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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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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9일 10시 15분 등록

손바닥 두 뼘의 축복! / [11-5 환자컬럼]    

인구는 국력이다. [UN 미래예측 Report] 에는 한국이 저출산 고령화로 사라지는 나라, 물부족 국가 리스트에 올라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15~49세 가임 여성의 평균 출산아 수)은 1.1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상당한 수준의 이민이 없다면 현재의 인구 수준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인구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가까운 미래에 인구가 줄어 멸망한 고대국가처럼, 나라를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 전개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인구가 줄어든다고 전 세계에서 야단법석인데도, 한국은 아직 고아수출국으로 유명하다. 또한 20 만명의 입양자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해외입양 1위를 자랑하는 나라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놀라운 일이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한국은 산아제한이 나라의 정책이었다. 예비군훈련장 조교로 근무했던 시절,‘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던 포스터 문구와 예비군 훈련을 빠지기 위해 정관수술을 하던 아저씨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러나 현대의 사람들은 더 이상 아이를 낳으려 하지 않는다. 허리가 휘는 사교육비 지출과 신뢰받지 못하는 한국의 교육체계가 젋은 부부들의 출산파업을 부추기고 있다. 일부 전문화된 여성병원과 특화된 산후조리원을 제외하면, 대학병원에서도 산부인과 환자와 신생아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 우리 병원도 마찬가지였는데 지난 달에는 특별한 두 명의 신생아가 있었다.  

첫 번째 신생아의 이름은‘무명남 아기’다. 탯줄만 끊긴 채, 병원 인근의 공원입구에 버려진 신생아를, 119 대원이 신고를 받고 출동하여 데려온 것이다. 진료를 위해서는 병원전산망에 환자의 이름을 입력시켜야 하는데, 응급실에 실려 온 의식이 없는 환자나, 소지품에서도 신원을 알 수 없는 행려자의 경우, 할 수 없이 이름을‘무명남’이라고 등록을 하게 된다. 보통 신생아는 이름이 없기 때문에 엄마의 이름을 따서‘OOO 아기’라고 하는데, 길에 버려진 아이의 경우, 부모를 알 수 없어서 이름도‘무명남 아기’가 된다.  

길에 버려진 아이는 행려자 대접을 받게 된다. 병원도 처리가 난감하다. 부모가 있으면 입양은 오히려 쉽다. 부모의 입양의사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려자 아기는 나중에라도 부모가 나타나서 양육의 권리를 주장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 입양이 쉽지 않은 것이다. 아이의 얼굴을 보고 싶긴 했지만 일부러 찾아가지 않았다.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지를 나는 그때야 깨달았다. ‘무명남 아기’는 남아였는데 다행히 건강상태가 양호했다. 아이는 신생아실에서 일주일간 응급조치를 취한 후에 간호사와 함께 담당직원이 구청으로 데려갔다. 경찰 및 구청과의 협조하에 아동복지센터로 연결될 것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아이가 신생아실로 들어왔다. 응급실로 들어온 산모가 분만한 여자아이였는데 미숙아였다. 아이의 엄마는 올해 27세, 그런데 아버지의 이름을 말하지 못했다. 상담한 직원의 말로는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했단다. 아버지가 없다면 미혼모인가 했더니, 미혼모도 아니다. 법적으로는 결혼을 한 상태였다. 지방에 남편과 친딸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엄마가 아이를 낳고는 3일 만에 병원을 도망쳤다. 응급실에 왔을 때 보호자로 연락처를 남겼던 남친과도 연락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함께 간 것으로 보였다. 경찰에 신고를 했더니 수배되어 있는 상태라고 했다. 아마도 수배된 탓에, 사회사업팀을 통해 치료비 전액을 지원해주겠다고 해도, 아이를 병원에 남겨두고 탈원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생아실에 가서 아이를 지켜보았다. 1.6kg, 깃털처럼 가벼운 미숙아다. 인큐베이터(미숙아 보육기) 에 있는 아이는 경마장의 말처럼 눈에 커다란 검은 안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황달 치료를 위한 광선치료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약물치료를 받고 있었다. 검사를 해보니, 엄마로부터 매독균을 받았기 때문이란다.  

미숙아라 그렇겠지만, 아이의 외관이 너무 작고 왜소해 보였다. 어림짐작을 해보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손바닥 두 뺨으로도 충분했다. 엄마가 미혼모도 아닌데,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 그 아이는 엄마의 이름을 따서 ‘000 아기’로 등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엄마가 찾으러 오지 않으면 이 아이 또한 엄마의 이름을 모르는‘무명남 아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운명이 될 것이다.  

