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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24일 11시 15분 등록

칼럼. 어른아이 용현이

진정한 자녀교육은 집에서, 부모가 바빠 자신들의 생활을 영위하는 동안에 이루어지는 것임을.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배운 다음, 나중에 반대로 할까, 모방할까를 결심한다. 대개 부모는 어느 쪽이 옳다고 딱히 확신하지 못한다. 부모가 항상 아이들의 본보기가 될 만한 이상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 -『포트폴리오 인생』, 찰스 핸디 

용현이는 올해 우리반 학생이다. 1학기 때 용현이에 대해 특별히 기억나는 사건 2가지가 있다. 첫 번째 기억은 우리반 치헌이가 자기 엄마를 놀렸다는 이유로 싸우다가 덩치큰 치헌이가 용현이를 밀어버리는 바람에 넘어지면서 책상모서리에 머리를 찧고는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는 용현이의 얼굴이다. 아이들의 제보를 받고 용현이에게 달려가보니 용현이의 머리에 500원짜리 동전크기만한 구멍이 나있었다. 그날따라 보건선생님이 출장을 가셔서 학교안에서 응급처치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일단 거즈로 피를 닦았는데 멈추지 않고 계속 샘솟았다. 태어나서 그렇게 피가 솟는 것을 처음봤다. 그걸 지켜보는 나도 우리반 아이들도 겁이나고 당사자인 용현이도 겁에 질려 얼굴이 하얗게 되었다. 용현이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정형외과로 가서 치료를 했다. 다행히 꿰매는 수술이 잘 되고 용현이 엄마도 남자애들끼리 싸우다가 다칠 수 있다고 하셔서 원만하게 해결이 되었다. 두 번째 기억은 우리반 경한이가 소풍을 다녀온 뒤에 들려준 용현이의 무용담이다. 소풍장소에서 헤어지고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놀았는데 분수대에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비는 곳이 있었다고 한다. 분수대 안에 떨어진 동전을 본 용현이가 그 안으로 들어가서 동전을 모두 주워 나왔다고 한다. 용현이가 동전을 줍는 것을 본 어른들이 박수를 치기도 하고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소식을 전해준 아이는 용현이의 돌발행동이 옳지는 않지만 재밌고 대단하다며 열을 올리며 말을 해주었다. 이 두 가지 기억을 떠올리면서 용현이 속을 당체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2학기에 들어 우리 반 태광이가 교복상의 뒤에 낙서가 되어있다며 불평을 했다. 벌써 2학기 들어 3번이나 볼펜과 형광펜 등으로 낙서를 해놓았다고 울먹이며 이야기를 한다. 1학기 때도 태광이를 비롯 우리반 3명의 힘 약한 아이들을 몇 명의 아이들이 괴롭힌 적이 있어 주의를 줬었다. 가해자인 아이들에게서 다시는 안 괴롭히겠다는 약속을 받아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지켜지지 않은 모양이다. 괴씸한 생각이들어서 학급 친구를 괴롭힌 적이 있는 사람은 자신해서 양심선언을 하라고 반아이들 전체에게 말했다. 그리고 기다린 하루동안 내가 예상했던 아이들은 오질 않았다. 대신 엉뚱한 아이들만 와서 태광이에게 책심부름을 시키거나 때리곤 했다며 선생님께 말하고 나니까 속이 후련하다며 돌아갔다. 하루 더 시간을 주었다. 예상했던 아이들중에 1명 빼고 다 와서 자신들이 괴롭힌 내용을 이야기했다. 끝까지 오지 않은 아이는 용현이었다. 자진해서 양심선언을 했던 아이들이 우리 반에서 가장 심하게 아이들을 괴롭히는 아이로 용현이를 꼽았다. 다시 하루 더 시간을 주었다. 역시나 용현이는 양심선언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2학기 학급 분위기’ 조사를 했다. 우리 반에서 친구를 많이 괴롭히는 친구,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친구, 욕을 가장 잘하는 친구 등에 대한 설문지를 돌렸다. 아이들은 역시 솔직했다. 친구를 많이 괴롭히는 친구와 욕을 가장 잘하는 친구로 용현이가 1위에 뽑혔다. 학급분위기조사 설문지를 걷는데 용현이가 손을 들더니 그제야 양심선언을 하겠다고 하면서 자신이 괴롭힌 많은 아이들 중에 딱 한명의 이름만 말하고는 ‘말했으니까 혼나는 거 아니죠. 선생님’ 하면서 자리에 앉는다. 괴씸하다.

