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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5일 13시 47분 등록

이런 젠장.

책을 읽으며 일부러 넉넉하게 여유를 부리고 왔건만 도착한 목적지는 가야할 곳과는 전혀 반대 방향의 노선.

큰마음 먹고 구입한 아이폰에서의 지하철 노선도 앱을 애꿏게 욕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한번만 갈아 타서 가면 된다고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이런 젠장.

돌아볼 시간이 없다. 반대 방향으로 서둘러 갈아 타야 한다.

 

자리에 앉았다. 이번엔 내려야할 코스를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눈을 부라린다. 가야할 곳의 전동차가 맞나 다시 한번 이정표를 확인. 안심.

그런데 이게 웬일. 혹시나 싶어 손에 꼭쥐고 있는 전철 노선도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나의 눈은 동그래진다. 또한번 낭패. 분명히 해당되는 노선을 탔다고 생각 했었는데 다시 처음의 상황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연출.

속이 부글부글. 이번에는 방향감각이 없는 애꿏은 나의 머리를 쥐어 박는다.

나는 왜이럴까. 원산폭격을 해야 정신을 차리려나. 요새는 술도 안마시는데 왜이러지.

다시 내려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정말 이제는 제대로 타리라. 각오를 다져본다.

사업자에게 전화를 하였다. 반대 방향으로 가서 그러니 제시간보다 늦을 예정이라고. 죄송하다는 말씀과 함께.

드디어 제대로 도착을 하였다. 예정 시간보다 십오분 지연.

지상으로 나오니 쌀쌀한 겨울 바람이 휑하니 마중을 나온 가운데 머릿속이 복잡하다. 빨리 마음의 안정을 찾아야 하는데.

 

거래처 사무실에 들어서니 난로가에 옹기종기 카운슬러들이 모여 앉아 있다.

심호흡을 해본다. 강의시 첫느낌과 첫인상이 중요한데 오늘은 아무래도 아침부터 일진이 사나워서...

 

교육에 들어갔다. 해야할 이야기는 많은데 그렇다고 예정 시간을 넘어서 마칠수는 없는법. 시간이 지연될수록 참석자들의 집중도와 몰입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작하자 마자 한사람이 약속이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갑자기 기의 흐름의 한순간이 기타줄 가닥이 풀리듯 틀어진다.

내심 개의치 않고 이어 나가면서 강의 내용에 대한 질문 하나를 팀장에게 던져 보았다.

답변이 없다. 아무 말이 없다. 대답을 해. 왜 아무 말이 없는거니.

바라 보지만 그녀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이런 젠장.

그러다 아무 말도 없이 불쑥 나가 버린다.

두 번째 기타줄이 풀어 짐과 함께 나는 페이스를 잃어가고 있었다.

 

강의는 우리네 인생살이 처럼 밀고 당기는 게임으로 볼 수 있다.

내쪽으로 줄을 당길시 상대편 사람 혹은 사물이 원만하게 당겨올 때는 수월하게 무엇이든 진행이 된다. 반대로 내가 줄을 당김에도 반대쪽에서 끌려오지 않으려 하거나 나아가 더 세게 당기는 경우에는 상황이 역전이 되어진다.

모든 일이 그렇듯 이처럼 흐름이 중요하기에 그것을 잘타야 하는데 오늘은 그렇질 않다.

늦게 도착된 것에 대한 나자신에 대한 책망감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수강생 두분이 자리를 뜨니 신경은 더욱 예민해졌다.

거기에다 강의에 대한 반응이 없으니 더욱 답답. 그녀들은 묵묵부답 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기에 강의의 호응을 일부러 부탁 하였는데도 짜고 치는 고스톱인지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다. 아무래도 오늘 최대의 강적들을 만난듯 하다.

괜한 책망이 그녀들에게로 향한다. 도대체 여기에 왜 앉아 있는 것일까. 강제로 끌려왔나.

나도 본사의 녹을 먹으면서 바쁜 시간 쪼개어 방문 했건만, 아니 노골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나름 강의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는 강사인 나자신이 방문 했는데도 도대체 이런 분위기는 무엇을 이야기 하는건지.

잔신경이 더욱 우뚝 선다. 마음이 갈래 갈래 흩어져 간다. 한번 틀어진 이런 느낌으로 운영시 자신이 원하는 방향성으로 이끌고 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경고의 감각이 신호를 계속 보낸다.

 

제대로 매듭이 풀려져 나가지 않으니 식은 땀이 절로 난다. 말이 꼬인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나자신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동안의 짠밥을 살려 내딴에는 최대한 티가 안나도록 말을 이어가며 마무리를 지었다. 휴~ 다행이다. 아쉬움은 무지 묻어 나오지만 그래도 끝마쳤다는 안도감의 정취에 젖어 들려고 하는 순간 손을 든 팀장 하나의 공개적인 질문으로 인해 다시 상황은 역전이 되어갔다.

“본사에서 오신 분이니까 하나 여쭙겠습니다. 제품 샘플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고객을 만날려고 해도 활동용 샘플이 없으니 영업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도대체...”

