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김연주
  • 조회 수 1982
  • 댓글 수 5
  • 추천 수 0
2010년 12월 4일 13시 08분 등록

칼럼. 원영이의 기다림

수(需, 기다림)에는 믿음이 필수적이다. 성공에 대한 굳센 믿음과 함께 때를 기다리는 것은, 밝은 빛이 마침내 길을 여는 것과 같으니, 그 끝이 반드시 길하다. 이로써 대업이 시작된다.

- <주역강의> 서대원

 

날씨가 쌀쌀해졌다. 올해도 딱 한 달 남았다. 올 한해 내가 무슨 일을 하며 지냈을까하며 1년을 돌아보는데 문득 원영이 생각이 난다. 이 녀석은 올해 어떻게 보냈을까. 생뚱맞게 먼저 문자를 보내본다. “원영아~ 안녕? 어떻게 지내니? 연주샘이야 갑자기 문득 네 생각이 나서 연락해본다. 보험관련일은 계속하고 있어? 여전히 책은 열심히 읽고 있니? 아님 다른 일하니?” 장문의 문자를 보내니 바로 답장이 온다. “아침에 속사포 랩하시네요 ㅋ. 약주하셨어요? ㅋ” 원영이의 답장에 웃음이 피식 나온다. ‘이 녀석 웃긴 건 여전하군.^^’ 내가 먼저 졸업한 아이들에게 연락을 하는 일이 거의 없는 지라 녀석은 놀란 모양이다.

원영이는 고3 담임을 할 때 만난 학생으로 벌써 졸업을 한지도 5년이 되어간다. 원영이에 대한 기억은 당시 교사가 된지 얼마안된 나에게는 충격적인 일들이었다. 원영이는 가끔 지각을 했지만 1교시를 넘기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오전내내 기다려도 오질 않는다. 전화를 했더니 학교앞이란다. 교실앞에서 만난 원영이는 초췌한 모습으로 마치 감기몸살을 심하게 앓은 분위기였다. 걱정이 되어 가까이 가니 헉~ 술냄새@.@ 이정도면 밤새먹은 정도에 오바이트를 몇 번쯤 했을 법한 상황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화가 난다. 하지만 가까스로 학교에 나온 아이에게 그냥 다그쳐 혼내다가는 학교를 뛰쳐나갈지도 모를 일이다. 가슴을 진정시키고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물었다. 원영이는 처음에 절대 대답을 안 해줄 것처럼 그러더니 집히는 것이 있어 물으니 결국 그것때문이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난 속으로‘으아~ 나쁜 지지배~’라고 외친다. 학기초에 원영이가 학교에 오면 하루종일 수업시간 내내 잠을 잤다. 밤에 무슨 일을 하기에 그러냐고 물으니, 해맑에 웃으며 주유소에서 밤늦게까지 알바를 한다고 말한다. 왜 그렇게 무리해서 알바를 하냐고 어디에 쓸 것이냐고 물으니 여자친구를 위해서 한다고 수줍게 말한다. 여자친구가 100일 기념으로 반지를 받고 싶다고 해서 그 돈을 모으고 있는 중이라서 벌써 1달째 일을 하고 있다며 다음달까지 할 예정이라고 말한다. 무슨 반지가 1달을 꼬박 일해도 못 사냐고 물으니 여자친구가 원하는 것은 아주 작은 크기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것이라서 80만원정도의 가격이라고 한다. 헉! 뭐야. 이건 말도 안 된다. 원영이는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학비지원과 급식지원을 받고 있다. 자기 쓸 용돈도 모자를 녀석인데 반지값으로 80만원이라니. 원영이에게 아직 어린데 여자친구에게 반지값으로 그건 너무 과하다며 일장 연설을 했다. 내 안타까운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원영이는 여자친구를 위한 거니까 이정도 노력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웃는다. 그 웃음에 화가 치밀었지만, 원영이 보다 그걸 사달라고 한 여자애에게, 꾹 참았다. 그리고 원영이가 술냄새를 풍기며 등장한 것은 1달 반정도가 지난 시점이 었다. 술냄새의 원흉은 그 여자친구였다. 100일 기념 반지를 받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이별을 선언한 것이다. 뭐 반지를 돌려받았는지 그냥 여자친구가 가졌는지는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단지 정신차리고 내일부터는 학교생활에 충실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날 원영이는 내 전화를 받고 오후가 되어 나타났다. 여전히 초췌한 몰골로. 그리고는 ‘일주일만 이러는 거 봐주세요. 죄송해요 선생님’이라고 말한다. 원영는 자기 말대로 1주일 내내 늦은 출석을 했고, 1주일 뒤에는 예전에 밝은 얼굴로 학교를 다녔다.

