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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18일 19시 51분 등록
그림을 좋아하는 직장인이 있다. 퇴근하면, 화실에 가서 그림을 그린다. 그림에서 무아지경을 경험하고,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는 것을 느낀다. 일상에서 느꼈던 고민과 나쁜 감정은 말끔히 사라진다. 정확히 꼽을 수는 없지만, 그림이 그의 생활에 활력을주는 것은 확실하다. 그림에서 꿈을 발견하고,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낀다. 그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퉁을 놓는다. 

'그거 왜 하는데?'

부업을 하거나, 영어공부 처럼 돈되는 일을 할 것이지, 취미 생활에 시간을 투자하냐는 이야기다. '그거 왜 하는데?'는 마법의 질문이다. 마땅히 대응할 답이 없다. 그저 '그냥' 내지는 '재미있어서'라는 궁색한 답변을 할 뿐이다. 상대는 '한가하군' '팔자 좋네' 라는 식으로 쳐다본다. 

눈에 불을 켜고 돈버는 사람은 돈을 벌까? 살림이 어려우면 부업을 생각한다. 과외도 하고, 대리운전도 한다.가끔 파출부로 직장인이 온다. 낮에는 회사를 다니고, 저녁과 새벽에는 식당에서 일을 한다. 이들은 경험이 없기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쉬어야할 시간에 쉬지 못함으로, 표정과 태도가 좋을리 없다. 손님이 없으면 화장실에서 존다. 시간이 되면, 5분의 에누리도 없이 돈을 받아서 돌아간다. 일을 잘해주어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것 받고 다시는 오지 말라는 식으로 일당을 준다. 그녀도 돈을 받기 보다는, 돈을 채간다. 

부업은 본인에게도, 손님에게도 사장에게도 못할 짓이다. 5, 6만원은 큰 돈이지만 한계가 있다. 생활비와 교육비는 점점 늘어나고, 그때마다 부업을 늘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업으로는 푼돈밖에 벌수가 없다. 본업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생활은 팍팍해지고, 전형적인 워킹푸어의 삶이 된다. 

그림에 관심이 많아서, 몇몇 작가를 찾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장 돈 되는 일만 하다가, 붓을 놓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이를테면, 학습지라든지 사보의 삽화를 그리는 일이다.이런 일들은 작가에게 부업에 해당한다. 클라이언트가 요구를 하면 그대로 그리면된다. 시키는 일만 하는 순간, 작가는 오퍼레이터로 전락한다. 당장 몇십만원의 현금을 얻을 수 있지만, 10년 후에는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이런 부업으로 떼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같은 그림, 비슷한 감각은 따라하기도 쉽고, 빨리 제작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단가가 낮은 경쟁자가 나타나기에, 오래할 수 없다. 

정보의 민주화, 기술의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고만고만한 결과물이 판을 친다. 이런 시대에서 차별화 도구란, 그 일을 하는 '나'이다. 경영의 미래는 산업화 시대에 파묻혀서, 무시되었던 '나를 발현한는 것'이 화두가 된다. 남들과 구분될 수 있는, 독특한 나를 발견해서 확대시키는 것이 차별화다. 차별화가 마켓팅이며, 손님이 나를 찾는 이유다. 

부업 보다 시급한 것은, 나와 나답게 일하는 법을 찾기다. 그것은 그림이 될 수도 있고, 노래가 될 수도 있으며, 글쓰기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자양분은 본업에 영향을 준다. 취미가 취미로 끝나는 이유는, 단기간에 성과를 바라기 때문이다. 2, 3개월 그림 배워서 어디다 써먹을 것인가?  마음을 정했다면 10년은 할 생각으로 시작해야 한다.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니라면 10년을 유지할 수 없다.

'팔자 늘어졌네'라는 사람들의 시선을 관찰해보자. 그들은 예술이 생리작용으로서 인간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개인의 무지와 게으름으로 쌓인 욕구불만을, 예술과 취미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푼다. '그게 돈이 되느냐?' '지금 그거 할때냐?'라는 식으로 말이다. 

얼마전 '타블로 사건'은 이런 종류의 사람들의 예다. 타블로가 스탠포드를 나왔건, 말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그들은 자신의 욕구불만을 엄한데서 푼다.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용기있게 해가는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며, 꺽어버릴 생각을 한다. 진실이 밝혀지기 전, 그들은 분기탱천했다. 지금은 고소를 취하해 달라고 한다. 한심하다. 

