 나누기엔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나 할까.^^;;)
이번 오프라인 수업을 준비하면서 내가 가졌던 첫 번째 문제를 풀었다는 이야기.
회사를 그만둔 지 벌써 1년이 넘어가는데, 내가 꿈꾸었던 나를 위한 시간은 좀처럼 내기 힘들고 점점 전업주부의 일상에 치이는 듯한 현실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 무언가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어쩌면 있어 보이는) 일이 하고 싶고, 매일 되풀이되는 집안일이 마치 멍에처럼 단순 무식한 짐으로 느껴져서 시간이 아까웠다는 것. 열심히 해도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고 잠시 소홀히 하면 바로 쌓이는 단순노동들이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일인가, 또 해야 하는 일인가 마구 회의가 느껴졌다는 것들...
가끔은 일을 하면 바로바로 성과가 보이던 옛날이 생각나면서 사람들과 어울려 늦게까지 회의를 하던 것조차 그리워지더라는 이야기들. 그래서 다시 일해 볼 생각이 없냐는 말에 잠시 흔들리기도 했었다는 것...
그런데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냐는 말에 지난 주 책에서 읽은 ‘패니 마이’의 이야기를 했다. 1980년대 빈사상태에 빠졌던 담보대출 회사인 패니 마이가 GE나 코카콜라를 앞질러 시장의 8배에 이르는 성장을 했고, 담보 대출 패키지를 만들고 심사하는 그 일에서 깊고 순수한 열정을 느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도저히 재미있거나 멋지지는 않게 보이는 일의 과정 속에서 계급과 출신 배경, 인종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내 집 마련이라는 미국인의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돕는다는 핵심 이념을 찾아내고 스스로 미국 사회의 건강한 뼈대가 된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된 열정적인 사람들의 모습은 그 자체가 참 멋있었다.
결국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던 나의 고정관념은 내 스스로 만든 감옥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또 해야 하는 많은 일의 모든 부분들이 다 너무 즐겁고 재미있지는 않다는 진리, 그런 부분조차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고 규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 내가 지금 새겨야 하는 이야기였다.
“그럼, 지금 청소하고 빨래하고 밥하는 것의 의미는 뭐야?”
“우리 가족과 함께 하는 것,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평화롭고 안정되고 건강한 가정을 만드는 것. 지금 내가 좋아하지 않지만 해야 하는 일을 즐겁게 하게 하는 의미야.”
내 긴 이야기를 열심히 듣던 신랑이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벽돌공과 성당이야기라고.
그렇구나. 내가 바로 그 벽돌공이었구나. 오래전 그 이야기를 들을 때 감동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진짜 의미를 이제야 내 삶에서 발견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집안일이 하기 싫다고 생각할 때보다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찾고자하는 지금의 생활이 더 만족스럽고 즐거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의외의 발견은 하기 싫은 일을 할 때 늘어지고 정리가 되지 않던 일상의 순간들이 더 긴장되고 활기차졌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단순 반복적인 일들을 효과적으로 최소화하고 소요시간을 줄일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되었고 열심히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우선 일주일 동안 나의 시간의 사용을 적고 그 흐름을 따라가 본 후, 일하는 시간대와 횟수를 정돈하고 보다 효과적으로 일들을 통합하고 집안일을 하는 목표 시간을 세웠다. 그러고 나자, 집안일하는 그 시간이 마치 가끔 마감시간의 압박을 받으며 일할 때처럼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흥미진진한 시간이 되어 버렸다. 지겹고 따분한 벌로서의 담장 칠하기가 동네 아이들의 즐거운 놀이가 된 톰 소여의 이야기처럼 나는 집안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방법개발을 통해 나름대로의 즐거움을 찾아냈다.
그 결과로 원래 집중하고자 마음먹었던 대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온전히 아이들만 바라볼 수 있었고 때로는 밀린 집안일을 과감히 지워버리고 눈감아 버리는 작은 파격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나의 편안함과 즐거움이 우리 가족에게 즉각 영향을 끼친 것은 덤으로 얻은 소득이었다.
아직도 살림의 여왕이 될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지만 최소한 살림의 취약함이 내 강점을 가리는 취약분야는 아니라 자신하게 되었다. 이제는 진정한 내 강점분야를 마음껏 발휘할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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