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이은주
  • 조회 수 2439
  • 댓글 수 8
  • 추천 수 0
2010년 11월 29일 09시 50분 등록

 

 

해가 질 무렵 많은 사람들은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인도 갠지즈강 상류 강가의 풍경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손에 꽃과 자기 염원을 담은 쪽지를 들고 강으로 모여들었다. 신께 바치는 작은 꽃이 담긴 종지를 물에 뜨워 보내는 의식이 거행되기 시작했다. ‘뿌자라고 불리우는 이 의식은 너무나 아름답다 못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들의 엄숙한 표정과 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담긴 종지가 끝도 없이 떠 내려 가는 광경은 거대한 장관 그 자체였다. 비싼 돈 내고 찾아 온 관광지에서 기가막힌 볼꺼리를 만났다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진 찍기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이대고 작품을 건져 내기에 바빴다. 하지만 나는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각자 가지고 있는 아픔들이 이렇게나 많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둥둥 떠내려 가는 종지 속의 사연은 제 각각일 것이다. 그 사연에는 기쁨도 감사함도 있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띄워 보내는 작은 종이 안에는 잊고 싶은 아픔의 사연들이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경우를 보더라도 기쁨과 행복, 그리고 감사함은 품고 있고 싶지 떠내려 보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동안 말 없이 그들의 의식을 바라보며 나만의 생각에 잠겼었다.

 

어김없이 그 많은 인파 속에서 나를 찾아온 새끼 가진 누렁이 한 마리는 나를 과거로 데리고 갔다. 찌르르 목울대가 먹먹해진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도 그들과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그 자리에서 가지고 다니던 노트를 찢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쓰면서 나는 놀랐다. 나의 과거의 아픔과 상처가 나의 첫 강아지였던 지나와의 참혹하고 또 준비되지 않았던 이별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기억을 띄워 보낼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써보니 정말로 내가 띄워 보내고 싶은 내용은 미움이었다. 나는 사람을 미워하고 있었다. 나를 외롭게 만든 사람들, 그리고 나의 기억 속에 상처를 남긴 사람들이었다. 가끔 견디기에 힘이 드는 날에는 나는 나에게 묻곤 했다. ‘나도 벗어 버리고 날고 싶다. ? 나도 나를 사랑해야 하니까.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행복해야 보내야 할 권리가 있는 거잖아. 그런데 뭐가 문제냐고? 막상 날려고 날개 짓을 하면 무언가 내 발목을 잡아 당기는 것 같아’... 나를 날지 못하게 하는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쪽지를 쓰던 그날 나를 당기는 무게는 용서하지 못한 채 납덩이처럼 무겁게 내 마음 속 깊이 가라앉아 있는 미움의 마음이란 걸 알게 되었다.

 

예전부터 나는 편지를 쓰고 싶었다. 오래 묻어 두었던 나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기에 뿌자의식은 더없이 좋았다. 그 의식은 깊은 산 속의 아담한 동굴같은 편안함을 주었다. 동화의 이야기처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쳐도 다 조용히 듣고 묻어 주는 그런 곳이었다. 사람들에게 콧물, 눈물 흘리며 나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해 달라고 부담을 주지 않아도 되었다. 고해소에 들어가서 그 많은 긴 사연을 간단히 이야기 하고 신부님께 받은 보석으로 묵주기도 한 단 올리면 호미질 없이 간단히 뿌리채 뽑히는 그런 얕은 깊이의 용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납덩이를 끌어안은 것은 나였기에 내 스스로 꺼내야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지나에게

 

지나 안녕. 하늘에서 잘 지내지? 우리 헤어진지 벌써 30년이란 세월이 흘렀구나. 하지만 나는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개들에 대한 사랑을 놓지 못하고 살고 있단다. 그 이유를 너는 알고 있지? 인간들의 무관심과 말라 붙어버린 감정이 너를 너무 험하고 외롭게 보내야 했기 때문에 나는 그 죄의 댓가로 내가 불쌍한 개들을 다 돌보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었어. 그랬더니 우연이라고 치기에는 진짜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장애를 가진 개들만 나에게 오더라. 그래서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먼저 보낸 너를 생각하며 잘 돌보며 그들과 웃고울고 지내고 있단다. 지나야, 네가 나를 통해 불쌍한 동료들을 구원하고 떠난 셈이다.

