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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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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5일 12시 36분 등록

영화 ‘쉬리’에는 ‘쉬리’가 없다. 다만...

 

다만, ‘키싱구라미’라는 열대관상어가 나온다. 영화 속 키싱구라미는 엇갈린 주인공들의 운명을 암시해주는 복선으로서 훌륭한 역할을 한다. “한 마리가 죽으면... 다른 한 마리도 따라 죽는다”는 여주인공의 대사는 비단 사랑하는 연인들의 운명뿐만 아니라, 분단된 민족의 암울한 미래를 예언하고 있기도 하다. 영화의 결말은 암시된 복선의 장치대로 움직인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게 되면 어찌될 것이라는 뻔히 알면서도 명현(김윤진 분)은 그 자리에 나간다. 국가위급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출동하게끔 되어 있던 OP 요원인 유중원(한석규 분)도 역시 자신의 임무대로 충실히 움직인다. 결국 피하고 싶었지만 피할 수 없었던 순간을 맞닥뜨리게 되고, 썬글라스를 끼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지만, 둘은 서로의 존재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숨막히는 대결의 순간은 지켜보는 관객들의 입술을 바싹 마르게 하지만, 감독은 그냥 결론짓지 않는다. 쫒고 쫒기는 상황이 다시 이어지지만...

 

결국 죽는다. 명현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의해 죽는 죽음을 선택한다. 모든 상황이 끝나고, 중원은 명현의 과거를 찾아 제주도에 요양 중인 진짜 명현을 찾아간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꿈인지... 구분하기 힘든 현실만이 영화 속 한석규에게 남겨진다. 캐롤 키드의 “When I dream..."이 흐르면서.. 영화의 자막이 오른다.

 

그 뒤 한석규는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키싱구라미’의 운명처럼 영화 속 유중원은 이명현을 따라 죽었을까?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영화는 이미 끝났고, 이제 유중원은 관객들의 기억 속에서만 삶을 이어갈 뿐이다. 저마다의 방식대로 그의 운명은 결정될 것이다.

 

다만, 오늘 나의 주인공은 ‘키싱구라미’다. 영화 속 이야기처럼 강제규 감독의 설정처럼 ‘키싱구라미’는 실제로 비운의 사랑을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착각이다. 조물주가 만든 키싱구라미는 절대 그런 삶을 살지 않는다. 단지 ‘키스하는 물고기’라고 이름 지은 인간의 착각이 불러온 결과는 또 다른 상상을 낳았고, 그 이야기 속 ‘키싱구라미’는 조물주가 지은 현실과는 분리된 또 다른 운명을 가진 존재로 살게 되었다.

 

물고기가 키스를 할까?

열정적인 키스를 기억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안다. 사랑의 시작을... 잔인한 운명의 순간을 알리는 그 비밀의 코드. 과연 물고기들도 사람들처럼 키스를 할까. 그렇지 않다. 그들 사랑의 전희에는 키스가 없다. 다만 수컷들의 화려한 혼인색과 간혹 구애를 위한 춤을 추는 동작쯤으로 보이는 애정행위가 있을 따름이지만, 뜨거운 포옹이나 날카로운 키스는 없다.

 

그런데 왜 ‘키싱구라미’일까?

그것은 그들이 입맞춤을 하기 때문에 그렇다. 동족끼리의 잦은 입맞춤을 하는 그들의 습관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오해를 불러온 것이다. 그리고 ‘키스하는 물고기’라는 이름이 지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사람들처럼 사랑의 의미로 입맞춤을 하지는 않는다. 그와는 정반대로 싸움을 할 때 그들은 입맞춤을 한다.

 

그들은 왜 싸우는 것일까?

키싱구라미는 동족 외에 다른 종류의 물고기들에게는 대체로 무관심하다. 오직 동족간의 텃새가 유난히 심하다. 자신이 살아갈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키싱구라미의 출현을 전혀 반기지 않는다. 오직 예외적으로 생식을 하는 순간을 제외하고 일상에서 키싱구라미는 혼자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싸움을 한다. 그것도 아주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누구 하나가 죽거나 도망치지 않으면 끝이 나지 않을 싸움이다. 도망칠 곳 없는 좁은 수족관에서 벌어지는 싸움의 결과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둘 중 하나가 죽는다.

 

혼자만 살려는 욕심이 죽음을 불렀다.

죽음도 불사하는 키싱구라미의 욕심은 어느 정도일까. 잔인한 실험 결과가 있다. 좁은 수족관에 키싱구라미 한 마리를 넣고, 거울을 들여 놓는다. 어떻게 될까. 이제는 여러분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키싱구라미가 싸움을 걸기 시작한다. 자신과 닮은 자신의 동족, 아니 사실은 자신의 모습인 거울 속의 상대를 대상으로 키스를 하기 시작한다. 죽을 때까지 키스를 한다. 누구는 그것을 키싱구라미가 ‘사랑없이 살지 못하는 물고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냉정한 현실을 읽어내는 과학자들은 내린 사망진단서에는 ‘혼자만 살려는 욕심이 불러온 자살’로 기록되어 있다. 좁은 수족관에서 더불어 살지 못하는 ‘텃세’가 끝내 죽음을 불러온 것이다. 물론 거울 속 자신을 닮았던 ‘적’도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다.

 

비로소 수족관의 평화는 죽음 후에야 찾아오게 되었다.

그렇지만 키싱구라미는 죽음의 순간까지도 끝내 그것을 알지 못했다.

