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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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납줄갱이의 비밀
멸종, 서호납줄갱이 Rhodeus hondae
우리나라 고유종인 서호납줄갱이는 1913년 수원 서호에서 채집되어 기재된 후 1935년에 수원 서호에서 확인되었으나 그 이후 지금까지 여러 차례 조사를 실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출현되지 않아 이미 절멸된 종이라고 생각된다. 이 종의 모식표본은 현재 미국 시카고에 있는 야외자연사박물관(Field Museum of Natural History)에 보존되어 있다.
내가 그 소문을 들은 것은 지난 번 일본 출장길에서였다. 올해로 13회째를 맞는 일본의 강의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의 몇몇 사람들과 함께 동경에 잠시 머물렀다. 대회는 여느 해처럼 진행되고 있었고, 그러저러한 사례들이 지루한 릴레이 경주를 벌이듯 이어지고 있었다. 다소 권태감을 느낀 나는 행사장의 뒷자리쯤에 적당히 걸터앉아 한국측 실무책임자인 정병준 위원장과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무심결처럼 스쳐가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수원납자루.’
순간 뒷목이 뻣뻣해지면서 머릿속에서 불꽃이 튀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방금 뭐라고 하셨죠?”
오히려 당황한 쪽은 정병준 위원장이었다. 나의 범상치 않은 표정에 자기가 무슨 말실수라도 했냐는 듯이 묻는 얼굴이었다.
“정위원장님, 방금 ‘수원납자루’라고 했어요?”
“아...네... 뭐가 잘못됐나요?”
“아니요. 그 일본인 선생님 좀 소개시켜주시겠어요? 좀 만나봐야겠는데요?”
그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방금 전까지 농담을 주고받다가, 금새 진지해져버린 나의 태도에 뭔가 심상치 않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채 3분도 되지 않아서, 나이가 지긋한 일본인 한 사람과 통역 자원봉사자가 따라 왔다. 간단히 서로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 우리는 사람들 눈을 피해 행사장 밖의 응접실에 자리를 잡았다.
‘이와시로 타카시’라고 자기소개를 하는 그는 현재 오카야마 야생생물조사회의 부대표를 맡고 있었다. 정위원장이 정식으로 나를 다시 소개했다. 한국에서 10년 넘게 강과 하천살리기 운동을 해왔고, 전주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한국에 물고기 학자가 많지 않은데, 물고기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다소 길게 늘어놓는 그의 유난스런 소개가 부담스럽다는 눈치를 보냈더니, 정위원장이 살짝 눈짓으로 되받아친다. 그는 이미 나보다 더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뭔가 흥미진진한 일이 일어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수완이 좋은 사람이었다. 일본어라고는 단 몇 마디만을 하면서 벌써 10년째 일본과의 교류를 맡아하고 있었다. 일본에 다녀간 횟수만도 벌써 90여 차례가 넘었다.
급한 테를 내지 말라는 그의 코치대로 나는 한 템포를 늦췄다. 먼저 그가 활동하고 있는 ‘아사이강’의 상태가 어떤지, 그리고 ‘수원납자루’가 채집되게 된 경위와 무엇보다도 일본 물고기이면서 ‘수원납자루’라고 이름 붙여지게 된 경위에 대해 물었다. 그는 잘 몰랐다. 자신은 반딧불이에 대한 연구를 하는 사람이어서 물고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원한다면 같이 동행한 다른 사람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했다. 잠시 후 50대 중반에 머리가 살짝 벗겨진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대략 이러했다. 2000년 즈음에 아사이강에서 놀던 아이들이 ‘각시붕어’와는 조금 달라 보이는 물고기들을 잡아왔는데, 크기는 어른들 엄지손가락만 했고, 꼬리지느러미에서 시작하는 파란색 옆줄 무늬는 등지느러미가 시작되는 점을 훨씬 더 나가있었다. 다른 납자루 종류들처럼 암컷이 기다란 산란관을 이용해서 말조개의 출수공을 통해 아가미 속에 십여개의 알을 낳은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그의 설명으로는 ‘각시붕어’와 유사종인 ‘떡납줄갱이’처럼 들렸다. 그런데 교토대학에서 어류분류학을 하셨다는 그의 스승의 말씀이 그 물고기는 ‘한국의 수원에서 온 물고기’라고 했다는 것이다. 자신도 전문가가 아니어서 자세한 경위를 다 알지 못하지만, 그 물고기는 일본의 어류학회에 보고되었고 몇 년의 논란 끝에 최근 얼마 전에야 ‘수원납자루’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고 했다. 그 숫자가 많지 않고, 서식처 보전이 점점 힘들어져서 현재 멸종위기종 목록인 'A1 List'에 올려져 있다고 했다.
