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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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 / [10-3 컬럼]
가을햇살이 좋은 날이었다. 의료분쟁과 관련된 소송 건으로 대법원에 다녀왔더니, 병원이 난리가 났다. 환자의 가족과 친척들이 내지르는 고성이 3시간 째 이어지고 있었다. 급히 사무실로 모시고, 곧 이어 수술을 집도한 교수도 들어왔다. ‘왜 그러시느냐?’ 고 물었다. 70세의 할머니가 심장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 계신지 벌써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혼수상태에 계신 상황이었다. 그들의 주장은 간단했다. “빨리 퇴원시켜 달라!”
환자는 인공호흡기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으며 자가호흡이 불가능하다. 퇴원을 하기 위해 인공호흡기를 띠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한 조치는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에게 ‘자살방조죄’가 적용되기에 실행할 수 없었지만, 도의적으로도 수용할 수 없는 요구였다. 의사는 환자의 상태가 좋지는 않지만 자신을 믿고 조금 더 기다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가족들은 고집을 꺽지 않았다. 집으로 모시고 임종을 맞이하기를 원했다.
가족들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다. 고령의 환자는 심장 이외에도, 신부전증과 폐렴으로 이미 합병증이 온 상태였다. 임종이 가까웠다고 얘기해서 모든 가족이 모여서 마취를 멈추었을 때, 환자는 ‘아파, 아파’ 소리만 내서 가족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고 한다. 치료비는 이미 천 만원이 넘어갔다. 수술을 집도한 교수는 시간을 더 달라고 했지만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가 갑자기 상황이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가족들은 ‘회복된다는 각서를 써주지 못할 거면, 집으로 모시게 퇴원시켜 달라’ 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교수는 소리를 높였다. ‘의사생활 30년에, 환자를 살려달라는 요구는 많이 들었어도, 환자를 죽여달라는 요구는 처음이다.’ 이런 가족이 어디 있느냐?’고 화를 냈다. 가족들도 소리쳤다. “회복가능성도 희박하고, 의식도 없이 인공호흡기로 생명만 연장하면, 그렇게 2~3년 사시면, 그게 삶이냐? 아버님도 똑같이 4개월 동안 혼수상태로 누워 계시다가 결국 돌아가셨다. 돈 없어서 자살하는 사람이 세상에 넘치는데, 집안경제는 파탄 나고, 남은 가족들의 삶은 병원에서 책임 질거냐? 제발 환자와 보호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달라!”
이곳에는 숫자놀음이 없다. 기획팀에서 사용하던 전략, 포지셔닝 같은 경영용어도 없다. 그저 현장이 있을 뿐이다.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폭력이라도 휘두를 것 같은 살기등등한 기세, 거친 욕설과 고성, 무릅을 맞대고 앉아 내뿜는 격한 숨소리...단 한 순간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진검 승부처다. 협의를 위한 자리는 서로의 이견만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나는 그들을 돕고 싶었지만 방법을 찾을 수 없었고 설득하지도 못했다. 답답한 공기가 사무실을 감싸고 있었다. 가족들은 ‘이젠 더 이상 치료비를 낼 수 없다’며 짜증스러워 했고, 법체계와 도덕을 넘어서는 그런 주장을 해야 하는 자신들의 어쩔 수 없는 입장을 곤혹스러워 했다. 결국 다음 주 월요일 아침까지 환자의 상태를 보고 다시 의논하기로 한 후, 헤어졌다.
두 개의 절박한 장면이 머릿속을 부유했다. 첫 번째 장면은 행복한 삶을 이야기하던 최윤희씨의 동반자살이라는 선택이었다. 그 장면은 나를 매우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녀는 쉽지 않은 인생의 역경을, 만화 주인공 ‘캔디’ 처럼 이겨내며, ‘나는 재미있게, 남은 행복하게’ 살아가는 롤 모델이었으니까.. 겉으로는 행복을 얘기하고 불행했던 것이었을까? 아니다. 질병의 고통은 그 누구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700 가지 통증에 시달려 본 분은 제 마음을 이해해 줄 것’ 이라는 그녀의 유서는 참기 힘든 고통을 겪으며,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사람의 절박함을 보여 준다.
70세 할머니와 그 가족의 외침은 또 다른 절박한 장면이었다. 치유의 희망도 없이 죽는 날까지 통증에 시달리며, 인공호흡기로 생명을 연장해야 하는 것이 삶이라면, 가족들에게 곤혹스러운 짐으로 여겨져야 하는 그 삶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삶은 죽음으로 이어지고, 죽음은 다시 삶을 일깨운다. 두 개의 절박한 사연은 안락사에 대한 찬반을 넘어서,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 라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럼, 지금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데?’
살아가면서 깨닫는 것은,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유쾌하게 살고 싶고, (스승님 말씀처럼) 한 사람에게라도 웃음을 줄 수 있는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다. 욕심을 낸다면, 나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완전 연소하는 삶 또한 가고 싶은 길이다.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지금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잘 모르겠다. 그런 종류의 질문에 정답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저 복잡한 마음으로 책장에 널린 책들을 뒤적이다가, 류시화가 전하는 법정 스님의 말씀을 읽는 순간, 고개가 끄덕여지고, 위로가 되었다. 인간이 태어난 이유는 모두 다르겠지만, 생은, 우리가 태어난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그래,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창조를 이루어 낼 때 행복감을 느끼기에 시를 쓰고 피아노를 친다. 행복하기 위해 그토록 사랑을 찾고,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해,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다.
내가 스님에게 어떤 기도를 올렸느냐고 묻자, 스님은 말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다 행복하기를 기원했습니다.”
-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법정 잠언집/ 류시화 엮음] -
ps.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하지만,
환자들의 이야기는 이곳에서만 읽혀지기를...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늘 질문하고 또 가지고 있는 잘 사는 것에 대한
이론은 탄탄한데 문제는 거기서 터지고 마는 거야.
단순히 사는 사람이나 좀 부족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치수가 높은 것처럼 좀 모르는 것이 많아야 하는데
너무 많이 알아 거기에 맞춰 행복을 맞춰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다 보니
힘들고 더 안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
최윤희씨의 육체적 병도 있었지만 스스로 행복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기에
본인이 안 행복하다는 것을 너무 빨리 알아버려서 세상을 떠나는 것도
행복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사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아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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