이런 젠장. 샘플 문제는 타업체의 수급과 관련되는 사안이라서 답변 하기가 참 애매한 질문 내역이다. 그럼에도 영업 담당자도 아닌데 나에게 묻는 저사람의 저의는 무엇일까. 답답 하니까 묻는 것이라고 나름 애써 이해를 해보지만 나의 마음을 실은 원망의 화살은 그대로 그녀의 과녁판으로 향했다.

“여사님은 팀장의 직책을 가진 분이 아니신가요? 가급적이면 강의와 관계되는 내용 외에 질문은 따로 개인적으로 해주셨으면 더 좋았을 것인데 아쉽네요.”

공감은 커녕 나의 이런 답변이 튀어 나오자 그녀는 샘플 이야기의 화두로써 나를 더욱 몰아 세운다. 뭘하자는 걸까? 내가 봉으로 보이나? 그런 가운데 다른 카운슬러들도 하나둘 그녀의 말에 동조를 해댄다. 수군거림이 시작 되었다. 개인을 넘어선 집단의 행동이 시작된 것이다.

 

거기에다 또 한사람이 손을 들고 다음 질문을 해대었다.

“신제품 출시 된지가 얼마 되었다고 또 가격을 올리는 겁니까? 한창 붐을 타서 판매를 하고 있는 입장인데 이렇게 가격 변동을 갑자기 하면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 인지요. 도대체 본사는 뭘하고 있나요?”

이사람아. 나는 교육부야. 그런 일은 마케팅 부서 담당 직원에게 물어 보아야지 나에게 이런다고 해결이 되나. 가격이 인상되면 우리도 죽을 맛이야. 저네들이야 제품을 만들어 놓으면 그뿐이지. 현장에서 수습 및 해결을 하는 것은 우리와 같은 일선 외근 부서 직원들 이라고.

 

나의 감정 콘트롤의 한계는 이제 넘어섰다. 자제력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지금 질문을 하시는 의도는 무엇인가요? 강의와 관계된 내역에 한해 여쭤봐 달라고 말씀 드렸었는데 또 분명히 제가 앞사람에게도 얘기 했던 것처럼 그런 꺼리들이 있으면 마치고 조용히 1:1로 해도 될 것을 공개적으로 다시 떠드는 이유는? 그리고 당신들은 팀장 이예요. 팀장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사장님을 보필하고 사원들과의 중간 역할을 하는 존재 아닙니까. 강의 잘 끝나고 나서 이렇게 분위기를 흐리게 만들고 썰렁하게 하는 이유가 뭔가요?”

적개심의 화살은 그녀를 관통 시켰다. 이제는 그녀나 나나 감정적인 대립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질문의 해답을 바라는 내용의 끈을 계속 놓치 않는다. 이 아줌마가 지금 뭐하자는 건가? 그렇게 이야기를 했으면 알아 들어야지. 정신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나랑 지금 한판 하겠다는 건가. 속이 끓는다,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자제가 안된다. 도가 넘어가는 것 같다. 입밖으로 험한 말들이 틔어 나올려고 한다.

 

아기들은 엄마의 표정, 느낌, 생각을 태생적으로 캐치를 잘한다고 한다. 카운슬러들도 마찬가지다. 베테랑 영업사원들은 고객을 만나 상담시 대상자가 얼마짜리 제품을 구입할 것인지를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아채 낸다. 그렇기에 오랜 결혼생활과 세일즈 현장에서 다져진 그녀들의 내공은 강사의 순간 순간을 귀신같이 포착해 내는건 일도 아니다. 성품과 강의 레벨이 어느정도 인지를 바로 간파해 내는 것이다. 그런 그녀들에게 속내를 감추어도 시원찮을 판에 오늘은 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상황수습을 위해 우격다짐으로 끝맺음을 지었다. 만족감 보다는 아쉬움이 밀려 들어오며 도망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내가 무엇을 한건가.

명색이 강사라는 사람이

명색이 리더십 강의를 한다는 사람이

명색이 코치라는 사람이

강단에 서서 수강생이랑 언쟁을 벌이다니.

나자신도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겨버릴 일만은 아니었다.

 

부끄러웠다. 사람은 밥값을 해야 한다는 나의 평소 지론이 무너져 내린 오늘.

강사는 강의로써 밥값을 해야 하는데 나의 치부를 다드러내어 보였으니 어쩐다.

얼굴을 들수가 없어 그냥 나올려는데 사업자가 기어이 식사를 하고 가란다.

마지못해 염치없이 기다리고 있던차 언쟁을 벌였던 카운슬러 한분이 현장으로 나가면서 한마디를 건넨다.

“오늘 수고 많았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고 가세요.”

병주고 약주는 건가.

 

의식은 그렇지 않는데 배고픈 나의 위장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듯 숟가락을 뜨니 밥이 절로 넘어간다.

식사가 끝나갈 즈음 사업자가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살벌한 상황을 연출 하였던 카운슬러에게 문자가 왔단다.

“저 때문에 불편 하셨다면 죄송 합니다. 다음에 다시 한번 꼭 찾아 주세요.”

 

화해의 제스처를 먼저 제시하지도 못한채 밴댕이 소갈딱지의 역할만을 충실히 이행한 나는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능구렁이 아홉 마리가 들어있는 그녀들. 산전수전 다겪은 그녀들과의 전투에서 오늘은 진정한 나의 완패(完敗)였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다. 목구멍으로 밥은 꾸역꾸역 잘도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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