그들의 말들이 사실일까. 그의 스승 말대로 수원납자루는 정말 한국의 수원에서 왔을까. 그 물고기가 정말로 한국의 수원에서 온 것이라면 언제, 어떻게 오게 된 것일까. 혹시... 한국에서는 이미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서호납줄갱이’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고유종 물고기는 현재까지 모두 23종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몇 종은 납자루 종류들인데, 대부분 서식처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 그 말은 국지적인 서식처 훼손만으로도 멸종될 위험성이 크다는 뜻이고, 개체수의 감소는 근친상간으로 인한 퇴행과 멸종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시나리오다. ‘서호납줄갱이’는 이미 그렇게 멸종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멸종이 확인된 물고기는 ‘서호납줄갱이’ 말고도 ‘종어’가 하나 더 있다. 약 20여년 정도 서식확인이 되지 않자, 몇 해 전부터 환경부는 거액의 복원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유사종인 중국의 종어를 대상으로 종복원 실험이 현재도 진행 중이지만, 아직까지 그 결과를 장담하기는 이르다.
서호납줄갱이는 수원의 ‘서호’라는 호수에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렇지만 1935년 이후 70여년이 가깝도록 확인되지 않고 있어, 어류학자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멸종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국자연보존협회는 1989년에 발간한 <한국의 희귀 및 위기 동식물도감>과 1990년의 <한국의 희귀 및 위기 동식물 실태조사연구>에서 서호납줄갱이를 이미 멸종된 종으로 보고 하였다. 더러 일부의 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추적을 하고 있지만 이미 잊혀져가고 있는 존재가 되었다. 서호납줄갱이가 지구상에 살다갔다는 현재까지 유일한 증거는 미국의 시카고 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된 마지막 표본 하나가 유일하다.
서호납줄갱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913년 미국의 조던(D.S.Jordan) 박사가 메츠(C.M.Metz) 박사와 함께 발표한 <한국에서 알려진 어류 목록>이라는 논문에 실려 있다. 당시 스텐퍼드 대학의 초대 총장이기도 했던 그는 1911년 일본과 한국의 물고기들을 조사하였고, 이 논문을 통해 10종의 신종을 포함하여 우리나라의 민물고기와 바닷물고기 75과 254종을 기록해두었다. 서호납줄갱이 또한 이때 조사된 10종 중 하나였고, 그 후 1926년 일본의 모리교수가 추가 조사를 통해 몸길이 4.8센티미터와 5.4센티미터의 서호납줄갱이 표본 2마리를 수원 서호에서 채집했다고 기록한 바 있다.
늘 그것이 궁금했었다. 1920~30년에 일본 자연과학자들의 식물조사와 어류조사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자연지리적 특성 때문에 한국에만 서식하는 고유종들이 확인되었다. 그들의 학명에는 나카이, 모리라는 명명자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수수꽃다리(Syringa oblata var. dilatata Nakai)가 그렇고, 쉬리(Reusiscus splendidus Mori, 1935) 또한 그렇다. 한편으로 학문적 성과이고, 근대화에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체계적인 식민지 자원수탈을 위한 사전조사라는 목적이 분명했다. 그들이 조사만 하고 말았을까. 임진왜란 시절 그들은 한국의 백자와 청자만을 가져가지 않았다. 수많은 도공들을 함께 배에 태웠고, 지금껏 그들의 자손이 일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다. 혹여 서호납줄갱이가 전 세계적으로 귀한 물고기이고, 멸종의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면 모리교수는 어떤 선택들을 했을까. 최소한 그가 만들었다는 2개의 표본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더 이상 확인된 바는 없다.
나리타 공항에는 밤안개가 자욱했다. 백미터 앞을 내다보기가 어려웠던 탓에 비행기들은 벌써 두 시간째 출발이 지연되고 있다. 도대체 저 안개 너머로 뭐가 있는 것일까. 수원납자루는 과연 서호납줄갱이이 후손들일까. 정말 그렇다면 종복원을 하자고 해야 할까. ‘한국에서는 이미 멸종되었다고 들었는데요’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던 그 중년사내는 믿을만한 사람일까. 본격적인 조사가 진행된다면 일본인 학자들은 우호적일까. 그들 역시 자세한 서식처는 비밀이라고 했다. 또 한국의 납자루 연구와 서호납줄갱이 복원에 진심어린 학문적 관심을 가져줄 학자는 있을까. 환경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또 수원시장은... 한시라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 김익수 교수님과 의논을 해야 했다. 안개는 여전히 걷히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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