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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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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24일 22시 32분 등록

사실과 진실의 차이는 무엇일까. 위키피디아의 정의에 따르면 사실이란 실제로 일어난 일, 진실은 왜곡이나 은폐나 착오를 모두 배제했을 때에 밝혀지는 바를 말한다. 두 단어가 알 듯 모를 듯 뉘앙스를 달리 하는 건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사실이 왜곡되기 때문이다. “진실은 여러 개가 있지만, 사실은 하나 밖에 없다"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羅生門)>은 참을 수 없는 진실의 가벼움을 제대로 보여준 영화다. 사무라이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 증인들은 각기 다른 진실을 풀어놓는다. 사무라이의 살인범으로 관가에 잡혀온 도적은 사무라이의 아내를 두고 정정당당한 승부 끝에 벌어진 일이라고 항변하지만, 사무라이의 아내는 도적에게 겁탈을 당한 충격으로 기절해 자신은 아무 것도 목격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무당에 빙의한 사무라이는 겁탈을 당한 아내가 오히려 도적 편에 붙어 자신을 죽이려 했으며 치욕감에 자결한 것이라고 말했다. 살인 현장을 숨어서 지켜보았던 나무꾼에 따르면 사무라이의 아내는 도적의 아내가 되어 달라는 꾐에 넘어가 도적과 사무라이의 결투를 유도했으며, 두 사람이 피 말리는 결투를 벌이는 사이 도망쳤다. 여러 사람의 진실을 종합하면 사실이 드러날 법도 한데 증언이 더해질수록 사실은 오리무중으로 빠져 버린다.

 

머리에 피가 마를 나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진실의 상대성에 눈을 뜨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에는 좀더 성숙해져서 사람들 사이의 채워지지 않는 간극을 법과 같은 규범이 채워줄 것으로 기대한다. 문제는 타인에게는 그렇게 기대하지만 자신의 진실에 대해서는 여전히 상대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진실이라는 믿음이 행동을 이끌어내는 힘이기에 이것이 인간에게는 숙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진실에 대한 믿음은 때로 죽음의 두려움도 이겨낸다. 조국을 배신한 대가로 시신을 거두지 말라는 크레온 왕의 경고를 무시하고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거두어 사형에 처해진 안티고네는 자신의 신념과 사회의 규범이라는 대극적 가치 사이에서 힘겨운 줄다리기를 마다하지 않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잘 보여준다.

 

개인의 시대가 도래한 지금 안티고네는 개인 對 사회가 아니라 개인 對 개인의 부조화를 의미하는 키워드로의미가 전환되고 있다. 과거 숭앙되었던 공동체의 가치는 개인의 가치에 밀려 빛을 잃어가고 있다. 종교가, 국가가, 이제는 기업이 그렇다. 아직은 기업이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새로운 시대를 맞은 개인은 전례 없는 자유와 권한을 누리고 있다. 개인의 진실이 어느 때보다 힘을 발휘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뜻이다. 개인의 주도로 일과 생활이 분배되는 포트폴리오 인생이 가시화되고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진실은 자칫 혼란을 불러 오기 쉽다.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가수 타블로의 학력 논란에서 본 것처럼 균형점을 잃은 진실은 흉기 이상으로 위험하다. 우리는 바야흐로 모든 것이 옳고 모든 것이 의미 있는 상대주의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끄는 말은 많은데 정작 고삐를 쥐어야 할 마부가 없는 마차 꼴이 되지 않으려면 찰스 핸디가 말한 구획짓기가 절실히 필요할 듯 하다. 나의 즐거움이 남의 즐거움을 훼손하지 않도록, 나의 노력이 다른 사람의 상처가 되지 않도록, 이왕이면 나의 노고가 이웃들의 생활의 질을 높이는데 일조하도록. 찰스 핸디는 성공적인 결혼 생활의 비결로 인생의 사이클이 바뀜에 따라 결혼 패턴을 적절히 바꾸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포트폴리오 인생도 마찬가지다.

 

진실의 범위를 나에게서 우리에게로 확장시키는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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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10.25 11:07:36 *.42.252.67


진실의 범위를 나에게서 우리에게로 확장시키는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 부분과 제목을 읽으며 나의 진실은 무엇인가? 라는 의문으로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을 가져보기에 좋은 시간이었어.
영화나 책의 사례보다 본인의 이야기가 더 많이 녹아있다면
먼 가상적인 이야기보다 더 가깝게 느껴질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 즉 무엇때문에 이 글을 쓰고 싶었던 마음이 들었을까?
하는 마음이 빠진 것 같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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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10.25 17:50:35 *.10.44.47
언니, 그래도 상현오빠는 항상 실마리를 남기잖아요. 
무엇이 이 글을 쓰고 싶게 만들었을까를 찾아내고 싶게 만드는 게 오빠 글의 매력인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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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5 17:54:57 *.230.26.16
개인이 최우선시되는 삶, 바로 벼룩의 삶인데
이런 개인적으로 너무도 바람직한 삶들이 모여 가장 이기적으로 흐를 위험이 높은 사회. 
절대적인 가치는 존재하지 않고 진리조차 상대적이라고 이야기되는 사회.
그런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나만의 진실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진실이 함께 공유되는 사회?
그런 이야긴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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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6 23:48:01 *.34.224.87
진실?
아무리 고상한 척 해도 결국은 먹어야 산다는 것.
뭘 먹든, 배부르면 화장실 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 했던 문장으로 기억하는데..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그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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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0.10.27 09:58:54 *.186.57.58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
이 오묘한 조합에 혹시 뭔가 우리가 찾아갈 키워드가 있지는 않을까요? (모두에게..ㅎㅎ)
상현아.. 좋다야..
사실과 진실이야기부터.. 그럴듯하게..안타고네 이야기로 넘어가더니..(이 부분이 조금 약해보이기는 한데)
개인의 시대로 다시..포트폴리오 인생으로 끌어나가는 힘이 좋다야.. ㅎㅎ
마지막 한 문장으로 마물한 것도.. 일본 후에 밑딱음이 깔끔하게 느껴지고..
은주누나 말은 나도 공감이야..
이번 칼럼은 아니지만, 언젠가 포트폴리오 인생설계에서.. 나나 너나 결혼생활의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봐야지 않을까 싶어.. 뭐 괜찮은 이야기가 나올 것도 같고.. ㅎㅎ 우리.. 다르게 살아보자..!!

참, 그리고 사실과 진실 부분을 읽다가 문득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있었담.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 ... 나중에 꼭 한번 보시길..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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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10.29 22:05:10 *.129.207.200
'라쇼몽' 흥미로운 내용이었군요. 원작으로 보았는데, 무슨 말인지 못알아들었었는데, 참 획기적인 영화입니다. 1950년대에 나온 영화인데, 쿠로자와 아키라 대단합니다. 

처음에 말씀하셨지요. 정리가 되어야, 거기서 힘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인생을 정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새로운 시도를 할려고 해요. 저는 정리되었지만, 결과는 제 맘대로 정리할 수 없지요. 이 정도만 생각하고, 도전할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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