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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0일 04시 43분 등록
젊은 여자. 머리카락 나왔다고 쏜다.* '죄송하다'고 하다. 건성말고, 똑바로 하라며 칼눈이다. 다시 사과하다. '그럴 필요까지 없잖아' 옆에 남자, 추임새. 경험 없다면, 당황하리라. 음식값이 모자르면, 트집을 잡는다. 술값은 내겠는데 음식값은 못내겠다고 이야기. 그렇게 하시라고 하다.  인사를 하며, 주위하겠다고 읍. 그 인사 속에,  '살다가, 인생이 꼬이면, 이 사건을 기억하라'는 념念을 넣다. 

대학교수가 된 친구, 판사가 된 고교동창이 떠오른다. 학생 시절 나와 담배도 피고, 술도 마셨지만 지금은 하늘과 땅 차이다. 연민은 깊어진다. 어쩌다 이리 되었을까?라는 생각에,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이 떠오른다. 그렇게 살면, 부자될까? 머리속에 난무하는 영상은 하드고어 무비를 방불케한다. 

분노가 자신을 파괴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졌다. 분노하는 사람은 현재를 과거에 퍼나른다. 앞만 보고 달려도 모자른데, 과거가 현재의 에너지를 갉아먹는다. 분노만 곱씹은 사람은 해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분노의 끝은, 내 인생이 분노로만 가득찼다는 자각뿐이다. 삶의 목적은, 얼마나 멀리,깊이 가는가이지, 얼마나 많은 증오를 맞받아쳤는가가 아니다. 

분노가 습관이 되면, 방어적인 태도가 된다. 과거의 경험을 불러와 미래의 바람막이로 만든다. 내가 세상에 내놓을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에게 줄 상처를 미연에 막기에 급급하다. 진취적이지 못하며, 에너지와 시간을 방기해버린다. 올곧게 자기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공격에 방어만 한다. 전자가 송곳으로 성벽을 판다면, 후자는 이리저리 터지는 땜을 막는 셈이다. 성벽을 뚫고 들어가느냐, 땜이 터져 휩쓸려 가느냐의 차이다. 전혀 다른 인생이다. 

분노에 물들면, 자신이 분노상태인지도 모른다. 어떤 위로나, 조언도 먹혀들지 않는다. 상대의 호의를 고도의 음모로 받아들인다. 이런 상태라면, 모든 일을 멈추고 오랫동안 휴식을 취하는 것이 상책이다.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성장이다.' 

분노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성과로서 말하는 것이다. 나를 세워서 스스로 증명함으로써, 분노를 녹인다. 믿는 구석이 있다면 소소한 일에 분노하지 않는다. 대기업 총수나, 국회의원이 일개 시민의 욕에 눈깜짝할까? 욕먹는 자리이지만, 아무나 올라갈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 그들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휘벼파서 상처받지 않는다.
 
또 한가지는, 분노의 대상을 연민의 눈으로 본다. 대통령이건, 돈이 억수로 많은 사람이건, 톱스타이건, 사람은 누구에게나 불쌍한 구석이 있다. 아니, 인간은 고독하며, 불쌍한 존재다.  나를 쪼는 상사는 밉지만, 나보다 마음고생이 더 심하리라는 것을 기억하자. 

나를 사랑하는 직접적인 방법은, 타인을 사랑하기다. 문을 열기 위해서는, 돌아와야 하며 열쇠를 찾는 수고가 필요하다. 타인이 나에게 준 분노와 상처를 용서하는 것이 나를 위하기다. 터무니 없는 매커니즘이지만, 똑똑한 사람들은 이렇게 한다. 그들이 타인을 사랑하는 이유는, 자기를 사랑하기 위해서다. 큰 마음으로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들, 결국 그 사랑의 수혜는 누가 받았는가? 본인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밑도 끝도 없이, 선량한척 해서는 안된다. 싸가지 없는 이에게는, 싸가지 없게 맞받아쳐야 한다. 언젠가, 어머니 건물에 여치과의사가 입주했다. 그녀의 태도는 기고만장했다. 어머니를 돈 밖에 모르는 장사치로 치부했다. 더 나아가, '아들이 뭐하냐, 별 볼일 없는 놈 아니냐?'라며, 어이없게 나까지 거들먹거렸다. 의사면 의사지, 그 행동은 이해할 수가 없다. 손해 보면서, 쫓아낼 수밖에 없었다. 