두 아이의 운명을 접하면서 탈무드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화물을 실은 두척의 배가 바다에 떠 있는데, 한 척은 이제 막 출항 채비를 하고 있고 또 한 척은 항구에 입항한 상태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가 출항 할때는 떠들썩하게 환송을 하지만, 반대로 배가 입항 할때는 별다른 환영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탈무드는 이것을 그릇된 습관이라고 지적한다. 출항한 배의 앞날은 풍랑을 만나 어떤 고난을 당할지 모르는데도 떠들썩하게 환송을 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오랜 항해의 길을 끝내고 무사히 귀항한 배를 위해 축복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갓 태어난 아기에게 축복을 보내는 것은, 이제 막 항해를 떠난 배에 축복을 보내는 것과 같으며, 진정한 축복은 사람이 죽음이라는 영원한 잠에 들어갔을 때 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가 알 수 있기에 진정한 축복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축복은 죽음에 이르렀을 때 보내는 것이라니...과연, 유대민족을 5천년 간 지탱해 온 탈무드의 지혜답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아이가 어떠한 고난의 길을 걸어갈지, 도중에 병으로 죽을지, 미래에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갓 태어난 아기에게는 모두의 사랑과 관심이 절대적이다. 인생을 마감하며 입항하는 배와 더불어,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출항하는 배 또한, 열렬한 환영과 진심어린 축복을 받아야 한다.

미래학자에게 인구는 국력이 되지만, 인간은 국력을 정의하는 단순한 일개체가 아니다. 인간은 축복 속에 태어나 당당하게 살아가야 할 존재가 아닌가! 그저 기원할 뿐이다. 기껏해야 손바닥 두뼘의 크기에, 온 존재가 담아지는 저 아이에게, 우주적 축복이 가득하기를...

IP *.30.2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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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11.29 11:53:50 *.10.44.47
오빠!
슬프잖아요.
눈물이 멈추질 않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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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0.11.30 15:54:05 *.236.3.241
진철이 표현으로 하면 구글 어스식으로 내용을 전개했네요 ㅎㅎㅎ
한국의 저출산 고령화 실태를 언급하다가 신생아 이야기로 이어지는 방식이.
이렇게 접근하면 저출산과 신생아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내 주변의 
이야기로 실감나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두 아기의 모습이 머릿속에 딱 각인이
됩니다. 잔잔한 감동이 느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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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12.01 03:29:24 *.129.207.200
글을 읽어보니, 무엇을 쓰셔야할지 알겠네요. 형은 따듯한 마음을 가지셨으니, 따듯한 글을 쓰세요. 

경영과 효율, 이윤에만 신경쓰다보니, 전혀 세상의 한부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전 냉랭하고, 무미건조한 편이지만 마음이 크게 동할때가, 갓난 아기, 부모 없는 아이들을 볼때에요. 그들을 볼때면, 크나큰 연민을 느끼지요. 제 얼굴에 책임질 나이가 되면, 그들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따듯한 글. 따듯한 형. 

사족, 탈무드 이야기는 좋으데요. 굳이 반대되는 예문을 넣을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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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1 09:48:34 *.230.26.16
병원이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보편적인 감성
우리가 늘 접하는 일상, 그러나 한번쯤 생각해 볼 거리와의 접목...

좋은 느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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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0.12.02 20:36:43 *.186.58.124
역시.. 사람들 느낌은 저마다 다르지 않은가 보네요.. 선생님말씀도..마찬가지죠...
형 역시도 아시겠지요? 형이 무슨 글을 써야할지를.. 지난 번에 이어 이번 글에도...훈장을 답니다.
지난 번 일본출장에서는 평소하고 달리 델타항공을 탔습니다. 처음이었지요.
당황했습니다.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는 한국입양아가 다섯명이 넘게 있었습니다.
스튜어디스에게 물었더니, 일상적으로 있는 일이라는 말에.. 비행시간 내내 생각이 많았습니다.
아는 선배중에 소설쓰는 정도상이라는 작가가 있는데, 예전에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단편을 낸 적이 있었지요.
거기에.. 고아원에 아이 이름 하나가 '진철'이었지요. 제가 그 책 사들고...사람들한테 얼마나 자랑을 했던지..ㅎㅎ
좋은 책이 읽고 싶으냐? 그럼 좋은 글을 써라..시던 선생님 말씀이 생각나게 하는 글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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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10.12.03 10:43:18 *.254.8.227
우성님, 안녕하세요?
안부겸해서 글읽은 소감 말해도 되지요?^^

이 글은 버려진 아기로 시작했다면 훨씬 눈길을 끌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숫자에 알레르기가 있는 저같은 사람도 있고 사실 통계가 매력은 없잖아요?

0월 0일 초가을 쌀쌀한 날씨에 신생아가 공원에 버려졌다.
하고 한 단락 쓴 다음에
불과 2주일 후 또 한 명의 신생아가 버려졌다.

하는 식으로 독자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맨 끝에
통계로 정리해주는 것이 낫지 않을지요?
거기까지 따라온 독자라면 기꺼이 글쓴이의 문제의식을 공유해 줄 것이라는 생각에
한 마디 거들어 봅니다.

이름만 선배로서 우정의 표시이니 실례가 되지 않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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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12.03 15:07:24 *.30.254.21
3일전 이었죠? 아마..
우연히 [늦지 않았다]를 펴들었습니다...
힘이 들던 시기였는데,
힘을 얻어 갔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혀, 실례 아닙니다.  선배님 코멘트 감사합니다.
확실히 통계는 재미없는 것 같아요.

음..그런데, 버려진 아기를 먼저 쓰는것은 좀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 같아요.
눈길은 끌수 있겠지만, 왠지 마음이 불편해서 였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러나,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잊지 않고 기억해 둘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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