 

사랑했던 너를 내 눈 앞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일을 감당하기에는 그때 내가 너무 어렸었어. 너는 그날 쥐약을 묻혀 놓은 만두 속을 먹고는 눈이 빨간색으로 변해 입에 거품을 물고 물이 있는 곳을 찾아 뛰어 다녔었지. 그 와중에도 내가 부르니 나에게 다가오다 댓돌 아래로 툭 떨어지던 너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 한 번만 안게 해달라고 울고 불고 소리쳤는데 어른들은 너와 나의 관계를 믿지 않았는지 만지지도 못하게 했어. 그런데 커서 자식을 키워 보니까 나라도 독극물이 묻은 죽어가는 개를 내 아들이 만지지 못하게 반대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해. 하지만 내가 자식을 낳아 길러보기 전까지는 나는 어른들에게 많이 서운했다. 시간의 흐름과 경험이 많은 것을 이해시켜 주기도 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어. 그게 뭐냐하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어른들의 모습이야. 또 어리거나 약한 사람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강한 척하는 사람들이야. 내 앞에서 죽어버린 너를 잘 묻어주고 싶었지만 그 때 나는 너무도 어렸기에 나는 어른들의 처분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어.  삼청공원에 잘 묻어 주겠다던 아빠의 약속은 거짓이었음을 며칠이 지난 후에 난 알게 되었어. 내가 입던 헌 난방셔츠에 싸서 커다란 쓰레기 차 뒤에 던져 버렸다는 사실을 말이야. 난 그 뒤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꽤 오랜 시간을 쓰레기 차만 보면 울었단다. 또 자신이 무슨 짓을 한지도 모르고 먹은 놈이 잘못이지 약을 놓은 놈이 잘못이냐며 그 상황에 다시 가서 잠을 청하던 가정부 언니가 너무너무 미웠다. 아니 가는 길이라도 내 뜻대로 해주었으면 이렇게 아프지는 않았을 텐데…… 어른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처분해버린 아빠도 미웠다. 그 이후로 난 감정없는 사람들을 참 미워하며 살았어.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나는 사람들을 다 용서했기 시작했단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어른이 되면서 이해할 수 있게 된 부분들이 많아진 때문인 것 같애. 그래서 이제는 세상에 나와 너의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해. 지나야, 나 이제 너를 놓아줄 테니 너도 이제 나를 더 이상 울지 않게 만들어줄래? 정말 나의 힘든 어린 시절을 노란빛 햇살처럼 따뜻하게 기억으로 남게 해 준 너에게 정말로 고맙다고 말 하고 싶다. 그럼 하늘 나라에서 잘 지내. 안녕.

 

 

처음이다. 내가 지나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은그런데 조금 지나니 그녀가 듣고 나에게 무언가 남기고 싶어하는 말이 내 마음에 떠오를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뜻밖에 머나먼 나라에서 거행되는 의식을 보면서 그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서 찾은 나의 마음이었다. 아니라고 애써 부정했지만 나는 사람들 속에서 부딛기면서 조금씩 구하고 찾아 나가며 위로를 받고 있었다.

 

 

나의 주인님에게,

 

주인님, 있잖아요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나는 주인님을 만나 정말 행복했으니까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를 키워 준 주인님은 나의 엄마이자 내 언니였는걸요.

나에게 해수욕장의 이름을 따서 지나라는 멋진 이름도 지어줬었지요……

늘 머리에 얹고, 안고 다니던 품이 너무 좋았는걸요.

내가 난산으로 새끼를 낳을 때, 옆에서 기도해 주며 울던 눈물 때문에 나는 힘을 내어 네 마리의 새끼를 얻을 수 있었어요. 덕분에 나는 엄마도 되어보았고, 어린 나의 주인님을 할머니로 만들어 놓았지요. 누렁이, 짜몽, 흑보, 뽀삐 라는 이름을 그 자리에서 붙여주고는 얼마나 살갑게 돌봐주는지 나 역시 그 때의 흐뭇함이 기쁨으로 남아있어요.

 

나를 부모처럼 친구처럼 의지하며 온 정을 다 주며 살아갔는데……

나의 부주의로 인해, 이리 오랜 시간 아파하면 내가 더 미안하잖아요.

언젠가 헤어져야 하는 한 번의 아픔은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좀 일찍 험하게 갔지만 나보다 더 험하게 삶을 마감하는 친구들이 아직도 많은걸요……

나는 6년 너무나 만족하게 행복해서 아무런 미련도 없어요.

 

있잖아요,

난 주인님과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다 느껴지고 다 이해할 수 있어요.

이제 나를 자유롭게 놓아주고 책의 주인공으로 부활시켜 나와 있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다시 기억하게 해줘요. 그리고 어떤 이유로든 아파하는 친구들에게 주인님의 경험을 말해 주세요. 더 이상 아파하지 말라고……어떤 아픔이든 언젠가는 치유될 수 있다고 말해 주세요.

 

 

이런 한 두 번의 의식으로 나의 상처가 말끔히 낳을 수는 없을 것이다. 방 청소를 한 번 깨끗하게 했다고 해서 그 깨끗함이 오래 유지되지는 않는다.  한 끼의 식사를 배불리 먹었다고 포만감이 오래 유지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더러워졌을 때 또 치우고 배가 고프면 또 먹는 것처럼 마음 속에서 아픔이 올라오면 계속 조금씩 내려 놓는 연습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만이 정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 택한 자기만의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조금씩 새로워져야 한다. 편지를 쓰는 것, 눈물로 흘려 보내는 것, 반복적인 의식 거행 등은 모두가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자 하는 인간의 자그마한 소망의 행위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죽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을 소원하기에 어떤 방법이든 자신에게 맞는 조그만 의식을 찾아 마음 속의 무게를 끌어 앉고 힘들어 하지말고 조금씩 내려 놓아야 한다.