2학기 추운 어느 날 원영이가 학교에 하직 나오지 않았다.1학기 그 일 이후로는 거의 그런 적이 없었는데 전화를 걸었더니 학교에 오는 중이란다. 복도에서 만난 원영이의 얼굴은 시퍼런 멍자국이 선명했다. 무슨 일인지 다그쳐 물으니, 길에서 넘어졌다고 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다시 물었다 ‘사실대로 말해 무슨 일이야?’원영이는 쭈뼛쭈뼛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술먹고 맞았어요.’ 이런 또 술을 마셨나. 누구한테 맞았냐고 물으니 형한테 맞았다고 한다. 원영이가 술을 마셔서 형이 정신차리라고 때렸구나라고 이해를 했다. 그런데 그건 내 상식대로 이해를 한 것이고 진실은 술마신 형이 원영이를 때린 것이다. 마음이 아프다. 자식이 원하든 원치 않던 부모를 닮아간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원영이와 상담을 하다가 원영이가 부모님과 떨어져 친척집에 살고 있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는 안 계시고 아버지만 있다는 사실도. 그런데 아버지가 어디 계시는지 무엇을 하시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원영이는 아버지는 나오시지 못해서요라고 말을 했는데 나는 순간 죄가 있어서 가는 학교에 계신건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알콜중독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계신 것이었다. 아버지가 그런 상황이면 형이 동생을 감싸줘도 시원찮을 판에 손찌검이라니. 착한 이 녀석은 나에게 형을 변명해준다. ‘형이 제대후 일이 잘 안 풀리는데 제가 말을 잘 안 들어서 맞은 거에요. 저 괜찮아요. 금방 괜찮아질 꺼예요.’라며 웃는다.

학기말이 되어 대입원서를 쓰는 철이 왔다. 모두들 대학원서를 쓰는데 원영이만 우리반에서 유일하게 원서를 쓰지 않는다. 자기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바로 군대에 갈 것이라고 한다. 대학에 갈 실력이 없는 건 두 번째 문제이고 등록금이여 생활비가 없는 상황에 공부를 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원영이에게 뭘 하고 싶냐고 학기초부터 물었었는데 그 때마다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원영이는 졸업을 하면서 레스토랑에 취직을 했었고 그 뒤로 군대에 갔다. 제대를 하고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로 1년이 넘게 일을 하던 원영이가 올해 5월 쯤 아이들과 모였을 때 보험설계사로 취직을 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같은 자리에 있던 그 녀석의 절친이 ‘니 얼굴로 성공하기 힘들텐데’라는 비수 같은 어쩌면 바른 소리를 듣고 순간 실망하는 눈치였지만 예의 그 웃음을 지으며 ‘얼굴이 아니라 능력으로 성공할꺼야’라는 말을 한다. 엇~ 이녀석이 이런 말을 할 줄 알았나? 놀라운 발전이다. 원영이는 요즘 성공하는 사람들의 마인드에 관련된 책을 읽는다며 그 책을 요약해서 말해주는 데 한 번 더 놀랐다. 사실 원영이가 40명중에 35등 언저리를 맴돌았던 것으로 기억하는 나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는 놀라는 내게‘공부를 많이 해야 사람들에게 상품에 대해 설명을 할 수 있으니까요.’라는 어른스러운 말을 한다. 그래 보험설계사로 성공을 하든 못 하든 이렇게 공부를 한다는 것이 원영이 인생에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열심히 하라고 격려를 해주었다. 그렇게 헤어지고 올 해가 마무리되는 시점이 되니 1년동안 원영이가 어떻게 성장해 있을지 궁금했다. 사실 그곳에서 일을 하다가 좌절을 하지는 않았는지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다.

원영이가 내 생뚱맞은 문자에 반응을 하며 전화를 해주었다. 오랜만에 전화통화이다. 원영이는 먼저 내 근황을 물었다. 무슨 일이 있으신 것이냐며. ‘별일은 없어. 단지 갑자기 네가 궁금해져서 어떻게 살고 있나.’라고 말해주었다. 원영이는 여전히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으며 오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지만 많이 배우고 있다고 좀 더 있다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볼 것이라고 말한다. “오호 그래 원영이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뭐야?”라는 나의 물음에, 원영이는 “샘도 아시잖아요. 요리요. 아이디어를 담은 요리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여유가 되면 요리학원도 다닐 것이구요. 샘 이런 요리 어때요? 깨찰빵에 스파게티를 담아서 파는 거?”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언뜻 하드롤에 스파게티를 떠올리는 것은 가능하나 깨찰빵에 스파게티라는 그림은 과연? 그래도 “어~ 정말 기발한데,한번 시도해봐. 꼭 만들어서 시식해보고 샘에게도 만들어줘”라고 말해주었다. 원영이는 “역시 선생님뿐이 없네요. 다들 반응이 시원찮아서요.”라며 웃는다. 나는 꼭 포기하지 말고 요리를 시작하라고 말하며 ‘요즘에도 책은 읽고 있니’라고 물었다. 원영이는 “요즘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편지’라는 책을 읽었어요. 인생에 대한 심오한 이야기가 담겨있어서 지금 샘에게 다 이야기는 못 드리겠구요.” 원영이는 잘 지내고 조만간 여자친구랑 한 번 놀러오라는 내 말에 “혼자가도 돼죠?”라고 말한다. "왜? 여자친구도 만나고 즐겁게 지내야지"라는 나의 말에 “아직은 계획이 없어요. 어느정도 자리가 잡히고나서 만나야죠.”라고 말한다.

