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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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나는 너무 어렸다. 나는 따뜻한 봄날이 세상의 전부인줄만 알았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오는 법칙을 알아차릴 사이도 없이 나는 차가운 겨울을 너무 일찍 맞아 버렸다. 낙엽이 떨어지며 벌거벗은채 겨울을 맞이 하는 나무처럼 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혹독한 겨울을 맞아 그 추위는 오래도록 몸과 마음에서 분리되지 않았다. 그 때 나는 너무 무섭고 추웠다. 어린 시절의 그 기억은 다시 봄이 와도 나의 마음을 늘 무거운 기운의 회색 빛 겨울 하늘처럼 만들어 버렸다. 그 겨울은 어린 나이에 내 눈 앞에서 겪은 나의 부모이자 친구 같은 한 마리의 강아지의 ‘죽음’ 때문에 나에게 다가왔다.
나의 개 이야기는 사실 나의 첫 강아지인 ‘지나’가 주인공이 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난 다른 동네 개들까지도 관찰하고 다양한 개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으면서도 ‘지나’는 가슴 속 깊이에 숨겨둔 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나는 지나에게 늘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지나의 이야기와 글을 쓰려고 하면 가슴부터 아파 눈물이 흘렀는데, 아무에게도 그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 ‘지나’를 마음 속 깊이 비열하게 숨겨 놓았다. 사실 ‘지나’ 이야기를 하면 그의 죽음에 연관된 인간에 분노해야 했고, 나의 가족 중 아빠를 미워해야 했다. 그것이 나의 과거의 아픔이고 상처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의 의미를 더욱 더 선명하게 깨닫게 된다고 하는데 맞는 말인 것 같다. 기억 속에 묻어두면 생각이 점점 희미해질 것 같았는데 반대로 점점 더 선명해져 간다. 그러다가 이제는 놓아줘야 할 시간과 때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나의 책을 통해 털어 버린다는 표현을 했을 때 이미 나는 마음 먹고 있었다. 지나에게 사람들을 대표해서 용서를 구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서로를 위하여 멋진 이별을 하고 싶다. 분명한 것은 그녀는 나 보다 더 미안해 하며 나를 위로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는 점이다. 우리의 관계, 그것은 사랑이었다.
지나를 생각하며 나는 묻어둔 기억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의 마음 속에 숨어있던 그 작은 아이는 울고 있었다. 그 아이는 상처를 안은 채 성장하지 못 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더 이상 꺼내지 말라고 나에게 부탁했다. 나는 해야 한다고 달랬다. 아니 솔직히는 슬쩍 모른 척 하고 눈을 감고 싶었다. 그 아이를 생각하면 밀려오는 가슴 속의 통증이 너무 아팠다. 아직도 놓아 줄 준비가 되지 않은 걸까? 30년 전의 일이 너무나 생생하게 떠오르며 별로 오래되지 않은 어제의 일처럼 느껴졌다.
수술 후유증으로 내일을 기약할 수 없이 망가진 채 깊어가는 엄마의 병 때문에 그 당시 어린 나는 늘 불안했다. 또한 아빠의 불안정한 생활로 마음을 의지할 곳도 없었다. 가정부들을 둘이나 두고 나를 돌보며 키울 정도로 우리 집은 부유했었지만 나에게는 강아지 한 마리보다 못한 것이 돈이었다. 그 당시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따뜻한 사랑이었다. 지나는 나에게는 나를 지켜주는 보호자이자 친구였다. 따뜻한 봄날 한옥 마당에 이루어졌던 나와 지나의 첫 만남부터 기억이 떠올랐다. ‘저 작은 박스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무얼까?’ 엄마가 들고 들어오시는 박스 안이 궁금했다. ‘혹시 병아리?’ 쪼그리고 앉아 박스를 들여다 보는 순간, ‘햐아아 ~’ 나의 눈 앞이 환해지며 나는 내 몸속에서 느껴지는 만족감을 처음으로 느꼈다. 지금도 아주 선명하게 지나와의 첫 만남의 기억이 남아있는데 그 때 나의 나이는 여섯 살이었다. 작은 박스에서 꼼틀꼼틀 움직이는 생명체의 주인이 되어 흡족했던 기분은 그 이후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짜릿함으로 남아 있다. 지나는 주먹만한 황금색 털을 가진 치와와였다. 크기는 딱 우리 집 부엌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시커먼 쥐와 비슷했다. 코는 지우다만 도화지 속의 그림처럼 희끗희끗 빈틈이 보여서 똘똘해 보이지는 않았다. 치와와는 눈이 까맣고 톡 튀어나와야 하는데 박스 안에서 나를 올려다 보는 눈은 세상이 반뿐이 안 보일 것처럼 작았다. 살며시 들어 볼에 대자 따스하고 뭉클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 따뜻함에 나는 이미 그 강아지에게 사랑의 눈이 멀어 버렸다. 히끄무레한 코도 찝찝한 눈도 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나는 나에게만은 완벽한 외모를 가진 친구였다.
