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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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 인간을 지배하기 위해 개와 고양이가 힘을 합쳤다. 앙숙인 개와 고양이가 함께 앞발을 잡았다. 이들은 ‘개양이’로 만나 특공대를 조직하여 인간을 모두 노예로 만들려고 한다. 이것은 주인이 없을 때만 최첨단 특수 요원으로 변신하는 ‘켓츠 앤 독스 2’의 영화 줄거리다. 지하철 벽보에 붙은 ‘미션 개 파서블이 시작된다. 털 날리며 대 개봉’이란 포스터가 마음에 쏙 들었다. 어떻게 이런 기발한 상상을 개 박사인 내가 먼저 하지 못 했는가!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에서 조금만 창의적으로 생각한다면 내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곧 영화의 시나리오이자 책 한 권인데 말이다. 멀리서 찾으려고 하니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 영화의 설정 자체가 너무나 재미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이야기가 영화가 아니라 실제로 이미 우리 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의 일이었다.
하얀 눈썹을 휘날리며 게슴츠레한 눈으로 명상을 즐기는 오리오는 서열상 1순위 007 본드 역을 맡고 있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흑인 본드 걸 역할은 서열상 2위 방울이였다. 이들은 평소에 내가 한 번씩 쳐다보고 만져줄 때마다 혀를 내밀고 귀와 꼬리를 내리고 사랑스러운 얼굴로 애교를 떤다. 이랬던 개들이 내가 컴퓨터에 오래 앉아 있기만 하면 드디어 활동 개시를 하는 것이다. 자기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불만을 털어내기 위한 행동들이었다. 둘은 스으윽 일어나 조용히 속삭인다. 오리오의 지시가 끝나면 행동요원 방울이는 소리도 내지 않고 뱀처럼 층계를 미끄러져 내려간다. 평소에는 타타타탁 하고 뛰어다니는 개가 정말 발소리하나 없이 내려간다. 이 모습은 정말 훈련 받은 특수요원이 보석을 훔치러 들어갈 때 레이더 망을 피할 때 보이는 조심성에 버금간다. 그리고 조금 뒤 꼭 내 신발만 물고 와 이불 위에 살며시 놓는다. 하루에 이러기를 몇 번을 한다. 신던 신을 방에다 물어다 놓으니 흙이 떨어져 매번 닦아야 하니 짜증이 난다. 그뿐인가 잠시 벗고 돌아서면 입으려는 옷이 없다. 벌써 다른 방에 물어다 놓았다. 안 하던 짓들이다. ‘미션 개 파서블’이란 말이 정말 딱 맞다. 그들은 나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들을 하나씩 해나갔다. 나에게 쓰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개들의 불만은 쌓여 갔으므로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한 자신의 행동을 개시한 것이다.
나의 하루가 나의 것이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두 발목을 그들이 잡고 있다는 부담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육체적인 것뿐 아니라, 나의 마음까지도 그들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육체적, 심리적으로 노예가 되어 있었다. 이런 마음이 들자 이건 그들에 대한 나의 ‘사랑’의 잘못된 표현 방식으로 인한 부작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지 못하고 또한 그들 스스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적절히 훈련시켜 주지 않은 것 때문에 그들도 자신들의 삶의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나에게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나 또한 오로지 나에게만 의지하며 사랑의 강도를 더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저들에게 지쳐가고 있었다. 내가 그들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그들에게 어울리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훈련시켜 놓았어야 했다.
