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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일 07시 40분 등록

'전주천 10년의 기록'을 발간하면서.

 

올해 드디어 ‘전주천 10년의 기록’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매우 의미있는 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전주천을 다녀갔지만, 아직껏 전주천보다 낫다는 하천복원사례를 들어보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우리에게는 지나 온 십년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미래가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가까이 2~3년쯤 후에 지금의 정부가 생명을 다하는 시간에 맞춰 4대강 사업도 청계천 신화도 걷히게 될 것이다. 그리 멀지 않은 시간이다. 그리되면 사람들은 다시 길을 물을 것이고, 지금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다시 ‘전주천’을 찾게 될 것이다. 양재에게 부탁해두었다. 그들은 ‘쉬리’가 산다는 도심하천이 궁금해서 오겠지만, 그때 우리가 팔아야 할 것은 ‘거버넌스’라고. 아무리 훌륭한 성과라도 그것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건강한 시스템이 있어야 하고, 현재 31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주생태하천협의회’는 충분히 참고할 만한 잠재적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전주의제21’이 그리고 ‘전주생태하천협의회’가 한국 사회 거버넌스의 역사를 써가고 있다는 말은 다소 과장되게 들릴지 몰라도,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 당장은 낯설고 힘들어도, 이제 얼마쯤 있으면 그런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이 책은 2009년 작년에 사실상 작업을 다 마무리해놓고서도 세상에 내기를 미룬 속사정들이 있었다. 전주천 복원 십년사에 깊이 관여했던 사람들이 처해있는 현재의 정치적 관계 때문에 그랬다. 누구보다도 ‘전주천자연형하천조성사업 민관공동협의회의 공동의장’을 맡았던 이광철 前의원의 인터뷰가 현재 송하진 시장님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었다. 이광철 前의원과 선거에서 경쟁을 했던 분이 현재 지역구 의원을 맡고 있고, 선거를 전후해서 그와의 관계가 예민했으며, 이를 어떻게든 개선하는 것이 시장으로서 우선된 선택이기 때문이다. 물론 책자에 실린 내용이 어느 것 하나 부풀려진 것도 없고, 이미 지난 일이긴 하지만 정치판이라는 것이 지뢰밭 같은 곳이어서 ‘전주시’의 후원으로 나오는 책자이기 때문에 더욱 더 신중하려는 입장은 충분히 고려되어야 했다. 이광철 前의원의 원고를 빼면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그렇지만 내 입장에서 절대 그리할 수는 없었다. 나와의 개인적 관계를 떠나서, 객관적인 자료로 남게 될 기록을 남기면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된다면, 두고두고 후회를 하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발간시기를 선거가 끝난 이후로 미루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또 하나의 곤혹스러운 문제는 생각지 못했던 다른 곳에서 터졌다. 책자의 편집과 형태를 결정하는 마지막 과정에서 강병원 前 전주생태하천협의회 의장님의 주문이 일주일에도 서너 차례 전화로 이어졌고, 사무국장을 거치지 않고서 간사에게 직접 지시가 내려가면서, 일일이 확인까지 요구하셨다. 이미 몇 권의 책을 내신 경험이 있는 분이고, 무엇보다도 ‘전주천’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자부심이 있는 분이셨지만, 너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한 달이 넘게 계속되었다. 강병원 의장님의 말씀대로 활자도 키우고, 사진 위치도 새로 조정하고, 제목들과 페이지도 손을 보았다. 그런데 ‘책자 형태’를 결정하는 일이 끝까지 합의되지 못하였다. 의장님은 예전의 검증된 형식들을 원하셨지만, 기획과 출판을 맡은 담당자의 의견은 새로운 형식으로 구성해보자고 했다. 누구보다도 책을 읽어야 할 사람들의 취향을 고려했을 때 지금의 트랜드에 맞는 책자 형식이 좋겠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었다. 그런데의장님은 당신의 의견을 쉽게 굽히지 않으셨다.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으셨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셨다. 자연스럽게 나왔던 이야기가 또 다시 반복되고, 간혹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감정이 상하기도 했다. 결국 사무실까지 쫒아 오신 의장님은 매우 흥분된 상태였지만, 그럴수록 차분차분하게 말씀드리는 것이 옳았다.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의장님의 젊은 사무국의 판단을 존중해주셨다. 그래서 책자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책자가 나오자마자 총알택배로 의장님께 보내드렸고, ‘생각보다는 괜찮다’라는 말씀을 듣고서야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의장님은 왜 그렇게 고집스러우셨을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스스로 ‘당신이 약자가 되어간다’는 생각이었다. 두어 차례 아프고 나시면서 부쩍 더 그러셨다. 노인이 되어간다는 것, 약자가 되어간다고 생각하시면서 의장님은 당신이 의사결정과정에서 소외되는 것을 유난히 서운해 하셨다. 사무국에 맡겨도 되는 작은 문제들에까지도 챙기셨다. 그런 심정을 헤아려보려고 직접 그리고 더 자주 전화를 드리고, 중요한 문제는 찾아뵙고 의견을 여쭙기도 했지만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또 하나는 의장님이 성공한 과거를 가진 분이라는 사실이다. 함께 ‘의식개혁운동본부’ 활동을 하시는 전직 교장선생님들이나 다른 이들을 통해서 전해들은 교육자로서 그리고 교육행정가로서 한 때 그는 ‘정말 잘 나가던 인재’였다고 한다. 굳이 그 분들의 말씀이 아니어도, 의장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를 들어보면, 젊은 시절 얼마나 능력있고, 깐깐한 분이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문제는 세상의 변화에도 의장님의 과거의 업무추진방식이 낫다고 믿고 계신다는 점이었다. 사무국의 미정이는 의장님 눈에는 말이나 제대로 알아들을까 싶은 여직원이었고, 그들이 직접할 수 있는 일들도 꼭 사무국장을 거쳐서 집행하라고 다짐을 받으셨다. 협의회의 간사가 양재로 바뀌고서도 마찬가지였다. 의장님은 당신이 과거에 했던 방식대로 하면 잘해낼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원고지 몇 매’로 정리해서 제출하라는 주문은 사실 너무 번거로웠다. 성공한 신화를 가진 사람들일수록 변화에 더디고,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우리 자신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주의제21은 분명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한 이야기’를 몇 개쯤 가지고 있다. 그래서 늘 성공한 사례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새롭게 부딪치는 사람들이 다르고, 미션이 다르고, 시점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전주생태하천협의회를 구성하고 운영하던 방식이 모델이 되긴 했지만 전주시자전거생활협의회에서 사무국장의 역할은 달랐다. 기획예산과와 사업할 때와 환경과와 사업할 때가 달라야 했다. 결코 그냥 재미삼아 다양하게 해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분명히 존재하는 달라진 점들이 무엇이지를 고려하지 않으면, 제대로 성장하고 변화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노인시대