 

나의 이런 경험들로 인해 나는 남을 이해하는 폭이 조금씩 넓어졌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쉽게 잊혀질 수 있는 일일런지도 모르겠다. , 30년이란 오랜 세월을 아파할 만한 이야기꺼리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마다 가지고 태어난 성향이나 환경에 따라 작은 것이 일생의 장애로 따라다닐 수 있을 만큼의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난 일찍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어떤 아픔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그 이해의 폭이 내가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형성에 큰 도움을 준 것 같다. 이것이 그 어려움의 시간이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IP *.42.252.67

프로필 이미지
미옥
2010.11.29 12:19:37 *.10.44.47
언니두..
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아~
----------------
통화후~!!
언니 이 순간을 잊지 마세요.
제가 뭔지도 모르고 이 순간을 기다렸듯이
언니의 책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사랑이...사랑이였기에 더 아팠던 그 느낌이
생명의 그물에서 아슬아슬 떨어져나오려는 그들을 다시 엮어주는 코바늘이 되어줄 겁니다.
언니,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emoticon
프로필 이미지
은주
2010.12.02 09:56:25 *.42.252.67
너의 흐느낌에 가슴이 철렁했다.
그래도 내 글에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독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에
힘을 얻었다. ^^
뛰는 하트에 가슴이 또 벌렁거리게 만드네.ㅎㅎ
프로필 이미지
우성
2010.11.30 08:12:00 *.30.254.21

인생은 깊어간다..
...^*^
프로필 이미지
은주
2010.12.02 09:58:20 *.42.252.67
깊어가는 인생.
익어가는 인생.
점점 고개를 숙이고 겸손히 살아가야 하야겠구나.
들판의 누런 벼 이삭처럼.........
프로필 이미지
상현
2010.11.30 16:04:31 *.236.3.241
작정하고 썼군요 ^^

두 아들에게 한번 보여주면 좋겠어요.
이 글을 읽고 엄마의 등을 말없이 토닥여주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프로필 이미지
은주
2010.12.02 10:04:23 *.42.252.67
나는 왜 우리 아들들이 나의 등을 토닥여주는 모습이
그려지지가 않을까?
아마 사십이 넘고 철이 든 다음에 엄마가 이랬구나! 하면
성공이고 아니면 말고.......
기대를 버려야 실망도 없을테니까.......
작정하고 쓰면 참 많이 아팠다. ^^

프로필 이미지
진철
2010.12.02 20:45:07 *.186.58.124
와... 날로날로 기쁘담...
글 속은 슬픈데, 글 발은 쥑인다.
누나.. 첫 책이 베스트 셀러되면, 우리도 미인박명 신세가 될까?
프로필 이미지
맑은
2010.12.03 00:08:06 *.129.207.200
글이 날로 깊어지네요. 이대로 쭉 가시면, 정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 결과물이 책이 될 것이구요. 

자기 방식대로의 의식이 필요하겠군요.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내일 부터 운동을 해야겠습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212 [33] 시련(11) 자장면 한 그릇의 기억 secret [2] 2009.01.12 205
5211 [36] 시련12. 잘못 꿴 인연 secret [6] 지희 2009.01.20 209
5210 [38] 시련 14. 당신이 사랑을 고백하는 그 사람. secret 지희 2009.02.10 258
5209 [32] 시련 10. 용맹한 투사 같은 당신 secret [2] 2008.12.29 283
5208 [37] 시련. 13. 다시 만날 이름 아빠 secret [3] 2009.01.27 283
5207 [28] 시련(7)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secret [8] 지희 2008.11.17 330
5206 칼럼 #18 스프레이 락카 사건 (정승훈) [4] 정승훈 2017.09.09 1658
5205 마흔, 유혹할 수 없는 나이 [7] 모닝 2017.04.16 1661
5204 [칼럼3] 편지, 그 아련한 기억들(정승훈) [1] 오늘 후회없이 2017.04.29 1715
5203 9월 오프모임 후기_느리게 걷기 [1] 뚱냥이 2017.09.24 1744
5202 우리의 삶이 길을 걷는 여정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file 송의섭 2017.12.25 1748
5201 결혼도 계약이다 (이정학) file [2] 모닝 2017.12.25 1777
5200 2. 가장 비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아난다 2018.03.05 1778
5199 7. 사랑스런 나의 영웅 file [8] 해피맘CEO 2018.04.23 1788
5198 (보따리아 칼럼) 나는 존재한다. 그러나 생각은? [4] 보따리아 2017.07.02 1794
5197 11월 오프수업 후기: 돌아온 뚱냥 외 [1] 보따리아 2017.11.19 1794
5196 12월 오프수업 후기 정승훈 2018.12.17 1796
5195 일상의 아름다움 [4] 불씨 2018.09.02 1803
5194 칼럼 #27)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사는 법 (윤정욱) [1] 윤정욱 2017.12.04 1808
5193 [칼럼 #14] 연극과 화해하기 (정승훈) [2] 정승훈 2017.08.05 1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