인간은 동등한 관계, 평등한 관계를 원하지만 개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잊고 너무나 잘 해준 것이 문제였다. 아무리 혈연관계라 하더라도 개들은 서열사회를 형성하는 동물이기에 주인이 그에 맞게 서열을 가르쳐야 한다. 아무리 어린 강아지라 하더라도 어릴 때부터 서열을 가르치지 않으면 잘못하면 개가 사람보다 서열상 우위에 서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개와의 문제는 서열이 무너졌기 때문에 생기게 되는 것이다. 나는 요즘 무너진 서열에 자책하고 있다. 우리 개들은 내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나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이것은 그들이 서열상 우위에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나를 좌지우지하려는 행동들이다. 내가 서열상 우위에 있다고 여긴다면 그냥 기다릴뿐 나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적극적인 행동을 못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말썽을 피우게 만들어 놓은 것은 다름 아닌 주인의 잘못이라는 것을 반성하고 있다. 개를 사랑한다면 온갖 정성을 쏟아 부어도 아깝지 않은 존재라는 생각이 문제이다. 그것이 개에게 인식되면 개들을 잘못된 행동으로 이끌게 됨을 나는 잘 몰랐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어렴풋이 알면서도 내가 마음 고생하는 것이 싫어 피했던 것이다. 그 마음까지도 읽어내는 독심술을 가진 저들이 때로는 무서울 때도 있다. 그들은 너무나 영리하다. 아마도 ‘캣츠 앤 독스 2’ 감독 브래드 페이튼은 그들의 영리함을 알아차리고 동물이 인간을 지배하고 노예처럼 부린다는 발상의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짜로 노예처럼 부린다는 것보다 심적으로 그들에게서 받는 여러 부담감을 노예 관계로 표현한 것 같다.
이제 영화의 속편은 내가 만들어 나간다. 저들에게 잡혀 노예가 된 인간인 내가 저들을 다시 잡아 나가야 할 시간이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사사로운 감정을 제거하는 것이다. 앞으로 오래 같이 좋은 관계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때로 재정비의 시간이 필요하다. 저들에게서 원래의 서열을 찾아 내가 주인으로서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아야 한다. 예를 들면 눈 높이를 같이 맞추어 주면 안 된다. 또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제 시간에 딱 맞추어 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간식을 달라거나 산책을 시켜달라 할 때 그것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시간에 그들에게 주는 것이다. 내가 반려 동물인 이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그들이 훈련을 통해서 똑바로 명령에 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훈련의 3대 원칙, 즉, 간단한 명령, 즉각 교정, 충분한 칭찬으로 체계적인 훈련을 시작해야겠다. 앞으로 10년 이상의 시간을 그들과 즐겁고 서로가 편하기 살기 위해서 매일 훈련이 시작될 것이다. 그들이 만든 미션 개 파서블에서 나는 ‘Independent from dogs(개로부터의 독립)’ 영화를 제작하는 마음으로 그들과의 전쟁을 시작할 것이다. 먼저 개들의 본성과 행동을 더 잘 파악해야겠다. 개는 개답게 살아야 하고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 그것이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사는 것이다. 그러나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내가 그들에게 조금만 소홀하면 내 마음이 아파서 견디지를 못 했다. 즉 그들이 요구하지 않아도 내 만족으로 끊임없이 잘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자신이 만든 창살 없는 감옥에 내가 갇힌 것이다. 그리고 그곳이 내 마음 편한 곳이라며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개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며 내 방식이 그들이 행복하게 사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변화’의 시간이다. 각자의 삶을 잘 사는 개와 인간이 만나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인간이 개의 우두머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다시 강하게 마음 먹고 그들과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재정비를 하고 있는 요즘이다. 너는 너, 나는 나, 가끔은 ‘우리’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행복의 조건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참으로 어려운 듯해요.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지요. 러셀의 묘비에 쓰인 말이 인상깊었어요.
'...그토록 오랜 외로움의 세월 끝에 나는 인생과 사람이 어떤 것이지 아노라. 이제 잠들게 된다면 아무 미련 없이 자련다'
때로는 우리가 고슴도치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서로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마구 찌르고 멀어지면 춥지요. 가끔은 털을 모두 뽑아버리고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겠지요.
그래도 고슴도치는 고슴도치일 테구요.
평생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외로움이라면 살포시 끌어안고 친구하는 것이 정답이겠지요.
개와도 그렇군요.
개의 특성을 알고 그에 따라 친구하는 것이군요.
오늘 칼럼은 개와 친구하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 더 좋았습니다.
또 이런 내용과 함께 인간의 모습도 비추어주면 더욱 좋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았어요 ^^
좋은 관계설정, 사람과 사람만큼, 개와도 필요한 것이었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