지속적으로 약한 3명의 아이들이 타깃이었다. 가해자도 항상 같은 아이들이었다. 그중에 용현이가 아이들을 괴롭히는 강도가 가장 심했다.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1학기때처럼 안 괴롭히겠다는 약속만으로는 부족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상담선생님께 상의를 했더니 학급전체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집단상담을 1번하고, 가해자인 아이들만 모아 지속적인 집단상담을 하는 방법을 권해주셨다.

가해자 아이들에 대한 상담을 한 첫 날 아이들을 돌려보내고 상담선생님께서 직접 나를 찾아왔다. 용현이가 어떤 아이냐고 물으신다. 난 가해자인 6명의 아이들에 대해 상담선생님께 누가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 자세히 말씀을 드린 적이 없는데, 대뜸 집단 상담을 한 아이들 중 용현이가 너무 특이하다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신다. 용현이는 상담을 시작하면서 아이들에게 어떤 녀석이 자기 이름을 말했냐며 씩씩거리며 추궁하고 알면 가만히 안 두겠다고 선생님이 있는 앞에서 계속 중얼거리며 말했다고 한다. 심지어 문장완성검사를 하고나서는 보여주기 싫다며 그 자리에서 종이를 구겨 입속에 넣고 씹었다가 휴지통에 뱉었다고 한다. 나중에 용현이가 씹어뱉은 종이를 펴 읽어보았더니 ‘나에게 두려운 일은__________이다.’라는 빈칸에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을 써놓았다고 한다. 용현이와 이야기를 해보니 일반적인 중1수준의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아 걱정이 된다고 하셨다. 2번째 집단상담을 했을 때도 문장완성검사를 했는데 ‘내가 가장 두려운 사람은 _______이다.’라는 빈칸에 ‘죽으려 하는 사람’이라고 써놓았다고 보여주셨다. 상담선생님은 이 문장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확실히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겠다고 하신다. 자신이 직접 그러한 장면을 본 것인지 아니면 그냥 대중매체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겠다고 하신다. 상담선생님께서는 용현이는 돈을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성공하려는 욕심이 어떤 아이보다 큰 데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상담을 하는 내내도 종종 자신을 제어 못하고 옆사람을 때리곤 했다고 하셨다. 상담선생님은 중1의 정서가 아니라며 이 상태가 지속되면 급기야 나중에 엄마를 때리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르겠다고 부모와의 상담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용현이는 엄마와 단둘이 사는데 형편이 어려워 동사무소에서 한부모가정으로 학비지원을 받고 있다. 도대체 용현이에게 왜곡된 가치관을 심어준 것은 무엇일까? 아버지가 없는 결핍일까? 사는 것이 힘든 엄마의 푸념 때문일까? 가정에서 또는 학교에서 용현이가 자신도 모르게 배운 암묵적인 메시지가 있을 것이다. 원인이 무엇이든 너무나 일찍 철이 들어버려 왜곡된 시선을 갖게 된 용현이가 안쓰럽기만 하다.

IP *.203.20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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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10.25 09:00:48 *.42.252.67

용현이게 필요한 것은 사랑과 관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중학교 1학년이기에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어서 보여.

지속적인 관심과 인정이 그를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잘 한 일에 대한 선물과 칭찬이 용현이의 마음에

자꾸 반성이 시간이 자주 주어지면 바뀔 것 같구나.

아직 말랑말랑한 상태이잖아 솜털이 막 벗겨지는

병아리에서 닭이 되는 상태이니 말이야.

너의 내공이 정말 필요한 손길이 많은 곳 그곳이 학교라는

현장이구나! 포기하지 말고 말썽을 부려도 계속 기회를 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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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10.25 18:01:56 *.10.44.47
블로그에서 봤던 낱글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이루었구나! 
혼자 반가워하고 있는 거 보이니? 연주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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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5 18:19:14 *.230.26.16
오늘 글이 특히 마음에 와 닿는다.
그동안의 글보다 더 연주샘의 마음이 담긴 글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문득 지난번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이 생각났다.
하나의 이슬방울 속에도 달 전체가, 그리고 우주 전체가 담겨있다는 것...
용현이도 자신이 그런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연주샘이 용현에게 '황금씨앗'을 줄 수 있는 그런 선생님이면 참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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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6 23:53:26 *.34.224.87
어쩌다가,
그런 빈칸에  그런 문장을 완성했을까..

그저...널,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잊지 않도록 알게 해 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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