 

영화 ‘쉬리’에는 ‘쉬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키싱구라미’만이 여전히 살아 있다.

연평도의 공기가 심상치 않다. 천안함 사건의 약효가 떨어진 모양이다. 좁은 땅덩어리에 공존을 하지 못하는 그들의 삶은 전설처럼 남아 있다. 사랑인지.. 욕심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키싱구라미의 이야기가... 똑같은 영화를 보고서도 ‘키싱구라미’가 ‘쉬리’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고... 그들의 ‘텃세’가 ‘사랑의 입맞춤’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메카폰을 잡고 있다.. 그 해 여름 헐리우드판 블록버스터 ‘타이타닉’을 침몰시키고 한국영화사상 최대관객을 동원했던 ‘쉬리’의 특수를 다시 재현하려는 어느 교회 장로님의 소망도 여전하다.

 

포격이 멎은 연평도에 안개가 걷히면서... 깜깜했던 극장에도 불이 켜진다. 출연자들과 감독의 이름이 적힌 자막이 오른다. 성질 급하게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의 소란스러움에 섞여... 양희은의 마지막 노래가 흐른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에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그 연못엔
작은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
그 놈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는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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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0.11.25 16:00:01 *.236.3.241
 실재냐 생각이냐를 따지는 게 가끔 부질없어 보일 때가 있다.
'생각'이 나와 세상을 좌우하는 힘이라는 걸 수긍하게 되면서
더 그런 것 같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거나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들이 그와 비슷한 느낌이겠지.
 
키싱구라미와 쉬리, 왜 우리는 별종의 물고기를 같은 물고기로 알고 있었을까.

영화 도입부에서 명현이 키싱구라미에 대해 언급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헌데
영화제목인 쉬리를 영화속에서 본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키싱구라미가 쉬리인 걸로 착각을 일으키고, 키싱구라미의 운명이 쉬리의
운명인 양 오해할 밖에.

'구글 어스'에 이어 '키싱구라미와 쉬리'를 통해 우리가 머문 3차원의
세계, 보이지 않은 '인식' 너머의 풍경을 본격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이냐 ^^
선전포고처럼 느껴지네 ㅋㅋㅋ

이 칼럼은 세 파트로 구분되어 보인다. 키싱구라미-->쉬리-->연평도.
세르게이 아이젠슈타인이 '전함 포템킨'에서 선보인 몽타쥬기법을
연상시키는 형식이다. 각각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세 장면이 교차
편집으로 보여지다가 마지막 연평도에 이르니 로또추첨기계에서
 마지막 숫자 공이 튀어나오 듯 깨달음이 확 밀려온다~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에피타이저와 본식을 마치고,
끝까지 좌석을 지켜준 관객을 위하여 준비한 양희은
의 구수한 노래가 신마담이 직접 내린 커피처럼 여운을 남겨 좋구나^^

아쉬운 한 가지. 유중원은 CP요원이라는 공인, 중원은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이라는 뉘앙스는 알겠다. 근데 한석규는 뭐니?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이야기를 우리의 일상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였다면 좀더 장치가 보강되어야 할 것 같다.
한석규라는 이름에 그 의미심장함을 담아내기에는 다소 버거워 보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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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담
2010.11.25 16:46:22 *.105.115.207
한껏 자기를 갈고, 뜨거운 물로 우려낸 커피 맛을 묻고 싶은 것이.. 마담의 마음이겠지?
마담의 마음을 읽어주는 단골의 씀씀이가 고맙다.
이 글에는 매우 복잡한 장치들이 섬세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래서 맑은 녹차는 아니고, 진한 커피같은 느낌을 준다. 연극의 무대장치나..영화 속 소품처럼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다. '영화 속 한석규' 와 바로 이어져 나오는 '그 뒤에 한석규'라는 말의 배치에... 고심을 많이 했는데, 직관에 따라 선별했다.
모르겠다.. 아직도.. 세상에 내어 놓을 글이라 생각하고.. 아프게 써 봤다.
매를 많이 맞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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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11.28 21:43:34 *.34.224.87
상현과 진철...
나의 내공으로는 둘의 대화에 끼기조차 쉽지 않구나..
다만, 양희은의 노래는 기타반주를 해 줄 수 있지..
그게 나의 몫인지도..

진철아, 난 커피보다.
별들의고향, 막걸리가 더 좋다..
알겄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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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0.12.01 04:24:45 *.186.58.35
형.. 남도에 오시면
술은 언제든 끓고 있지요...
술 한잔이 그립거든
무거운 몸만 옮기면 될 일입니다
마음 가볍게
빈 잔처럼 오시면 됩니다.
술은 언제든
정고픈 이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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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12.01 03:48:43 *.129.207.200
글쓰는 사람은, 시인을 꿈꾸다가, 안되면 소설가를 꿈꾸고, 그마저 안되면 평론가가 된다고 하더군요.

위 글을 읽으니, 형은 글을 잘쓰심에 분명합니다. 구수한 숭늉 넘기듯, 글이 술술 마음을 어루만져 줍니다. 도입도 자연스럽고, 끝에 양희은의 노래도 적절하구요. 단, 몸통이 그에 비해 약간 빈약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더 부연이나 보충 설명을 해주셨으면, 대중 지면에 실려도 손색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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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0.12.01 04:26:32 *.186.58.35
구수한 숭늉... 글이 술술
맑은 이 글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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