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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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놀이 / [11-2 여행컬럼]
바다는 사나웠다. 늦가을의 동해바다는 푸르렀지만, 쉴 새 없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대고 있었다.‘일상에 지쳤다’고 여행을 가자는 아내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 주말에 동해의 바람을 맞았다. 몇 군데 숙소예약을 하려다가 실패하고, 토요일 오전에 무조건 속초를 향해 출발했다. 작은 해수욕장 근처, 바다가 바라보이는 펜션에 짐을 풀었다. 4월, 연구원 전체 여행을 했던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작은 해수욕장이라 바닷가는 한산했다. 나이먹은 것이 분명하다. 바다를 봐도, 가슴은 별로 뛰지 않는다. 11월의 바다는 잊혀 진 옛 연인의 존재처럼 쓸쓸했다. 그저 그런 저녁을 사먹고 가게에서 폭죽을 산 후, 바닷가로 나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불꽃놀이를 하러 간 것이다. 폭죽은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재미있는 놀이다. 지랄같이 사방으로 날아가는 지랄탄도 있었고, 로케트 폭죽, 안개꽃 같은 불꽃을 자랑하는 폭죽도 있었다. 기다란 막대기 폭죽에서는 20 발의 불꽃이 하늘로 올라가서 쭉~쭉 터졌다.
팡! 팡! 팡!
파지직...팡!
밤하늘의 별들과 은하수를 배경으로, 100 여발의 작은 불꽃들이 '피었다 사라졌다' 를 반복했다. 하늘을 향해 힘껏 돌진하다가 장렬히 산화하는 불꽃...불꽃놀이는 섹스와 닮았다. 오르가즘은 불 같이 뜨겁고, 끝은 그 뜨거움만큼 허무하다.
플래너에 꽂아 둔, 스승님의 글이 떠올랐다.
'언젠가 별이 되는 꿈을 가지세요
언젠가 이 어둠 때문에 더욱 빛나게 되는 자신을 그리도록 하세요
가난이 만드는 대로 가지 말고 가난을 통해 배우세요
비전이 없는 곳에서 자신의 빛을 찾으세요
자신이라는 퍼즐을 푸세요
자신의 강점을 찾아내고 그것에 집중하세요
자신을 찾아내는 것이 일생일대 최대의 프로젝트라는 것을 명심하고
늘 스스로에게 질문하세요.'
불꽃놀이는‘간절한 희망’과도 같다. 꿈을 이루고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린 하늘높이 자신의 간절함을 올려 보낸다. 이루어진 꿈은 별이 되어 은하수로 빛나고, 그렇지 못한 꿈은 한 순간을 빛내며 산화한다.
낯선 잠자리 때문일까? 새벽 3시에 눈이 떠졌다. 눈을 뜬 김에 책을 읽었다. 잠을 깬 아내는 “여기까지 와서 책을 읽냐?” 고 어이없어 한다. “음, 나도 잘 모르겠다. 숙제의 힘이겠지..의도하진 않았지만 잘 되었다. 남은 연구원 기간을 버텨내기 위해서는 이렇게 티를 좀 내 줘야 한다..ㅎㅎ”
오전 6시, 새벽바다를 보러 나갔다. 2년 전 처음 가 보았던 남해의 바다를 떠올렸다. 높은 산위에서 바라보는 남해의 바다는 절경이었다. 사방 온 천지가 바다였다. 광할한 바다와 솟구치는 바람, 쏟아지는 햇살이 뜨거웠던 바다! 그러나 동해의 새벽은 차가웠다. 얼굴이 시리자, 마음도 차분해졌다.
일상이 지루하고 답답할 때, 우리는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 우리는 떠난다고 말하고, 지친 몸을 쉬고 싶어 하지만, 결국은 알게 된다.‘쉼’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 여행의 목적은‘떠남’그 자체인 것이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 서문에서 류시화는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얘기한다.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별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은 불행이 아니다. 불행한 것은 이를 수 없는 별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
가장 멋진 일은 움직이는 것이다.
비록 명멸하는 꿈으로 끝나는 불꽃일지라도...

가을바람에 출렁이는 청풍호의 물결위에서 생각했습니다.
"대체 이 녀석들은 뭘 해보겠다고 이렇게 한순간도 안 쉬고 출렁이는 걸까?
그래봐야 제풀에 지치고 말 것을..."
돌아오는 길에 단풍과 어우러진 수면의 반짝임이 너무나 아름다워 말을 잃었습니다.
물결들이 만들어낸 작은 단면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깜냥으로 햇살을 담고 만들어낸 그 절경.
이젠 구박하지 않을겁니다.
일견 허망한 듯 보이는 저 처절한 움직임들이 실은 자연이라는 오케스트라에서 제 역할을 해내기 위한 장한 노력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청풍호덕에 묙도 모처럼 편안하게 출렁입니다.
풀리지 않는 작은 '왜'들을 그냥 즐겨보기로 마음먹었거든요.
오빠의 불꽃놀이, 저의 뱃놀이가 우리의 가을을 더 아름답게 하네요.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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