나는 어릴 때 많이 외로웠었다. 어려서부터 몸이 너무 약해 유치원에도 가지 못 했고, 동네에서 씩씩하게 뛰어 놀지도 못 했다. 그래서 나는 친구가 필요했었다. 집에서 나와 이야기 하고 놀아줄 친구 말이다. 아마 엄마도 그것을 알고 아랫동네 쌍둥이네 집의 치와와가 새끼를 낳을 때가 되자 부탁을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나는 잘 못먹고 점점 약해져 갔다. 그 시절 어렵게 구한 고무 개 젖꼭지를 구해 엄마가 박카스 병에 우유를 담아 젖병을 만들어 주셨다. 나는 그날부터 지나의 엄마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이른 나이에 한 생명을 길러내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워 나가고 있었다. 날로 건강해지는 강아지에게 이름이 필요했다. 여름에 가족과 함께 다녀 온 울산에 있는 지나 해수욕장이 그녀의 이름이 되었다. ‘지나’,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세련된 이름이다. 지나와 나는 떨어져 있는 시간이 없었다. 심부름을 갈 때도 지나는 내 머리 위에 앉혀 같이 갔다. 그리고 우리는 늘 꼬오옥 안고 있었다. 그 뭉클하고 보드라운 감촉은 지금껏 내 두 손이 찾고 있는 그리움의 원형이다. 우리 둘은 늘 대화를 하며 살았다. 지나는 어린 나에게 완벽한 소꿉놀이의 대상이었다. 늘 헝겊 조각을 찾아 이불을 만들어 주고 쓸어 덮어 주며 자장가를 불러 주었다. 벽돌을 빻아 길 위에 난 잡초를 뜯어 만든 김치와 모래로 만든 밥을 같이 나누어 먹는 시늉을 하며 그렇게 너무나 행복하게 같이 자랐다. 학교가 끝나고 나면, 나는 나를 기다리는 지나를 위해 집으로 뛰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빨리 가지 않는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지나를 통해 나는 삶을 하나씩 배워갔다. 아픈 엄마가 죽으면 안 된다고 기도를 할 때에는 지나는 나에게 DOG 가 아닌 GOD 이었다. 지나는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이었다. 같이 의지하고 같이 살아가는 그런 존재였다. 햇빛 내리 쬐는 툇마루에 앉아 지내며 어린 나와 주먹만한 강아지의 순수한 사랑은 날로 깊어만 갔다. 그리고 추억도 늘어만 갔다. 하지만 그 사랑은 이후의 일련의 깊은 상처와 아팠던 시간들만큼 잊혀지기까지에는 시간도 오래 걸렸다.
나는 지금 나만의 방법과 의식으로 그녀를 떠나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 속에 살고 있는 미처 자라지 못한 어린 아이를 키워 독립시키는 ‘변화’의 과정을 거쳐내고자 하는 것이다. 이후 힘들지만 지나와의 사랑과 아픔과 그녀의 죽음과 관련된 기억을 하나씩 꺼내놓으며 내 속의 미숙한 어린 아이를 성장, 변화시키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