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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4일 21시 57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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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 전화상을 하시는 이모부님 댁을 오랜만에 들리니 코흘리개 시절 기억속에 존재 하였던 전화기가 눈에 띄였다. 참으로 반가운 그대. 잃어버린 친구를 동창회에서 다시 재회한 느낌이랄까. 요새 보기 힘든 까만색 다이알식 전화기. 여인의 나신상을 처음 만지는양 조심스럽게 더듬어 본다. 자그마한 떨림과 함께 해당되는 번호 구멍에 엄지 손가락을 집어넣고 다이알을 끝까지 돌려 보았다. 그때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느낌이 저편 멀리 밀려 들어온다. 드르륵 소리를 내며 다시 제자리로 천천히 돌아오는 와중에, 나는 <시네마 천국>의 알프레도처럼 과거의 필름을 시간의 영사기로 돌리고 있었다.

 

외국에 계시는 작은 아버님과 교환원을 통해서 힘들게 연결이 되었다.

“저 승호 인데요. 잘계시죠.”

“그래 너도 잘지내지. 공부는 잘하고 어머님 건강은 어떠시냐. 뚜뚜뚜~”

“여보세요, 여보세요.”

이야기를 나눈지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 전화가 끊어졌다. 우이씨. 또 얼마나 기다려야 되는지.

 

추운 겨울 이었다. 맨발에 추리닝 복장의 나는 빨간 공중전화 부스 앞에서 사람들 줄이 줄어 들기만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앞에 한사람 밖에 남지않은 터라 쾌재를 부르고 있는데 어라 전화를 거는 분이 다시 동전을 넣고 재통화를 하는 것이 아닌가.

“추워 죽겠는데 뭐하는 짓이람. 에티켓도 없이.”

그래도 전화를 끊을줄을 모른다. 기다리다 못한 나는 부스 문을 쿵쿵 두드렸다. 그러자 나를 돌아보며 째려보는 눈빛. 인상이 험상 궂었다. 어쩔수 없다. 이럴땐 죄송 합니다 하고 깨갱 할 수밖에. 드디어 나의 차례가 되었다.

“그래. 안보고 싶었나. 나도 보고 싶었다. 서울은 추운데 그쪽은.”

반갑게 이어지는 꽃사슴의 목소리. 한주간의 상념을 주절주절 이야기 하고 있노라니 정해진 시간이 다가온다. 마음이 급해지자 말이 더욱 빨라졌다. 끊어졌다. 할말은 많은데 이를 어쩌나. 아쉬운 마음에 뒷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주머니속의 동전 실탄을 다시 집어넣고 재통화를 이어본다. 하나가 되어 합쳐진 목소리는 어느새 나의 가슴에 다시 메아리쳐 오고, 함께한 시간의 역사는 녹녹치 않는 서울 생활의 고단함을 씻어내 주고 있었다. 어느새 컴컴하던 하늘에서 하얀 실타레 눈이 내리는 가운데, 폼을 재며 걸어 가노라니 음성 흔적이 발자국의 존재로 찍혀서 나온다.

 

지방 출장길. 핸드폰 통화를 하는 와중에 밧데리가 되었는지 전화가 켜지질 않는다. 어떡한다. 중요한 용건을 나누는 중이었는데. 멀리 눈에 익은 전화 부스가 보이길래 들어갔다. 주머니를 뒤져 보았지만 이런 동전이 없다. 참내 평소 흔하디 흔한 동전이 꼭 찾을 때는 없으니. 상점으로 뛰어가 일천원 짜리를 내밀어 본다.

“사장님. 전화를 걸려고 하는데 동전이 없어서 그래요. 바꿔 주실래요.”

“그럼 뭐라도 하나 사세요.”

덕분에 필요도 없던 초콜렛 하나를 사서 부스로 들어가 버튼을 꾹꾹 눌러본다. 그런데 어쩌나. 앞번호는 생각이 나는데 뒤의 번호가 기억에 가물가물 하다. 애써 생각을 하며 머리를 쥐어 뜯어 보지만 떠오르질 않는다. 당사자에게 전화를 걸어(?) 번호를 물어 보아야 하나.

 

노키아의 사명 슬로건이 ‘커넥팅 피플(connecting people)’ 이었던가. 문명의 발전됨으로 이제는 서로 얼굴을 볼 수 있는 영상 통화를 넘어 작은 컴퓨터인 아이폰까지 등장한 현시대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전화기의 주용도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 주는 목적에 있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의 애틋한 정을 밤새도록 이어주고

명절 때 고향을 찾아뵙지 못하는 자식의 사죄하는 마음을 전해주며

전방 철책선에서 고생하는 막내 아들을 벙어리 장갑처럼 따뜻한 온기로 녹여주고

술한잔 걸친 용기로 짝사랑 하는 마음을 고백하는 통로가 되어주며

일년에 한번 스승의 날에 안부 전하는 제자의 애틋한 섬김은 회초리를 맞던 당시로 돌아가게 해주고

수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아빠 힘내세요 라는 막내 딸의 노래는 가장의 무거운 어깨 위로 빛나는 별을 띄우게 한다.

 

새로웠다. 성격 급한 사람은 답답할 터이지만 향수에 젖은 물건을 다시 만나니 감회가 새록새록 밀려왔다. 그랬었지. 참 가난했던 시기였을 때 전화기가 있는 집은 자연히 어깨에 힘이 들어 갔었다. 그 물건을 보기 위해 주민들이 밀려 드는 통에 자연히 동네 유지와 사랑방 역할을 담당 하게도 되었고. 친인척에게 전화를 한번 걸라고 치면 주인집에 온갖 아양을 떨어야만 했다. 어렵게 성사가 되어 반갑게 목소리를 타고 들려오는 사연들은 자그마한 행복의 넝쿨을 낳았다.

 

매출 목표를 맞추기 위해 수화기가 뜨거울 정도의 열정을 전해 주었던 도구.

관계와 관계를 마음과 마음을 손에 손을 통하여 전해 주고 전해 받았던 물건.

그때가 그립다. 애타게 보고 싶어도 못보는 심정을 목소리로써 간절히 전하여 주던 그순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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