일상 속에 잠재하는 '악惡'은 사람을 쓸모없게 만드는 것이 그 목적이다. 자괴감과 상처로 사람의 의지를 해체시키는 것이, '악'의 목적이다. 단, 그 자리에서 그 사람에게 맞받아치자. 아니,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 사람 안에 있는 '악'에 분노하자. 그 자리가 아니라면, 그 일을 더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분노에 물들어있지 않은가? 먹고 살다 보니, 분노가 있다. 프랜차이즈 사업때, 영업사원은 지금도 후라이팬으로 갈기고 싶다.몇년 전 일어난 일이, 연쇄 반응을 일으켜, 엉뚱하게도 직장상사를 거쳐, 군대시절 고참까지 거슬러갔다. 분노란, 이렇게 쓸잘데기 없다. 분노는 인생길에 장애물이다. 넘어가면 그만이지만, '이것이 왜 내가 가는 길에 있느냐?' 혹은 ' 어떻게 감히 내 앞길을 막느냐' 고 불평한다면 다채로운 길을 경험할 시간은 줄어든다. 

길을 나선 활동가는 두가지를 결심해야 한다. 
1. 열심히 길을 나아갈 것. 
2. 방해 세력때문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것.  

사족으로, 개그맨 이윤석은 남자 나이 30대를 이렇게 표현했다. 

'30대는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났다'

직업도 정했고(혹은 정해졌고), 배우자도 정했고(혹은 정해졌고),앞만 보며 가는 일만 남았다는 뜻이다. 동감한다. 세상에 분노할 것은 하나다. 분노로만 가득찬 하루.

* 위 여자손님은 만취 상태였음. 
**악惡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면, 스캇펙 박사의 '거짓의 사람들'을 참조. 악의 구체적인 형태와, 대처하는 방법까지 나온다. 혹은 칼융의 자서전을 보라.(카를 융, 기억, 꿈 사상-김영사)
 
[그 친구는 이를테면 그 사건에 '끼워진'것에 불과하며 내편에서 그 사건을 간교하게 조정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이런 일이 두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분노했고 동시에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다. 왜냐하면 내가 나 자신에게 옳지 않은 일을 했으며 나 자신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67]
 
다행히 칼융은 자기 안에 존재하는 악을 파악하고 있다. 그는 위험한 사람이지만, 똑똑하다. 아슬아슬 외줄타기를 하지만, 안전장치가 철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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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이유는, '역량이 출중한 사람이 왜, 성과를 못올릴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책집필에 들어가기전, 신변정리이기도 하다. 난 지난날에 분노하지 않으리. 
IP *.129.20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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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11.21 12:21:50 *.108.49.105
나를 사랑하기 위해 타인을 사랑한다!!
이 깨달음과 실천이 삶의 최고봉이리라 생각하고 있는데
젊디젊은 맑은이 이런 말을 하다니, 참 노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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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11.22 13:26:00 *.42.252.67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성장이다.'
너의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이 좀 더 구체적으로
서술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어.
두 가지의 결심을 잘 살려 열심히 너의 길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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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2010.11.22 15:36:08 *.203.200.146
'과거의 경험을 불러와 미래의 바람막이로 만든다.'
많은 이들이 과거를 현재에 반복하여 미래를 우울하게 만들죠.
저 또한 그 1인이었구요.
분노를 포함한 모든 감정들은 삶에서 끊임없이 반복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의 상태를 얼마나 빨리 벗어나느냐가 관건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다 보면 거창하게 말하자면...공자님이 이르렀다는 從心所欲不踰矩의 상태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ㅎㅎ
글을 쓰기전에 글을 쓰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이러한 글은 꼭 필요하겠어요.
마치 모닝페이지같은 느낌입니다 ㅎㅎ
전 이번주부텀 시작했어요...모닝페이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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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곰
2010.11.27 17:17:27 *.33.169.195
글 정말 좋네요~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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