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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과 눈망울이 닮았다 하여 꽃사슴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사람.
시월의 하루. 성당 청년 바자회 행사에서 그녀를 만나 아무 생각없이 초 하나를 사달라고 떼를 썼다.
나처럼(?) 천사를 닮은 초였다.
그리고 우격다짐으로 선물을 받은 천사초의 보답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차 한잔을 대접 하였다.
인연은 운명과 같이 일어나고 그 인연의 단추는 과정과 시간이 맺어준다.
중앙로 후미진 뒷골목에서 값싼 안주에다 막걸리 한잔을 걸치었다.
“이거 맛이 달콤하네요.” 하면서 연거푸 잔을 들이키는 그녀.
저러다 취할텐데 라는 걱정과 함께 내심 작전이 맞아 들어가고 있다는 도취감에 기분이 업이 되어갔다.
덕분에 사람, 공간, 흐름의 분위기에 내가 먼저 취중이 된다.
“우리 나이도 비슷한데 말을 놓죠.”
남들이 말하는 연애가 시작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연애는 환상 이라기 보다는 현실로써의 날들 이었다.
포창마차를 전전하며 일천원 짜리 우동 먹기. 나는 짠돌이였다.
운동에 좋다며 뚜벅이처럼 마냥 걸어만 다니기. 나는 돈이 없었다.
술중에 최고라며 막걸리 들이키기. 값도 싸고 배도 불렀다.
관계가 진전되자 이제는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른 길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헤어졌고 곰 일레븐 커피숍에서 나는 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갈수 없냐고 정말 밤새는줄 모르고 울었다.
각자의 길을 가기전 우리는 경주로 향하는 버스에 있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수도 있는 상황.
걸어 가는동안 돌아오는 내내 서로 말이 없었다.
그날 겨울의 추위 가운데 앙상한 나뭇가지 꽃잎 하나 없었다.
I can‘t stop loving you.
노래 제목처럼 우리는 다시 재회 하였고, 결혼식후 제주도 이만 오천원 여관 방에서 초야를 치루는 거창한 의례로 우리라는 공동체의 닻을 올렸다.
그녀의 자취방 짐을 용달차에 싣고 서울로 향하고 있을 때 만감의 교차함이 가슴으로 절절히 다가왔다.
이제 함께구나.
이제 둘이서 살아 가는구나.
남들처럼 나도 이렇게 살아 가는구나.
남편의 역할이 나에게도 이렇게 시작 되는구나.
현실감, 두려움, 기대, 막연함 등의 감정이 되뇌였다.
소박하게 단칸방에서 나마 팔베개를 하며 오순도순 살아간다는 작은 소망이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남들처럼 살아 간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사치인 모양이다.
평범하게 살아 간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힘든 모양이다.
내가 울었던 것처럼 그녀도 속을 들어내며 한맺힌 울음을 오랫동안 토하였다.
울음은 모여져 골이 되고 바다가 되어 서로의 가슴에 서러움으로 남았다.
그 울음은 단단해져 갔다.
너무 사랑하지 말자고 그녀는 이야기한다. 그분이 시샘을 한다고.
허허허~
순백의 하얀 성당 앞에서 폼나게 사진을 찍었다.
커다란 산과 같다. 그 기상이 그 푸근함이.
바다의 염분이 뭉쳐 만들어낸 조각품 같다.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우리 노력과 시간의 퇴적물처럼.
그 앞에서 잠시나마 넉넉함과 여유의 망중한을 즐겼다.
뎅그렁 뎅그렁 울려 나가는 하늘의 종소리.
때가 되면 울리는 종처럼 언제일지 모르는 그때와 그 시기를 보조를 맞추어 하나둘 하나둘 호흡을 맞춘다.
땅으로부터의 자그마한 십자가는 우리를 인도한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힘겨울 때나, 외로울 때나, 혼자라고 느낄때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짊어지고 가야할 숙명을 껴안도록 한다.
티끌만한 두사람은 함께 서있다.
현재도, 앞으로도 그리고 그 너머의 세상에서도.
따뜻한 정을 마음으로 배웠다.
나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 나갔다.
배려와 나누는 법을 배워 나갔다.
감정의 자제를 배워 나갔다.
한결같음을 배워 나갔다.
지혜는 책만으로 오는게 아님을 배워 나갔다.
세상속에서 어리숙 하게만 살아가는 나에게 그녀는 신이 보내주신 선물의 의미로 매번 다가온다.
하지만 그 존재를 망각하고 오늘도 나는 철없는 아이처럼 땡깡을 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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