현재 중국은 여러 가지 변화의 급물살을 타면서 요동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기성세대와는 다른 젊은 세대들의 문화적 차이와 갈등이다. 인구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오랜 기간 ‘1가족 1자녀’ 정책을 펴왔던 중국이 현재 안고 있는 사회적 현상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현재 중국의 젊은이들 대부분이 ‘외아들’, ‘외동딸’로 자란 것이다. 개인들의 성격들이 사회적으로 문화가 되고 있고, 지금 세대의 개인주의적 경향은 과거 전통적인 중국사회 특히 사회주의적 질서와 체계를 강조해왔던 기존 질서와 부딪치면서 심한 갈등을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작은 에피소드가 현재 빠르게 노령화 되어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미래가 어떨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노인들이 많아진다는 것, 그만큼 변화에 더딘 사회가 되어갈 가능성이 많다. 노인의 경험은 지혜가 되고, 관대함의 여유를 가지게 할 수도 있겠지만, 역으로 보수적이고, 고집스러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주시 지속가능지표에는 올해 노인복지와 관련된 지표들을 추가하기로 했다. 노인들이 늘어갈수록 노인들에 대한 사회복지는 주요한 사회적 관심사가 될 것이 분명하다. 나는 낙관한다. 그것은 지금 장년을 이루고 있는 이 세대가 바로 이전세대와는 달리 어린 시절 학교에서부터 민주주의를 훈련받았던 세대였고, 젊은 시절에는 길거리에서 현실정치에서 그것을 실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세대일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의미있는 성과와 결과들을 맛본 386세대다. 그들은 자신의 권리주장에 강한 세대다. 내가 노인복지문제에 대해 낙관하는 이유는 지금 이 세대가 자신들이 노인이 되어 자신들의 권익을 실현하는 세상을 만들어 갈 충분한 경험과 능력을 갖춘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작 우려하는 문제는 그들이 과거 자신들의 사회적 역할과 기여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점이다. 또한 그들이 자신들의 세대를 뛰어 넘어 지금의 젊은 세대(흔히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들의 실업문제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따져보고 싶다. 자신의 세대를 뛰어 넘어 미래에 주인공이 될 그들을 위해 우리는 어떤 태도와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지. 굳이 멀리 보지 않아도,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개구리들도 주변에 많고, 자신의 올챙이 시절만을 고집하는 개구리들도 적지 않다. 사회적 거대담론으로서 민주주의의 제도와 절차를 바꾸는 일에 헌신해왔으면서도, 자신의 생활 속에서 그런 리더십을 갖추는 일에는 마음 쓰지 않는다. 정작 자신은 바꾸려하지 않으면서, 미래세대들이 자신에게 맞추기를, 먼저 변화하기를 기대하는 모습들을 너무 쉽게 볼 수 있었다.

 

20년 전 총학생회실에서 심야토론을 보면서, 패널로 출현했던 민자당 의원 한 분이 말씀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도 4.19때 데모한 사람인데...” 나는 그 때 그를 비웃었었다. 그러면서 나는 절대로 미래 세대들에게 낡고, 보수적인 고집스러운 선배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그래서 나에게 묻는다. “지금 나는 후배들에게 어떤 선배인지를... 그들과 함께 어울리고, 그들을 돕기 위해 내가 변해야 것들이 무엇인지... 버려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혹시 나도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도 6월 항쟁 때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인데...”

혹시 후배들은 나를 꽉 막힌 사람,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그러면서도 아예 그런 말조차도 꺼내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이 12월 1일이다. 또 다시 1년이 갔다. 여름 내내 뜨거웠던 열정의 시간들도 차츰 저물어 가고 있고, 도시의 가로수들도 마른 가지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몇 이파리 남지 않은 시간들마저 하찮은 바람에도 제 몸을 떨구는 계절이다. 금방이라도 눈이 올 것처럼 보이던 하늘을 보니, 오늘 하루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추워지고 있다.
강병원 의장님이 건강하시기를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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