'그거 왜 하는데?'라는 질문은 마법의 질문이다. 산업화 시대까지는 이 질문이 먹혀들었다. 지금은 아니다. '나'라는 개성이 없으면, 망한다. 그러니까, 이렇게 대답하자. 

'넌 뭐 믿고, 안하는데?'

안철수 교수는, 의사생활을 하며 백신을 개발했다. 백신을 개발한 이유는 단지 흥미가 있어서이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매일 3시간씩 7년동안 백신을 만들자, 백신 개발과 창업이라는 또 다른 기회로 연결되었다. 물론, 그는 이런 미래를 예상하지 못했다. 

산업화 시대의 경영이란, 간판을 달고 일을 시작하는 식이다. 미래를 예상할 수 있고, 미래는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 과거는 과거일뿐이다. 미래는 과거에 뿌리를 두지 않는다.  미래의 경영은, 실험내지는 어떤 의도에서 시작한다. 정보의 민주화, 전세계 사진과 비디오를 함께 보자는 의도, 혹은 웹상에 환상의 공간을 만들어보자는등 말이다. 일확천금을 벌겠다는 탐욕에서는 이런 의도가 생겨나지 않는다. 이들은 똘아이나, 프리크(freak; 괴물)로 취급 받다가 어느 순간 실리콘밸리와 산업계의 별이 된다. 

본업을 하되, 마음이 땡기는 일도 하자. 본업에서 번 돈을 마음이 땡기는 일에 투자한다. 두가지가 만나는 순간, 나는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대체할 수 없을수록, 작업 단가는 올라간다. 혹은 소비자의 뇌리에 각인할 수 있다.  

(아래 영상은, 소설가 김영하의 TED 강연이다. 제목은 '예술가가 되어라. 지금 당장'이다. )


IP *.123.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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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10.19 05:05:51 *.10.44.47
어이! 너 맑은 맞아?  
보면 볼 수록 신기하다.
사람이 이렇게 변하기도 하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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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10.19 05:09:21 *.123.110.13
내가 너무 돈을 밝혔나? 

걱정해주어서 고마우이. 덕분에 많이 좋아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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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9 05:17:10 *.72.153.58
땡큐 동영상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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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2010.10.19 10:41:48 *.203.200.146
오빠가 그림을 그리면서 느끼는 쾌감이 예전에 한동안 모닝페이지를 쓰면서 아티스트데이트를 하면서 느꼈던 느낌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봐요. 그림을 그리면서 혹은 춤을 추면서 혹은 글을 쓰면서...제 나름대로의 나 다움을 느낄 수 있는 뭔가에 매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예술이 나의 일상이 되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오빠의 글과 그림에 자극받아 다시 아티스트 웨이 매뉴얼 12주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음...김영하...예전 3번째인가? 그 녀석이 완소하는 작가였는데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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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10.20 02:11:50 *.129.207.200
난 모닝페이지 보다는, '저널'에 관심이 많아. 미국인들의 저널이란, 우리 나라의 '논술' 같은 개념이 아니라, 일기 같은 형식이지. 노트에 그림, 글, 콜라쥬 다양하게 표현한다. 모닝페이지를 이런 방법으로 해보는 것도 재미있으리라 생각한다. 관심 있으면, 이 사이트 가봐. http://www.1000journals.com/index.php?view=Journals/Index

김영하, '빛의 제국' 이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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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0.10.19 16:20:23 *.236.3.241
땡큐~ ~~ SO MUCH ^^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걸 보니 갈급한 부분을
제대로 건드렸나 보다~~

김영하, 말도 잘 하네. 쫓겨서 쓴 글이 왜 술술
풀렸는지 이제 알았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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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10.10.20 11:40:23 *.108.49.78
저널! 
글과 이미지를 함께 아우르는 맑은님의 재능에 잘 어울리는데요!
밥장의 시작도 저널이었던 것 같고, 대니고레고리 같은 사람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저널의 대중화에 초점을 맞춰봐도 기회가 될듯.^^

동영상 잘 보았어요.
yes24의 인터뷰와 겹치는 내용이지만 그의 육성으로 들으니 더 좋아서
내 글쓰기 카페에도 소개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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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10.21 03:48:15 *.129.207.200
밥장을 잘 아시는군요. 미탄님은 얼리어답터들의 얼리어답터세요. 

밥장은,
체계적으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잘 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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