원영이가 정말 어른이 되었다. 내가 안쓰러워했고 고딩시절 철없던 원영이는 더 이상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성장하고 발전한다.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않고 노력하며 기다리면 언젠가는 자신이 꿈꾸던 그 자리에 서있는 자기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알겠지? 원영아!

 

IP *.93.16.166

프로필 이미지
2010.12.06 09:27:40 *.230.26.16
원영이에게 정말 필요한 건 그를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이구나...
원영이에게는 연주샘의 문자 한통, 전화 한통이 큰 힘이 되었을거란 느낌이 온다.
그녀석에게, 그리고 연주샘에게도 얼마나 큰 축복인지...
프로필 이미지
상현
2010.12.06 13:28:36 *.236.3.241
어린 나이인데 '~때문에' 보다는 '~덕분에'에 익숙한 원영이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주 샘으로부터  흘러간 따땃한 사랑이
원영이를 통해 더 넓게 주변으로 흘러 나가기를~~
프로필 이미지
미옥
2010.12.06 13:45:12 *.10.44.47
연주야.
참 깊구나.
좋다.  ^^
프로필 이미지
은주
2010.12.07 16:33:57 *.42.252.67
일단 글이 길어진다는 것은 할 말이 많아진다는
의미이다.
할 말이 많다는 것은 쓸 거리가 많다는 거다.
좋아 ~~ 편집은 나중에 해도 좋으니 무조건 풀어
길게 쓰도록~~~^^
프로필 이미지
맑은
2010.12.08 02:06:21 *.129.207.200
동화책으로 만들어도, 좋을듯해. 학부모를 위한 동화. 글을 읽으니, 그림이 떠오른다. 

사업하는 사람에게는 사업가 마인드가 있고, 교사에게는 역시 교사 마인드가 있구나. 
나라면, 술먹고 학교 오는 애를 다짜고짜 다그치고, 다시는 술먹지 않게 조치를 취할텐데. 
연주는 다르다. 

글을 쓴 너보다는, 글 안에 아이가 남는다. 이상적인 글이지. 나는 없고, 행위만 혹은 결과만 남는 것.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칼럼. 원영이의 기다림 [5] 김연주 2010.12.04 1982
3171 밑이 구린 사내들 이야기, 미꾸라아-쥐 [8] 신진철 2010.12.04 2567
3170 하계연수 단상31 - 그대 무대를 꿈꾸어라 file 書元 2010.12.05 2122
3169 하계연수 단상32 - 뱃사공 카론의 여정 file 書元 2010.12.05 2225
3168 라뽀(rapport) 34 - 이승호 완패(完敗) 書元 2010.12.05 1739
3167 개들과의 행복한 동행 [12] 이은주 2010.12.05 2086
3166 의식 수준에서의 ‘무기력’의 위치 [6] 박경숙 2010.12.06 3044
3165 [칼럼] 따로 또 같이, 그와 나의 취미생활 (1) [9] 이선형 2010.12.06 2208
3164 손님이 나를 만든다. [14] 맑은 김인건 2010.12.06 2110
3163 [컬럼] 니가 사람이냐 [11] 최우성 2010.12.06 2145
3162 니체씨 히틀러양을 만나다(가제) 인물 프로필 [18] 박상현 2010.12.06 2222
3161 응애 44 - 지상에 숟가락 하나 [4] 범해 좌경숙 2010.12.09 2311
3160 [12월 오프과제] version 2.0 [2] 신진철 2010.12.09 1866
3159 [12월 오프과제] Version 1.0 [5] 이선형 2010.12.09 1692
3158 [뮤직라이프] 1호 - 가리워진 길 file [2] 자산 오병곤 2010.12.09 7990
3157 [12월 오프과제] Version 1.0 [4] 김연주 2010.12.10 2098
3156 <12월 오프> Version 2.0 [3] 김연주 2010.12.10 1819
3155 12월 오프과제, 목차 맑은 김인건 2010.12.11 1855
3154 12월 오프과제_V2.0 박상현 2010.12.11 1872
3153 변화경영 연구소 Song년회 file [2] [1] 書元 2010.12.12 20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